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5년 창단된 익산 유일의 극단으로서 무대공연 불모지 익산을 지켜온 문화 파수꾼 역할 톡톡
소극장 ‘아르케’에서 공연과 함께 교육 프로그램 펼쳐.. 찾아가는 연극교실과 연극지도사 양성

◈ 아르케를 만나다

익산역에서 창인동 방향으로 조금 걷다 보면 구도심의 빌딩 숲이다. 낡은데다가 군데군데 페인트칠도 벗겨진 건물들이라 눈길을 거두기 십상이지만 유독 눈길을 사로잡는 연두색 간판이 있다.

여행사와 통신사 대리점 등의 화려한 간판 옆에서 오롯이 이름을 내걸고 있는 간판엔 ‘소극장 아르케’라고 적혀 있다.

‘이런 곳에 소극장이라니. 공연을 하긴 하는 걸까?’라는 의문이 먼저 들기 십상이다. 호기심이 일어 문을 열고 들어서면 연극 포스터들이 소극장 분위기를 물씬 풍기며 반겨준다. 포스터를 들여다보니 바로 엊그제 공연을 마친 작품. 정상적으로 운영되고 있는 소극장임이 틀림없다는 얘기다.

한번 시작한 호기심은 발길을 4층에 있는 소극장 아르케까지 이끌기 충분하다. 워낙 낡은 건물이라 올라가는 길이 쾌적하진 않지만 군데군데 붙여 놓은 관객들을 배려한 메모가 약간의 불쾌함도 날려준다. 

4층에 올라보니 미심쩍어 했던 부분이 싹 가시는 상큼한 공간이 나온다. 벽에는 공연 사진들과 각종 포스터가 붙어 있고 편안하게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의자, 정성들여 기르고 있는 이름 모를 꽃들이 어우러진 아늑한 로비다. 밖에서 상상하던 것과 다르게 서울 대학로의 웬만한 소극장보다도 넓고 깨끗하다.

극장 무대시설도 마찬가지. 깔끔한 통로를 따라 무대로 들어가 보니 100여 명이 앉을 수 있는 관객석과 널찍한 무대, 조명시설 등이 한 눈에도 소극장 치곤 최고의 환경임을 알 수 있다. 게다가 널찍한 연습실도 따로 갖추고 있었다. 감탄이 절로 나올 수밖에.

속으로 ‘이런 좋은 극장이 익산에 있었는데 왜 여태 모르고 있었을까’라고 자책 섞인 감탄을 하며 소극장 아르케에 둥지를 틀고 있는 주인공을 자세히 알고 싶어졌다.

◈ 작은 소동을 일으키다

소극장 아르케는 ‘극단 작은 소리와 동작’의 둥지다. 줄여서 ‘작은 소동’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작은 소동’ 역시 아르케와 마찬가지로 익산의 유일한 연극단체다.

1990년대까지만 해도 ‘토지’라는 극단이 익산을 무대로 구 경찰서 사거리에 위치한 원불교 이리교당 지하에서 ‘미다 소극장’을 운영했는데, 이 소극장은 젊은 연극인과 청춘들의 아지트 역할을 톡톡히 한 곳으로도 유명했다.

미다 소극장이 문을 닫게 된 1997년 이후 극단 토지는 제대로 된 활동을 펴지 못하고 흐지부지 됐고 1995년 창단된 ‘작은 소동’이 익산 연극계의 명맥을 대신 이어가고 있는 것.

‘작은 소동’은 첫 발걸음은 ‘여자 이야기를 해보자’라는 뜻에서부터 출발했다고 한다.

‘작은 소동’을 창단한 이도현(46) 대표는 “극단 토지의 단원으로 활동할 당시 ‘여성성’을 주제로 한 연극이 무대에 올라가는 일이 없어 ‘여성 본연의 이야기’를 담아 무대에 올리고 싶어 여성극단을 표방하며 출발하게 됐다”고 술회했다.

익산시가 여성친화도시로 지정된 2009년 훨씬 이전부터 연극을 통해 여성성에 대한 성숙한 문화를 시민들과 함께 나눠왔던 것. 현재는 여성만이 아닌 가족의 이야기로 확대해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 작은 소동이 큰 소동이 되다

‘작은 소동이’ 익산에 일으키는 ‘소동’은 공연 활동뿐만이 아니다. 연극으로 아동과 학생들을 위한 교육 활동을 활발하게 병행하고 있다.

특히 시립도서관과 연계해 시작한 지역아동센터 연극 교실은 본격적인 교육 활동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됐다.

2007년 ‘너도 하늘말나리야’라는 책읽기 프로그램으로 시작한 ‘놀자! 신나는 연극여행’은 지역아동센터와 복지관을 찾아가 학생들과 함께 연극을 만들고 공연하는 대표 프로그램으로 매년 큰 호응을 얻고 있다.

이도현 대표는 “연극은 아이들이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는 무대를 마련한다는 점에서 자존감 회복에 큰 효과를 내고 있다”며 “연극교실을 통해 아이들이 무언가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되는 변화를 보며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또 익산의 문화 이야기를 아이들에게 들려주고 자신이 살아가는 공간에 대한 의미를 새길 수 있는 교육프로그램인 ‘익산! 오늘의 서동선화는 누구’를 비롯해 방과후 연극지도사 양성 사업도 ‘작은 소동’의 활약 중 하나다.

이밖에도 작년부터 주5일제 수업으로 인한 토요문화체험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열고 있는 ‘꿈다락 토요문화학교’는 아이들에게 다양한 문화예술 체험과 소통의 기회를 마련해주고 있어 호평을 받고 있다.

지난해 문화학교에서는 ‘서동선화가 만난 북청사자 놀음’이라는 프로그램으로 총 30명의 초등학생들이 3월부터 12월 까지 다양한 체험을 함께 했는데 연극과 무용 국악을 아우르고 서동선화와 북청사자놀이를 접목한 종합 예술 체험 프로그램으로 큰 관심을 받기도 했다.

◈ 시간과 공간의 시초로 기억하다

아르케는 그리스 철학에서 시간과 공간의 시초라는 뜻으로 사용되는 말로, 익산 문화의 중심으로 ‘소극장 아르케’가 태어났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창단 후 전용 소극장이 없어 예술회관을 대관해 공연해야 했고 연습실도 변변치 않아 옮겨 다녀야 했던 어려움을 겪던 ‘작은 소동’에 ‘아르케’라는 둥지가 생긴 것은 2007년. 구도심활성화 문화예술공간지원사업으로 선정돼 창인동에 소극장을 마련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작은 소동’이 꾸준히 펼쳐온 공연활동 및 교육문화 활동이 빛을 보게 된 순간인 동시에 익산 시민에게도 기쁜 소식이었다.

하지만 ‘극단 작은 소동’이 말하는 더 큰 어려움은 사람이 없다는 점이었다. 경제적 어려움은

둘째로 치더라도 익산시에 연극을 하겠다는 사람이 없는 게 문제였다. 대학에서도 연극을 하려는 학생들은 다 서울로 올라가는 현실의 벽에 부딪힌 것. 

이도현 대표는 “연극을 하겠다는 친구가 없다는 게 문제다. 단원모집을 해도 오지 않는 경우가 많아 아예 모집을 하지 않기도 했다. 단원에게 급여를 주면서 활동할 수 없다는 점과 시간을 낼 수 없기 때문에 하고 싶어도 못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현재 ‘작은 소동’의 단원은 모두 13명. 모두 자신의 사회생활을 하는 틈틈이 연극에 몸담고 있는 연극인 들이다. 치과의사, 문화예술 강사 등 직업도 다양하고 재능도 다양한 연극인들이 모여 연극에 대한 열정을 태우는 공간이 바로 ‘아르케’다.

매해 창작공연을 포함한 정기 공연을 3회 이상 열고 있으며 전북연극예술제, 전북 소극장연극제 등에도 참가한다. ‘아르케’를 대관해 타 지역 극단의 기획 공연도 수시로 열고 있다.

‘작은 소동’의 대표작으로는 여자들의 이야기를 다룬 ‘길 위에 서다’를 비롯해 창작극인 ‘경로당 폰팅 사건’, ‘눈먼 아비’등이 있다.

지난 1일부터 4일까지 낭독극인 ‘눈 먼 아이가 그린 풍경’을 성황리에 마쳤고 다음 공연은 9월 초에 ‘TV동화 행복한 세상’을 각색한 공연을 준비 중이다.                           

정완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