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00년 세월 버틴 힘은 정성과 노력, 심주석 중간에 사리장엄구 모셔둬 안전하게 보존

◈ 익산 미륵사지석탑 (국보 11호)

익산시 금마면 기양리 미륵사지에 마지막으로 남아있는 석탑인 미륵사지석탑은 1400년의 세월을 버텨온 자랑스러운 문화유산이다.

학계에서는 불교가 전래된 4세기부터 약 200여년간 목탑을 건립 했고, 목탑기술의 발달됨에 따라 석탑으로 축재를 변경한 것으로 보고 있다.

신라의 황룡사구층목탑을 건립할 때 백제의 아비지(阿非知)가 초빙되어 공사를 담당했다는 기록도 있을 만큼 삼국 중에서 가장 건축이 발달했던 나라가 백제였으며 ‘사탑심다(寺塔甚多)’의 나라로서 널리 알려져 있다.

목탑건축이 유행하던 동일 시기에 세워진 왕궁면 제석사지에는 목탑으로 추측되는 탑의 기단부가 발견됐고, 미륵사지 3원내의 중탑 또한 목탑으로 축조하는 등 당시에는 목탑이 유행했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미륵사지석탑은 석재를 목재처럼 깎아 목탑형식으로 축조해 석탑축조가 정립되지 않을 당시 최초로 시도된 석탑일 것으로 보고 있다.

미륵사지에 있던 3개의 탑중 목탑인 중탑을 가장 큰 탑으로 보고있고, 서탑과 동탑은 중탑보다 조금 작은 크기로 지어진 석탑으로 당시 주인공은 목탑이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백제의 석탑으로는 미륵사지석탑과 정림사지 5층석탑만이 유일하게 남아있는데다, 무너져 내리고 남은 6층까지의 높이가 14.24m인 것에 반해 정림사지석탑은 8.3m로 규모나 축조방식에 있어 정림사지 5층석탑이 미륵사지석탑을 본받아 축조한 것으로 보고 있다. 

현대에 남아있는 삼국시대 이후의 석탑들은 많이 간략해졌다. 하지만 미륵사지석탑의 경우 돌을 나무처럼 깎아 목재대신 석재로 흡사하게 구현했고, 석탑중심에 방형석주를 세우고 그 위에 평방, 창방, 그리고 옥개석을 받치고 있는 3단의 받침등 목조건물의 형태를 충실하게 지키며 세웠다. 아마 우리나라 석탑중에 가장 많은 정성과 노력을 담아 세운 것이 아닐까?

탑신1층 중앙에는 4방향으로 문을 만들어 내부로 들어갈 수 있는 구조로 돼있으며, 남아있는 탑은 14m 가량으로 본래 모습은 9층으로 추정되고 있다. 일제강점기인 1915년 붕괴위험이 있어 일본인들이 콘크리트로 흉물스럽게 보수해 둬 지금까지 시민들이 본 미륵사지석탑은 시멘트로 간신히 지탱하고 있는 모습만 볼 수밖에 없었다. 현재 복원 작업중에 있는 미륵사지석탑의 복원은 현대기술로도 매우 어려운 작업인 만큼 콘크리트로 덮어버렸던 것이 오히려 다행이라는 의견도 있다.

유물모음

청동합안에서 발견된 다양한 유물

◈ 사리장엄구는 판도라의상자?

미륵사지석탑은 누군가가 이미 도굴에 도전했던 석탑이다. 지렛대를 넣어 심초석 밑부분을 헤집어놓은 흔적이 발견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도굴꾼들의 예상과 다르게 심주석 중간에 사리장엄구를 모셔둬 유물이 없는 석탑으로 오해를 받은 덕분에 아직까지 안전하게 보존될 수 있었다. 

그러던 2009년 미륵사지석탑 복원을 위한 해체작업 중 미륵사지 석탑에서 사리장엄이 출토되며 무왕 부인의 정체가 혼란 속으로 빠져들게 됐다. 삼국유사에 따르면 무왕의 부인은 신라

평왕의 막내딸인 선화공주로 기록돼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출토된 금제사리봉영기에 삼국유사를 정면으로 반박하는 내용인 ‘백제왕후 좌평사택적덕녀와 기해년 정월 25일’로 기록돼 있어 학자들의 의견역시 여러 갈래로 갈라지는 등 혼란 속으로 빠져들었다.

하지만 미륵사 자체가 3원 병렬식 가람배치로 이뤄져있어 3개의 탑이 존재했기 때문에, 각 탑마다 사리장엄과 봉영기가 다른 내용으로 존재했을 가능성이 있다. 또 신라출신인 선화공주를 인정하지 않아 좌평사택적덕의 딸을 왕후로 세운 것인지 아무것도 확인된 바가 없다.

사리장엄의 발견을 통해 선화공주의 존재에 혼란을 가져온 것은 사실이지만, 다른 역사적 사실을 뒷받침해주는 중요한 열쇠로 다가왔고, 삼국유사가 허구라는 증명이 선행되지 않는 이상 선화공주의 존재는 부정해서는 안 될 것이다.

◈ 금동제사리외호

13cm가량의 크기에 목이 긴 동체에 보주형 꼭지가 달린 모양으로 뚜껑과 윗부분에는 연꽃잎, 동체에는 인동당초, 연화당초문이 음각으로 새겨져 있고, 여백에 생선알 모양을 가득하게 새겨 넣어 화려함을 더했다. 인동당초무늬는 고대 이집트에서 발생해 그리스에서 완성된 무늬로 장수를 상징하는 당시 백제의 세계적 문화교류를 엿볼 수 있다. 동체는 상하로 나눠지며, 상하가 맞닿는 부분의 아랫부분에 홈이 만들어져 있어 돌려서 끼우는 방식이다. 외호 안에는 금제사리내호와 다양한 색상의 유리구슬, 금제화형구슬, 가루로된 유  기물등이 채워져 있었다.

◈ 금제사리내호

금동제사리외호 안에 들어있던 내호로, 5.93cm 크기에 외호와 비슷한 문양이 그려져 있으며, 내부에 유리제 사리병 파편과 사리가 보존돼 있었다. 아마 유리제 사리병은 세월을 이기지 못하고 깨져 버린 것이 아닐까?

처음 조사당시 12개의 사리가 있는 것으로 생각했으나, 유리제 사리병의 입구가 4mm로 확인됨에 따라 사리장엄에서 발견된 사리 중 크기가 제일 작은 흰색 사리 1개만이 진짜 사리로 추정하고 있다.

◈ 금제사리봉영기

선화공주 실체를 혼란에 빠트린 주인공으로 가로 15.3cm, 세로 10.3cm, 두께 1.3mm의 금판에 앞뒤 193자의 글씨를 새겨넣은 봉영기다. 이 봉영기에 적힌 ‘백제왕후좌평사택적덕녀’라는 기록 덕분에 미륵사창건설화에 혼란을 가져오기는 했지만, 사리봉안시기와 미륵사조성시기를 밝히는 중요한 단서가 됐다.

-원문 해설-

가만히 생각하건데, 법왕께서 세상에 출현하시어 근기(根機)에 따라 부감(赴感)하시고, 중생에 응하여 몸을 드러내신 것은 마치 물속에 달이 비치는 것과 같으셨다. 그래서 왕궁에 태어나시고 사리쌍수(娑羅雙樹) 아래에서 열반에 드셨는데, 8곡(斛)의 사리(舍利)를 남기시어 삼천대천세계(三千大天世界)를 이익 되게 하셨다. 마침내 오색으로 빛나는 사리로 하여금 일곱 번 돌게 하였으니 그 신통변화는 불가사의하였다.

우리 백제왕후께서는 좌평 사택적덕의 딸로 오랜 세월[曠劫]에 선인(善因)을 심으셨기에 금생에 뛰어난 과보[勝報]를 받아 태어나셨다. (왕후께서는) 만민을 어루만져 길러주시고 삼보의 동량(棟梁)이 되셨으니, 이에 공손히 정재를 희사하여 가람을 세우시고, 기해년 정월 29일에 사리를 받들어 맞이하셨다.

원하옵건대 세세토록 하는 공양이 영원토록[劫劫] 다함이 없어서 이 선근(善根)으로써 우러러 자량(資糧)이 되어 대왕폐하의 수명은 산악과 같이 견고하고 치세[寶曆]는 천지와 함께 영구하여, 위로는 정법을 넓히고 아래로는 창생을 교화하게 하소서.

또 원하옵건대 왕후 당신의 마음은 水鏡(수경)과 같아서 법계(法界)를 비추어 항상 밝게 비추시고, 몸은 금강(金剛)과 같아서 허공과 나란히 불멸(不滅)하시어 칠세영원(七世永遠)토록 다함께 복되고 이롭게 하고, 모든 중생들이 함께 불도(佛道)를 이루게 하소서.

◈ 청동합

각각 크기가 다른 청동합 6점이 발견됐는데, 이 청동합 안에서는 4800여점에 이르는 다양한 종류의 구슬, 금제판, 금괴, 호박, 곡옥, 금제고리, 금제화형구슬등이 출토됐다. 

이외 은제관식, 금제소형판, 칼 7자루, 직물등이 세상의 빛을 보게 됐다.

현재까지 미륵사지석탑의 복원은 6층까지로 계획되어있다. 추론에 의해 9층까지 복원하게 되면 국보로서 가치가 훼손될 수 있다는 의견에 따라 1,2층은 완전복원하고, 3~6층은 해체 전 모습으로 복원하며 일부를 보완·복원하는 방법을 채택해 진행 중이다.             

박교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