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년 전통과 역사의 고교생 순수 독서토론 동아리.. ‘삶 사랑, 사람 사랑, 겨레 사랑’세 가지 가치 추구

회원 스스로 계획 세워 동서양 철학, 경제, 문화, 문학 등 모든 분야 고전작품 다뤄.. 익산의 숨은 보물

고전을 사전적 의미로 해석하면, 시대가 변해도 읽을 만한 가치를 지닌 읽을거리라 풀이할 수 있다. 그것은 다시 말해 시대를 관통하는 뭔가 특별한 것이 작품 안에 녹아 있다는 말일 것이다. 어렸을 때 읽고 자라서 다시 읽고 혹은 몇 세대를 건너서도 낡거나 잊히지 않고 읽혀지며 새로워지기도 하는, 그 자체로 향기로운 책이면서 읽는 사람을 향기롭게 만드는 그런 책을 고전(古典)이라 부르는 것일 게다.

그러나 아무리 좋아도 읽혀지지 않으면 무슨 소용일까. 수북하게 먼지 쌓인 서가에 다가갈 시간조차 없이 입시를 비롯해 각종 경력 쌓기에 바쁜 우리네 학생들은 고전의 세계를 여행할 기회조차 얻지 못했다. 사회에 나가서도 치열한 경쟁 속에 매몰돼 살다보니 책을 손에 들 여유가 있을 수 없는 상황이다.

그런 정서적 목마름이 각박한 사회의 일면을 구성하고 각종 스트레스와 사회 문제를 야기하는 원인으로 지목돼 교육제도권 안에서도 독서를 통한 인성교육에 열을 올리고 있다. 독서습관이 가장 효과 좋은 인성교육이며 학습과 사회적 관계 형성에서도 그 효과가 크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일찍이 고전에 손을 내밀어 책과 함께 익산의 청소년 문화를 이끌어온 학생 중심의 동아리가 있어 눈길을 끈다. 1969년 익산 지역의 고교생 중심 순수문학동아리로 탄생해 45년의 시간 동안 6백여 명의 회원들이 함께해오고 있는 ‘익산 고전독서회’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 책이 가슴에 들어오다

고전독서회의 시작은 새마을 운동이 있기도 전인 1968년의 전주시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독서 진작이라는 이유로 대통령기를 내건 ‘자유교양경시대회’라는 게 있었는데 그 대회에 참가하기 위해 선발된 초중고교 학생들은 밤늦게까지 고전을 달달 외워야 했다. 책 속에서 문제를 내고 대회 참가자들은 단답형으로 답하는 수준이었다.

그런 지식 습득용 학습 같은 책읽기를 벗어나 진정 ‘자유로운’ 독서를 하고 토론을 통해 서로의 생각을 나누고자 하는 열망이 몇몇 학생들의 가슴 속에서 일어났던 것.

그런 학생들 중심으로 전주에서 먼저 ‘고전독서회’가 결성됐다. 그리고 3개월이 지난 이듬해 고전독서회의 2대 회원인 한상균 회원은 고향인 익산에서도 그런 모임을 이어가고자 초등학교 동창들을 중심으로 모임을 결성, 익산 고전독서회의 첫 발걸음을 시작하게 된다.

당시 이리기독교회관에서 고등학교 1학년 학생들끼리 모여 최초로 읽고 토론했던 작품은 플라톤의 ‘소크라테스의 변명’이었으며 이후 새로운 회원들이 다수 참여해 고전을 읽고자하는 학생들의 문화적 열망을 채워주는 역할을 톡톡히 하게 됐다.

익산 고전독서회 19대 회원이자 현 익산 고전독서회 총무를 맡고 있는 이규한 씨는 “토론문화가 전무하다시피 했던 시기에 고전독서회는 단순히 책을 읽는 것에서 나아가 서로 의견을 나눌 수 있는 열린 공간으로서 학생들에게 다가갔다”고 말했다.

◈ 열린 공간에서 열정을 나누다

고전독서회는 익산지역 고교생들의 순수 문학동아리 모임으로서 당시 익산역 앞의 기독교회관에 첫 둥지를 틀고 활동을 시작했다.

모임은 계획부터 준비, 실행까지 모두 학생들 스스로 결정하고 토론회를 이끄는 방식으로 진행됐는데, 당시는 학교가 아닌 장소에서 이뤄지는 고교생들의 동아리 활동이 활성화 되지 않은 시기였기 때문에 각종 어려움이 따를 수밖에 없었다.

수련회를 참가했다는 등의 이유로 학교에서 고전 활동을 하지 못하게 막거나 집안에서의 반대 또한 비일비재 했다. 학교생활을 하며 시간을 내는 것도 어려웠지만 또 마땅한 공간이 없던 탓에 기독교방송국, 노라노 양재학원, 예식장을 비롯해 회원의 집 등을 전전하면서 모임을 유지해야 했다.

고교생 회원들로서는 매주 토요일 오후의 모일 공간 마련은 가장 힘든 부분이었고 모임을 이어나가는 와중에도 자주 이사를 다녀야 했다. 회원 모집을 못해 단 몇 사람만이 남기도 했고 몇 년 동안 맥이 끊겼다가 다시 이어가기도 했다.

이러한 어려움 속에서도 고전독서회의 명맥이 끊이지 않고 45년을 이어온 것은 문학에 대한 학생들의 순수한 열정이 있었기 때문이다.

2005년에는 여러 회원들이 모여 고전독서회의 재건을 위해 뜻을 모아 고려정형외과 지하에 안정적인 공간을 마련하게 됐으며 이후 학생들과 학부모들의 관심으로 참여가 늘어나 많은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해 청소년들의 문화마당으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다.

익산 고전독서회 12대 김주면 회장은 “학교이외 다른 활동을 한다는 것이 쉽지 않았지만 회원들의 끈끈한 우정과 고전에 대한 순수한 열정이 모임을 지탱하는 원동력이었다”고 말했다.

◈ 토론 문화를 선도한 고전독서회

고전독서회는 매주 토요일 2시 고려정형외과 지하에 위치한 공간에서 토론 모임을 진행하고 있다.

수업 형식은 기본적으로 회원들의 생각에 따라 수업방식을 고민하고 결정해 자발적으로 계획을 세워 진행하는데 현재는 본수업과 문학산책, 영화토론, 주제토론, 특강 및 수련회 등이 주요 프로그램이다. 수업 준비 및 사회는 회원들이 돌아가면서 맡아 진행한다.

본수업은 논어, 사서삼경 등 동서양을 아우르는 철학서나 무게감 있는 고전을 선정하고 매주 일정 부분을 읽고 이에 대한 내용을 상호 토론하며 이해해 나가는 방법으로 진행된다.

문학산책 수업은 비교적 한 주 안에 읽을 수 있는 분량의 문학작품을 선정하고 이에 대해 서로의 의견을 나누고 토론한다.

영화토론의 경우 미리 상의해 결정한 영화를 빔 프로젝터를 이용하여 함께 관람한 후 영화에 대해 자유로운 토론을 실시한다.

주제토론은 시사성 있고 이슈가 되는 주제를 정해 각각 토론 주제와 관련 자료를 준비해 자유토론을 실시하는 방식이다.

이 밖에도 비정기적으로 강사를 섭외해 이야기를 듣고 질의 응답하는 특강, 세미나와 발표 및 토론을 위주로 한 여름 수련회, 친목 도모와 정기총회를 겸한 겨울 수련회를 실시하고 있다.

◈ 푯대, 일송정, 삶의 터

익산 고전독서회는 어려운 활동을 이어나가면서 자체적으로 여러 문집을 펴내고 매년 ‘공개수업’을 통해 자신들의 활동을 알려왔다.

고전독서회에서 1971년 창간한 ‘푯대’는 자신들의 수업의 기록과 반성, 수필과 시 등의 창작 작품 등을 묶어 펴낸 고전독서회의 대표 문집이다. 당시 변변한 인쇄 매체를 이용하기 어려웠기 때문에 모든 작업은 원고지와 백지에 손으로 써서 묶어냈다.

‘일송정’은 고전독서회의 연간지로 한 해 동안의 고전의 활동과 다음 해의 계획 등을 담고 있으며 ‘삶의 터’는 겨울수련회 동안의 기록을 담아 묶어낸 것으로 모두 다 고전독서회의 땀과 열정이 묻어나는 역사다.

또한 고전독서회는 매년 ‘공개수업’을 통해 활동을 알려왔는데, 매주 진행되는 수업을 시민들과 학생들 앞에서 진행하며 모두와 의견을 나누는 열린 공간으로서 소통하는 자리로 마련됐다.

또한 최근에는 영등도서관에서 시민들과 함께하는 주제토론회를 기획해 시사성 있는 주제를 시민들과 함께 이야기하는 자리를 마련하기도 했다.

이규한 씨는 “고전을 한마디로 ‘사람 사는 정’으로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고교시절은 자칫 방황할 수도 있는 시절인데 책을 읽고 나눔으로서 가치관과 정체성을 가질 수 있게 돼 사회에 나가서도 조직 사회에 융화할 수 있는 밑바탕이 됐다. 고전독서회는 앞으로도 세대가 공감할 수 있는 열린 장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정완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