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성해야 할 때 반성하지 못하고 넘어간 게 큰 문제

작년 말 18대 대선 패배 이후 민주당이 불안하다.

전북지역 유권자들은 무려 86%나 문재인 후보를 지지했는데 영남과 충청에 쌓여 정치적인 섬처럼 고립됐고, 심각한 상실감과 실망감을 맛봤다.

그러나 의외로 민주당은 조용하다. 초선 의원들은 국회 앞에서 천배를 올리며 사죄했는데, 당은 원내대표만 다시 뽑았을 뿐이다. 비대위원장 체제가 수립됐지만 뭔가 뾰족한 대책이 나올 것 같지는 않다.

하지만 문재인 후보가 48%의 지지를 받았고 민주당이 제1야당인 만큼 향후 행보에 대한 국민의 기대 또한 잠재돼 있는 게 사실이다. 

전북지역에서는 이춘석 도당위원장 중심으로 정치쇄신 운동, 즉 ‘정풍운동’이 일어나고 있다.

따라서 지난 8일 <소통신문>은 변화와 생존의 기로에 서 있는 민주당 전북도당 이춘석<익산갑> 위원장을 만나 대선 패배에 대한 진단과 향후 과제에 대해 대담할 기회를 마련했다.

이 의원은 시종일관 진지한 태도로 거침없는 비판을 이어갔다. 대담은 익산시 북부시장 옆 익산갑 지역위원회 사무실에서 이뤄졌다. 

           대선 패배의 근본 원인은 “변하지 않은 민주당”이었다.

이춘석 위원장은 요즘 지내느냐는 첫 인사에 ‘죄인처럼’ 지내고 있다고 말했다.

“민주당 국회의원이 죄인 아닙니까?”

간단히 인사를 끝낸 후 질문과 답변을 시작했다.

△새삼스러운 질문이지만, 대선 패배의 원인을 무엇이라고 진단하고 있나.

= 대선 이후 각계각층에서 다양한 원인을 들며 진단하고 있다.

안철수 후보와의 감동 있는 단일화 실패, 50대 인구구성의 변화, 새누리당과의 정책 차별화 실패, 프레임 구성 미숙과 국정원 여직원 사건 등 이슈관리 실패 등등. 이것들도 나름 옳지만 근본적인 원인으로 보기는 어렵다.

이런 진단들은 여건이 안 좋았다거나 기술적으로 실패했다는 외부적·기술적 원인만 담고 있지 과연 민주당의 밑바탕이 어떠했는지는 간과한 것이다.

나는 대선패배의 가장 근본적인 원인이 ‘변하지 않은 민주당’이었다고 생각한다. 국민들의 반 이명박 정서에 기대 정권심판론을 전가의 보도로 여기고 단일화만 하면 표를 몰아줄 것처럼 안주하면서, 성찰하지 않는 모습을 보인 것이 결국 대선 패배로 이어진 것이 아닌가 한다. 

새로운 미래, 국민들의 실제 삶이 나아지는 정책들을 설득력 있게 보여드리지 못하고 그저 새누리당은 안되지 않느냐는 반대심리에 기댄 것이 패배의 가장 큰 근원인 것 같다.

다수 국민들이 안철수 전 후보에게 열광한 이유가 무엇이겠나. 지금과는 다른 정치.

새로운 정치를 표방했고 뭔가를 바꿔줄 것이라 기대했기 때문에 환호했던 것이다. 안철수 현상이 겉보기에는 지지율 1위를 달리는 박근혜 후보의 위기였지만, 실상은 변하지 않는 민주당의 위기를 경고하는 메시지였다.

작년에 민주당은 져서는 안 되는 선거를 졌다. 그것도 총선과 대선에서 연거푸 두 번이나 졌다. 민주당이 앞으로 갈 길은 그 오만을 국민 앞에 사죄하고 뼛속 깊이 쇄신하는 것 밖에는 없다고 생각한다. 

 △민주당이 새누리당에 비해 대선 전략과 전술에 많은 한계를 드러냈다는 비판이 있다. 전략부재의 원인은 뭐라고 생각하나.

= 한 마디로 안이했다. 민주당이 정말로 정권교체를 위해 모든 것을 내던지려 했다면 박근혜 후보에 상응하는 각오로 철저하게 준비했어야 했다.

특히 4월 총선을 지고 대선에 빨간불이 들어왔을 때 분명히 현실을 인식하고 쇄신하는 모습을 보였어야 했다. 당장 새누리당은 안철수 현상이 대두되자 당명과 로고, 인적 변화를 꾀하는데 오히려 민주당은 질 수 없는 총선에서 졌다는 비판을 받고서도 전혀 변하지 못했다.

19대 민주당은 18대 민주당과 달리 128석을 보유한 거대 야당이다. 각 지자체와 기초의원까지 합치면 역량을 결집시킬 기반도 충분하다.

그런데 가장 중요한 대선기간 동안 프레임도 놓치고 이슈 주도권도 뺏겼다. 무사안일하고 쇄신하지 못하는 공룡정당이 된 게 아닌가 하는 걱정이 든다. 반성해야 할 때 반성하지 못한 것, 더 철저하게 쇄신을 해야 할 때 적당히 넘어간 것이 가장 큰 문제다.

노무현 정부 때 성과와 오류를 철저하게 분석해서 부족하거나 잘못한 점은 철저히 사죄드리고, 계승할 부분은 공약으로 재무장했어야 했다. 그랬다면 전략을 세울 수 있었을 것이다. 그것이 우리의 미래를 말할 심장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심장, 동력이 없는 상태에서는 안철수 효과와 정권교체 열망에 기대는 것 외에는 어떤 방법도 찾을 수 없었다. 기본이 다져지지 않은 상태에서 전략이란 그저 사상누각일 뿐이기 때문이다. 기본으로 돌아가지 못했던 것, 그것이 패인이라면 지금이라도 민주당은 기본을 닦는 것부터 시작해야 할 것이다. 

참여정부 과오 반성 않고 적당히 넘어간 게 문제

기본이 없는 상태에서의 대선전략은 ‘사상누각’ 

비대위 체제는 강력해야

△한명숙 전 대표는 참여정부때 총리를 지냈는데, 엠비 정부서 탄압받으며 부각된 후 당 대표가 돼 총선을 이끌었다. 이후 친노 좌장이라는 이해찬 의원이 당 대표가 됐다. 이때부터 문제가 있었던 것 아닌가.

= “친노세력”은 “친노”가 없다고 한다. 그러나 국민들은 있다고 말한다.

그럼 개인의 입장을 떠나 국민이 있다고 보기 때문에 있다고 나는 보는 거다. 참여정부가 5년 전에 국민의 삶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해 정권을 넘겨준 것 아니냐. 이후 노 전 대통령이 수사 받고 서거하고 하면서 참여정부 평가를 정확히 안했다. 그 때 했어야 했는데.

노 전 대통령이 부엉이 바위에서 돌아가시면서 ‘폐족’이라고 불리는 친노가 반성하지 않는 상태에서 복권이 이뤄졌고 한명숙 전 총리가 당 대표가 되면서 공천권을 갖게 되고 이런 바탕에서 문 후보가 대선후보가 되고 대선을 치렀다.

그런데 친노든 반노든 당을 주도적으로 이끈 사람들이 있는 것 아니냐. 그렇다면 정치적 책임이 있고 또 책임을 져야 한다고 본다. 총선에 대한 평가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대선을 치러 패배했다. 아직도 민주당은 정신을 못 차렸다.

지금 민주당을 보면 국회의원 전부가 대선 패배에 대해 연대책임을 져야 한다는 얘기가 나온다. 물론 모두가 책임을 져야 하지만 경중을 따져 책임을 더 져야할 사람들, 또 대선을 패배로 이끄는데 주도적으로 나선 사람들은 비대위 구성이나 차기 전당대회에서 물러나야 한다는 것이다.

누군가는 책임져야 하고 나도 제1정조위원회(정책위원회 산하 법사위, 행안위, 통일외교통상위, 국방위 정책을 총괄하는 당내 정책부서) 위원장과 도당위원장직을 내려놓겠다고 얘기했다.

그런데 패배에 직접적인 책임이 있는 사람들이 책임이 없다고 하니 국민들이 납득을 못한다.

책임질 사람 책임 지고 개별 의원 활동 보장해야
선거결과 깨끗이 인정해야 민주주의 기초 잡힌다

△당내에서는 최근 노동대책위를 구성해 현장을 챙기겠다고 한다. 문 후보는 자살한 노동자의 빈소를 찾아가고 대선 전에도 노동현장을 많이 방문했는데, 그러나 매스컴에 보이는 이런 모습과 민주당 국회의원들의 국회 내 활동은 친 노동·친 서민인 것 같지 않다. 원인은 무엇인가.
 = 민주당 의원의 구성을 보면 노동운동 한 사람도 많다. 이 사람들이 적극적으로 해야 했는데 미흡했다.

물론 민주당이 노동자, 농민을 챙겨야 하지만 그게 다는 아니다.

민주당은 대중정당이다. 일정 부분은 노동·농민 쪽에 할애해야 하지만 다른 부분들도 챙겨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전반적으로 민주당이 다 부족하다. 국회의원 잘못도 있지만 지도부가 적재적소에 일을 맡기고 독려해야 하는데, 그런 부분이 부족하다. 집권당으로 거듭날 수 있고 국민에게 희망을 줘야 한다면 사람 바꾸고 이념을 좌냐 우냐로 하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당을 운영하는 그릇의 틀을 바꿔야 하는 것 아닌가 한다.

민주당 간판을 바꾸는 것을 포함해 큰 틀을 바꿔야 하고 그래야 5년 뒤 정권을 찾아올 수 있다고 본다.

민주당의 책임론이 대두될 때 항상 호남 국회의원에게 책임이 온다. 호남의원은 비례대표 쯤으로 생각하는데, 사실 당에서 최고로 노력하는 사람들이 호남 의원이다.

그런데도 총선 때 호남의원은 무조건 물갈이 대상이 되며, 당은 선거 때마다 전략적인 선택을 하라며 호남인의 의사를 강요한다. 호남이 민주당의 기둥인데, 당에서 호남의 미래와 호남 의원에 대한 배려가 없다.

이런 상태에서는 솔직히 호남인들의 무조건적 민주당 지지도 옳지 않다고 본다. 지금 전북도민이 민주당이 좋아서 지지하나. 차마 새누리당을 지지할 수 없으니까 그런 것 아닌가. 당이 이런 문제를 인식해야 한다.

△대선 패배 후 민주당 열성 지지자들 사이에서 부정개표 문제를 제기하며, 수개표 하자는 말도 나온다. 공조직을 아무리 신뢰하기 어려워도 부정개표가 실현 가능한 것인가? 어떻게 보나.

= 국민들이 지난 5년간 엠비정부에서 상처를 많이 받았다. 권력이 국민위에 군림했는데, 그래서 권력교체를 위해 민주당 문재인 후보를 선택했다.

그래서 실망이 컸다. 개표 다시 하자는 일부 주장에 공감 가는 것도 있다.

그러나 민주당은 48%의 지지를 얻은 정당이다. 민주주의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결과에 대해 승복하지 않으면 민주주의의 기초가 깨지는 것이다.

재개표 주장도 주의 깊게 들어야 하지만 소송을 제기하거나 공식적으로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신중해야 한다고 본다.

△일부 국민들이 정치인을 인기스타나 아이돌가수를 추종하는 것 같은 ‘팬덤문화’에 빠져 있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있다. 이것은 총선과 대선 패배의 책임론을 흐리게 하고 책임져야 될 사람들을 오만하게 만들며, 국민들의 판단력도 흐리는 문제를 일으킨다고 생각하는데.

= 그게 우리 정치의 현실이라고 본다. 우리 정치는 정당정치인데, 정당이 후보를 내고 후보를 통해 정권을 가져오는 건데, 우리 정당문화가 국민요구를 못 담는 거다. 그래서 개인을 내세워야 지지를 받을 수 있는 것이다.

문재인은 민주당 없이 후보가 될 수도 없었고, 48% 지지율도 얻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데 대선 때 문재인 후보가 전북 방문했을 때 전북지역 국회의원은 단상에 올라오지 말라고 했다.

문 후보가 그런 생각을 갖고 있었던 것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이런 것은 안 된다. 이런 상태의 변화가 없이는 제2,3의 안철수 현상이 올 것이고, 5년 뒤에도 정권 못 가져온다. 변화해야 한다는 게 민주당의 숙제다. 

△더 깊이 들어가 보자. 총선 후 당대표 선출 때 이해찬 의원이 김한길 의원에 맞서 역전승을 했는데, 친노 인사들과 이를 열성적으로 지지하는 세력이 표를 몰아줘서 결과가 바뀌었다는 얘기가 있다. 그래서 이런 사람들의 정치행태가 바뀌지 않으면, 100만 선거인단을 확보한들 공정한 경선이 되겠나 하는 비판도 나온다.

= 다음에는 경선 방법을 정할 때 그 부분을 냉철하게 판단해야 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국민 의사를 수렴하기 위해서는 많은 국민을 참여시켜야 하기에 모바일 투표를 도입했다.

두 번에 걸친 민주당 당대표 선거와 이번 대선 후보경선을 통해서 모바일 투표가 국민의 의사를 대변하는 것이 아니라 특정 집단이 국민의 의사를 왜곡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특정 세대, 특정성향의 사람들이 집단적으로 참여해 다양한 계층과 연령의 국민 의사를 왜곡시켰기 때문에 현장투표와 모바일 투표의 가치를 동등하게 평가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본다.

아마 모바일 투표방식을 그대로 가져가기는 어려울 것 같다. 투표장에 가서 하는 사람과 집에서 앉아서 하는 사람을 동등하게 대우할 수는 없다고 본다.

선거인단을 동원할 염려는 양쪽 다 있지만 모바일이 더 쉽다. 표를 몰아서 결과를 왜곡할 수 있는 우려가 있다.

정당정치가 국민요구 못 담아 정치인 추종현상 발생
원칙 정한 뒤 욕 먹어도 한길로 가야 신뢰 확보
모바일, 국민의사 왜곡

△한미FTA 국회 비준, 제주해군기지 예산 통과 문제는 민주당이 공식 반대입장을 밝힌 문제다. 그런데 협정 비준 때 민주당 국회의원 다수가 출판기념회장에 있었고, 최근 해군기지 예산 통과 때는 의원들이 출석하지 않았다. 몸싸움을 금지한 국회선진화법에 어긋나서 그랬다는 핑계도 나왔다. 민주당은 왜 이런가.

= 민주당 이념성이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새누리당은 보수, 진보정의당은 진보다.

그래서 민주당은 구체적인 상황에서 어떤 행보를 취하느냐에 따라 표를 뺏길 수밖에 없고 비난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이념적 지표가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번 대선 때도 민주당은 안철수나 이정희 둘 중 어느 쪽에 더 붙을 것인가는 정답이 없다. 다만 의원들이 자기 역할에 충실 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본다.

성향에 따라 적극적으로 제 역할을 하면 된다. 따라서 제 역할을 할 수 있게 당에서 길을 열어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이것은 민주당이 계속 고민해야 할 문제다. 좌로 가든 우로 가든 고민해야 한다.

문제는 원칙을 정하지 않아 욕을 얻어 먹는 것이다. 원칙 없이 상황마다 행동이 바뀌니까 신뢰할 수 없는 정당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욕을 얻어먹어도 원칙을 정해놓고 고수해야 한다. 한미FTA는 분명 잘못한 거다. 독소조항 없애는 것을 원칙으로 해야 했는데 “왔다리 갔다리” 했다.

△대선 후 출범한 민주당 비대위 체제의 성격은 뭔가. 또 한계도 있을 것인데.

= 아직 그 성격이 정해진 상태는 아니지만, 올 봄 예정된 전당대회만을 준비하는 실무형 비대위가 돼서는 안 된다. 그것은 당의 미래에도 도움이 안 되거니와 국민들이 바라는 민주당의 모습도 아닐 것이다.

비대위의 성격에 대해서는 애초 의원총회나 당무위원회에서부터 논쟁이 있었다. 비상 국면이니만큼 비대위에 힘을 실어줘서 위기를 타개하자는 의견과 조기 전당대회를 통해 새 지도부를 꾸리고 비대위는 임시체제로 두자는 의견이 팽팽했다.

아직까지 특별한 결론이 나지는 않았고, 전당대회 개최일만 5월 18일 이전에 한다고 정한 상태다. 그러면서 비대위원장의 임기도 최장 4개월로 짧게 정해졌다.

그렇기 때문에 비대위의 핵심은 비대위원장이 어떤 역할을 하느냐에 성패가 달려있다. 무난한 인사가 무난한 역할을 하는 것은 결코 지금 비대위가 담당해야 할 역할이 아니다.

계파를 떠나서 강력한 리더십으로 당의 문제점을 명백히 직시하고 나아갈 길을 제시하는 역할이 필요하다. 특히 당장 4월에 재보궐선거도 예정된 만큼 난국을 신속히 돌파할 추진력과 정치적 창의력도 요구된다.

이제 빠르면 9일 비대위원장이 선출될 예정이다. 우리 당의 내부 인사들도 모든 특권과 권한을 내려놓고 비대위가 당을 제대로 쇄신하고 변화될 수 있게 지혜를 모아야 한다. 나 역시도 대선 패배에 책임질 준비가 되어 있다.

첫 번째 단추는 우리가 지난 총선과 대선의 패인을 얼마나 철저하게 파악할 힘이 있느냐에 달려 있을 것이다. 원인을 파악할 수 있다면 바꾸는 것 역시 가능할 것이다.

당이 휘청거릴 정도로 냉정한 평가 뒤따라야 

△올해 초 전당대회를 앞두고 시기가 논란이 되고 있다. 전대시기를 포함해 차기 전당대회는 어떤 방식, 어떤 방향으로 하는 것이 옳다고 보나.

= 아직 비대위도 출범하지 않은 상황에서 전당대회를 말씀드리는 것은 시기상조다. 다만 전당대회의 시기와 방식, 방향을 결정함에 있어 국민들께 분명한 메시지를 드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당헌당규 상 민주당은 올 5월 18일 이전에 전당대회를 치러서 새 지도부를 꾸려야 한다.

이 지도부는 비대위의 바통을 이어받아 당의 진로를 결정하기 때문에 그 어느 때보다 분명한 쇄신의 모습을 보여야 한다.

이와 관련해 지난 7일 김한길, 박지원, 이강래, 장영달, 천정배 등 민주당 전직 원내대표들이 모여서 의견을 수렴했었다. 전당대회와 관련된 의견도 있었지만 사실 대선 평가에 대한 의견이 더 중요했습니다.

모든 분들이 대선 평가는 당의 노선과 정체성 부분에 대한 이야기까지 담아내야 하고, 치열하고 강력한 평가가 진행돼 당이 휘청거릴 정도의 강도 높은 총선·대선 평가가 필요하다는데 입을 모았다.

흔히 전당대회를 당 대표를 뽑는 행사로 알고 계시지만 전국대의원대회는 그보다 훨씬 중요한 기구다. 당헌의 제·개정뿐만 아니라 강령과 기본정책의 변경, 기타 중요한 안건을 의결하는 당의 최고대의기관이다. 철저한 대선평가를 바탕으로 구체적인 쇄신의 모습을 보이는 전당대회로 가는 것이 민주당이 갈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본다.

민주당, 호남색 탈피노력은 교만·자기부정
뼈를 깎는 쇄신 단행, 특권적 관행 버려야

△전북지역 입장에서 보면, 대선과 총선 때마다 도민들은 항상 전략적인 투표로 민주당에 표를 몰아주었는데, 당내에서는 전북지역에 대한 배려와 관심이 많이 부족해 보인다. 원인은 뭐라고 무엇이며, 반성할 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 그 동안 민주당은 전북에 대해 이중적인 태도를 견지하면서 스스로의 정체성을 부정해왔다.

한편으로는 전국정당을 표방한다는 기치 아래 당내 경선에서 인구보정을 도입하는 등 호남지역과 전북도민의 영향력을 축소시켰으면서도 막상 선거 때가 되면 텃밭론을 내세우며 전략적 투표를 강요해왔다.

잡은 물고기한테는 먹이를 주지 않는다는 식의 이런 교만은 민주당이 전북도민들의 뜻을 제대로 읽는 데에도, 전국정당으로 거듭나는 데에도 모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번에도 전북도민은 기꺼이 민주당에 86%의 지지를 몰아주었다. 그러나 이는 민주당이 좋아서 찍어준 게 아니다.

우리는 지난 이명박 정부를 거치면서 세칭 힘없고 돈 없는 사람들은 혹독한 시간을 견뎌야했다. 그래서 새누리당에게는 차마 정권을 맡길 수가 없었기 때문에 민주당을 통해 정권교체를 이루고자 했던 것이다.

그러나 민주당이 그 기대를 저버렸다. 전북에서 민주당은 승리했지만 민주당으로 인해 전북은 패배했고 이 때문에 전북과 호남은 대한민국의 섬 아닌 섬이 되었다.

이번 패배는 민주당이 와신상담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한다.

뼈를 깎는 고통을 감수하고 민주당 깃발까지 내릴 수 있다는 각오로 이번 당 쇄신에 최선의 노력을 다해야 할 것이다. 그것만이 전북도민의 한을 씻고 새로운 희망을 드릴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생각한다.

△국민들 사이에서 민주당이 기득권을 버리려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는 비판이 많다. 이 의원님이 생각하시는 기득권 버리기, 어디서부터 출발해야 하나.

= 민주당은 새누리당의 수십 배 수백 배 더 강한 도덕성으로 무장해야 한다.

이번에 해외연수가 국민들의 큰 비판을 받는 이유를 잘 새겨야 한다.

원래 예결위 일정이 엄청나게 힘들기 때문에 끝나면 해외연수를 가는 것이 ‘관행’이었다.

지금은 대선에 패배한 마당이다. 그런데 민주당 의원들도 새누리당 의원들과 똑같이 해외연수를 갔다. 국민들이 보기에 패배를 했는데도 달라진 것이 없다. 전쟁에서 패배한 마당에 ‘관행’이라는 단어가 얼마나 한가로운 이야기인가?

국민들이 비판하는 기득권이란 바로 이런 관행이라고 본다. 국민들은 실의에 빠져있는데 야당 국회의원들이 달라진 것 없이 월급 받고 관행에 젖어 생활한다는 것 자체가 용서받기 어려운 일이다.

국회의원들은 관행이라는 기득권을 너무 많이 누리고 있다.

민주당은 이러한 국회의 관행을 과감하게 포기할 뿐만 아니라 먼저 개혁하고 더욱 낮아져야 한다. 그래야 국민들의 대표기관으로 다시 설 수 있는 희망이 생긴다.

친노·비노 프레임 아직도 살아 움직여
큰 문제. 이제 모두 내려놓고 활로 찾아야

△민주당은 계파정치에 매몰돼 힘을 하나로 합치지 못했다는 지적도 있다. 반면, 다른 쪽에서는 오히려 친노그룹 쪽 핵심을 배제시켜 문제가 생겼다는 반론도 있다. 국민들이 느끼는 계파정치와 의원이 당내에서 느끼는 계파정치와의 체감도는 다를 것 같은데, 언론에서 언급된 계파정치의 폐해에 대해 동의하나? 계파가 없을 수는 없지만 어떻게 극복해야 한다고 보나.

=  이번 원내대표 선거 때에도 계파정치 청산은 주요 화두였다.

그 만큼 당내에 방법은 달라도 어쨌든 계파정치의 폐단을 극복해야 한다는 분위기가 팽배해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국민들 입장에서 민주당이 어떤 계파로 나뉘어져 있든 그것이 무슨 상관이겠는가?
중요한 것은 친노와 비노의 프레임이 참여정부 이 후 단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한 채 여전히 유효한 프레임으로 작동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민주당이 참여정부의 과오를 통렬히 반성하고, 국민들의 뜻과 열망을 담아내기 위해 분발해 왔다면 그 계파지형은 이미 달라졌어야했다.

지난 총선에서 패배했을 때 친노프레임을 떨쳐냈더라도 이번 대선 결과는 달라졌을지 모른다. 이제 늦었지만 민주당은 그 과제를 실천해야 한다.

저는 해법은 단순하다고 본다. 친노든 아니든 책임선상에 있었던 사람들이 모두 내려놓으면 된다.

저는 현재 전북도당의 위원장과 제1정조위원장을 맡고 있기 때문에 스스로 책임선상에 있다고 생각하고 모든 직분을 내려놓겠다고 선언했다.

자리를 내놓는 것은 단지 책임을 지기 위해서가 아니라 비판받을 사람들이 그 자리를 지키고 있으면 우리의 패인을 분명하게 인식하고 비판할 수 없기 때문에 자리를 내려놓으라는 것이다.

지금은 총선 때부터 잘못 끼워진 단추를 다시 풀어서 끼워야 하는데, 단추들이 제자리를 지키고 있으면 어떻게 잘못 끼워진 단추를 바로 잡겠나?

나는 민주당이 원인을 분명하게 짚기만 해도 반은 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지고도 왜 졌는지를 모른다면, 또는 알면서도 그 원인이 무엇인지를 스스로 입 밖에 내서 국민들께 고하지 못한다면 민주당에는 희망이 없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려면 모두 내려놓고 통렬한 반성이 있어야 한다.

이것이 또 어느 한 계파를 응징하려 하는 것이라는 또 다른 계파논리로 폄훼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이렇게 되면 민주당은 영원히 친노와 비노의 프레임에서 헤어 나올 수 없다.

직책과 역할에 걸 맞는 응분의 책임으로 기존의 판을 정비한 후에, 민주당은 국민들의 삶에 천착한 고민과 논의를 통해 새로운 활로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민주·새누리 도토리 키 재기 하다 ‘안철수 상‘에 멘붕 사태 

△한국지방발전연구원 윤여준 이사장은 시사주간지와의 인터뷰에서 ‘민주당과 새누리당은 적대적 공생관계를 유지하다 안철수 현상에 얻어맞았다’고 말했는데, 동의하나.

= 그 동안 사실 새누리당이나 민주당이 무수히 당명을 바꾸며 쇄신을 입에 달고 다녔지만 국민들이 만족할만한 쇄신을 보여줬던 적은 없었다.

서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어느 쪽 먼저 크게 진일보하지 못한 채 표류해 온 결과가 결국 국민들로 하여금 ‘누가 되든 무슨 상관이냐’는 식의 기존 정치에 대한 불신과 무관심을 갖게 했다.

많은 국민들은 매 선거마다 투표를 하면서도 사실 반신반의하며 어느 정당 어느 후보건 온전한 신뢰를 보낼 수 없었다.

그렇게 축적되어 온 뿌리 깊은 불신과 불만이 ‘안철수’라는 제3의 인물을 통해 폭발한 것이다. ‘안철수’라는 인물이 정치적으로 얼마나 성숙하고 국민의 뜻을 얼마나 잘 반영할 수 있는 인물인가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와는 별도로 ‘안철수 현상’자체가 나타내는 국민적 여론의 상징성은 분명했다.

안철수 현상은 촉발되기가 무섭게 말 그대로 하나의 신드롬이 되어 모든 여론을 흡수했고 이로 인해 정당정치에 관한 회의론에 제기될 만큼 기존 정치인들은 거의 멘붕에 가까운 충격을 받았다. 그리고 상당부분 이 현상이 기존 정치에 혁신의 에너지를 불어넣었다는 것은 다 아는 사실이다.

그러나 안타까운 것은 양당, 특히 보다 더 국민적 기대를 안고 있었던 민주당이 이를 계기로 외연을 더욱 넓혀 이러한 국민적 갈망을 흡수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게 이번 대선 패배의 결정적인 요인이 됐다.

향후 민주당이 새로이 거듭나고자 한다면 ‘안철수 현상’이 시사했던 바를 결코 놓쳐선 안 될 것이다.

선거패배 분명한 책임 리는 게 혁신의 출발 
다음에는 노선과 정체성 정하고 정책 개발해야

△전당대회와 차기 정부 출범, 4월 보선을 앞두고 민주당의 혁신이 문제될 수밖에 없을 것인데, 민주당의 혁신은 어떻게 이뤄져야 한다고 보나.

= 박근혜 당선인의 인수위 구성과 헌법재판관 임명을 두고 논란이 일고 있다. 막말 극우 인사를 수석대변인에, 국가주의적 판결로 악명 높은 자를 헌법재판소의 수장으로 임명하려 하고 있다.

어느 때보다 야당의 적극적인 견제와 감시가 요구되는 시기다. 그러나 지금의 민주당은 그 역할을 제대로 수행할 역량도, 국민의 신뢰도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

지금 민주당 혁신의 선결과제는 간명하다. 집요할 만큼 정밀한 사후조사를 통해 선거패배의 책임을 분명히 가려야 한다. 단일화 추진과정에서의 잡음, 선거 캠프 내부 소통 부재 등 선거과정에서 드러난 계파이기주의 등 민주당의 고질적인 문제들의 원인을 세세히 분석하고 정리해야 한다.

이를 근거로 책임소지를 분명히 하는 것만이 혁신의 명분을 세울 수 있다.  

당의 개혁을 추진할 지도부와 비대위 구성은 이념과 계파 이해관계로부터 자유로운 리더 발굴을 원칙으로 해야 한다. 그들을 검증과 경쟁의 장 위에 세워 새로운 정치를 바라는 국민의 눈높이에 맞는지를 가늠해야 한다.

혁신의 다음 과제는 당의 정체성을 확고히 보여줄 수 있는 정치적 상품을 발굴하고 키워나가는 것이다. 지난 선거 기간 동안 민주당표 정책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정치 개혁 이슈는 안철수 후보에게, 민생과 복지 등 경제 민주화 이슈들은 박근혜 당선인에게 뺏겼다.

이번 대선결과를 민주당 혁신의 거푸집으로 삼아야 한다. 극명하게 드러난 세대·지역·계층 간의 갈등의 골을 메울 수 있는 통합의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 이념논쟁이 아닌 일자리와 복지 이슈가 넘쳐나는 현장 안에서 국민의 목소리를 듣고 정책을 만들어 나가야 한다. 정책적으로는 중도 진보정당으로서의 정체성과 노선을 확고히 하고, 뼈를 깎는 자기쇄신의 노력만이 국민의 신뢰를 되돌릴 수 있는 혁신의 길일 것이다.

△장시간 인터뷰에 감사 드린다. 마지막으로 전북 도민들께 드릴 말씀이 있다면.

= 이번 대선에서 전북도민들은 77%의 투표율과 86%의 지지를 보내주셨다. 도민들께서 민주당에 보내준 지지에 다시 한 번 감사드린다. 그 지지에 승리로 보답하지 못한 점, 진심으로 사죄하는 마음이다.

도민들이 보내주신 성원은 민주당의 약속과 실천에 대한 기대라고 본다. 비록 선거에서는 졌지만, 결코 그 기대를 저버리지 않겠다. 그리고 대선 기간 동안 약속드렸던 전북 발전 과제들을 제대로 추진해 나가겠다.

정부와 여당의 전북발전 공약이 제대로 이행될 수 있도록 두 눈 부릅뜨고 견제하고 감시하겠다.

또한 철저하게 반성하고 평가할 것이다. 나부터 기득권을 내려놓고 도민여러분이 계시는 현장 속에서 다시 시작하겠다. 현장 안에서 도민여러분의 바람과 고민에 공감하고, 그 바람이 정치적 실천으로 옮겨질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을 약속드린다.     

대담= 김경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