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년 시조의 길.. 시조창 분야 전국 권위자.. 익산의 자랑
인류무형문화유산 등재된 정가.. 익산에서 후학 양성 힘써
“한산 섬 달 밝은 밤에 수루에 홀로 앉아 큰칼 옆에 차고 깊은 시름 하는 차에~…”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 장군이 남긴 귀에 익숙한 시조가 느릿느릿한 곡조와 장구 장단에 맞춰 흘러나온다. 길게 늘여 뺀 시조가 위아래로 흔들리며 요동치는가 싶더니 끊길 듯 하다가도 어느새 이어진다. 미동도 없이 좌정한 채 정면을 응시하며 시조가 가진 깊은 울림을 토해내고 있는 홍토현(81) 선생. 단 세 줄 뿐인 ‘한산 섬 달 밝은 밤에’는 5분여가 지나서야 진한 여운을 남기며 끝을 맺었다.
홍토현 선생이 부른 시조창은 평시조에 곡을 붙여 부르는 전통 노래의 일종이다. 판소리나 민요 같은 고유 노래를 속가(俗歌), 시조, 가사, 가곡을 정가(正歌)로 분류하고 있다.
홍 선생은 “속가는 동적이고 흥을 위주로 하기 때문에 색으로 말하면 빨강이고 정가는 정적이고 수평적이면서 자기 자신과 듣는 이에게도 깨달음을 주는 자연의 색인 녹색이라고 보면 된다”고 설명했다.
화려한 멋은 부리지 않으며 감정의 노출을 엄격히 절제하고 청초한 흥취를 드러내는 노래로, 주로 사대부와 선비들 계층에서 인격수양을 위해 불리어졌던 정갈한 노래다.
가람 이병기 선생의 고향인 익산에서 시조협회 익산시지부장을 맡으며 시조의 본가 익산의 위상을 높이 세우고 있는 홍토현 선생은 시조창 분야의 전국적인 권위자로 이름을 알리고 있는 익산의 숨은 자랑.
일찍이 시조계에 신동처럼 나타나 전국대회 장원을 휩쓸다시피 했으며 현재는 전국에서 열리는 ‘정가 경창대회(시조경연대회)’의 심사위원으로 단골처럼 활약하고 있다. 지금까지 심사위원으로 활동한 횟수만 3백여 차례. 시조창의 최고 등급인 ‘대상’에 자리에 오른 것도 한참 전의 일이다.
“시조창의 매력은 노래를 부르며 그 시구 하나하나를 음미하는 데 있다. 부르면 부를수록 깊은 깨달음을 얻는 즐거움이 특별하게 다가오는 것이 시조창이다.”
홍선생이 처음부터 시조의 길을 걸었던 것은 아니다. 우연한 기회로 시작한 시조창의 매력이 오늘날 익산 시조창의 명맥을 잇는 역할을 하게 만들었던 것.
완주군 소양면에서 태어난 그는 왕궁면으로 이사온 후 해방과 한국전쟁을 겪으며 자랐다. 중학교를 졸업한 후 바로 사회생활에 뛰어든 그는 17세의 나이에 마을 반장이나 부장을 맡았고 이후 새마을 지도자, 이장 위원장으로 활동하는 등 지역사회를 위해 일했다.
27세 때에는 전국에서 최연소로 2대 지방 면의원으로 당선되며 지역사회에 화제를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그는 “농촌지도자로 활동하면서 차별을 두지 않고 성심껏 도와줬던 왕궁지역의 한센인들이 표를 많이 찍어 줬던 것 같다”며 “열심히 움직여 지역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임했다”고 말했다.
이후 왕궁면에서 농사를 지으며 살아가던 그에게 시조에 입문할 기회가 온 것은 송병국 선생을 만나게 되면서다.
송 선생은 당시 훌륭한 시조 선생으로 지역에 소문이 자자한 인물로서 교직 은퇴 후 시조를 가르치는 일을 소일로 삼고 있었다.
47세 나이의 젊은 홍토현 선생의 재능을 알아본 송 선생의 여러 차례 간곡한 권유에 시조에 입문한 홍 선생은 시조의 매력에 푹 빠져 그때부터 평생 시조의 길을 걷게 된다.
이후 익산 줄풍류의 대가 강낙승(중요무형문화재 83호) 선생과 이보한 명인에게 시조와 가사, 가곡 등을 배운 그는 환갑의 나이에 충북 영동에서 열린 난계예술제에 참가해 시조 명인부에서 1등을 차지한다.
타고난 목소리와 탄탄한 내공이 쌓인 그는 그 후 전국 대회를 휩쓸었고 그런 와중에도 서울까지 찾아가 시조창의 대부인 정경태 선생(중요무형문화재41호)으로부터 사사하는 등의 노력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그의 마지막 목표는 후학 양성에 있다. 시조의 본가답게 익산시 시조협회로 전국에서 배움을 얻고자 찾아오는 사람들도 많다. 전국 시조협회 중 익산시지부만이 가장 높은 단계인 ‘대상’에 오른 사람이 12명. 시조창 분야에서 독보적인 익산의 오늘을 만들었고 이어나가는 것이 홍토현 선생이 매진하는 길이다.
홍토현 선생은 “내 기운이 있는 한 후진을 양성해서 사라져가는 문화의 명맥을 잇겠다. 누구나 찾아와서 무료로 배울 수 있으며 특히 정년퇴직 후 취미생활로 적격일 것”이라며 “시조는 어려운 것이 아니라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최고의 취미생활임을 널리 알리고 싶다”고 말했다.
정완창 기자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