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시장 장점 살리고 특성 살리는 차별화에 힘쓰며,

이기심과 뒤틀린 경쟁심 버리면 ‘활로’보일듯 

주단골목은 100여년의 전통을 자랑하는 남부시장(전 구시장)옆에서 60여년 동안 그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1930년대의 남부시장의 모습은 보통장날에 1천명, 대목장날에는 1만여 사람들이 모였다고 하니, 주 의복이 한복이었던 시절에 주단골목은 최대 호황을 누린 익산의 가장 번화한 지역이었다.

1919년 4월 4일 남부시장에서 만세운동으로 순국한 이들의 얼을 기리고자 세워진 순국열사비도 이곳에 있다. 이곳에는 문용기 열사가 순국하던 현장의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온다. 문용기 열사는 만세운동으로 태극기를 들고 있던 우측팔이 잘리자, 왼손으로 태극기를 다시 주워 만세를 외치다 왼손마저 잘리고, 결국 가슴을 난자당해 순국하는 순간 “여러분! 여러분! 나는 이 붉은 피로 우리 대한의 독립 정부를 음조(陰助)하여 여러분으로 하여금 대한의 독립된 국민이 되게 하겠소”라는 말을 남기며 순국했고, 이날 순국한 순국선열의 얼을 기리기위해 1949년 이승만대통령에 의해 순국열사비가 세워졌다.

익산역 주변이 개발되고, 매월 4일, 9일 열리는 5일장의 명성도 북부시장으로 넘겨주고 난 뒤 남부시장은 쇠락의 길을 걷게 됐다. 이후 구도심 시민들이 영등·부송·모현동 등 신도심으로 대거 옮겨간데다 대형마트들이 들어선 여파가 컸다. 남부시장 옆으로 한복골목이 있다는 것 자체를 모르는 시민들이 많이 생길 정도로 남부시장 상권은 곤두박질쳤다.

1980년대 한복에서 양복으로 넘어가는 시절에 양복안감으로 비단이나 실크가 사용돼, 양복과 공생하는 삶도 잠시 살았지만, 이마저도 기성복에 패권을 뺏겨 오로지 한복으로만 전문거리를 유지하면서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서구문화의 전통문화 잠식으로 일상생활 속에 한복을 입을 일이 없는 세태 역시 주단 장사들의 설 자리를 빼앗는 요인이 되고 있다.

전통적 행사인 돌잔치, 회갑, 칠순, 팔순 등 경사에 한복을 찾기도 하지만, 그나마도 대여문화에 밀려 한복을 소유하고 있는 사람이 갈수록 줄어드는 추세다.

평생 단 한번이라 그나마 종종 있다는 결혼식 한복마저 드레스를 보러간 전주 웨딩거리에서 한복구입까지 한꺼번에 해 뺏기기 일쑤다. 토탈쇼핑에 익숙해진 현대인들에게는 컨셉에 맞춘 특성화된 인프라, 온라인 가격비교, 구매자에게는 전통시장의 장점인 에누리와 덤, 맞춤한복 차별화, 특정일 한복입는 이벤트 등 이 지역만의 특색이 보호·육성되기 전까지는 타 지역으로 뺏기는 손님을 다시 되찾을 방도가 보이지 않는다.

▣ 고령업주들이 많아 시대의 흐름을 따라가지 못하고..  

한복 특성상 젊은 업주들은 한복사업에 접근을 기피하고 있다. 시장성이 떨어진다고 판단해 대규모 대여점, 초 고가의 한복시장으로 접근할 뿐 일반판매시장에서 한복사업은 수요가 적다고 판단해 기피하고 있는 업종 중에 하나다.

결국 인터넷으로 손품팔고 찾아가는 시대의 흐름을 반영하지 못해 온·오프라인 홍보가 많이 되는 타 지역 거대매장으로 손님이 빠져나가도 넋 놓고 바라만보는 업주들도 많다.

또 익산에 한복거리가 익산의 한복 판매를 독점하고 있다는 착각도 문제다.

한 업주는 한복거리의 정체가 주변 상인들의 이기심과 뒤틀린 경쟁심리에서 기인했다고 진단하기도 한다. “결혼은 평생 한번뿐이라는 심리를 이용해 다른 가게에 없는 한복을 고르는 손님에게 바가지 씌우는 가게도 있다고 들었다”며 “한번 그렇게 당하고 나면 이 동네를 다시 찾겠느냐”라며 “자기가 못 팔게 생기면 전주나 다른 동네가 낫다며 되돌려 보내는 상인도 있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동네에 어떻게든 한명이라도 끌어들여 한복특성화거리를 만들기도 모자랄 판에 바가지를 씌우고, 자기가 못 팔게 생기니 타 지역으로 보내 버리면, 거리 전체가 다 죽게 되는 걸 모르는 모양”이라며 울분을 토했다.

이런저런 이유로 상인협회도 없어, 극단적 이기주의로 치달아도 손쓸 방도가 없으며, 결국 공멸하는 상황으로 치달을 수 있어 걱정이 크다고 말했다.

정찰제가 아니기 때문에 가격을 확인할 방법은 업주에게 묻는 방법밖에 없다. 때문에, 업주가 착각하거나, 고의로 높게 가격을 불러도 소비자는 모를 수밖에 없고, 이미 가격을 알고 있거나 나중에라도 인터넷으로 확인한 소비자는 바가지로 단정 짓고 두 번 다시 찾지 않는다. 이를 명심하고 공생할 수 있는 길을 찾는 것이 급선무라는 게 주단골목을 걱정하는 사람들의 한 목소리다.

▣ 한복거리의 상점들

인화동 한복거리에는 전통과 현대가 어우러져 조금씩 변화를 맞을 준비를 하고 있다.

겨우내 움츠렸던 상인들은 새로운 디자인의 한복과, 이불 등으로 곧 돌아올 성수기(봄 결혼시즌)를 맞이할 준비로 조금씩 활기를 띠고 있었다.

[현대주단]

현대주단 홍성철씨.

20여년동안 한복거리 초입에서 현대주단을 운영하고 있는 홍성철(51)씨는 처음 한복집 직원으로 시작했다고 한다. “86년아시안게임, 88년올림픽때는 한복업계가 최고로 호황기를 누렸어요” 한복일을 시작하자마자 침체기를 맞게돼 고생이 많았다는 홍씨는 최근까지 침체된 거리의 모습의 원인을 한복상인들의 단합부재로 들었다. “얼마전만해도 상인연합회도 갖춰져 있었지만, 지금은 없어졌습니다. 상조회만 운영되고 있는데, 이 모임은 상인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곳이 아니다 보니 한복골목의 쇠퇴를 지켜볼 수밖에 없을 따름”이라고 한다.

현재 홍보가 너무나 시급한 한복거리지만, 일부만 나서서 홍보활동을 할 수 없는 노릇이라 본인도 갑갑해 했다. 한복의 가치를 재조명 받는 날을 위해 열심히 한복을 만드는 것이 지금 할 수 있는 전부라는 그는 곧 시작될 나름 성수기인 결혼시즌 준비에 바빴다.

[솜틀집]

솜틀집 고홍양씨.

한복과 혼수이불은 뗄 수 없는 관계. 혼수로 가져간 목화, 양모이불 등이 뭉치고 딱딱해지면 새것처럼 다시 풀어주는 솜틀집이 있다.

50년동안 솜틀집을 운영했다는 선지근(75), 고홍양(75)부부는 이제 기력이 많이 떨어져 보였다. 직장, 대장암으로 고생하다 최근 갑상선암으로 또다시 병원치료를 받고 얼마 전 퇴원했다는 할아버지는 이제 가게에 나오기 힘들다며 할머니 홀로 솜틀집을 지키고 있었다.

“익산에 솜틀집이 여기 하나 뿐일꺼여. 군산이고 어디고 다 일로오지 딴 데는 다 문 닫고 없어” 라고 말하지만, 할머니의 말에는 아쉬움이 가득했다. 이유는 손님이 거의 없기 때문이었다.

“요즘은 이불하나 몇 만원이면 사는디 누가 솜 틀다 덮것어, 집들도 다 따숴서 다 내다버리고 얇은거 사다 덮지”라고 말하는 할머니의 푸념 속에는 익산의 마지막 솜틀집도 곧 추억 속으로 사라질 것이 예고되고 있다.

솜틀기와 50여년의 사투속에 얻은 굽어버린 검지와 갈라진 손.. 이제는 솜틀기를 놓으실 때가 된듯해 보였다.

[신사임당주단]

신사임당 이정택씨 모자.

어머니에 이어 2대째 한복거리에서 ‘신사임당’을 5년째 운영 중인 이정택씨는 이 동네에서 가장 젊다. 이씨는 디자인을 공부하고 직장을 다니며 어머니를 잠깐 도와드리다가 한복의 매력에 빠져 운영에 직접 참여하게 됐다고 한다. 젊은 남성 디자이너가 디자인해서 그런지, 화려하고 개성 넘치는 한복들이 진열돼 있었다.

“제가 직접 디자인 하고, 어머니가 옆에서 직접 바느질 해 주시니 여러 가지 시도를 해볼 수 있죠” 라는 이씨는 이 거리의 손님들의 특성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예전의 고부관계와 현대의 고부관계는 많이 다르다는 이씨는 한복 고르는 풍경을 이렇게 이야기 했다.

“예전엔 함께 온 며느리들이 맘에 들지 않아도 시어머니가 골라주는 대로 입었어요, 반면 최근에는 자기주장을 펴는 며느리들이 많아요. 차마 거부는 못하겠고, 본인 맘에 들지 않으니 그 자리에서 울기까지 하는 며느리도 있었어요. 시어머니가 며느리를 달래서 며느리 맘에 드는 걸로 바꿨죠” 이제는 부모님 입맛보다는 직접 입을 사람들의 입맛에 맞출 수밖에 없다고 한다.
“흐름을 따라가다 보니 한복 대여도 제일먼저 시작하게 됐어요. 덕분에 주변 사장님들께 원성도 많이 들었죠” 현 세대의 특성상 구입보다는 대여를 선호하기에, 한복거리에서는 제일 처음 대여를 시작 했다고 한다. 타 지역에 전문대여업소가 우후죽순으로 생겨나던 때라, 그쪽으로 뺏기다 보면 고객의 발길이 아예 끊길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시작하게 됐지만, 판매만을 고집하던 업주들의 원성에 많이 힘들었다.

하지만 이제는 거의 모든 집 에서 대여를 하고 있고, 디자인도 ‘신사임당’을 따라하면 잘된다는 말까지 듣는다며, 시대의 흐름을 읽기위해 아직도 노력중이라고 한다.     

        박교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