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말 까지 4백년 간 조창이 운영되던 포구마을.. 최고 명당자리로 꼽히는 창고 터

당산느티나무

금강산에서 본 황룡산

                     안상일씨                                                           성당 마을 전경

성당면은 익산시청에서 약 24km 떨어진 북쪽에 위치해 있다. 서로는 웅포면과 함라면이, 동으로는 용안면과 함열읍, 남쪽으로는 황등면이 둘러싸고 있으며 북으로는 금강을 사이에 두고 충남 부여군과 맞대고 있다.

행정구역상으로 보면 성당면은 금강에 접해 있는 성당리를 주둥이로 한 호리병모양을 하고 있으며, 금강의 지류인 산북천(구 부곡천)이 용안면과의 경계를 이루고 있다. 특히 성당리의 성당마을은 성당포구가 있었던 마을로 유명하며 전통테마마을로 발돋움해 관광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이다.

성당마을은 지금으로부터 약 4백 년 전부터 조선 말 고종 때까지 성당창(聖堂倉)이 운영됐던 곳으로, 조세미를 걷어 보관하고 포구를 통해 서울로 보내던 조운(漕運)의 중심지로 크게 번성했던 마을이다. 그렇지만 성당창이 폐창되고 수로 교통의 시대가 막을 내리면서 성당포구를 드나들던 배들도 점차 사라져 이제는 옛 영화를 찾아볼 수 없게 변모하고 말았다.

성당포구를 아름답게 수놓던 황포돛배와 조운선단, 소금이나 생선을 퍼 나르던 지게꾼들의 고함소리가 선연히 남아있는 것 같은 성당마을을 찾아 주민들을 만나보았다

▣ 성당마을에 은거한 조상

성당(聖堂)이라는 지명의 유래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는데 한 가지 공통점이 보인다.

익산향토지를 보면 조사 당시 이곳에 거주하고 있던 윤상근 씨가 할아버지 윤계한 옹으로부터 들었던 이야기를 소개하고 있는데, 백제의 마지막 전투였던 황산벌 전투에서 패한 백제 장수가 부상을 입고 이 마을에 피난을 와서 살게 됐고, 그 장수의 호가 은성당(隱聖堂)이었다는 얘기다.

또 한 가지는 태조 이성계가 조선을 세운 것에 반발한 고려 충신 두문동72현 중 안씨 성을 가진 사람이 이 마을에 이주해 살았는데 그 사람의 호가 역시 ‘은성당’이었다는 설이다.

성당포구 전통테마마을 위원장 안상일(59) 씨는 “13대 째 이 마을을 지키며 살고 있는데 가장 처음 이 곳에 정착한 순흥(順興) 안씨 할아버지의 호가 은성당이었다. 성당이라는 마을 이름이 거기서 나온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백제 시대의 장수였건, 안씨 성의 조상이었건 여기서 은성당이라는 공통적인 이름이 나온다. 성당(聖堂)을 ‘성인을 모시던 집’으로, 은(隱) 자를 ‘숨다’, ‘기대다’의 뜻이라고 생각한다면 ‘성당에 은거’했던 누군가에 의해 성당이라는 지명이 생겼던 것으로 볼 수 있다. 또는 예전부터 이곳에 성인을 모시던 사당이 있었지 않았느냐는 추측도 해볼 수 있겠다.

▣ 조운의 중심지 성당포구

역사 속에서 발견하는 성당마을은 역시 조창의 역할을 하던 모습이다.

성당창은 금강변에 접한 조창 가운데 하나로 웅포면 고창리에 있던 덕성창이 수로가 막히자 중종 7년 무렵 성당으로 옮겨온 것으로 기록돼 있다. 따라서 성당창은 1894년 조운이 폐지될 때까지 약 4백년간 그 역할을 지속했던 것이다.

안상일 씨는 “당시 세금으로 걷었던 대동미 1천 석을 실을 수 있던 배가 12척이 운행 됐다고. 여기서 쌀을 싣고 서해로 나가 서울 광흥창(廣興倉)으로 올라가. 옛날에는 공무원들 월급을 거기서 줬어”라고 말했다.

성당마을에는 성당창 운영과 관련한 시설이 몇몇 들어서 있었다. 관리가 나와 머물며 모든 작업을 관장하던 곳으로 봉세청(捧稅廳)이 있었으며, 현재도 지명이 남아있는 창마당은 세곡을 거둬 계량하고 창고에 들이는 일을 하던 곳이다. 사공청(沙工廳)이란 곳은 12척의 조운선의 선원인 조군(漕軍)을 지휘하는 12명의 선장이 기거하던 곳이다.

또한 줄바탕이라는 지명도 남아있는데 이곳은 옛 선창에서 가까운 곳으로 주민들의 말에 의하면 배에서 쓰는 밧줄을 이곳에서 생산했다고 한다.

▣ 순풍당과 함모장의 꿈

성당포구마을의 조운에 대한 상세한 기록은 조선후기 문신이며 함열현감과 성당창 조세운영관을 겸임했던 조희백(1825-1900)이 쓴 ‘조행일록’에서 만날 수 있다.

조행일기에 따르면 1875년 1월 27일(음력) 조희백은 함열현에 부임하자마자 사흘 뒤 성당창으로 나가 조운할 세곡이 어느 정도나 걷혔는지 점검했다. 그러나 3월 보름까지 거둬야 할 세곡 1만 6천여 석 중 4백 석 뿐이어서 그날로 조희백은 봉세청에 눌러 앉아 세곡을 거둬들이는데 전념했다. 50여 일 동안 함열 관아(현 함라면 관아터)에 돌아가 쉬었던 날은 5-6일에 불과 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조희백은 배를 마련하고 각 고을에 닦달하는 문서를 띄우는 등 바쁜 나날을 보내 마침내 3월 15일 모든 세곡과 배편의 준비를 마치게 된다. 그러나 당장 출항하지 않고 안전한 항해를 비는 제사를 올렸다고 기록하고 있다.

성당마을에는 조운선단을 위한 전용 당집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마을 뒷산 정상에 위치했던 순풍당이다. 마을 사람들은 뒷산을 당집산 혹은 황룡산(대명산)이라고 부르고 있으며 순풍당이 있던 자리엔 현재 기와조각 같은 흔적만 남아있을 뿐이다.

안상일 씨는 “순풍당에서 정월 보름날 당산별신제를 모셨다고. 순풍이 불어서 안전하게 항해하게 해달라고 빌었지. 수 백년 내려오다 한 20년 전에 끊겼는데 몇 해 전부터 익산문화원과 함께 다시 재연해 명맥을 잇고 있다”고 말했다.

순풍당에서 치러진 당산별신제의 유래로는 ‘함모장의 꿈’이라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성당창에서 출발한 조운선이 서해에 나가 당진 앞바다에서 풍랑을 만나 침몰하거나 파손되자 당시 함열현감이 파면되고 지방민들은 2중 과세로 피해가 컸다.

그 때 조운선 관리원인 함모장이 꿈을 꿨는데 한 노인이 나타나 신주 3개를 주어 받아 들고 꿈에서 깼다. 이상하다 여긴 함모장은 궁리 끝에 3개의 신주가 복희씨(재물), 신농씨(풍년), 허원씨(건강) 3신이라고 판단하고 순풍당에 위패를 모시고 제를 지냈더니 그 후 사고 없이 평안해졌더라는 얘기다.

성당창이 없어지면서 순풍당에서 4백여 년을 이어온 별신제는 당산제로 바뀌게 됐고 그나마 성당포구의 기능이 사라지자 1970년대 초에 당산제도 중단됐다. 그러던 중 1999년 익산문화원과 마을주민들로 구성된 당산별신제보존회가 뜻을 모아 마을 뒤편의 수령 5백년 이상 된 나무에서 마을의 안녕과 풍년을 기원하는 당산별신제를 매년 지내고 있다.

▣ 명당자리로 지목된 성당창

실록에 “창 부근의 주민들이 성당창을 바라보며 산다”고 기록돼 있을 만큼 성당마을은 조운과 관련해 일대가 상업과 유통이 발달했다.

당시 성당창에 소속돼 있던 조군만 해도 2백 명에서 5백 명 이상에 달했다고 전해지는 것으로 보아 상당수 지역민들이 성당마을에 기대 살았던 것으로 보인다. 조군들은 세곡을 배에 싣고 한양에 조행을 갔다 오는 것으로 각종 부역을 대신했으며 그에 따른 수입도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안상일 씨는 “마을의 형국을 말하자면 금강에 나가서 보면 마을 뒷산이 용머리 모양으로 두 마리가 얽혀 있는 것처럼 돼있고 용의 꼬리 부분이 은행나무가 있는 곳으로 돼있어. 그래서 산을 황룡산, 청룡산이라고 부르는데 옛날에 나당연합군에 맞서 청룡산에서 활을 쐈다는 얘기도 있어”라고 말했다.

명당자리로 알려진 묏자리와 관련한 일화도 있다.

안 씨는 “이완용 씨 작은아버지 산소가 성당마을에 있는데 거기가 우리나라 최고 명당이라고 하더라고. 조선말기 이완용 씨가 마을에 와서 무릎 꿇고 묏자리를 달라고 빌었다는 거야. 거기가 4백 년 동안 쌀을 쌓아놨던 창고자린데 당대 최고 세도가가 와서 무릎까지 꿇을 정도였으니 말 다했지. 이 씨 후손이 예전에는 살다시피 했고 마을 행사에 술도 내고 시계도 걸어주고 그랬어. 그 후손들이 소유한 땅이 아직도 많어”라고 말했다. 

정완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