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당터, 제내, 북한도라 불리는 옛 이름들.. 한국전쟁 당시 모스크바라고 불리기도 해

검지 마을 전경

지게목발노래 공연 모습

미륵산을 배경으로 바라본 검지 마을

삼기면 오룡리는 풍수지리설에 의하면 다섯 마리의 용이 여의주를 얻기 위해 다투는 ‘오룡쟁주형(五龍爭珠形)’의 형국이라 한다. 우리나라에서 대표적인 오룡쟁주형의 형국인 도시로는 천안(天安)시를 꼽을 수 있는데, 그보다 작은 규모지만 오룡리 역시 여의주를 품고 있는 명당지에 생겨난 자연마을이다.

미륵산에서 뻗어 나온 야트막한 산등성이 다섯이 얽혀 있는 지형에 도마리, 검지, 옥실, 구정, 사오랑 마을까지 다섯 마리의 용에 해당하는 마을로 이뤄져 있으며 특히 옥실(玉實)마을은 ‘옥구슬’이라는 이름에서 생겨난 지명으로, 용이 다투고 있는 여의주에 해당하는 곳이라 전해지고 있다.

오룡리의 다섯 마을 중 중심에 위치한 검지(檢地)마을은 본디 묵지(墨池)라는 저수지가 있어서 붙여진 이름으로, 검은 못이라 하여 검지[검池]라고 불렀고 이를 한자로 다시 검지(檢地)라고 잘못 표기하면서 전혀 다른 뜻으로 바뀌게 됐다.

검지마을에 들어서면 먼저 고교저수지라고 이름 붙여진 아담한 방죽이 자리하고 있다. 구읍지(舊邑誌) 기록엔 검지마을에 저제제(猪梯堤)가 있고 제내(堤內)에 금음조제(今音條堤)가 있다고 돼있는데 고교저수지가 저제제였는지 금음조제였는지는 정확한 파악이 어렵지만 오래 전부터 있어온 방죽임은 틀림없다.

검지마을 마을회관에서 주민 남궁전(91), 박철귀(75), 이승식(73), 박중근(61) 씨를 만나 마을의 내력에 대해 자세히 들어보았다.

▣ 금은촌의 북간도와 모스크바

마을 주민들은 검지마을의 유래에 대해 비교적 최근에 붙여진 이름들을 기억하고 있었다.
먼저 검지마을을 다른 이름으로 금은촌이라고 불렀으며 마을을 세 군데로 나눠 서당터, 제내, 북한도(북간도)라고 불렀다.

금은촌이라는 지명은 일제시대에 붙여진 이름이다. 한 일본인이 마을 앞에 방죽을 만들었고 그 사람의 이름을 따서 금음조제라고 불렀는데, 이 후 금음조제가 있는 마을로 굳어져 금은촌(금음촌)이라고 부르게 됐다고 한다.

이 이야기에 따르면 검지마을에 예전부터 있었던 묵지라는 저수지나 저제제의 경우 금음조제가 생기면서 자연스럽게 메워지게 된 것으로 생각해 볼 수 있다.

제내는 금음조제의 안쪽에 있는 마을이라고 해서 제내(堤內)라고 불렀으며, 서당터는 예전에 서당이 있던 곳이라고 전해지고 있으나 서당의 흔적이나 자세한 내용은 전해지는 바가 없다.

북간도 또는 북한도라고 부르는 곳은 검지마을에서 북향으로 자리한 곳을 일컫는데, 그 동네의 날씨가 유난히 춥다고 해서 만주(滿洲)의 북간도(北間道)에서 따와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하지만 마을이 붙어 있는데다 단지 북향했다는 이유로 날씨가 유독 춥다는 것은 언뜻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다. 아마도 그쪽에만 늦게까지 눈이 녹지 않았다거나 그곳 지형이 바람이 많이 부는 곳이라서 익살스럽게 북간도라고 부르지 않았을까 추측할 뿐이다.

한국전쟁 당시에는 검지마을을 모스크바라고 불렀다는 얘기도 나왔다. 남궁전 씨는 “인공때는 우리 동네를 모스크바라고 불렀어. 모스크바가 소련에서 제일 크잖아. 그 땐 이 근방에서 우리 마을이 큰 마을이었고 특히 공산당이 많았기 때문에 모스크바라고 부르고 그랬지”라고 말했다.

이야기를 종합해 보면 검지마을은 묵지골, 금음촌, 북간도에서 모스크바까지 다양한 이름을 간직하며 역사와 문화를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는 마을이다.

▣ 노래와 함께한 고구마 농사

검지마을 주변은 야트막한 구릉지가 많은 관계로 논농사와 함께 고구마를 많이 재배했다. 약간의 논농사는 거의 천수답과 수렁논(물이 솟는 논)이 대부분이었으며, 풍부한 양질의 황토는 고구마 재배의 적지였다.

검지마을에서는 빨간 밤고구마를 많이 생산했고 우마차로 황등에 운반해 전국으로 팔려나갔다. 황등 밤고구마가 전국적으로 유명세를 탄 것도 으뜸으로 치는 검지마을의 고구마 덕분이란 얘기다.

검지마을의 농사에는 전통적으로 특별한 노래가 함께 했는데 전라북도 무형문화재 1호로 지정된 익산목발노래를 비롯한 농사노래다.

익산목발노래는 검지마을을 중심으로 익산에 전해 내려오는 민요로, 지게를 진 나무꾼들이 작대기로 지게의 다리인 목발을 두드리며 부르던 노래를 말한다.

산타령, 등짐노래, 지게목발노래, 작대기타령, 둥당기타령, 상사소리 등 6곡을 묶어 지게목발노래라는 이름으로 전해지며 나무꾼들이 무거운 짐을 질 때, 가벼운 짐을 질 때, 빈 지게로 나갈 때 등에 따라 여러 곡조의 장단으로 부른다.
검지마을의 목발노래가 타 지역의 민요처럼 사라지지 않고 맥을 이어오는 것은 고 박갑근 씨의 농요(農謠) 보존 노력 덕분이었다.

박갑근은 1923년 박해명씨의 3남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농요를 발굴하고 계승시키기 위해 그는 함열, 낭산, 금마, 삼기 등의 지역에 사는 주민들을 모아 율계(律契)를 조직해 운영했다. 낮에는 농요를 발굴하고 저녁에는 회원들에게 지도했다. 그 결과 익산목발노래는 1972년 제 13회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에서 문화공보부장관상을 받았으며 1973년엔 전라북도 무형문화재 제 1호로 지정됐다.

마을 주민들에게 지게목발노래를 청하자 박철귀 씨는 “목발노래는 기능보유자인 박 회장이 작고하고 나니까 후계자가 없는 바람에 좌절돼 있는 상태지. 그게 누가 앞소리를 해줘야 주거니 받거니 하는데 앞소리 할 줄 아는 양반들이 타계하거나 타관에 나가계셔서 못해. 시방도 지게하고 뭣이고 다 창고에 보관돼 있는데 우리는 후렴이라고 ‘꽁꺽자 두렁넘어 꽁꺽자’ 그것 밖에는 못해”라고 답했다.

할 수 있는 부분을 조금만 들려달라고 재차 청해 들을 수 있었다. 이승식 씨가 앞소리를 맡고 주민들이 뒷소리 합창이 이어졌다. 지게목발 노래 중 일명 “콩꺾자”의 한 부분이다.

앞 “콩꺾자 콩꺾자 두렁넘어 콩꺾자아-”
뒤 “콩꺾자 콩꺾자 두렁넘어 콩꺾자아-”
앞 “오늘해도 다갔나봐 골골마다 경기롤세”
후렴 “콩꺾자 콩꺾자 두렁넘어 콩꺾자아-”

▣ 오룡리의 가장 어른 마을

흥겨운 농요에 마을의 옛 분위기가 고스란히 남아 있는 검지마을은 오룡리에서도 가장 어른 마을 대접을 받았다고 한다.

근처 구정마을이나 사오랑마을은 해마다 풍물 마당이 벌어질 때면 검지마을에 절을 했다. 익산의 특별한 전통인 기세배가 검지마을에서도 행해진 것이다. 농기를 앞세워 세배를 하고 더러는 기싸움도 벌어졌을 것으로 보인다.

남궁전 씨는 “우리 마을은 도마리나 사오랑이나 같은 오룡리라고 해도 술멕이를 같이 안했어. 왜냐. 검지마을은 양반마을이고 다른 동네는 민촌이라 해서 우리끼리 술멕이를 하고 상대를 안해줬지. 우리마을이래서가 아니라 점잖고 온순한 어른들이 많았어”라고 전했다.

마을에서 벌어진 우환에 대한 얘기도 나왔다. 1972년에 야산을 개발한다고 수로를 마을 위로 냈는데 그 후로 마을의 젊은 사람들이 죽어나가기 시작했다. 수로가 마을을 막고 있기 때문에 생긴 일이라고 생각한 주민들이 수차례 민원을 제기해 그 수로를 없애고 지하로 매설했다고 한다.

박중근 씨는 “그 수로가 이십 몇 년 동안이나 있었는데 없애고 나니까 그 뒤로는 괜찮드라고. 그 땐 멀쩡한 사람이 서울 갔다가 강도를 만나 죽기도 하고 젊은 사람들이 많이 죽고 했었지”라고 말했다.                                  

정완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