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문화유산 등재된 국내 백제유산 0건.. 일본의 백제 유산은 이미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돼 관리
익산역사유적지구는 밀도 높은 백제 문화가 보존된 지역.. 세계유산 등재를 앞두고 새롭게 조명

일본 나라현 아스카라데라의 대불

일본 나라현 아스카라데라에 안치돼 있는 성덕태자 효양상

현재의 비조사 모습

부여 백제문화단지 내에 재연된 능산리사지 백제 사찰

유네스코(UNESCO, 국제연합교육과학문화기구)에 등재된 우리나라의 세계유산은 10건, 거기에 인류무형문화유산 15건과 세계기록유산 9건을 합하면 현재 한국엔 총 34건이 인류가 오래도록 보존하고 이어나갈 가치가 큰 문화유산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이와 함께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기를 기다리는 절차인 잠정목록에 현재 15건이 등재돼 있고 앞으로도 한국의 우수한 문화유산의 발굴과 등재 노력이 뒤따를 것으로 보아 어느 때보다도 각종 문화유산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익산이 품고 있는 백제역사유적은 그러한 관심 속에서 가장 주목받고 있는 문화유산 중 하나로 꼽힌다.

익산은 공주·부여와 함께 백제역사지구로 묶어 2010년 세계문화유산 잠정목록으로 등재됐으며 또 2012년 3월에는 경주, 부여, 공주와 함께 고도(古都) 지구로 지정되면서 백제의 문화와 유산에 대한 새로운 조명과 국가적 차원의 보존 노력도 이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특히 익산은 백제문화권 도시 중에서도 역사와 문화, 생활을 들여다 볼 수 있는 유적과 유물들이 풍부하게 분포해 있고 또한 가장 잘 보존돼 있는 만큼 세계적인 문화도시로 발전할 수 있는 토양으로 삼아 ‘고도 르네상스’를 일궈낼 준비를 하고 있다.

◈ 세계가 알아야 할 백제문화유산

유네스코 세계유산은 그 특성에 따라 문화유산, 자연유산, 복합유산으로 분류하고 있는데 우리나라의 경우 9건의 문화유산과 1건의 자연유산으로 분류돼 등재돼 있다.

1995년에 석굴암·불국사와 해인사 장경판전, 종묘가 최초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이후 창덕궁(1997), 수원 화성(1997), 경주역사유적지구(2000), 고창·화순·강화 고인돌 유적(2000), 제주 화산섬과 용암동굴(2007), 조선왕릉(2009), 하회·양동마을(2010) 순으로 이름을 올렸다.

인류가 지키고 계승해야 할 보편적 가치를 지닌 우수한 문화유산을 보유하고 있다는 것은 자랑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이 10건의 세계유산이 아쉬운 점은 대부분 조선시대와 신라시대의 유산에 치우쳐 있다는 점이다. 

비교적 최근이라고 볼 수 있는 조선시대의 경우 온전히 보존돼 있는 유산이 많다는 장점이 있다. 신라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로 오랜 시간을 버텨낼 수 있었던 보존 노력이 빛을 발했던 것으로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고구려나 고려와 같이 지리적 한계도 없는 백제의 경우에는 온전한 백제역사문화권에 속해 있으면서도 여태껏 단 한건도 세계문화유산에 등재시키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늦게나마 공주·부여와 함께 익산을 묶은 백제역사지구가 잠정목록에 등재되어 2015년 정식 등재여부 결정을 앞두고 있다곤 하지만 그동안의 백제 역사와 문화에 대한 무관심이 크게 느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교과서에서는 백제가 신라와 일본, 중국에 걸쳐 여러 영향을 끼쳤다고 융성했던 문화를 소개하고 있지만 정작 발굴과 연구를 비롯한 보존과 계승 노력이 미흡했던 게 사실이다.

그렇기에 일본의 세계유산 속에서 백제 문화를 만나는 것이 자랑스럽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부끄러운 일이 될 수밖에 없다.

◈ 일본의 세계유산 속 백제의 향기

한국은 1988년에 유네스코 세계유산 협약을 맺었고 일본은 우리보다 4년 늦은 1992년에 협약을 체결했다. 그러나 오히려 유산 등재 시기는 일본이 빨라 1993년부터 시작해 현재까지 총 16건이 세계유산으로 등재돼 있는 상황이다.

우리나라가 협약 이후 7년 만에 처음으로 등재한 것과 비교하면 일본의 경우 협약 다음해에 등재를 시작했으니 그 준비성과 추진력이 돋보인다고 하겠다. 현재 추진하고 있는 고도보존정책의 경우에서와 마찬가로 일본의 앞서가는 문화정책을 배워야 할 필요가 큰 시점이다.

일본의 세계유산을 둘러보면 우리문화의 우수성을 간직하고 있는 백제를 만나게 된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호류사의 불교기념물군’과 ‘나라의 역사기념물군’이며 잠정목록으로 등재된 것 중에서는 ‘아스카·후지와라 궁도 및 관련 기념물군’을 들 수 있다.

이들 문화유적들은 백제의 직·간접적인 영향을 받아 성립된 것이며 특히 백제의 불교문화가 전래되고 정착되는 과정에서 백제의 역할이 컸음을 보여주고 있다.

일본에 불교가 처음 전래된 것은 백제 성왕 때였고 이후 성왕의 아들 위덕왕 대에 이르러 백제 불교가 일본에 정착되었으며 그 결과 일본에는 현재와 같이 불교관련 문화유산을 많이 남기게 된 것이다.

◈  일본의 태동을 일군 백제불교

아스카 시대(飛鳥時代)는 서기 592년에서 710년에 이르는 일본 스이코 천왕부터 겐메이 천왕까지의 백여 년간의 시대를 일컫는다. 또한 이 시기는 쇼토쿠 태자(성덕태자, 聖德太子)를 중심으로 한 일본 최고(最古)의 불교문화 전성시대다.

2007년 1월 세계문화유산 잠정목록에 등재된 ‘아스카·후지와라의 궁도와 그 관련 기념물군’이 바로 이 아스카 시대의 관련유적 및 문화경관을 말하는데 이들 대부분은 백제와 적지 않은 관련을 갖고 있다는 점이 주목된다.

특히 그 중 아스카데라아토(비조사적, 飛鳥寺跡)는 일본 최초의 본격적인 사찰이며 창건 공사에 백제 장인들이 직접 관여했음이 밝혀져 그 역사적 의의를 돌아볼 수 있다. 

백제 불교의 일본 전파는 성왕이 538년 웅진에서 사비로 천도함과 동시에 일본 조정에 불·법·승 3보를 전해주면서 시작했다. 384년 침류왕 대에 동진으로부터 불교를 받아들인 후 약 150여 년 만이다. 이후 50년 가까이 일본은 숭불파와 배불파간의 분쟁으로 말미암아 불교 정착에 어려움을 겪는다. 소가씨(蘇我氏)와 모노노베씨를 중심으로 한 치열한 불교전쟁은 587년 숭불파의 승리로 끝나고 숭불파의 중심인물인 소가씨와 쇼토쿠태자는 그토록 염원했던 사찰을 창건하기에 이른다.

여기서 소가노우마코(소아마자, 蘇我馬子)는 아스카데라(비조사)를, 쇼토쿠 태자는 시텐노지(사천왕사, 四天王寺)를 발원하는데 소가씨가 실권을 잡고 있었으므로 시텐노지보다 아스카데라가 먼저 창건된다. 현재 사천왕사가 일본 최초의 사찰이라고 전해지기도 하지만 그 전에 아스카데라가 먼저 세워진 것이다.

이를 위해 백제 위덕왕은 사찰 창건에 필요한 장인을 불사리·관리·승려 등과 함께 파견했다.

기록에 의하면 파견된 백제의 장인들은 사공(寺工)인 태량미태와 문가고자, 노반박사(露盤博士, 주물을 다루던 장인)인 장덕 백매순, 와박사(瓦博士)에 마나문노, 양귀문, 능귀문, 석마제미, 화공(畵工) 백가이다. 목재와 기와 등 사찰 창건에 드는 기술력을 백제에서 제공해 아스카데라가 백제 장인들에 의해 창건됐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이 외에도 승려 혜총, 영근, 혜식, 영조율사 등 9명과 관리 은솔수신 등 4인이 함께 일본에 파견돼 사찰 건립을 도왔다.

587년 시작한 사찰 공사는 19년에 걸쳐 이뤄져 결국 606년 무왕 대에 이르러 장육불상을 금당에 안치하면서 끝을 맺게 된다.

이후 아스카데라는 불법을 최초로 흥륭시켰다는 의미로 호코지(법흥사, 法興寺) 또는 간고지(원흥사, 元興寺)라는 법호로 불리며 일본 불교의 태동을 기념하게 된다.

정완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