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종합 > 특집기사 > 농업·지역경제 살리기, 두 마리 토끼 잡은 용진농협 로컬푸드매장

농업·지역경제 살리기, 두 마리 토끼 잡은 용진농협 로컬푸드매장

▲ 농산물 유통, 혁명이 시작됐다

기존 하나로마트에 비해 매출액 열 배
농민은 적정한 가격에 안정적 판로 확보
소비자는 값싸게 신선채소 얻어 일거양득

용진농협 로컬푸드 직매장 내부. 신선 농산물을 찾는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우리나라에 진짜 로컬푸드매장이 언제쯤 생길까를 고대했던 기자에게 용진농협 로컬푸드 직매장은 흥분으로 다가왔다.

단체로 일본 견학을 다니며, 전국적으로 십여 년 전부터 말로만 로컬푸드를 외쳐왔기에 적잖이 답답해진 상태였다.

로컬푸드는 지역에서 생산된 먹을거리를 말하는 것으로, 지역에서 생산한 농산물이나 식품을 중간 유통과정 없이 생산자인 농민과 소비자가 직거래 하는 구조를 일컫
는 말이기도 하다.

우리나라에서 로컬푸드라고 한다면, 강원도 원주시에서 1994년 시작된 ‘농업인 새벽시장’이 역사의 첫페이지를 기록할 것인데, 본격적인 로컬푸드라고 이름붙일 만한 사업이 실제로 이뤄진 것은 용진농협이 처음이라고 생각된다.

용진농협 로컬푸드 직매장은 교육받은 농민이 직접 농산물을 생산해 선별, 포장, 가공한 뒤 직접 가격을 붙여 매장에 내놓으며 재고까지를 관리하는, 즉 농민이 생산과유통의 주체가 되는 체계를 갖췄고, 문을 연 뒤 1년이 채 되지 않아 성공했다.

로컬푸드 직매장을 열기 직전에 이곳은 하나로마트였는데, 매장이 문을 연 뒤 매출액 열 배를 기록했다는 수치를 굳이 들먹이지 않더라도, 몇 시간 동안 매장을 둘러보고 있으면 성공의 신호를 감지할 수 있는 게 용진농협 로컬푸드 매장이었다.

지난 16일 아침 찾아간 기자에게 로컬푸드 직매장은 취재하기 혼란스러웠다. 여기저기서 사람들이 많이 찾아왔기 때문이다. 매장관리를 맡고 있는 농협 이중진 차장과 농협을 새롭게 바꾸고 있는 정완철 조합장의 입에선 “바빠 죽겠다”는 말이 곧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방송사와 신문사, 농협중앙회와 지역농협 직원들이 하루를 멀다하고 매일 찾아와 취재하고 배우고 간다.

지난해 4월 문을 열었는데 벌써 400여개 기관단체와 5천여 명이 이곳을 견학했다고 한다.

◆한 번만 와도 단골 된다

용진농협 로컬푸드 직매장 전경.

“유기농보다 더 맛있는 것 같아요. 특히 여기 두부를 먹다가 다른 곳에서 산 것 먹으려면 못 먹어요. 맛이 없어서.”

매장을 구경하다 만난 주부 최모씨는 ‘왜 여기에 왔느냐’는 말에 뜸 들이지 않고 대답했다.

그는 전주시 서신동에 사는데, 농산물을 사기 위해 더 이상 백화점이나 대형마트에 가지 않는다. 먼 길 마다하지 않고 일주일에 한 번 또는 가끔은 두 번씩 온다고 했다.

이렇게 전주시에서 이곳을 찾는 고객은 전체의 80%나 된다. 이미 농협은 5천명의 고객을 확보하고 있다.

최씨는 이곳에 오면 돈이 절약된다고 한다.

“시내 대형마트 가면 충동구매를 해요. 그런데 여기서는 농산물만 사니까 쓸 데 없는 물건을 안 사게 되고, 또 가격도 마트에 비해 훨씬 싸니까 오히려 절약되는 것 같아요.”

그는 요즘 주위사람에게 로컬푸드매장을 선전한다고 했다.

사람들이 이곳을 찾는 이유는 우선 물건이 신선하고 믿고 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마트 것은 못 믿어요. 여기서는 이곳 농민이 직접 생산해서 바로 내놓잖아요. 신선하고 믿을 수 있고, 그래서 한 번 오면 계속 오는 것 같아요.” 완주군 봉동읍에 사는 한 주부가 말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이곳에서는 신선하고 안전한 농산물에 ‘신뢰’를 얹어서 판다.

규정상 야채는 하루밖에 내놓지 못한다. 다음날에는 어김없이 갓 수확한 신선채소가 손님들의 구미를 자극한다. 깨끗하고 신선하면 먹고 싶은 게 사람의 마음이다.

매장은 깨끗하고 진열장 맨 위에는 농민의 사진과 전화번호가 적혀 있다. 생산과 가공, 판매까지 실명제가 적용되는 것이다. 때문에 농민들도 신뢰를 잃지 않기 위해 애쓴다.

이러다보니 일반 마트에서 사 먹기 힘든 좋은 농산물이 진열될 수밖에 없다.

농협 이중진 차장으로부터 한참 설명을 듣고 있는데, 완주군 봉동읍에서 딸기를 납품하는 한 농민이 바코드를 출력하기 위해 포장실을 들렸다.

그에게 “딸기가 잘 팔리느냐”고 물었다. “그럼요. 잘 나가죠”라며 하는 말은 쉽게 수긍할 수 있었다.

“공판장이나 마트에 내놓은 물건은 6,70% 익은 것을 내놔요. 매장에 내놓고 그것이 팔릴 때까지 신선도를 유지해야 하니까 미리 따야 하잖아요. 하지만 이곳은 거의 다 익은 것을 따서 내놔요. 당연히 마트에서 사 먹는 것보다 맛이 좋을 수밖에 없죠.”

◆농민이 주인인 매장, 가격결정권이 농민에게

농협의 주인은 농민이어야 한다는 구호는 너무 많이 들어 식상해졌기 때문에 한쪽으로 듣고 한쪽으로 흘리는 말이 됐다.

그런데, 용진농협 로컬푸드 매장은 이런 구호를 실제로 구현하고 있다.

농협에서 하는 일은 매장 관리와 잔류농약 및 품질 검사에 그치고, 판매의 모든 일처리는 농민 스스로 한다.

원래 농산물 유통과정은 농민이 일단 생산하면 그걸로 끝이었다. 생산은 농민이, 판매는 농협이 맡았다. 농산물을 사 달라고 정부에 요구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농민이 농축산물을 생산하면 좋은 것을 고르고, 적당량을 재서 포장하고 값을 붙이며, 매장에 갖다 놓고 팔리지 않을 경우 회수하는 일까지 농민이 맡는다.

매장은 큰 장소 안에 여러 개의 소규모 매장이 있는 샵인샵 개념으로 운영되는데, 300여명의 농민이 매장 안에 작은 코너를 갖고 있다. 이곳에 사진과 이름, 연락처를 적어놓고 물건을 진열하는 것이다. 따라서 농민들은 생산에서 판매까지를 책임지는 작은 사장님들이다.

로컬푸드 직매장 뒤에는 물건을 달아 포장하는 ‘소포장실’이 있는데, 때 마침 표고버섯을 기르는 조정행씨 부부가 버섯을 랩에 싸고 있었다.

조씨 부부는 이곳에서 큰 재미를 보고 있는 사람들 축에 낀다.

“종전에는 (공판장에 물건을 도매로 넘길 때) 물량이 조금만 넘치면 죽였어요. 3만원짜리 한 상자가 1만8천까지 떨어지니까. 거기는 또 중매인들이 마진을 많이 먹어. 근데 여기는 유통단계가 줄어서 중간마진까지 우리가 다 먹으니까 수익이 좋죠. 그 대신 시간을 투자해야 돼요. 이렇게 직접 포장을 해야 하니까.”

그러면서 말을 이어갔다. “여기는 우리가 가격을 매기는 게 좋아요. 농민이 직접 가격을 매기는 게, 진짜 그게 중요한 거예요. 내 이름을 써 놓고 파는데 손님들이 나중에 품질 좋다고 할 때 보람을 느끼죠.”

자기가 노력한 만큼 물건 값을 정할 수 있다는 건 농민이 생산과 유통의 주인이 됐다는 의미다. 그래서 로컬푸드 직매장은 그동안 중간 유통상인들에게 빼앗긴 가격주권을 가져왔다는 점에서 혁명적인 변화를 담고 있었다.

특히 소규모로 농사 짓는 사람들도 납품할 수 있기 때문에 농촌의 빈익빈부익부 현상을 해소시켜줄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는 것처럼 보인다.

아들에게 바코드 출력 방법을 알려주는 농민.

◆세 명에서 500명으로

“로컬푸드 직매장을 열기 전에 조합원 1천500명을 상대로 납품할 농민을 모집했더니 딱 세 명 밖에 없었습니다.”

용진농협 정완철 조합장이 견학 온 사람들과 점심 먹으면서 당시를 회고했다.

로컬푸드 직매장은 2012년 4월 기존 1층짜리 하나로마트 건물을 증축해 1층 85평 규모로 문을 열었는데, 농협이 2억6천만원을 투자하고 완주군청이 2억5천만원, 농협중앙회가 6천800만원을 지원했다.

개점한 지 9개월 정도 된 지금은 성공사례로 소개되고 있지만, 결코 호락호락한 문제는 아니었다. 문을 열기 전 1년 6개월의 준비기간 동안 농협 직원들과 실무책임자인 이중진 차장, 경제팀을 맡고 있는 김양수 지도상무, 정완철 조합장의 눈물겨운 노력이 있었다.

가장 힘들었던 것은 농민들을 설득하는 문제였다고 한다.

농민들은 농산물을 납품만 하면 됐지, 선별하고 200~500그램으로 포장하고 가격이 써진 라벨을 포장지에 붙이며 물건을 매장에 직접 들여다 놓고 나중에 재고까지 처리하는 문제를 모두 책임져야 하는 시스템을 이해하지 못했다.

이해 못 했다기보다는 오히려 왜 그것을 해야 하는지, 할 수 있는지 의문을 제기했다. 일본으로 견학을 갔다 왔건만 그저 구경하는데 만족했을 뿐 모험을 하기에는 너무 힘들어보였다.

처음 납품 농가를 공모했을 때 세 명만 관심을 보였다는 게 그 반증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농협은 우선 50여명의 농민조합원을 선정해 특별교육을 시키기로 했다.

1차 교육은 2011년 6월 경주친환경농업교육원에서, 8월에는 농협 회의실에서 교육을 벌였다. 친환경농업과 로컬푸드운동을 이해시키는 과정이었다.

같은 달 농협은 조합원 60명을 이끌고 로컬푸드현장인 일본 미찌노에끼를 방문했다.

다음으로는 농협구례연수원과 순천파머스마켓을 견학하고, 12월에는 5차교육을 실시했다. 다음해인 2012년 3월에는 로컬푸드 참여 희망농민 100명을 상대로 참여방법, 소포장 요령, 바코드 생성 등에 대해 마지막 교육을 실시했다.

동시에 농협은 2011년 8월부터 하나로마트 매장 앞에 천막을 치고 농산물 임시 직매장을 운영했다.

여기서는 70농가가 참여해 50개 품목을 팔았는데, 향후 본격 운영될 로컬푸드 매장의 시험무대였다. 하루 100~150명이 방문했는데 직원들은 고객의 이름과 주소, 전화번호를 적어놓고 파일을 작성했으며, 무엇을 원하는지를 파악했다.
2012년 4월 7일 문을 열기 직전 임시매장을 방문했던 고객들에게 매장 개점 소식을 일제히 알렸고, 직원들이 전주시 아파트 단지로 나가 직접 전단지를 배포하며 알렸다.

로컬푸드 매장이 성공하는 듯 보이자, 올해 초 교육을 신청한 농민은 500명으로 늘어났다. 2년 전 불과 세 명이었던 것이 이제는 완주군청 회의실을 빌려서 교육을 해야 할 정도로 숫자가 불어난 것이다.

농협은 지난해 1월부터 12월까지 2층으로 옮겨간 하나로마트와 1층 로컬푸드 직매장 합계 매출액 59억 원을 달성했다. 로컬푸드매장을 열기 전 하나로마트 매출액은 연간 5,6억원 정도였다. 8개월 만에 열 배가 늘어난 것이다. 매출액의 80%는 농산물이 차지한다.

이중진 차장은 “로컬푸드 직매장 성공의 의미는 농민이 일한만큼 이윤을 얻고 소비자는 값싸고 신선한 농산물을 먹는 것 뿐만 아니라 지역의 자금이 지역에 풀려 경제가 활성화 되고 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용진농협은 다섯 가지 원칙을 철저히 지킨다.

반드시 지역 농산물이어야 하며, 신선농산물의 유통기한은 단 하루다. 생산자가 가격을 결정하고 다품목 소량을 취급하며 친환경농산물로 인증됐거나 잔류농약 검사를 통과(고기의 경우 추적이력제를 도입한 농가)한 농축산물만을 취급한다.

용진농협은 전주와 익산에도 개점할 계획을 갖고 있다. 생산자와 소비자가 함께 만족하는 유통질서, 용진농협이 첫 단추를 끼웠다.

김경선 기자

교육 없인 조합장 형님도 안 된다

용진농협에서는 로컬푸드 직매장을 운영하는 철칙이 하나 있다.

첫째도 교육, 둘째도 교육이다.

농협이 정한 교육을 이수하지 않으면 입점할 수가 없다.

이미 입점한 사람도 분기마다 한 번씩 교육을 받아야 한다.

매장에서는 일주일 동안의 매출액 중 10%를 뗀 나머지 금액을 다음 주 월요일에 정확히 입금시킨다. 돈 만지는 재미가 쏠쏠해졌고, 경로당에서는 누가 얼마를 벌었느니, 무엇을 내다 팔았느니, 교육을 받았느니 어쩌느니 하며 로컬푸드 직매장이 화제가 됐다.

1기 교육 수료생이 50명이었는데, 돈 벌었다고 소문이 나자 교육열풍이 일었다.

로컬푸드매장이 문을 연지 얼마 지나지 않아 정완철 조합장의 친형이 복숭아 진열 코너를 내달라고 부탁한 적이 있다.

“형님, 아무리 형님이라도 안 됩니다. 어떤 사람은 교육받고 입점 시켜주고 어떤 사람은 그냥 입점 시켜주면 농민들을 어떻게 설득할 수 있겠습니까?” 조합장은 단호히 거절했다.

이런 소문이 퍼지면서 교육을 부담스러워 했던 나이 든 농민들도 교육을 필수로 생각하게 됐다.

초기에는 조합 내부의 반발도 컸다고 한다.

김양수 지도상무는 “경영성과가 불확실했기 때문에 매장을 지어놓고 나중에 안 되면 어떻게 할 거냐면서 이사들과 조합장님 측근들이 말렸어요. 재고 남으면 조합장이 어떻게 책임질 것인가라는 걱정도 있었고. 하지만 해 보고 나서 안 된다고 말하는 것과 아예 안 하는 것은 큰 차이가 있다면서 조합장님이 밀어붙였죠,”

이중진 차장은 “농민들은 처음에 ‘내가 왜 소포장을 직접 하고 재고까지 책임져야 하나’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았다”고 회고 했다.

판매에 대해서도 농민들은 처음에 반신반의했다. 하지만 “상품을 내놓으면 팔릴까?”라는 고민은 일시에 해소됐다. 내놓기 무섭게 물건이 나갔다. 그러다보니 농산물이 없으면 산에서 두릅을 꺾어 오고, 논두렁 밭두렁에 있는 나물과 달래, 쑥 같은 것들과 실개천의 물미나리까지 캐서 매장에 내놓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잘 쳐다보지 않던 집 한 귀퉁이의 자두나무도 돈을 벌 수 있는 자원이 됐다.

하지만 잘 팔리면 가격을 높게 부르고 싶은 심리 때문에 일부 농민들은 오전과 오후가 다르게 가격을 붙여놓기도 했다. 이럴 때는 매장 직원들이 단속한다. 물건은 농민 마음대로 팔 수 있지만 품질과 가격 관리는 소비자들의 신뢰를 형성하는 중요한 문제이기 때문에 적절한 통제가 필요하다.

매장은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정해진 코너가 없다. 일찍 온 사람이 좋은 자리에 진열한다. 직원들은 아침 6시 30분 포장실 문을 열고 잔류농약 검사를 시작하는데, 좋은 자리를 얻기 위해 6시부터 와 있는 농민도 있다.

지난해 로컬푸드 매장은 농민들로부터 받은 수수료 10% 가운데 관리비, 운영비, 감가상각비 등 제 경비를 제외하고 1,600만원이 남았다. 50억원 이상의 수익은 이미 농민들에게 입금됐다.

이렇게 용진농협은 당초 목표인 ‘농민을 위한 농협’으로 변화되고 있다.

김경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