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학산(舞鶴山)은 화려한 절경의 용안면의 주산(主山).. 현재도 백로 무리가 날아들어 장관 이뤄
충효의 고장임을 자랑하는 용안향교와 삼세오충열사.. 인심도 좋아 현감이 오고갈 때 두 번 울어

중신리에 위치한 삼세오열충사(지방문화재 기념물 제61호)

중신 마을 전경

성치 마을 전경

익산시의 가장 북쪽에 위치한 용안면은 위로는 금강에 접하고 서로는 성당면, 동으로는 용동면, 남으로는 함열읍과 면해있는 고장이다. 본디 용동면 지역도 용안면에 속해 있었으나 한 개 면치고는 면적이 방대한 관계로 1986년에 용동면으로 분리해 나갔다.

금강에 접해 있어 수운교통이 편리하고 비옥한 농지가 많았으며 미륵산에서 내려오는 부곡천(현 산북천)과 함라산맥의 지맥으로 뻗어 나온 산지가 적당히 어우러진 용안면은 특히 농경시대에는 축복받은 자연환경이었다.

그런 살기 좋은 자연환경덕분인지 용안면은 예로부터 인심이 좋기로 함라 못지않게 소문이 자자할 정도였으며 현재도 주민들이 그런 전통을 잇고 있다.

용안면의 주산(主山)이며 모산(母山)이라고 할 수 있는 무학산을 중심으로 면 소재지가 발달했으며 특히 고려시대에 세워졌을 것으로 추정되는 읍성의 흔적이 무학산에 남아있다.

용안면은 고려 때에는 함열현에 속해 도내산은소(道乃山銀所. 은 생산지) 또는 창산소(蒼山所)라 했는데 충숙왕(忠肅王) 8년에 백안부개(伯顔夫介)라는 용안 사람이 원나라에 가서 공을 세워 용안군(龍安郡)으로 승격됐다고 전해진다.

용안군청은 현재의 교동마을에 위치해 있었는데 1916년 행정구역 개편 당시 향교(鄕校)가 있는 마을이라고 해서 교동이라는 이름이 됐으며 현재도 면사무소와 옛 동헌, 향교가 나란히 무학산의 품에 자리하고 있다.
구술사프로젝트팀은 무학산의 주변에 들어선 여러 마을들 중 교동리의 성치마을과 중신리의 중신마을을 찾아 주민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 무학산의 풍류

자연경관이 뛰어난 무학산은 현재도 등산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명산으로, 정상에 서면 서쪽으로는 굽이쳐 흐르는 금강이 내려다보이고 동으로는 푸른 들판과 멀리 미륵산이 바라보인다.   

해발 100m 밖에 되지 않지만 여러 마을을 품고 있는 무학산은 웅장한 풍채와 수려한 숲이 아름다우며 해마다 봄이 되면 백로 무리가 찾아와 둥지를 틀고 있어 운치를 더해준다.

‘용안읍지’에 이러한 무학산의 자연경관을 주제로 한 시구(詩句)가 전해지고 있는데 그 중 조선 중기의 문신 도거원(都擧元)은 遠水西流急 孤雲北去遲(원수서유급 고운북거지) 天風颯兩腋  隨興續題詩(천풍삽양액 수흥속제시) -저 멀리 강물은 서쪽으로 급히 흘러가고, 구름은 외로이 북쪽으로 느릿느릿 떠가네. 하늘 바람 소리내며 양쪽 겨드랑이로 불어오니, 흥에 취해 계속해서 제목 붙여 시를 짓네- 라고 무학산에서의 풍취를 전하고 있다.

성치마을 장종철(77) 씨는 “무학산을 기준으로 북쪽을 북면, 남쪽을 남면이라고 하는데 북쪽은 강경이 주 생활권이고 남쪽은 함열에 가서 장을 보고 그랬다”고 말했다.

◈ 충신이 들어와 살았던 마을

중신마을은 무학산의 동편 자락에 교동리와 맞닿아 있는 중신리의 대표 마을이다. 용안면에서 가장 많은 가호가 자리 잡고 있는데 많을 때는 3백 가호 가까이 됐다고 한다. 오래 전부터 읍성 주변에 발달한 취락지구로 발달하기에 적당한 여건이었을 것이다.

중신마을에서 만난 주민 임용구(86) 옹과 조남해(54) 씨가 중신마을에 대한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놓았다.

먼저 중신마을이라는 이름의 유래는 정확하게 전해지는 것은 없었다. 조선 초에 평택임씨가 처음으로 입주해 마을을 이룬 것으로 기록돼 있으며 용안의 중앙부에 위치했다는 뜻으로 중신(中新)이라는 이름이 됐다고 한다.

중신마을 위쪽에 상신(上新), 아래쪽에 하신(下新)이라는 마을 이름이 남아있는 것으로 볼 때 교동리에 읍성이 축조된 이후 성 밖에 새로 생긴 마을이라고 추정해 볼 수 있겠다.
중신마을에 처음 들어왔다는 평택임씨는 주민 임용구 옹의 23대조인 고려 후기의 무신 임견미(林堅味) 장군이다.

임 옹은 “견자 미자 할아버지가 공민왕 때 공을 세워 중랑장이 됐는데 이성계가 집권하게 되니까 3대가 멸문지화를 당하게 생겨서 숨어서 황해도에서 돛배를 타고 피한 곳이 여기 마을이야. 평택 임씨라는 걸 속이고 도망 왔다고. 그 분의 가묘가 여기 마을 무학산에 있는데 지금도 전국에서 자손들이 와서 시제를 지내지”라고 말했다.

현재 중신리 산 13번지에는 임견미 장군의 고려조에 대한 우국충절을 기리기 위한 임견미신도비가 세워져 있다.

◈ 삼대에 걸친 충의를 기리다

삼세오충렬사(三世五忠烈祠)는 지방문화재 기념물 제 61호로 중신리 131-1에 위치해 있다. 용안사거리에서 강경방향으로 6백 미터 정도 떨어진 지점 우측이다.

이 사당은 임진·정유왜란과 병자호란에 걸쳐 삼대에 걸쳐 목숨을 바친 다섯 순국영령을 모신 곳으로 오응정 오욱, 오직, 오동량, 오방언 다섯 충신의 넋을 기리고 있다.

본래 현종 11년(1670) 착공했으나 숙종과 영조시대를 거치는 동안 환란으로 완공치 못하고 퇴락해 자취가 없어졌는데 1978년 용안면의 유림들이 나서 복원을 발의해 1981년 건립됐다. 무려 삼백년이 넘는 세월이 걸려 완공된 셈이다.

오응정(1548~1597) 장군은 용안현 출신의 무인으로 선조 7년 무과에 급제하고 종3품까지 올랐다가 파직당해 고향에 내려와 조용히 지내고 있었는데 정유재란이 터졌다.

이에 스스로 “적들을 멸하지 않는 한 살아 돌아오지 않으리라”라고 맹서하고 참군해 최전방에서 싸웠다.

남원에서 밀고 올라오는 왜군에 맞서 두 아들 욱, 동량과 함께 싸운 오응정은 당시 남원을 지키고 있던 명나라 장수 양원이 도망가자 이를 분개하며 끝까지 싸웠다. 그러나 셀 수 없이 많은 왜군에 더 이상 버틸 재간이 없었고  후퇴하자는 아들들의 권유를 “나라에 충성할 뿐이다. 어찌 도망간 양원을 본받으란 말이냐”라며 뿌리치고 화약더미에 불을 붙여 휘하 장수들과 다 같이 산화했다.

오응정의 아들 직은 누르하치의 후금과의 전쟁에 나가 요동반도에서 전사했으며 오직의 장남인 방언은 병자호란에 참전해 남한산성 싸움에서 선봉에 섰으나 인조가 삼전도에서 항복하자 “나라의 수치를 씻지 못하고 부친의 원수를 갚지 못했으니 어찌 하늘아래 살겠느냐”고 통분한 끝에 샛강에서 투신해 죽었다.

이렇게 삼대에 걸쳐 나라를 위해 싸우다 죽은 충신들의 넋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삼세오충렬사에서는 매년 음력 3월 10일 제사를 모시고 있다.

◈ 원님이 울고 와서 울고 간다 

성치마을은 본디 성 밖의 언덕에 있다고 해서 마을사람들이 ‘성재’마을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무학산이 바로 올려다 보이는 양지바른 남쪽에 마을이 형성돼 있다.

성 밖에 몇몇 호가 전부인 마을이었다가 일제시대에 일본인이 들어와 농장을 경영하면서 소작인들이 많이 들어와 살게 됐다.

마을회관에서 만난 주민 장종철(77), 김영헌(70), 신영규(67) 씨가 이야기를 들려줬다.

장종철 씨는 “원님이 있었을 때는 용동면이랑 용안면이랑 한 개 부락이어서 다른 현보다 작은 시골이었다고. 그러니까 용안으로 발령 받아 내려오는 원님들이 좌천됐다고 울면서 온다고. 그랬다가 내려와서 살면서 용안 인심이 좋고 살기 좋으니까 떠나갈 때는 또 서운해서 울고 간다는 얘기가 있어”라고 말했다.

이런 살기 좋은 고장에서의 인심은 일제시대에도 달랐다. 타 지역에서의 일본인 농장에 대한 평가와는 다른 이야기들이 나왔다.

‘청목’이라는 일본인이 마을에 농장을 경영하고 있었는데 주민들은 그 농장에서 품 팔아 먹고 살았다고 한다.

주민들은 “굽신굽신은 했어도 그 사람이 모질게 굴거나 하진 않았다. 오히려 그 사람 때문에 전기도 들어오게 됐고 문화적으로는 좋아졌다고 생각한다. 공출 같은 것은 정부에서 했고 여기 사는 일본 사람이 압박 준 것은 없어”라고 말했다.   

정완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