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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술사를 찾아서22. 웅포면 고창리

▲ 조세미를 보관하던 덕성창(德成倉)이 있던 항구마을

옛 창고가 있던 마을 고창(古倉), 말(馬)의 형국이라 전해지는 대마, 소마 마을

대마 마을 전경

①고창 마을 우물 ②고창 마을 전경

③소마 마을 박선규씨

웅포면은 익산의 서북부에 위치해 있으며 금강을 따라 남북으로 길게 뻗어 있다. 남으로 군산시 나포면과 경계를 이루고 있으며 동으로는 함라산 너머 함라면과, 북으로는 성당면에 접해있다.

금강의 포구마을로 발달한 웅포면은 면소재지가 있는 웅포리와 함께 제성리, 고창리, 입점리,송천리, 대붕암리, 맹산리의 7개 법정리와 25개의 자연마을로 구성돼 있으며 2010년 기준으로 894세대 1,899명의 인구가 살고 있다.

웅포면은 그 지명부터 오랜 역사를 지닌 곳인데 이곳의 원래 지명인 곰개를 한자어로 쓰면서웅포(熊浦)로 표기됐으며 마한시대의 감해국(함해국)과의 연관성도 전해지고 있다.

이를테면 ‘감해’라는 지명이 ‘감계-곰계-곰개(웅포)’로 변천됐다는 이야기다.

마을의 형성과 주민들의 생활이 금강과 밀접한 관련을 가졌으며 오랜 역사답게 마을을 찾을 때마다 잘 알려지지 않은 새로운 이야기들을 만날 수 있었다.

그러나 구술사에 참여한 주민들의 기억이 비교적 단편적이거나 희미한 편이고 정확한 사실 확인이 어려운 것들이 대부분이어서 이런 부분들에 대한 향토사적 연구의 필요성을 재차 확인했다.

이번에 찾은 고창리는 웅포면의 옛 중심지로서 고창마을과 대마, 소마마을로 이뤄져 있다. 고창(古倉)이라는 지명은 말 그대로 예전에 창고가 있던 곳이라는 뜻인데 근방의 지명으로 굳어질 만큼 큰 창고였다고 한다.

고창마을 주민 김옥배(74), 임준수(73), 오재완(72), 박원산(72), 김한태(72) 씨와 소마마을 주민 김선규(83) 씨, 대마마을 김세종 이장이 마을의 내력과 전설을 들려주었다

◈ 옛 창고 덕성창을 지켜라

고창마을 주민들은 마을의 옛 지명이 ‘덕성창(德成倉)’이었다고 말한다. 이는 1910년대 이전부터 고창리라는 이름이 있었다는 기록으로 볼 때 행정구역과는 별도로 덕성창이라는 이름이 마을에서 상당기간 사용된 것으로 볼 수 있다. 현재도 마을로 들어가는 길 이름이 ‘덕성길’인 것은 그런 사실을 뒷받침 한다.

또한 덕성창 이전에는 이곳 마을을 ‘피포(皮浦)’라고 했다는 주민들의 기억도 남아 있었다. 주민들의 기억을 재구성하면 피포라는 포구마을이 덕성창이 생기면서 사람들이 덕성창이라고 부르게 됐고, 그 창고가 없어지자 옛 창고 자리라고 해서 고창이 됐다는 유래가 성립된다.

기록에 의하면 덕성창(득성창)은 1428년(세종 10)에 함열현 피포(皮浦)에 세워진 조선시대 조창으로, 본디 용안현 금두포에 있던 것을 물길이 막히자 옮겨왔는데 이후 군산으로 옮겼다가 다시 성당포로 옮겨져 성당창이 됐다. 조선 후기까지 운영된 성당창보다 훨씬 오래된 옛 창지라는 사실은 고창이라는 지명을 더욱 실감나게 해준다.

덕성창은 전주·용안·임실·남원 등 20개 고을의 세곡을 수납해 한강의 서강(西江)나루로 올려 보내던 곳으로, 조선시대 10대 조창지로 기록될 만큼 그 규모가 방대 했다고 한다. 조세미(租稅米)를 5,6백석 가량 실을 수 있는 배 63척을 보유한 조선에서 가장 큰 조창이라고 경국대전에 기록돼 있다.

현재 마을 중앙의 창고 터에는 덕성정이라는 주민 쉼터가 들어서 있는데 그 전만 해도 창고의 주춧돌이 남아있었다고 주민들은 입을 모은다. 주춧돌이 세 가호에 걸쳐 이어질 정도로 컸다고 한다.

바로 옆 마을인 소마마을의 김선규 씨는 “전쟁에 대비한 창고라고 하던데, 예전에 불이 나는 바람에 땅을 파면 탄 곡식들이 출토되고 그랬지”라고 말했다. 왜 불이 났고 실제 전쟁과 관련이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확인이 어려웠다.

또 마을에는 덕성창과 관련해 남아있는 지명으로 야막(夜幕)이 있다. 주민들은 조그만 마을 내에서도 각 지명을 구분해서 부르고 있었는데 고창, 서편, 웃겻, 동아시, 야막, 한재골, 새터 등이다. 대부분 부르기 편하게 지칭하는데서 따온 이름인데 그 중 야막은 창고를 지키기 위해 밤에 망을 보는 막사를 줄여서 부르는 이름인 것이다.

올해에는 야막의 전통을 이어가는 행사가 펼쳐지기도 했다. 웅포 대보름축제의 한 프로그램인 ‘덕성창을 지켜라’에서는 왜구의 침략이나 금강 범람 등의 위험에서 덕성창의 안전을 기원하는 풍습을 재현했다. 웅포면 주민 450여명이 참여해 지게를 지고 창고로 들어오는 쌀가마니행렬을 재현하고, 덕성창의 안녕을 기원하는 깃발행진 등을 펼쳐 마을의 전통을 이어가는 자리를 마련한 것이다.

◈ 말의 형상을 한 대, 소마 마을

대마(大馬) 마을과 소마(小馬) 마을은 본디 한 마을로 이뤄져 있었는데 논을 사이에 두고 큰 마을과 작은 마을로 나눠 부르면서 대마, 소마로 불리기 시작했다. 일제강점기에는 소마부락으로 묶어 부르기도 했는데 해방 후 다시 나뉘어 졌다고 한다.

김선규 씨는 마을의 이름이 본래 마명(馬鳴)이라고 했다. 말 울음소리라는 뜻인데 큰 마명, 작은 마명으로 불리다가 대마와 소마로 변했다는 얘기다. 말과 관련한 지명에 대해 김씨는 마을의 지형과 산세가 말과 같아서 그렇게 붙여졌다고 기억하고 있었다.

익산 향토지에도 이에 대한 설명이 있다. 마명이라는 곳은 주변 산의 모양이 말과 같은데, 그것이 금강 건너 충청도 쪽의 말 형상의 산을 바라보고 울고 있는 형국이라는 것이다. 금강을 사이에 두고 마주한 두 마리의 말에 대해 어떤 전설이나 사연이 있을 법도 하지만 전해지는 바가 없었다.

또 김씨는 마을 곳곳이 말의 형상에 따라 위치했다는 얘길 전해준다. 이를테면 집들이 주로 들어선 평평한 곳은 말의 안장에 해당하는 곳으로 안장고개라고 불리기도 했었고, 마을 초입의 교회 자리는 말의 갈기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말구유 자리도 있다.

마령(말에 다는 방울)에 해당한다는 자리에는 김세종 씨의 9대조가 묻혀 있는데 그에 대한 재밌는 얘기가 전해진다.

본래 마명이라는 곳은 기개 유씨의 집성촌이었는데 김 씨의 9대 할아버지가 할머니를 만나 이곳으로 오게 됐다고 한다. 비교적 잘사는 집안이었던 유씨 집안은 미리 명당자리인 마령에 묏자리를 정해놓고 있었는데 할머니가 꾀를 부려 그곳에 물을 퍼다 부었다. 막상 땅을 파보니 물이 흥건하게 고여 있자 묏자리를 다른 곳으로 옮기게 되었고 할머니가 이 자리에 할아버지의 묘를 썼다는 것이다.

김세종 이장은 “거기가 명당이라고 묘를 쓰면 잘 된다는 말이 있는데 막상 지금 잘 사는 건 아닌걸 보니 사실 그대로 안 되는 가봐”라고 웃으며 말했다.

그 밖에도 말과 관련한 전설로는 마을이 말과 같으니 묘를 쓸 때 상석과 비석같은 돌을 놓지 말아야 한다는 내용도 있다. 말이 뛰어야 되는데 돌을 올려놓으면 마을에 좋지 않기 때문이다. 지금은 그런 내용이 사라져 상석을 놓거나 비석을 세우기도 한다.

◈ 하나 둘 사라지는 전설

마명마을과 같이 고창마을도 마을의 형국에 대한 이야기를 품고 있다. 마을의 형국이 배의 형국이라고 전해지는데 덕성창 자리는 배의 광이고 새터 쪽은 돗대의 도르래 근방이라는 것이다. 또한 이러한 마을 지형 때문에 돛대가 부러지면 안된다하여 기와집을 짓지 않았다는 얘기도 전해지고 있다.

또 마명마을에는 샘이 좋고 말의 기운을 타고 나 장수가 많이 난다는 얘기가 있다. 그러나 이 근방은 금강과 가깝기 때문에 우물을 파면 소금기가 많아 짜고 물이 좋지 않다고 한다.

우물을 파면 50자까지 뻘 흙이 나오고 80자가 넘어서야 암반이 나오며 지금도 땅을 조금만 파면 조개껍질이 잔뜩 나온다고 한다. 예전에는 마을 근방에까지 금강 물이 흘렀다는 것을 알려준다. 덕성창도 그런 이유로 운영되었으리라 짐작되는 부분이다.

그 중 단 한군데의 샘이 무척 좋았다고 김선규 씨가 말한다. 짜지도 않을뿐더러 지금도 물이 철철 넘친다고 한다. 소마마을의 5가구가 아직도 상수도 대신 그 물을 먹고 있으며 가뭄이 들었을 때 고창마을에서도 건너와 물을 길어갔다고 했다.

현재 소마마을의 다섯 호가 옹기종기 모여 있는 곳에 위치한 그 우물은 포장된 길에 커다란 뚜껑이 덮여 있는 상태지만 호스를 연결해 다섯 집이 다 먹고도 철철 넘치고 있다.

정완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