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초기 읍성인 용산성 내부의 가장 큰 대동 마을.. 용산찹쌀엿의 맥 잇고 있어

대동 마을 전경

용산성이 자리했던 마을 당산.

전통의 맥을 잇고 있는 엿 공장이 마을에 있다.

용산성 석재로 추정되는 돌계단.

황등면은 익산의 도심 외곽 지역에 형성된 마을로 호남선 개통과 함께 황등역이 들어서면서 발전을 시작했다.

세계 최고의 품질을 자랑하는 화강암의 산지로 유명한 황등면은 석재 산업과 함께 고구마 산지로도 이름을 알리고 있으며 1970년대까지만 해도 황등역이 북적거릴 정도로 호황을 누렸다.
사실 황등의 화강암을 비롯해 석재 산업의 역사는 백제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미륵사지석탑 역시 황등석으로 만들어 졌으며 석재를 다루는 기술이 뛰어났던 백제인들은 신라로 건너가 불국사 건축에 기여하기도 했다고 전해진다.

또한 1973년에 문화재관리국에서 불국사 석조복원공사를 시행하면서 전국에서 유명한 석공 16명을 모집했는데 그 중 14명이 황등 출신 석공이었다. 황등면이 석조문화의 중심이라는 전통을 이어오고 있는 것이다.

황등면은 본디 함열읍, 함라면, 웅포면, 성당면과 함께 함열현에 속했다가 고종 36년(1899)에 남일면(황등리, 동련리, 율촌리, 죽촌리, 신성리, 구자리)과 동이면(용산리)을 병합해 황등면으로 분리됐다.

◈ 용산성 내부의 큰 마을

용산리는 황등면의 가장 북쪽에 위치해 있으며 함열읍과 성당면에 접해 있는 마을이다. 용산리라는 지명의 유래는 정확히 전해지는 바가 없고 단지 마을 중앙에 위치한 산의 이름을 따온 것이라고 한다.

마을 사람들이 ‘당산’이라고 부르는 해발 50m의 야산 주위로는 용산성(龍山城)이라고 불리는 조선초기 읍성의 흔적이 남아 있는데, 성 안에서 가장 큰 마을이라고 해서 ‘큰골’ 이라고 불렀던 대동(大洞)마을을 찾아 마을 주민들을 만났다.

박순정(72), 권정님(75), 최정호(67), 유청자(71), 홍재덕(79) 씨가 마을에 전해지는 이야기들을 풀어놓았다.

권정님 씨는 “옛날에 마을 뒷산에 뭔 성이 있었다고 하더라고. 별로 표도 나지 않지만 성이 있었는데 그 성을 무너뜨려서 밭농사도 짓고 그랬어. 그리고 성벽 돌을 갖다가 교회를 짓는데 주춧돌로 쓰고 그랬지”라고 말했다.

주민들이 말하는 교회는 현재도 마을 초입에 위치하고 있는 용산교회인데, 106년 전 세워져 마을 계몽과 민족교육 등을 펼친 역사를 지니고 있으며 현재도 주민들 대부분이 교회에 다니고 있다.

대동마을은 성곽 내에서 가장 큰 마을을 뜻하고 있는데 ‘신동국여지승람’의 함열현 성곽조에 용산성에 대한 기록이 전하고 있어 그 규모를 짐작할 수 있다.

“돌로 쌓았는데 둘레가 3,600척이고 높이는 10척이다. 성내에 우물 2개와 못 1개가 있다. 세종 경신년(1440)에 현을 옮기기 위해 쌓았는데 아직 미처 옮기지 못하였다.” 

기록에 따르면 용산성은 둘레가 약 1km, 높이는 3m 정도이며 1440년 당시 함열현의 관아를 평야지대인 용산리로 옮기기 위해 세워졌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어찌된 연유인지 조선 후기까지도 관아를 옮기지 못하였고 고성(古城)으로 남아 있다가 일제시기에 이르러서는 성벽을 허물어 황등제를 쌓는데 사용했기 때문에 토성처럼 되어버린 채 남아 있다.

◈ 용산엿은 마을의 자랑

구전 민요로 내려오는 ‘엿장수 타령’에 이런 대목이 있다.

“울긋불긋 대추엿, 해멸 용산에 찹쌀엿, 만주 벌판에 수수엿, 강원도 금강산 도토리엿, 울릉도 호박엿 헐찍 헐찍이 잘 나간다.”

이 대목에서 ‘해멸 용산에 찹쌀엿’이라는 부분이 바로 대동마을에서 만들던 엿을 칭하고 있는 것으로, 여기서 ‘해멸’은 ‘함열’을 칭하고 있다.

그러니까 함열현의 용산에서 만들던 찹쌀엿이 예전부터 전국에 유명한 특산품이었고 또한 임금님 진상품으로 대접받았다는 얘기다.

일명 ‘밤엿’이라고 불리는 용산찹쌀엿은 찹쌀이 주재료인데 먹기 좋게 세모꼴로 썰어서 밤모양과 닮았기 때문에 밤엿이라고 불렸다.

권정님 씨는 “여기로 시집온 지 오십년쯤 되는데 여기 시집 올적에 섣달 그믐날 되니까 신랑되는 양반이 엿을 바구니에다 해서 왔더라고. 그러니까 시집오기 전부터 집집마다 엿을 만들었고 언제부터인지 몰라. 옛날부터 만들었지”라고 말했다.

용산찹쌀엿이 맛이 좋고 유명한 이유에 대해서 마을 주민들은 물이 좋고 직접지은 농산물로만 만들기 때문이라고 입을 모은다. 엿을 만드는데 들어가는 찹쌀과 엿기름, 생강과 깨 등을 모두 직접 지은 농산물로만 만들었으며 현재 논으로 개간된 곳에 물이 좋은 샘이 있었다고 한다.

권정님 씨는 “빨래도 다 큰 샘에서 하고 김장도 샘에서 씻고 하는 참 좋은 샘물이 있었는데 농사지으면서 없앤 지 한 사오년 밖에 안됐네. 그 물로 엿을 만들려고 딴 동네에서도 물을 길러오고 그랬었는데”라고 기억하고 있었다.

집집마다 엿 만드는 틀은 그대로 다 있지만 현재는 한 곳에서만 용산찹쌀엿의 전통을 잇고 있는 엿공장이 운영되고 있을 뿐, 엿 고는 연기 자욱하던 마을풍경은 찾을 수 없게 됐다. 다만 엿을 만들던 마을답게 엿노래가 전해지고 있어서 홍재덕 씨의 입으로 들어보았다.

“나의 이름은 엿이라 합니다. 집안도 많으며 형제도 많고 나의 고향은 용산이올시다. 참 재미 좋지요. 과자 중에 제일가는 금빛 돋는 나의 엿은 먹기도 좋고 맛도 좋은 담엿이 한 사발.”

◈ 마을의 전설과 풍속

대동마을은 옛적부터 성곽이 지어질 정도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던 만큼 소박하지만 여러 전설이 아직 남아 전해지고 있었다. 

정월 대보름에는 성을 경계로 성내 마을과 대동 마을이 불 싸움을 하였다는 기록은 성과 함께 살아온 마을 주민들의 생활상을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성을 마을의 경계로 해서 젊은이들이 서로 횃불을 들고 모여 싸우고 이기면 풍년이 들고 지면 흉년이 든다는 내용이다.

또 마을에 혼인하는 사람이 나오면 새신랑을 밤에 큰 샘에 데려다가 절을 시켰다는 풍속도 전해지고 있다. 샘물이 잘 솟아나라는 의미로 새사람에게 인사를 시키던 풍습이다.
도깨비 비석에 대한 이야기도 나왔다.

박순정 씨는 “자랄 적부터 있던 동그란 모양의 비석인데 어른들이 비석을 넘어뜨리면 동네 거시기한다고 가만 놔두라고 했어요. 그런데 어떤 양반이 술을 먹고는 비석에 가서 밤새 실랑이를 하다가 도깨비한테 졌는데 집에 돌아와 그냥 죽어버린 일도 있었죠. 자빠지면 젊은 사람이 죽는다고 해서 그냥 놔둬야 돼요”라고 들려줬다.

◈ 우렁샘골과 황새다리

용산리에는 대동마을(큰골)과 함께 옛 이름을 간직한 마을이 여럿 있다.

소산마을을 일컬어서는 우렁샘골이라고 부르고 있었다. 이는 동리 가운데 물이 넘쳐흐르는 샘이 있었는데, 그 샘에 들어가는 길이 우렁이처럼 나선형으로 생겼기에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또 황교1·2구 마을은 원래 황새다리라고 불렀는데 마을의 모양이 황새의 다리처럼 길게 빠져 있기 때문이다. 마을 이름을 한자표기하면서 황교(皇橋)라고 잘못 붙여졌다.

각시골이라는 곳도 있다. 최정호 씨는 “저 앞에 산골짜기 동네가 각시골인데 듬성듬성 집도 있다가 이제 사람도 안 살아. 각시머리처럼 생겼다고 각시골인데 그곳에다는 비석 하나도 못 세우게 했어. 각시 머리에 돌을 얹으면 번창을 못한다고 그랬던 가봐”라고 말했다.

정완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