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유산 등재의 중심에 서있는 천사백년 전 백제의 사찰 터 미륵사지.. 신비로운 이야기와 깊은 울림을 경험하는 여행
구룡마을 대나무 숲길을 지나 서동테마공원으로 이어진 무왕길.. 왕궁리유적에서 깨닫는 세계유산의 보고(寶庫) 익산
◈ 미륵사지로 향하며
익산쌍릉에서 시작하는 무왕길을 따라 걷기 시작해 오금산과 익산토성을 만난 후 다음 목적지인 미륵사지로 향하는 길.
금마면 용순리 들길에 내려서면 탁 트인 들판 너머에 미륵산이 한 눈에 바라다보이며 미륵사지로 향하는 발걸음을 기대에 부풀게 만든다.
익산 시민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방문해봤을 미륵사지 유적이지만 익산토성에서 미륵사지를 향해 걷다 보면 새롭게 느껴지는 부분이 있다. 만약 미륵사지가 현재까지 그대로 보존돼 있다면 들길을 걷는 와중에도 그 위용을 느낄 수 있었을 텐데 하는 것.
미륵산의 품안에 동양 최대의 규모로 들어선 백제의 사찰이었던 미륵사였던 만큼 직선거리로 약 2km 정도 떨어진 익산토성이나 그 사이에서도 미륵사가 가까이 있는 것처럼 착시현상이 들 정도가 아니었을까.
그 면적만 1338만4,699㎡에 이르고 미륵산의 남쪽 골짜기 사이의 완만한 경사면에 자리했기 때문에 들에서 올려다보았을 때 그 웅장함과 위용이 더욱 남달랐을 것은 틀림없을 것이다.
천사백년 전 무왕의 꿈이 담겨 있는 미륵사지. 신비로움과 경이로움이 가득한 세계의 유산인 그곳을 향해 걷는 발걸음이 가볍기 그지없다.
◈ 무왕길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것들
[오감 만족 미륵사지]
들길에서 벗어나면 바로 금마면 기양리 노상마을에 위치한 미륵사지에 도착하게 된다.
미륵사지 정면에서 바라보면 현재 남아 있는 사찰의 모습이라곤 연못과 당간지주, 복원된 동탑과 현재 복원중인 서탑을 가리고 있는 덧집 뿐이고 국립박물관 승격과 신축을 기다리고 있는 유물전시관이 좌측에 위치해 있다.
먼저 사찰 터 앞마당에 조성된 두 개의 연못은 미륵사지가 못을 메우고 세워졌다는 미륵사창건설화에 신빙성을 더해준 것으로, 발굴과정에서 실제 연못이 있었다는 흔적이 나왔으며 많은 유물도 출토된 곳이다.
또한 창건설화 이외에도 연못지 발굴 당시에 남녀 인골 2기가 나란히 출토됐는데, 이후 신라 장수와 백제 왕족의 딸이 이룰 수 없는 사랑을 하다 연못에 투신했다는 새로운 전설이 만들어지기도 했다.
연못을 지나 올라서면 당간지주가 눈에 들어온다. 그 옛날 긴 장대를 세워 깃발을 휘날리게 했던 당간지주는 거의 온전히 보존돼 남아 있는 역사적 보물이다.
수수하면서도 세련된 단아함을 보이고 있는 당간지주에서 사찰 앞마당을 수놓던 화려한 깃발을 상상해 본다.
당간지주를 뒤로하고 지금은 사라진 사찰 문을 지나 서탑을 만나러 커다란 덧집 안으로 들어간다. 우리나라 최대의 석탑이지만 현재 한참 복원 중인 관계로 해체된 석재들이 대부분이어서 그 웅장한 위용과 수려한 목조탑의 형식을 만날 수는 없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지금이 석탑을 속속들이 들여다 볼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기도 하다. 석탑의 기초부분에서부터 석재들이 쌓이는 과정을 들여다 볼 수 있다는 것은 천사백년 전 석탑이 세워질 때 이후 처음 맞는 일이며 다시 만나기 어려운 기회인 것. 틈틈이 찾아 마음으로나마 탑을 쌓는 과정에 참여해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이 밖에도 아쉽지만 사리장엄을 비롯한 유물에 관련한 이야기와 동탑, 발굴 당시 이야기, 전설 등 하루가 모자랄 정도로 많은 내용을 품고 있는 미륵사지를 뒤로하고 다음 목표 장소인 구룡마을로 출발. 다음을 기약하는 것도 무왕길 여행의 즐거움 중 하나가 아닐까 생각된다.
[상쾌한 대나무 숲길]
바람이라도 불면 풍탁(풍경) 소리를 듣는 행운을 얻으며 미륵사지 내의 동탑을 지나 동편 미륵산 자락에 난 길로 접어든다.
원래 무왕길은 미륵사지 밖 주차장에서 미륵사지 주변을 따라 걷게 돼 있지만 미륵사지에서 바로 산길로 접어들기도 한다.
전북과학고 뒤편으로 접어들어 구룡마을로 향하는 산길은 가파르지도 않고 상쾌한 기분을 느낄 수 있는 코스. 그 길에 바위가 얹혀 있고 그 사이가 떨어져 있다는 전설이 있는 ‘뜬바위’와 같은 신기한 바위에 대한 이야기도 들으며 30분 정도 걸으면 구룡마을 대나무숲이 나타난다.
남한 최대의 대나무(왕대) 군락지로 알려진 구룡마을 대나무숲은 면적이 약 5만 평방미터로 담양 죽녹원보다 넓으며 드라마 ‘추노’와 영화 ‘최종병기 활’의 촬영지로 유명해지기도 한 곳이다.
왕대로 만든 익산의 죽제품이 강경장에서 전국으로 팔렸기에 주민들은 대나무 밭을 ‘생금밭’이라고 부르며 귀하게 여기기도 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대나무 숲의 청량한 느낌과 대나무 잎이 내는 소리를 들으며 무왕길을 따라 걸어 내려가다 보면 공동우물이 나타난다.
대나무 밭 한가운데 위치해 있는 공동우물. 지금도 고여있는 깨끗한 우물물이 대나무 음료처럼 느껴지는 것은 혼자 뿐만은 아닐 것이다.
[서동공원과 마한관]
대나무 숲을 빠져나와 농로를 따라 서동공원으로 향하는 길은 좁은 농로와 산길이 주를 이루고 있다. 10여 분을 걸어 산모퉁이를 벗어나면 탁 트인 금마저수지를 만난다. 옥룡천의 물줄기가 시작되며 한반도를 닮은 것으로 유명한 금마저수지 변을 따라 내려가면 2004년 준공된 서동공원이 나온다.
서동공원은 13만2천 평방미터의 면적에 전망대와 휴식 공간, 조각공원 등으로 이뤄진 금마관광지로 주말마다 5천명 이상이 찾고 있다.
공원에는 서동선화 조각상을 비롯해 12지신상 등 여러 조각 작품이 전시돼 있는데 이는 무주 동계유니버시아드 대회를 개최한 기념으로 열린 환경조각대전에 출품된 각종 조각 작품이다.
또 무왕 동상과 분수대를 비롯해 수목이 어우러진 잔디광장 등 가족 휴양공간으로 안성맞춤이다. 2·4인용 자전거도 대여해 즐길 수 있도록 각종 편의시설들이 마련돼 있다.
또한 서동공원의 한편에 2008년 건립된 마한관이 자리하고 있다. 삼한시대의 부족국가였으며 익산을 중심으로 세력을 펼쳤던 마한의 생활상을 한눈에 볼 수 있는 마한관에서는 익산 영등동 출토 청동기 토기, 동검 등의 유물들과 움집, 독무덤 등의 유물들을 전시하고 있다.
[발굴이 한참인 왕궁리유적]
서동공원을 뒤로하고 마지막 목적지인 왕궁리유적을 향해 출발한다. 서동공원에서 약 4km 정도 떨어져 있는 왕궁리유적까지 걷기에는 부담스러울 수 있으나 도중에 고도리석불입상을 거쳐 간다면 좋은 휴식처로서 손색이 없다.
고도리석불입상은 옥룡천을 사이에 두고 약 2백m 떨어져 서로 바라보고 있는 2기의 석불로, 고려시대 양식으로 추정하고 있으나 언제 어떻게 세워졌는지는 불분명하다.
다만 조선 철종 때 부임한 군수 황종석이 넘어진 석불을 다시 세워 중건한 석불중건비가 세워져 있다.
동고도리의 석불이 남자, 서고도리 쪽의 석불이 여자라고 전해지는 바, 옥룡천이 얼어붙는 겨울철에 한번 다리를 건너 만난다는 사랑의 전설이 전해진다. 이곳에서 사랑의 도시 익산을 다시 한 번 만나게 되는 것이다.
고도리석불입상을 떠나 멀지 않은 곳에 왕궁리유적에 도착한다. 왕궁리유적은 1989년부터 본격적인 발굴에 들어가 24년이 지난 현재까지 발굴조사가 진행되고 있는 우리나라 최대의 발굴역사 현장이다.
정확한 기록이 남아있지 않아 증명할 수 없었던 사실들을 발굴조사 과정에서 출토된 유물들이 증언해 사실로 밝혀지며 백제 무왕의 익산 천도의 가능성을 높게 바라보게 만든 현장이기도 하다.
현재까지 왕궁탑과 출입문지, 주 건물지와 공방지, 대형화장실터, 정원지가 조사됐으며 왕궁 후원과 동편 성벽 등의 발굴조사가 한참 진행 중이다. 또 어떤 신비한 이야기로 백제 역사의 실마리를 풀어나가게 될지 모르는 왕궁리유적의 발굴 소식을 관심 있게 지켜보아야 할 것이다.
종착지인 왕궁리유적에서 걸어온 길을 뒤돌아보면 가까운 곳에서 찬란한 백제역사문화가 살아 숨 쉬고 있다는 느낌이다. 세계유산 등재를 앞둔 익산역사유적지구가 이미 세계유산임을 느낄 수 있는 무왕길 백제 여행이다.
정완창 기자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