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룻배 드나들던 배나들이가 도선(渡船)마을로.. 백길(白吉)마을은 뱃길이 변한 지명
황등저수지 요교호(腰橋湖)는 국중삼호(國中三湖)로 꼽혀.. 일제 때 간척돼 흔적 없어

도선 마을 전경

 마을 입구 비석

도선 마을 주민들의 구술하는 모습

황등(黃登)은 본래 ‘한등’이라는 말에서 유래했다. ‘큰 구릉의 등성이’라는 뜻으로, 이 일대 주변이 넓은 평야지대를 이루고 있는 가운데 황등 시가지의 석산은 제법 큰 산등성이였던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황등산 부근을 ‘크다’나 ‘많다’의 뜻을 지니고 있는 ‘한’이라는 고어를 써서 ‘한등이’라고 불렀으며 황등면으로 변한 지금도 옛 이름처럼 ‘황등이’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많이 남아 있다.

현재 황등면은 미륵산에서 발원한 기양천과 탑천이 만나 만경강으로 흘러가는 수로를 끼고 있으나 옛 기록에는 드넓은 황등저수지를 끼고 있었다고 나와 있다. 
황등저수지를 요교호라고도 하는데 현재 원광대학교가 있는 신동에서 황등 방면으로 나아가는 23번 국도를 따라가다 보면 넓은 들판의 중간쯤에서 ‘요교’라는 다리를 만날 수 있어 그 옛 이름의 흔적을 찾을 수 있다.

백제나 마한시대부터 있었을 것으로 전해지는 요교호는 일제시대에 이르러 간척되기 전에는 황등리가 수변지역이었음을 나타내는 것으로 지금도 황등리에 배나들이, 뱃길, 섬말 등의 마을 지명이 남아 그런 사실을 뒷받침하고 있다. 

황등저수지와 접해 있었지만 지금은 그 흔적을 찾을 수 없게 변해버린 도선마을과 백길마을을 찾아 마을의 유래와 전설 등을 들어보았다. 도선마을에서 진상영(80), 이정석(50), 우상열(83) 씨가, 백길마을에서 신영례(71), 신형근(69), 서동열(59), 임오봉(72) 씨가 이야기를 들려줬다. 

◈ 국중삼호로 꼽히는 요교호

원광대학교가 있는 신동에서 23번 국도를 따라 황등 방면으로 나아가다 보면 너른 들판이 나오는데 그 중간쯤에서 ‘요교’라는 이름이 붙은 작은 다리를 만날 수 있다.

요교(腰橋)는 뜻풀이 그대로 ‘허리다리’라는 이름인데 지금은 흔적을 찾아볼 수 없지만 예전에 이곳 주변이 요교호라는 이름의 저수지였음을 알려주고 있다.

요교호는 황등제라고도 불렸는데 그 축조 연대는 정확히 알려져 있지 않지만 마한시대에까지 이르는 것으로 추정되며 황등면에서 삼기면과 팔봉면까지 이르는 드넓은 호수였다고 한다.

‘문헌비고’에 따르면 요교호는 또 다른 이름으로 ‘구교호(龜橋湖)’라 칭했고, 호의 둘레가 25리에 이르고 김제 벽골제와 정읍 고부의 눌제와 더불어 나라 안의 가장 큰 제언으로 3호(三湖)의 칭호를 받았으며 호남과 호서라는 명칭의 유래 역시 이 호로 말미암아 생기게 됐다고 한다.

또 조선의 실학자 유형원도 ‘반계수록’에서 황등제를 조선 3대 제언으로 꼽으며 노령산맥 이북의 땅은 영원히 흉년이 없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주민들도 요교호에 대한 기억을 가지고 있었다.

도선마을의 이정석(50) 씨는 “옛날에 여기가 요교호라는 호수가 있었다고 하드만. 저 마을에서 배타고 와서 여기 산 밑 옆에 배를 매놓고 황등장에서 장보고 가고 그랬다 그러더라고”라고 기억했다.

진상영(80) 씨는 “삼기면 용연리에서 우리 큰아버지가 서른일곱에 배타고 가다가 빠져서 돌아가셨거든. 사람들이 황등장을 그렇게 배로 다녔어. 섬진강처럼 건너 다녔지”라고 말했다.

하지만 주민들의 기억은 일제시대에 개축된 이후의 황등제로 봐야 맞을 것이다. 요교호는 조선 말엽에는 토사가 쌓이는 등의 이유로 폐지된 것으로 보이는데 1923년 일제가 황등제를 다시 쌓아 물을 댔던 것이다. ‘조선보물고적조사자료’의 기록에 따르면 ‘1923년에 용산성의 석재를 빼어 황등제 수축에 이용하였다’고 나와 있어 폐지된 저수지를 개축해 사용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일제가 황등제를 수축할 당시에 이 제방에 ‘허리다리’가 있었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요교비’가 발견됐는데, 정조 4년(1780)에 제방과 교량 가설에 도움을 준 사람들의 은덕을 알리기 위해 세운 비석으로 현재 요교 근처 수문 옆에 세워져 있다.

허리다리라는 이름에 대한 유래는 전해지는 바가 없지만 주변 상황으로 볼 때 원광대 뒤편의 도치산과 황등산(청남산)을 잇는 지점이 호수에서 잘록하게 폭이 좁아지는 부분이었고 이 곳에 다리를 놓아 건널 수 있게 함으로써 ‘허리다리’라고 했지 않았을까 라고 추측 해볼 수도 있겠다.

이 후 일제는 경작지를 확보할 목적으로 1935년 완주군에 경천저수지를 신설해 드넓은 호수를 논과 밭으로 경지정리를 단행했으며, 현재는 미륵산에서 발원한 기양천과 탑천이 만나 만경강으로 흘러가는 수로만 남아 옛 호안을 가늠하기 어렵게 됐다.

백길 마을 전경

마을 입구 비석

백길 마을 주민들의 구술하는 모습.

◈ 나룻배 드나들던 배나들이 마을

23번 국도를 따라 요교를 건너 황등면 소재지 방향으로 난 고가교를 돌아 내려서면 첫 번째 만나는 마을이 도선 마을이다.

배를 타고 왔어도 처음 발을 내딛는 곳이었던 만큼 ‘황등이’의 얼굴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현재는 호젓한 마을이라기보다 군데군데 석재공장이 밀집돼 있는 마을로 자리하고 있다.
마을에서 만난 진상영 씨는 마을의 유래에 대해 소상히 기억하고 있었다.

진 씨에 따르면 마을은 1910년 한일 합방 이후 개간되며 생겼다고 한다. 그 전에는 미륵산에서 내려오는 ‘탑천’이 없었고 마을 앞까지 서해바다의 밀물과 썰물이 올라오고 나가고 그랬다. 배나들이란 지명이 생긴 것은 밀물에 배가 들어오고 썰물에 배가 같이 따라 나가고 했던 데서 생긴 것이라 한다.

진 씨는 “지금 살고 있는 집이 배를 맸던 자리여. 배가 건너다녔다고 해서 배나들이가 건널 도자 배 선자를 써서 도선마을로 된 거지. 그랬던 것이 일본놈들이 와서 개간해서 탑천으로 물이 나가게 됐지”라고 말했다.

진 씨의 말대로 일본이 황등제를 개축하고 약 3600ha의 면적에 달하는 저수지에 물을 대면서 주로 팔봉과 황등사이를 건너는 용도로 나룻배가 사용됐다고 전해진다. 그 전에는 걸어서 다닐 수 있었던 곳인데 주민들이 그 때문에 불편해 마지않았다는 기록도 찾아볼 수 있다.

배나들이마을은 그렇게 나룻배가 닿는 곳으로 사용되면서 점차 마을의 모습을 갖추었으며 어업과 관련해서는 남아 있는 기록이나 전해지는 바가 없어 주로 교통의 용도였음을 짐작할 뿐이다.

황등제의 간척은 1935년 경천저수지가 생기면서 시작됐다. 황등제를 만들어 요교호 하류 황등과 임피 일대의 습지를 경작지로 만든 것도 모자라 황등제마저 간척해 논으로 만든 것이다. 이에 대해 주민들은 배를 타고 건너지 않아도 된 사실에 만족해 기뻐하기도 했으며 오랫동안 습지로 있었던 탓에 토탄이 많이 나와 40년 가까이 캐서 연료로 쓰기도 했다고 한다.

◈ 짐 싣고 나가는 뱃길 마을 

백길마을의 경로당 앞에는 “이 마을은 옛날에 배가 다녔다고 해서 뱃길이 지금은 백길로 부른다”라고 쓰인 ‘백길 부락 공로비’를 만날 수 있다. 마을 이름의 유래에서처럼 이곳이 배가 지나다니던 뱃길이었음을 단번에 알 수 있다.

하지만 백길마을은 도선마을보다 하류에 위치해 있고 황등저수지의 제방인 23번 국도보다 서쪽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팔봉이나 임상리에서 건너다니던 뱃길은 아니었을 것으로 보인다.

아마도 서해 쪽에서 밀물을 타고 올라오던 수로가 닿던 곳으로 추정되며 이를테면 금강과 만경강 수로를 이용해 미륵사로 행차하던 백제의 왕이 지나던 길목이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호수 건너편 백길마을의 남쪽 신용동에 ‘어은’이라는 지명은 임금이 잠깐 머물렀던 데서 유래한 지명이라고 보여 이 같은 짐작을 가능케 하고 있다.

백길마을 주민 신형근(69) 씨는 “여기 내력은 본래 뱃길인데 그것이 백길로 바뀌었지. 여기가 옛날에 배가 다녔다 해서 뱃길이고 어렸을 때 이 앞에 버드나무가 있었는데 거기다 배를 매 놨다는 거야”라고 말했다.

철로가 놓이면서부터 황등 시가지와 분리돼 외딴 마을처럼 남아 있는 백길마을에서 주민들은 불편함을 감수하며 지키고 있었다. 그러나 황등이라는 곳에 대한 푸념과 비슷한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었다.

임오봉(72) 씨는 “황등이 배산국(배의 형국)이라서 배를 한 배 실으면 여기서 떠야 한다고. 안 그러면 도로 다 퍼버린다 이거야. 그러니까 황등에서 돈 벌은 사람은 황등에다 돈을 안 쓰고 전부 외부로 빼가버린다는 거지”라고 말했다.                                                

정완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