멸망한 고구려의 재기를 노리던 안승이 세운 천혜의 요세 보덕성에서 ‘보덕산성’유래

익산토성 남문

익산토성 둘레길

◈ 토성의 또 다른 이름 ‘오금·보덕산성’

무왕과 선화공주가 잠들어있는 쌍릉을 지나 2km가량 더 들어가다 보면 오금산 자락이 나오는데 이곳에 익산토성이 있다.

오금산은 고도 116m 가량으로 비교적 작은 산이지만 무왕이 어린시절 마를 캐러 오금산 이쪽저쪽을 뛰어다녔다는 기록 너머로 보면, 무게감이 느껴지는 산이다.
익산토성은 오금산성, 보덕산성이라는 이름으로도 불리는데, 오금산성이란 이름은 서동과 인연이 깊은 이름이다.

서동이 선화공주를 신라에서 데려온 뒤 선화공주가 내어놓은 금덩이를 보고 웃으며 뒷산에 이런 것이 지천에 널려 있다고 말했는데 그곳이 바로 오금산이다.

서동은 어린시절 마를 캐며 자랐는데, 이 오금산은 마가 많이 자라는 곳이기도 하다.

하지만 금광이 있거나 금이 나오는 산은 아니기 때문에, 홀어머니를 모시며 살던 서동의 효심이나, 서동을 왕으로 만들기 위해 운명적으로 금덩이가 나온 것이 아닌지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서동은 이 오금산에서 다섯덩어리의 금덩어리를 발견했고, 그런 연유로 지금까지 오금산이라고 불린다.

익산토성은 ‘보덕산성’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기도 했는데, 보덕산성이라는 명칭은 고구려 마지막 왕 보장왕의 서자 안승이 유민들을 모아 멸망한 고구려의 부활을 꿈꾸며 670년 금마저에 세운 ‘보덕성’에서 유래했다.

이런 관점에서 보자면 유목민들에 의해 고구려의 역사가 새로 시작될 수도 있었던 익산의 입지 조건과 수도로서의 가능성이 얼마나 뛰어났는지 가늠 할 수 있다.

보덕국은 10여년의 짧은 역사를 지니고 있는데, 고구려가 멸망한 뒤 유목민들이 모여 만들었던 고구려의 연장선상에 서있던 국가라고 볼 수 있다.

고구려는 나·당연합군에 의해 668년 보장왕을 마지막으로 멸망하고 만다. 이후 보장왕의 아들 안승과 검모잠이 고구려 유민들을 모아 고구려의 재기를 노렸다. 하지만 당나라의 군은 막강했고, 안승은 신라에게 망명을 요청할 지경에 이른다.

신라 문무왕은 안승을 보덕국의 왕으로 책봉하고 금마저에 터전을 잡아 살게 했는데, 안승은 뿔뿔이 흩어진 고구려의 유민들을 흡수해 자신들의 세력을 점점 키워나가 과거 고구려의 위용을 되찾으려 했다.

너무나 커져버린 안승의 세력에 위기감을 느낀 새로운 신라왕 신문왕은 안승을 신라로 불러들여 김(金)씨성을 내리고 벼슬을 내려 돌려보내지 않음으로써 보덕국을 지배하려 했다.

이에 반발한 안승의 족자(族子)대문이 난을 일으켜 신라 관리들을 죽이며 대항했지만 결국 신라토벌군에 의해 몰살당하고 뿔뿔히 흩어지는 등 최후를 맞이했다.

이곳 익산토성에서 전투가 벌어졌을 것으로 여겨지고 있고, 결국 모두 몰살당하기는 했으나, 토벌군 장수 2명이 전사하는 등 공격하기 쉽지않은 성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 익산토성

남문익산토성은 반경 690m, 20만2215㎡ 의 토성으로, 둘레는 흙으로 조성됐지만, 정문인 남문은 넓이 4.8m, 길이4.4m 두께 5.5m 가량의 큰 문이 있었고, 주변은 높이45cm, 너비60cm, 두께 60cm가량의 장방형 석재를 이용해 벽을 쌓았다.

1980년 처음 조사가 이뤄졌던 1980년 출토된 유물은 토기들과 기와편들이 많았다.

또 유물들의 제작 시기가 백제말기, 통일신라기, 고려시대 등 다양한 시대의 유물이 발견돼, 백제시대에 처음 세워진 이후로 고려시대까지 주인이 바뀌며 유지된 성으로 보인다.

익산토성은 금마일대가 훤히 보이면서도, 입구가 좁은 계곡으로 이뤄져 있어 방어와 경계를 동시에 하기에 이점이 상당히 커 보이는 위치에 자리하고 있다.

다만 석재로 이뤄진 성벽이 없어 정문을 제외한 다른 지역은 다소 취약해 보인다. 하지만 오르는 길이 가파른 것을 보면, 자연 지형을 최대한 활용한 전략적 방어기지로서 가치가 높은 것으로 평가된다.

현대에 이르러 익산토성내부는 대나무가 무성한 채로 방치돼 있지만, 이곳을 지키던 선조들의 혼이 대나무에 서려 금마 시가지를 굽어보고 있는 듯 했다.

마를 캐러 오금산을 이리저리 뛰어다니던 서동, 금마저를 지키기 위해 땀을 흘리며 성벽을쌓고 이곳을 토성위에 서서 금마일대를 살피며 경비를 서던 무사들, 토벌하기 위해 들이닥친 신라군을 막기 위해 처절하게 싸우던 마지막 고구려의 후손들, 쏟아지는 화살비를 뚫으며 좁은 길을 뚫고 올라와 성벽으로 기어오르던 신라군들.. 그들의 함성소리가 생생히 들리는 듯한 익산 토성이다.

◈ 서동생가터

토성에서 약 1km 떨어진 부근에는 서동이 살던 서동생가 터가 있다.

사실 서동생가터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명확한 기록이 없어 부여와 이견이 있는 상태다.

때문에 2005년에 방영한 TV 드라마 ‘서동요’가 촬영될 당시 초반은 익산에서, 후반에는 부여에서 촬영을 진행해 두 시의 의견이 반영됐다.

하지만 서동의 출생지가 익산이라는 것은 정황과 여러 가지 역사적 유적지가 말해주고 있다.

서동이 왕위에 오른 뒤 익산으로 천도를 계획하고, 생을 마감한 후에도 익산쌍릉에 묻힌 점을 보면 그만큼 익산에 애착을 가졌다는 것을 추측할 수 있고, 그 이유를 고향에 대한 향수라고 보는 견해가 다수 의견이다.

다른 왕들과 다르게 평민으로 어린 시절을 살아온 무왕으로서는, 뛰놀던 추억에 대한 향수가그 누구보다 강했을 것이다.
죽어서라도 향수 가득한 고향땅을 지키고 싶었던 곳, 기록과 증거가 없더라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로 받아들일 수 밖에 없어 보인다.

현재 서동생가 터는 심각할 정도로 방치되고 있다. 사실 이는 방치라고 보기에는 조금 어려울 수도 있다.

명확하지 않은 곳에 생가 터를 복원할 수도 없거니와, 생가 터로 추정되는 곳에서 아직도 많은 생활유물들이 발굴 되고 있기 때문인데, 명확한 조사를 끝내기 전의 개발로 소중한 문화유산을 훼손할 우려도 동시에 제기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마냥 넋 놓고 있어서는 안되며, 생가가 존재해야만 할 당위성이 충분한 만큼 서동의 일생을 명확히 그려야 할 필요가 있다는 요청도 높게 일고 있다. 

현재는 매장문화재유존지역으로 지정돼 그 누구의 손길도 거부하고 있지만, 고도익산으로서 서동의 뜻을 기리는 마음으로 복원해 시민들의 감탄속에 다시 태어나길 기대한다.

박교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