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서화, 박제, 산호 등 사재 털어 평생 수집한 자료만 2천여 점 넘어
이순신 보고문서, 양녕대군 글씨 등 희귀자료 발굴.. 역사관 건립 꿈꿔

김인기씨

“평생 수집한 물건들을 잘 보관하고 연구하는데 의의가 있다고. 수집해서 돈 받고 팔면 수집가가 아니라 수집상이지. 난 한 번도 돈 받고 수집품을 판 적 없어”
40여 년간 수집에 대한 열정으로 전국 방방곡곡 안다닌 데가 없고 틈나면 외국까지 나가 수집할 정도로 발굴에 몰두한 고서화수집가 김인기(75)씨.

고령으로 접어든 지금도 전북향토문화연구회 이사로 활동, 노익장을 과시하며 향토사학의 발전과 잊혀진 역사의 한 페이지를 후대에 남기기 위해 골몰하는 그의 고집은 아름답게 보일 정도다.

그가 고서화 수집의 길로 들어선 것은 어릴 적부터 선친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의 선친은 당대 천재 한학자라고 불린 담재 김봉문. 어렸을 때부터 시문에 능했고 ‘한국의 열록’, ‘호남인물지’등 전북향토사료를 집대성한 업적을 이룬 한학자다.

그런 아버지 밑에서 자연스럽게 향토 문화에 관심을 갖게 된 그는 전북대 철학과를 졸업한 후 자연스럽게 수집가의 길을 걷게 된다.

김인기 씨는 “40년 동안 뒤져볼 데는 다 뒤져본 것 같다. 그래서 요새는 수집할 만한 것이 잘 안 나오는데 그래도 어디 뭐가 있다는 소식이 들리면 바로 달려간다”고 눈을 반짝이며 말한다.
그는 수집을 시작할 때만해도 수집 가치가 있는 귀중한 물건을 엿장수나 고물상에서 많이 발견했다. 종일 고물상을 뒤지고 엿장수 수레를 뒤지고 다녔다. 허탕을 치기도 일쑤였고 힘든 일이었지만 가치 있는 물건을 발견했을 때의 쾌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그렇게 그의 손에서 희귀한 문화재와 향토 사료가 모였다. 그가 손을 뻗어 수집하지 않았다면 사라져 버릴 수 있었던 소중한 문화유산이었다.

그는 고서화 외에도 희귀동물 박제와 산호를 주로 수집했는데 그간 모은 총 수집품을 헤아릴 수 없어 대략 2천여 점이 넘는다고만 알려져 있다. 그 중 세계적으로 희귀한 박제품 43점은 전북대 박물관에 기증했다.

원래 익산에 남기기 위해서 남성고와 원광대에 문의했으나 보관 장소나 여타 문제로 여의치 않아 모교에 기증을 결정했다.

그의 수집품 중에는 전국적으로 비상한 관심을 모은 것이 한둘이 아니지만 대표적으로 꼽는다면 이순신 장군의 해상전투 보고서와 양녕대군의 유일한 서체를 들 수 있다.

정유재란 당시 이순신 장군이 해상전투 상황을 기록해 보낸 보고서 10장을 그가 발굴해 매스컴에 공개하자 국가정보원에서 큰 관심을 가지고 찾아와 교육 자료로 만들기도 했다.

또 남긴 글씨가 숭례문 현판 밖에 없다고 전해지던 양녕대군의 ‘후적벽부’ 목판본 글씨를 발굴해낸 일은 그의 수집 활동의 크나큰 쾌거였다.

이 밖에도 매월당 김시습 초상화 원본, 한국 첫 올림픽 출전 감독의 ID카드 등 그가 발굴해내서 세상에 빛을 보게 된 것들이 수두룩하다.

수집활동에 대한 공로로 그는 2008년 익산 시민의장 문화장을 받았고, 대한체육회장 공로패(2009), 전북체육특별대상 감사패 등을 받았다.

특히 그의 가족 모두가 훈·포장을 수상한 ‘훈 ·포장 가족’이라는 것은 그의 가장 큰 자랑이다. 그의 처 정혜경 여사는 녹조근정훈장과 익산시민의장 효행상, 동생 현기씨는 국민포장, 셋째 환기 씨는 녹조근정훈장을 받았고 아들 김남욱 씨는 홍조근정훈장을 받았다.

김인기 씨는 “평생 모은 자료가 내게 있지만 고도문화 익산이라는 도시는 향토사관을 건립하는데 관심이 없어 보인다”며 “사심 없이 모은 소중한 자료를 보관하고 후대에 남길 향토사관 건립이 마지막 꿈이다”라고 말했다.

정완창 기자

김인기 씨가 수집한 양녕대군 글씨를 꺼내 보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