소외받는 중앙시장 상인들을 위해 발 벗고 뛰어
빚보증 잘못서 전 재산 떼이고도 안쓰러워 눈물

“익산에 온지 45년 됐으니까 내 나이 한창 때부터 익산을 제2의 고향으로 삼고 살았던 거지. 내 그렇게 고생하고도 익산을 떠나지 않은 거 보면 인연은 있다고 봐야지.”

전판동(80) 옹은 정읍 신태인 출신이지만 젊은 나이에 고향을 떠나 장사를 하려고 맘먹었다. 1967년 당시엔 이리역 근처로 상설시장이 들어설 정도로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었기 때문에 익산을 선택했다고 한다.

곳곳에 들어서는 새터 마을에 둥지를 튼 그는 익산역 앞 신작로 변에서 마늘 장사부터 시작했다. 그 땐 마늘이 귀한 때여서 장사치도 별로 없었고 제주도고 어디고 전국을 돌며 물건을 조달해야 했다. 열심히 일한 덕에 어느 정도 자리도 잡아 갔다.

그런 그에게 시련이 다가왔다. 마늘 장사가 신통치 않게 된 것이다. 그 이유를 그는 “그때 열차 승무원들 가족들은 열차 타는 것이 공짜였다고. 그러니까 부인들이 그냥 목포나 여수까지 다니며 한보따리로 마늘을 갖다 파는데 한 두 사람이 아니니까 버틸 재간이 없는 것이여”라고 전한다. 익산에 마늘이 풀려버렸다고 표현할 정도였다.

그런 와중에도 그는 상인들과 함께했다.

당시 이리시는 신작로 변의 상인들을 중앙시장 2층으로 모두 옮기게 했는데, 시에서 운영 위탁을 받은 번영회가 사용료를 받아가고 자리를 맘대로 배정하는 등 횡포가 심했다. 시장 창고의 물건을 맘대로 갖다 팔아버리기도 했다.

그는 그런 불의를 가만히 보고 있을 수 없었다. 시장을 돌며 상인들을 설득해 새 번영회를 만들어 권리를 찾는가 하면, 시장 상인들이 점포를 싸게 분양받을 수 있도록 시청을 드나들며 공무원을 재촉하고 측량까지 다 챙겼다. 그렇게 해서 조금이라도 소외받는 상인들이 없어야 된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는 “나도 무식하지만 내가 아는 만큼도 모르니까 당하고 살아. 그래서 단단히 일러줬지. 내 덕에 부자 된 사람 많어. 나만 시장에서 돈 못 벌었지”라고 말했다.

그가 돈을 못 벌게 된 사연은 이렇다. 시장 상인들 중 동네 사람이고 그와 친분이 있던 청년에게 돈을 빌려주고 보증까지 서줬다가 전 재산을 날리게 된 것. 망연자실해 있는 그에게 도망간 청년에게서 편지가 도착했다. 그간 사정을 설명하고 죽으려 했는데 너무 미안해서 못 죽고 돈을 꼭 갚겠다는 내용이었다.

그는 편지를 꺼내 보며 “당시 600만원이면 논 한필지도 더됐지. 근데 그 사람을 잡으면 뭐해. 빤히 여러 군데 빚지고 제 딴에는 어찌할 도리 없이 그리 돼서 안쓰럽기만 하지”라며 그 일을 떠올렸다. “편지를 일단 새댁한테 가서 보여줬어. 살아 있으니까 너무 걱정 말라고. 펑펑 울며 하소연 하는데 내가 다 애가 타더라고. 더운밥 먹이고 잘 재워서 보냈어.”

그런 일이 있은 후 그는 먹고 살 일이 막막했다.

그래서 시작한 일이 연탄 장사였다. 무일푼으로 시작할 수 있는 일이 그것뿐이기 때문이었다.

못사는 중에서도 가장 천대받는 일이라며 반대하던 집사람도 1년 만에 어쩔 수 없이 승낙했다.

그러나 10년간의 고생 끝에 아내가 병을 얻자 그는 연탄 일을 그만 두고 그 자리에서 지업사와 문방구를 겸한 장사를 시작했다.

동네에 눈을 돌리자 그는 도로포장 등 지역 현안 해결에 적극 나섰다. 적어도 자신이 몸담고 있는 동네만큼은 할 수 있는 만큼 노력해서 다 같이 잘 살아보겠다는 마음뿐이었다.

시청에 진정서가 쌓일수록 동네가 변화되는 보람도 있었다.

그는 “잘난 게 아녀. 오히려 못났다고 해야 맞지. 이날까지 고생하고 사는 게 다 그 때문인 것을, 그냥 내 마음이 그렇게 생겨먹은 사람이라 어쩔 수 없는 거지”라고 하며 지금도 20년 전과 같은 모습 그대로인 샛별 문방구를 지키고 있다.                    

     정완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