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이 된 평민과 적국의 왕비가 된 공주는 ‘로미오와 줄리엣’보다 더 잔인한 러브스토리를 남기고

소왕릉

소나무숲에서 본 대왕릉

쌍릉주변 전경

백제의 무왕은 평민으로 어린시절을 지내고 신라의 공주를 아내로 맞은 뒤 혼란기 백제의 왕위에 올라 왕권강화를 통해 백제의 위상을 떨친 왕이다. 백제의 부흥을 위해 수차례 전쟁을 이끌면서도 익산으로 천도를 계획하며 끊임없이 진취적인 꿈을 품었던 무왕은 쌍릉에 잠들어 있다.

쌍릉은 익산시 석왕동 산 55번지에 위치하며 무왕의 대왕릉, 그의 부인인 선화공주가 잠들어 있는 소왕릉이 함께 있어 쌍릉으로 불리고 있다.

쌍릉은 문화재로서의 가치가 높은 것은 물론, 고이 잠들어있을 무왕의 곁에서 시민들도 함께 쉴 수 있는 공간으로 다시 태어나고 있다.

화사한 꽃들이 반기는 말끔하게 단장된 넓은 잔디밭, 꽃으로 가득 찬 하트모양의 사랑의 공원, 수변정원 등 마치 무왕과 선화공주가 이곳 어딘가를 거닐며 사랑을 속삭이고 있을 듯 한 착각에 빠지게 만드는 아담하지만 매우 아름다운 곳이다.

또 대왕릉과 소왕릉을 잇는 200m가량의 소나무길은 도심에서 지친 이들에게 안정을 선물하고 있어 일상에 지친 현대인들이 지나다 들러 잠시 쉬다가는 것도 좋을 듯 하다.
불과 몇 년 전 덩그러니 놓여 있던 쌍릉을 생각하면 세상의 관심과 문화재 보존의 중요성이 새삼 소중하게 느껴진다.

◈ 쌍릉은 무왕의 릉? 무강왕의 릉?

쌍릉은 아름다운 제 모습을 찾아가고 있지만, 내면의 아픔을 간직한 채 흐르는 세월에 끌려가는 주인공이기도 하다.

쌍릉의 가장 큰 아픔은 정체를 의심받고 있는 현실에 대한 아픔을 들 수 있다.
쌍릉은 1917년 일제 강점기에 내부조사가 실시됐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쌍릉은 이미 도굴범에 의해 유물이 모두 도난당한 상태였다고 한다. 남겨진 유물은 토기, 부식된 목관, 옥 장신구 등 릉의 주인을 확인하기 어려운 유물만 남겨져 있었다.

한편으로는 이 쌍릉을 무왕의 릉이 아니라 자신들의 선조의 릉이 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었고 현재도 완전하게 해결되지는 않았다.청주 한씨들은 마한의 시조인 무강왕(武康王)의 둘째아들 우량의 후손인데, 이들이 청주한씨 시조의 선대묘로 알고 제를 지내왔던 것이다. 청주 한씨들은 국가로부터 쌍릉 주변의 땅을 불하받아 소유권 등기를 마치고 인근 땅을 조상묘역으로 꾸미는 등 이들 선조의 묘로 인식해 제를 지내왔다.

1971년 쌍릉이 무왕의 릉으로서 국가문화재 지정 되자, 익산시는 학자들의 주장에 따라 릉의 주인을 무왕과 선화공주의 릉 이라 발표하며 한씨 문중이 설치한 주변 부속물들을 제거했다. 때문에 청주 한씨들은 자신들이 설치한 석상과 상석을 무단으로 치운 익산시를 상대로 ‘사유물무단제거’ 소송을 진행했고 승소해 보상을 받기까지 했다.

학자들은 이 릉이 무왕의 릉이 맞다는데 의견을 모으고 있다. 이는 이 릉의 구조적 특징과 대왕릉의 부식된 관을 통해 유추한 결론이다.

무강왕은 삼한시대 마한의 초대 왕으로 백제 무왕과는 6백여년 차이가 나는 기원전 1세기 전후의 왕이다. 또 마한은 청동기 문화에서 철기문화로 넘어가는 시대였기 때문에, 당시의 묘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앞선 방식이다. 내부 축조방식이 백제 후기공법인 굴식돌방무덤 즉 횡혈식석실분(橫穴式石室墳)이라는 점에서 무왕릉에 무게를 더하고 있다.

또 대왕릉에 있던 부식된 목관과 그 장식들은 당시 일본 ‘코야마키’목재를 쓰던 백제왕실의 장례방식을 보여준다.

판단은 각자에게 맡길 수 밖에 없는 안타까운 현실이지만 무왕의 릉이 맞다고 보는 견해가 다수를 이루고 있다.

◈ 죽어서도 함께 하지 못하는 애절한 사랑

무왕부부의 릉이 200m가량이나 떨어져 있어야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당시의 시대적 상황을 해석해 보면 모습이 그려진다.

무왕이 왕위에 오르던 시기의 백제는 정국이 매우 혼란스러웠다. 선왕인 법왕과 혜왕이 모두 즉위하고 1년만에 사망하는 등의 기록이 당시의 혼란스러운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법왕의 아들인 무왕도 역시 어려운 상황은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아내인 선화공주가 비록 쫓겨난 사람이기는 하지만 백제와는 수없이 싸웠던 적국, 그것도 왕족출신이기 때문에 무왕에게는 말할 수 없는 고충이 따랐을 것이고 이런 점을 약점 잡아 무던히도 괴롭혔던 귀족들이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이런 연유로 무왕은 왕권을 강화하기 위해 총력을 기울인 것으로 보인다.

무왕이 입지를 다지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시도해봤음이 확인되는데, 수도를 옮기려 한 것이 가장 큰 시도라고 볼 수 있다. 왕위에 오른지 3년만에 신라를 공격한 것도 적국의 공주를 왕비로 들인 것에 대한 귀족들의 불만과 우려를 깨기 위한것 이라는 의견도 있다. 사랑하는 이의 부모를 공격해야하는 상황은 둘만의 도피로 해결하려는 소설 속 ‘로미오와 줄리엣’ 보다 더 잔인한 상황이다.

무너진 왕권 강화를 위해 도읍을 익산 왕궁으로 옮겨 세력을 분산시키고, 선화공주의 청으로 동양최대규모사찰인 미륵사를 창건해 새로운 도읍을 부각시키며, 신라와의 전쟁을 끊임없이 지속하는 등 세력들에 휘둘리지 않기 위해 무던히도 애쓰던 무왕이 그려진다.

한양대학교 정민 교수는 의자왕이 선화공주의 소생이었던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이에 대한 근거는 일본역사서 ‘일본서기’에서 찾을 수 있다. ‘일본서기’에는 642년 사택비가 서거하자 의자왕이 형제인 교기와 내좌평 등 40여명을 추방했다고 말하고 있다.

또 ‘재위 2년 642년 2월 주·군을 순행하고 백성들을 위무하고 사형수가 아닌 자를 제외한 죄수들을 재심사하여 모두 용서해주고 있다’는 내용으로 볼때 사택비가 사망한 직후 교기와 내좌평 등을 추방조치 해 그간 백제를 주무르던 사택가 귀족에 대한 보복성 조치를 취한한 것이 아닌지 의심 해 볼 수 있다.

선화공주가 일찍이 죽어 소왕릉에 선화공주를 안치하고, 이후 무왕이 죽자 백제귀족 사택가 세력은 선화공주의 바로 곁에 무왕을 두거나 합장하는 것을 적극적으로 반대했을 것이다.

때문에 소왕릉과 200m가량 떨어진 곳에 대왕릉을 지어 사택비가 죽게되면 합장되기를 원했으나 의자왕이 왕위에 오르고 사택비가 죽자마자 대대적인 숙청을 진행해 뜻을 이루지 못한 것이 아니었을까 하는 추정을 해 본다.

함께 하고 싶지만, 함께 할 수 없는 시대에 태어나 죽어서도 멀리 떨어져 바라만 봐야하는 안타까운 서동과 선화공주의 이야기를 가슴으로 느껴본다.                                

박교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