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우같이 둔갑하는 냇가라서 여우내마을이 호천마을.. 사실은 여울내가 여우내로 바뀐 이름
마을 뒷산인 마산에서 따온 마산마을.. 조선 성종 때 함안군이 정착해 말을 방목해 기른 곳

호천마을 전경

호천마을 주민 김영배 씨가 구술하는 모습.

마산마을 전경

마산마을 주민 송병화 씨가 구술하는 모습.

석천리(石泉里)는 낭산면 동편에 위치하며 위로는 망성면, 동으로는 여산면에 닿아 있다. 미륵산에서 내려오는 어량천이 석천리를 통과해 망성면을 지나 강경천과 합류해 금강으로 흘러들어 간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과 함께 호천리와 마산리 일부를 병합하며 마을 중심의 돌샘 이름을 따 석천리라는 이름을 얻게 됐다.

미륵산에서 내려오는 풍부한 물줄기와 낭산산의 산성(山城), 석천대(石泉臺)라는 동산을 중심으로 형성된 마을로, 그에 따라 방교(坊橋, 방아다리), 북성(北城), 상석(上石) 등의 지명이 자연스럽게 남아 전해지고 있다. 석천대 윗마을인 상석에 있는 석간수가 솟아나는 샘은 물이 좋기로 유명하고 양도 많아서 1939년의 가뭄에는 근방 4개 마을의 식수로 썼다고 전해진다.

평지가 적은 주변 환경 탓에 석천리의 마을들은 조선시대에 들어와 마을이 형성됐으며 약 3-4백년 가량의 역사를 지녔다고 한다.주민들은 약간의 논농사와 고구마를 주로 재배하고 있으며 근래에 하림과 화백전선 등 대형 공장들이 들어서면서 양계농가 등 다양한 소득활동으로 변모하고 있는 중이다.

구술사프로젝트 팀은 호천마을과 마산마을을 찾아 주민들의 구술을 통해 석천리의 생활상과 전설 등을 들여다보았다.

◈ 하룻밤 사이 둔갑하는 냇가

낭산사거리에서 718번 국도를 따라 용동방향으로 약 2백 미터쯤 가면 갈라지는 길에서 호천마을 표지석을 만날 수 있고, 그 곳에서 농로를 따라 9백 미터 쯤 더 들어가면 소박한 농촌 마을이 자리하고 있다.

야트막한 언덕에 자리한 마을 앞으로 어량천이 흘러가고 주변은 논으로 개간돼 있으며 언덕배기는 과수원과 밭으로 경작되고 있다.

마을 안뜰에 자리한 경로당에서 김원배(73), 김재일(61), 박노천(56) 씨를 만나 이야기를 들었다.

김원배 씨는 “이 마을에 1690년 경 6대조 할아버지가 들어와 정착했다. 밀양 박, 김해 김, 경주 김씨 3성이 집성촌을 이룬 마을인데 나 어렸을 때는 60호 정도 되는 마을이었지만 산업화 되면서 이제는 피폐해진 상황”이라고 전했다.

주민들의 말에 따르면 호천마을 주변은 솔밭이 대부분이어서 농토가 없고 고라실논(사시사철 물이 솟는 질퍽한 논)이 조금밖에 없었다. 마을로 들어오는 길인 야트막한 언덕빼기가 전부 솔밭이었고 주민들은 솔가지를 치고 장작을 팔아 생계를 유지했다고 한다. 1970년대 이후에 들어서 야산개발과 경지정리가 되면서 경작이 주 수입원이 됐다.

호천(狐川)이라는 지명은 ‘여우내’라는 지명을 한자로 표기한 것인데 전라도 사투리로 ‘여수내’라고 불리기도 했다.

익산향토지에서는 미륵산에서 흘러내리는 물줄기인 어량천(魚梁川)의 상류에 해당하는 곳으로, 내의 경사가 심해서 급류를 이뤄 여울물 소리가 크게 났기 때문에 ‘여울내’가 여우내로 바뀐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호천마을 주민들은 조금 다르게 기억하고 있었다.

김원배 씨는 “어렸을 때만해도 큰물이 나면 내 둑이 터져 물이 흐른다고. 여러 군데 터져서 올해는 이쪽, 내년에는 저쪽으로 물줄기가 바뀌어. 그러다가 정비가 되면서 반듯해졌는데 여우가 둔갑하듯이 하룻밤 만에 물줄기가 바뀐다고 해서 ‘여수내’라고 했다”고 말했다.

이 밖에 호천마을의 옛 지명들은 2000년 마을회관 준공을 기념하면서 김원배 씨가 써서 회관에 기증한 액자에서 찾을 수 있었다. 그 이름들을 살펴보면 양 정승이 나온다는 ‘양정골’로 시작해 뒷재, 새터, 삼신말, 절골, 진청골 등 동리 이름과 일제시대에 운영됐던 고모농장, 우물 이름인 웃샴, 가운데샴, 적것샴, 새터샴, 낭샴이 이어진다. 또 용문논, 똥개논, 갈치배미, 식혜배미, 작두배미 등 논밭 이름과 댕긴둠벙, 흔둠벙, 새둠벙, 개씨바우, 낭산나무 등 소류지와 바위, 나무이름 등이 자세하게 나온다.

마을에서 자연스럽게 이름 붙여지고 부르던 정겨운 옛 이름들이지만 김원배 씨가 “옛 그 자리도 찾을 수 없어 애달프다고 맺었다시피 현재는 거의 잊혀져버려 불리지 않는 이름으로 남았다.

◈ 강경장으로 나무 팔러 간다

호천마을에서는 주로 강경으로 장을 보러 다녔다고 한다. 여산, 함열, 강경 어디든 비슷한 거리만큼 떨어져 있지만 강경장이 제일 컸기 때문에 강경장을 이용했다. 1970년대 중반까지 이용하다가 길이 새로 뚫리면서 익산이나 다른 곳으로 다니기 시작했다.

위도상 충남 연무읍과 같은 위치에 있고 강경으로 장을 다니다 보니까 전라도 사투리보다 충청도 사투리가 더 익숙한 언어로 쓰일 정도라고 한다. 강경장을 ‘갱갱이장’, 함열장을 ‘해밀장’이라고 불렀다.

마을 주민들의 강경장에 얽힌 추억을 들어보았다.

“마을마다 구루마가 서너 개씩 있는데 그게 말하자면 공동 화물차역할을 해서 강경장이 서는 날에는 마을 집집마다 들러 짐을 싹 싣고 간다고. 열 명에서 스무 명이 구루마 계라고 만들었어. 대나무 소쿠리나 고구마 등을 싣고 강경장에 가서 팔건 팔고 방아 찧고 필요한 것은 사가지고 구루마에 싣고 와. 오는데 강경 구시장부터 5백 미터 마다 주막이 있거든. 그럼 오면서 막걸리 한잔 하고 가라고 하니까 계속 들러서 먹다보면 해가 떨어지는 거야. 그래서 어렸을 때 등불을 들고 언제오시나 동구 밖으로 마중 나가면 멀리서 소 워낭소리가 딸랑딸랑 들리는 거야. 술 취해서 구루마에 앉아서 소리하면서 인제 오는 거야. 그럼 각자 집으로 돌아갔다가 그 다음날 아침에 와서 맡긴 짐을 가져가. 요즘으로 말하면 택배 나눠주듯이. 그러면은 보리쌀 세가마니 실었는데 한가마가 없기도 하고 그랬어.”

◈ 함박골에 얽힌 군인 이야기   

마산마을은 석천사거리에서 724번 국도를 타고 여산 방면으로 내려오면 하림 공장이 기대고 있는 그리 높지 않은 산이 나오는데 그 반대편 언덕에 남쪽을 향해 들어서 있다.

주민들은 뒷산을 마산(馬山)이라고 부르며 거기에서 마을 이름을 따온 것이라고 말한다.

송병화(83) 씨는 “마산이라는 게 이 뒷산을 말하는 것이고 옛날 양반들은 앉아서 함박골이니 다리목이니 진터니 그런 얘기들을 했다”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함박골은 백제시대에 군사들이 이곳에 진을 치고 있었고 그래서 마을 옆 뜰을 군사들의 창이 많이 있었다고 해서 ‘창뜰’, 여산 방향으로 가다가 삼거리가 있는 곳은 진지가 있었기에 ‘진터’라고 전해지고 있다.

함박골은 연무대(제2육군훈련소)가는 길에 있는데 그 이름의 유래는 군인들이 밥을 해먹기 위해 그릇으로 나무로 만든 ‘함박’을 썼고 그게 많이 있었다고 말한다.

군인들이 밥을 먹고 나와 함박을 모아서 씻고 그랬다는 말도 덧붙였는데 송병화 씨의 기억에서 더 이상 정확한 유래를 알아보기는 힘들었다.

함박을 만들던 공방이 있던 자리이거나 그 지형 자체가 함박처럼 움푹 들어간 데서 나온 지명일수도 있겠다.

또 ‘닭다리포’라는 지명도 나왔는데 현 훈련소 자리를 ‘닭다리포’라고 불렀으며 ‘다리목’은 함박골 옆에 내를 건너는 외나무다리가 있었고 그렇게 불렀다고 한다.

송병화 씨는 “옛날부터 군인들이 있던 자리라 훈련소도 들어 왔는가봐. 그러니까 마산은 말을 많이 내놨던 데 아닌가하는 생각이네”라고 말했다.                                  

 정완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