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륵산 서북편 삼기면에 위치한 최대 규모의 석불.. 미륵사 조성 시기보다 앞선 사찰 양식
백제 연화문이 새겨진 광배(光背)는 예술미의 극치.. 불두(佛頭)는 호국 불상의 전설로 남아

경주, 부여, 공주와 함께 고도보존지역으로 지정된 익산은 백제시대의 유적지가 가장 많이 밀집해 있는 백제 문화의 보고(寶庫)라 할 수 있다. 한성이나 웅진(공주), 사비(부여)가 백제의 중심지로 알려져 있지만 현존하는 유적이나 유물 등은 우리나라 어디에서도 익산과 비견할 만한 곳이 없다.

특히 불교국가였던 만큼 백제가 남긴 유산은 사찰과 석탑, 불교 공예품이 주를 이루는데 익산에는 미륵산을 중심으로 어느 곳보다 많은 백제시대 사찰 터가 자리하고 있다.

왕궁리유적지의 대관사지와 제석사지를 비롯해 동양 최대의 사찰이었던 미륵사지, 사자사지, 연동리사지 등의 백제 사찰 유적은 익산이라는 곳이 백제 불교문화의 중심지였다고 해도 모자라지 않을 정도다.

이들 유적에 남아 있거나 발굴된 문화재 또한 마찬가지다. 미륵사지석탑, 왕궁리오층석탑을 비롯해 이들 석탑에서 나온 사리장엄은 백제 불교미술의 아름다움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최고의 보물이다.

오늘날 백제의 화려했던 역사가 희미해지고 유산 또한 극히 드물게 남아있는 가운데 익산이야말로 백제의 역사가 살아 숨 쉬는 고장으로서 고도 르네상스를 꿈꾸게 된 것이다.

◈ 불상은 다 어디로 갔을까

백제는 15대 침류왕 1년(384) 동진의 승려 마라난타를 통해 불교를 받아들였다. 삼국 중 두 번째였으며 영광 법성포가 전래지로 알려져 있다. 침류왕은 이듬해 한산(漢山)에 사찰을 창건했으며 10명의 승려를 머물게 해 불교를 널리 펼 수 있는 기틀을 세웠다. 이 후 백제는 왕실과 귀족 중심으로 흥불 시책을 널리 폈고 불교를 기반으로 한 강력한 왕권국가로 성장했다.

이로써 백제국의 곳곳에는 많은 사찰이 세워졌고 지금까지 남아 있는 백제 사찰은 수덕사가 유일하며 사찰 터로 밝혀진 곳은 수두룩하다.

익산 미륵산 주변에는 백제 사찰 터가 밀집돼 있으며 특히 백제 때 만들어진 석조 불상도 2기가 현존하고 있어 그 가치를 새롭게 조명 받고 있다.

백제의 불상 중에서도 석조 불상의 경우는 남아있는 경우가 극히 드문데 서산과 태안의 마애삼존불과 부여 군수리 석조여래좌상이 있고 익산에는 연동리 석조여래좌상과 태봉사 삼존석불이 남아 있을 뿐이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남는다. 많은 사찰이 세워졌다면 그만큼 불상도 많이 만들어졌을텐데 왜 남아 있는 불상이 극히 적을까?

물론 천오백년이라는 세월에 파괴되거나 여타 다른 이유로 인하여 많은 불상들이 사라졌을 수도 있다. 또한 불상이 일반적으로 사용되지 않고 특수한 경우에만 사용됐을 경우도 생각해 볼 수 있는 문제다. 허나 연동리 석불과 같이 비교적 온전하게 남아 있는 불상을 통해 미륵사지나 다른 사찰을 지키고 있던 불상들이 어떠했으리라고 짐작하는 것은 가능할 것이다.  

◈ 유례 없는 최대의 걸작 연동리 석불

현재 익산시 삼기면 석불리에 위치한 석불사 대웅전에 안치돼 있는 석불은 정유재란 이후 오랜 세월 땅 속에 묻혀 있다가 1930년 경 이 지역 주민의 현몽으로 발견됐다고 전설처럼 전해진다.

워낙 거대한 석불이기 때문에 석불을 꺼내 옮길 엄두를 내지 못하고 그 자리에 누각을 세워 보존하다가 나중에서야 현재의 석불사를 창건하며 대웅전으로 옮겨 안치됐다.

석불은 불상 1구와 광배(光背, 불상의 후광을 표현한 판석)로 이뤄져 있는데 불상의 높이는 대좌를 포함해 2m가 넘으며 광배의 높이는 4m가 훌쩍 넘어 현존하는 석불 광배 중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한다.

특히 연동리 석불이 백제시대의 불상 중 유례없는 최대의 걸작으로 꼽히는 이유는 불상을 사방으로 깎아 만든 원각(圓刻) 좌상이라는 것 때문이다.

현재는 연동리 석불과 같이 원각으로 깎아 만든 불상이 대다수를 이루지만 현재 남아있는 백제의 불상은 대부분 부조(浮彫)된 형태이고 군수리 석불의 경우엔 조그만 곱돌을 깎아 만든 작은 불상일 뿐이어서 오직 연동리 석불이 백제 불상의 웅장한 모습과 완전한 형태를 지니고 있는 것이다.

석불의 형태를 보면 넓은 어깨와 반듯한 모습의 강건한 풍모를 지니고 있으며 결가부좌(다리를 엇갈려 앉음)한 모습은 안정감이 돋보인다. 얇은 옷 주름이 활달하고 사실적인 느낌을 주고 있으며 수인(手印)의 형태는 오른손을 무릎 위에 가볍게 올려놓고 왼손은 가슴에 댄 특이한 모습을 취하고 있다. 백제시대 불상의 특징을 잘 간직한 모습으로 우리나라 석상 조각의 기원이라고까지 일컬어지고 있다.

특히 광배의 경우엔 백제 이후 우리나라 석불과 광배의 조성 양식에 많은 영향을 미쳤으며 바다 건너 일본 고대 조각에까지 영향을 끼쳤다고 한다.

◈ 전설의 호국 석불이 땀을 흘리다

연동리 석불좌상에 얽힌 호국 전설은 먼저 정유재란 당시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 당시 왜장 가등청정이 이끄는 한 무리의 왜군이 금마지역을 거쳐 수도 한양으로 진격하던 중이었는데 갑자기 안개가 심하게 끼어 꼼짝달싹하지 못하게 됐다.

진격하려고만 하면 대낮에도 어두울 정도로 안개가 끼자 이를 이상하게 여긴 왜장이 부하를 풀어 안개 속을 살펴보라고 지시하자 부하들이 돌아와서 “안개 속에 작은 절이 있는데 마을 사람들이 그 절에 모셔진 부처에게 왜군이 빨리 사라지기를 빌고 있다”고 전했다.

가등청정은 안개의 원인이 그 부처상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한밤에 찾아갔는데 밤인데도 석불은 광채가 나서 눈을 뜨고 보기 어려울 정도였다. 가등청정이 칼을 휘둘러 석불의 목을 베어버리자 안개가 걷혔고 돌아와 진격하는데 갑자기 맑은 하늘에 비가 쏟아지는 것이었다. 그 비에 조총이 무용지물이 되고 화약도 다 젖어 쓸모 없게 되자 죽창과 낫 등으로 무장한 의병들이 왜군을 쉽게 물리칠 수 있었다.

이 전설처럼 연동리 석불좌상은 발견 당시 머리가 떨어져 나가 있었다. 그 후 얼마간은 불상의 옆에 보관돼 있었다고 기록돼 있는데 언제인지 모르게 원래의 머리가 사라져 버렸고 그 대신 새로 만들어 붙여 놓아 현재의 모습으로 남았다.

그래서 어딘지 모르게 어색하고 기존 부처상의 모습과 판이한 모습이라 여러 사람들의 실망을 자아내기도 하지만 이 또한 연동리 석불 좌상의 영험함이라고 여겨지기도 한다.

연동리 석불은 전설만이 아닌 실제 호국 불상의 영험함을 현재까지 보여주고 있다. 최근 각종 언론에 오르내리며 화제가 됐던 땀흘리는 현상에 대한 이야기다.

이 석불은 최근까지 여러 차례 땀을 흘리는 기이한 현상을 보여주었는데 그 때마다 국가에 커다란 흉사가 일어났다는 얘기다. 석불사 주지스님에 따르면 한국전쟁 당시에도 3일 동안 땀을 흘렸고 금융위기가 닥친 IMF, 고 노무현 전대통령 서거 당시에도 땀을 흘렸다. 그래서 일명 땀흘리는 석불로 불리고 있으며 최근 2월에 또다시 땀 흘리는 현상이 발견돼 국가 흉사를 예고하는 것이 아니냐는 등의 전국적인 관심을 모았다.                                 

정완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