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깃을 명확히 하는 거리의 탈바꿈과 먹거리·놀거리·즐길거리가 복합된 상권 조성 필요

익산역은 전라선과 호남선, 군산선이 집결하는 호남의 관문이다. 창인동은 역 바로 앞에서 익산을 방문하는 타 지역 사람들을 가장먼저 맞이하는 익산의 관문이다.

지난날, 규모면에서 전국 어느 역과 견주어도 손색없었던 익산역광장에는 여름이면 더위를 식히러 나오는 시민들이 가득했고, 골목마다 인산인해를 이루어 경기를 타지 않는 거리였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쇠퇴하기 시작한 이 거리에서는 자생 할만한 불씨 조차 찾아보기 어렵게 됐다. 하지만 창인동을 지키는 여러 상인들은 아직 희망의 불씨를 놓지 않고 있다. 상업도시 익산의 1번가를 들어가봤다.

영정통에 차고 넘치던 인파는 중심 이동을 예고하고

익산역은 1912년 강경역과 군산역, 호남선과 전라선이 나눠지는 호남의 중추적 노선으로 출발했다. 일제강점기 일본인들의 식량수탈을 위해 만들어진 역이라는 점은 미질 좋은 쌀이 생산되는 호남제일의 곡창지대(김제,군산,익산)를 증언하고, 전라 교역의 중심지 익산을 입증하고 있다.

익산역 주변은 1977년 한국화약(한화의 전신)의 화약을 실은 열차가 폭발하는 사건을 계기로 급속도로 발전하기 시작했다.

기록을 보면, 역을 중심으로 영정통 거리에만 사람들이 넘쳤다. 갈산동은 갈대밭이었고 중앙시장은 과수원이 자리하고 있는 등 익산역과 불과 1km만 떨어져도 숲과 논 뿐이었다.

폭발사건 후 전국 각지에서의 도움과 익산시민들의 빠른 자생력으로 익산은 순식간에 전라 열차교통의 중심지로서 우뚝 서기 시작했다.

타 지역 사람뿐만 아니라 쇼핑과 즐길거리가 풍부해 언제나 사람들이 넘쳐났고, 활기가 넘쳤다. 융성기 때는 삼남극장부터 이어지는 영정통과 명보 사거리까지 넘치는 사람들로 서울 번화가 못지않게 인파가 가득했다.

하지만 1980년대 초반까지 활발했던 영정통은 1980년 후반부터 번화가가 창인동으로 조금씩 이동하면서 타지역으로 상권이 이동할 것을 예고하고 있었다.

“역앞에 시계탑으로 와라 잉”

예전 익산역 앞 시계탑 아래에는 약속을 기다리는 사람들로 북적댔다.

휴대폰이 보급되지 않은 시절 ‘역전 시계탑’ 앞의 약속은 젊은이들의 트랜드였다.

익산의 젊은이들은 시계탑부터 창인동까지 걸어가는 동안 영화를 볼지 밥을 먹을지 결정하는 즐거움을 누렸고, 아무런 계획 없이도 극장, 레스토랑, 오락실, 백화점, 팬시점, 의류상가 등이 집중된 이곳에 오면 골라서 즐길 수 있는 문화의거리였다.

하지만 이제는 의류판매점이 대부분이고, 즐길 것과 먹거리는 신도심으로 빠져나갔다. 쇼핑을 위해 이곳에 왔다면 차에서 내려 미리 점찍어둔 옷을 사고 돌아가는데 10여분 밖에 걸리지 않는다.

가족들이나 연인들이 외식을 생각한다면 이곳은 적합하지 않다. 대부분 먹거리가 몰려있는 영등동과 모현동을 찾게 된다. 모든 것이 몰려있는 신도심을 찾는 사람들이 대다수다.

상인들은 “창인동만의 특색있는 먹거리 문화 조성이 급선무”라고 입을 모은다. 집객효과를 높이기 위한 우선적인 과제다.

타깃이 될 고객 설정도 절실하다. 상인들은, 주 고객이 청소년인지 성인들인지 또는 남성인지 여성인지 구분이 가지 않는 어정쩡한 이 거리의 한계 앞에서 답답함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차 없는 상가 문화의 거리는 오히려 고객들을 밀어내고

전성기 시절 창인동 주변은 쇼핑이나 즐길 거리가 매우 풍요로웠다. 하지만 그에 반해 수반되는 시설들은 상당히 부족했다. 자가용보유자가 급속도로 많아지고, 인터넷 보급률이 높아지면서 편리한 쇼핑·놀이터가 복합된 장소를 찾게됐다.

아이들은 동네 PC방, 집 등에서 혼자 노는 문화에 익숙해졌고, 성인들은 주차한 곳과 가까운 곳에서 쇼핑을 마무리 할 수 있고 구매방법이 간편한 인터넷 쇼핑에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청소년들이 주 고객이었던 지난 1990년대에는 학생들을 위한 쇼핑공간과, 놀 거리, 문화행사들이 다양하게 이뤄져 상대적으로 성인들은 대학로나 동산·인화, 영등동으로 분산되기 시작했다.

1990년대 후반에 들어서 영등·부송동으로 주거단지들이 집중되면서 창인동은 서서히 사람들의 발길이 끊기기 시작했고, 2000년대 중 후반 부터는 청소년들조차 찾지 않고 있다.

남은 상인들은 돈을 쫓아 모여든 상인들이기 보다 운영·유지비용이 적게 들거나 업 자체를 즐기며 하나의 상징으로 자리 잡은 경우가 많다.

아이들은 점점 발길을 끊고, 어른들 역시 ‘아이들이 가는데’라는 인식과 주차 문제로 더더욱 창인동 방문을 기피하기 시작했다. 나름 창인동 거리를 차 없는 거리로 아름답게 꾸며봤지만, 개인교통수단의 비중을 낮추고 진행한 까닭에 “오히려 벤치와 가로등이 고객들을 쫓는 요소가 됐다”는 볼멘 목소리가 나온다.

하지만, 최근 치킨거리 조성과 KTX 선상역사 등 익산시의 다양한 시도가 이루어질 준비를 하고 있고, 창인동의 역사를 함께 쓰고 있는 명물상가, 노점들이 든든히 버티고 있기에, 한껏 움추린 만큼 더 높이 날아오르는 제2의 전성기가 돌아올 것으로 기대감이 고조되고 있다.

추억을 팔고 있는 ‘버터구이 오징어’ 노점상인

제일은행 앞에는 18년째 장사 하고 있는 이정림(45)씨의 버터구이오징어 노점이 있다.

“처음 장사 할 때는 앞에 쌓아둔 쥐포 오징어도 수북하게 쌓아두고 했죠. 사람들이 정말 많으니까 장사도 잘 됐고 그땐 시내가 다 잘됐어요”

이씨는 18년 전 집에만 있기 적적해 오징어 버터구이 노점을 시작했다. 학생 어른 할 것 없이 사람이 많았지만 지금은 뚝 끊겼다. 시간도 9시 넘어서 까지 북적댔는데 이제는 8시쯤 되면 무서워서 들어가야 할 정도라고 한다.

“시내가 힘들어 진 것은 영등동에 아파트가 들어서면서 부터기도 하지만, 그래도 괜찮았어요. 정말 시내가 힘들어 진건 영등동에 영화관이 생기면서부터 라고 봐요”

이씨는 창인동에서 영화관이 사라지자 급속도로 사람들이 빠져나가기 시작했다고 분석 한다. 

“지금(낮4시) 지나는 사람들이 전부에요. 저녁이라 해도 6~7시정도까지만 사람들이 보이고, 학생들도 요새는 이쪽을 안지나가요. 극장도 다시 들어오려면 사람이 있어야 들어오는데 사람이 없는데 누가 투자를 하겠어요”라며 쓴웃음을 지어 보였다. “수입을 밝히기는 힘들지만 이제는 돈 벌려고 하는 건 아닌 것 같아요” 라고 말했다.

이씨는 최근 천안에서 익산까지 달려온 한 손님 이야기를 했다.

“천안으로 시집간 임신한 손님이 여기 오징어가 먹고 싶다고 이야기를 했더니 남편이 열차를 타고 직접 여기까지 사러 온 적이 있어요. 동네에 재밌는 일이라고 소문이 자자 했어요”
아주머니는 오징어가 아닌 추억을 팔고 있었다. 

덤으로 장사를 지키는 ‘땅콩·호두빵’ 노점상인

올해 64세가 된 김경수씨는 여기서 땅콩·호두 빵을 팔아 두 아들을 출가 시켰다고 한다.

“처음 여기서 장사 시작할 때 둘째를 낳았으니, 이제 30년도 더 됐죠 아마”

창인동 제일 중심인 제일은행 사거리에서 30여년을 땅콩·호두 빵을 팔아 온 김경수씨는 5시가 되면 노점을 접고 들어간다. 이제는 사람이 없어서 오전부터 초저녁까지만 한다는 김씨도 이제는 땅콩 빵이 아닌 향수(鄕愁)를 팔고 있었다.

“이거 팔아서 떼돈 벌자는 것도 아니고, 사람들이 이걸 많이 추억해요. 이 동네 지나다니며 이 땅콩 빵 안 먹어본 사람 있나요?” 방송국에서 취재도 다녀갔다며 익산의 명물로 자리매김한 자부심도 대단했다.

창인동이 쇠퇴한 것은 먹거리 부재가 문제점이라며 “외지사람들이 주변 먹거리를 자주 묻는데 주변에 먹거리가 없어요. 그렇다고 먼 곳을 말해줄 수도 없고, 또 즐길게 없으니 외지사람들도 이동네를 외면 한다”고 말했다.  

사람이 너무 없어 그만 할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30여년을 창인동과 함께해온 그로서는 “시민들의 추억거리를 이렇게 쉽게 닫을 수가 없었다”고 말하며 엄마 손을 잡고 땅콩 빵을 사러온 여자아이에게 한 움큼을 덤으로 집어줬다.

“여긴 아직 정이 있잖아요”
“구두를 치료하는 곳이니까 병원이죠”

강태준(55)씨는 이 근처에서만 벌써 20여년 쯤 됐다고 한다.

형님과 함께 해서 형제 구둣방으로 유명했는데, 형님은 이제 영등동으로 옮겼고 본인은 아직 자리를 지키고 있다고 한다.

“다른데도 있겠지만 아직 ‘정’이 있잖아요. 십수년을 다녀서 꼭 여기 찾아와서 고쳐요. 그런만큼 아저씨도 고쳐달라는 것 외에 여기저기 손봐주시기도 하고 그런 게 ‘정’ 아니에요?” 10여년 단골이라는 한 손님은 딱딱한 현대 쇼핑 문화와 우리네 전통문화의 차이점을 ‘정’이라 생각한다며 아직은 전통쇼핑문화가 익숙하고 사람냄새가 나서 좋다고 말한다.

다른 상인들처럼 판매업이 아니라 경기 침체에 비교적 영향이 적다는 강씨는 창인동이 쇠퇴한 것에 대해 익산시가 시대의 흐름을 못 읽었기 때문이라고 진단한다.

강씨는 “이 동네는 이제 시가 도와주지 않으면 안 돼요. 지금으로서는 시민들을 내쫓고 있다고 봐도 무방해요”라며 쓴 소리를 했다. “이제는 편리한 교통과 주차가 해결이 돼야 사람들도 찾아와요. 주차공간이 없는데 누가 오나요. 차라리 편하게 마트나 영등동 가서 쇼핑하지”라며 “원래 주차가 가능했던 제일은행 거리는 격일제 주차를 시행해서라도 주차공간을 만들어야 하고 일방통행도 예전처럼 양방으로 진행할 수 있도록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박교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