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화낙지형 명당자리의 열매 맺는 곳 화실마을.. 원님이 쉬어가던 광두원(光頭院)과 봉수대가 있던 곳
관청 창고로 가던 길목 창목(倉木)과 신화마을을 합해 창신마을.. 겨울에도 따뜻한 우물이 있던 온수동

화실리와 화배리는 용동면의 남쪽에 나란히 위치하며 남쪽으로 낭산면, 서쪽으로 함열읍과 가까이 접해 있는 마을이다.

미륵산에서 내려오는 물길인 산북천(낭산천)이 마을 동쪽에 남에서 북으로 흘러 금강으로 흘러들어가며 농지를 적시고 있으며 마을들은 들판 사이 군데군데 솟아난 얕은 구릉을 중심으로 형성돼 있다.

꽃 화(花), 열매 실(實)자를 쓴 화실리와 꽃 화, 잔 배(盃)를 쓰는 화배리는 모두 꽃과 관련한 지명인데 풍수지리학적으로 이 부근이 매화낙지형(梅花落池形)의 명당이 있기 때문으로 보고 있으며 다른 이유로는 봄에 꽃이 많이 피기 때문이라는 설도 전해진다.

마을 주변은 평야지대가 적고 언덕이 많은 지형이며 낭산면 삼담리(三潭里)와 지척이기 때문에 화실리나 화배리에도 작은 연못이 군데군데 있었을 것으로 생각되나 현재는 남아있지 않다.

화실리는 연화, 화실, 양촌, 고창 마을 5개 마을로 이뤄져 있으며 화배리는 화배, 창신 마을2개 마을을 이루고 있다.

화실리 화실마을주민 김복수(71), 이종문(71), 이영수(65), 이장재(80), 김옥희(89), 김동복(75), 이종복(71) 씨가 마을의 유래를 비롯해 여러 이야기를 들려줬고, 화배리 창신마을에서는 조대연 씨가 구술사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 원님이 쉬어가던 ‘광두원’

화실마을 주민들은 현재 불리는 ‘화실’보다 ‘광돈(光敦)’이라는 이름이 더 먼저 불리던 이름이라고 기억하고 있었다.

광돈은 ‘광두원’을 줄인 말로서 예전에 국가의 임무를 받아 먼 곳까지 이동하는 벼슬아치에게 숙식을 제공하는 원(院)집이 있었다고 한다. 지금의 마을 중앙에 위치한 마을회관 자리가 광두원(光頭院)자리다.

또 마을 부근의 산을 광두원산이라고 부르는데 이 산에는 봉수대가 있어서 함열현의 소방산 봉수를 받아 은진현 강경산의 봉수대와 연결하는 지점으로 알려져 있다.

이종복 씨는 “우리 밭 있는 데에 기왓장이 나와 건물이 있었다는 게 확인됐다. 자세히는 몰라도 원님이 쉬어가는 곳이라고 알고 있는데 이 근방 땅에서 돌도나오고 무덤도 나오고 얼마 전까지 기왓장이 많이 나오고 그랬다”고 말했다.

마을 매어놓던 자리라는 얘기도 전해지고 있는데 주변 마을 중 세곡을 보관하던 창고가 있던 마을이라고 전해지는 고창(古倉)마을도 있어 적어도 5백여 년 전에는 여러 관청이 자리하고 있던 마을이었던 셈이다.

마을 가까이까지 수로가 들어와 세곡을 운반하던 수운선이 들어왔고 마을회관 밑에 파발마를 교체해서 가던 역참이 있었으며 봉수대가 위치했다는 얘기들로 볼 때 역사적으로 화실리는 남북 교통의 길목으로 발전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 같은 사실은 ‘광교중창비’의 기록에서도 살펴볼 수 있는데, 광교중창비는 함열과 화실마을을 잇는 길에 강을 건너는 다리가 놓였던 기록으로 2004년 3월 13일 마을 사람들에 의해 발견됐다.

비석의 내용에 따르면 광교는 마한 때부터 있었던 다리로 물건을 실어 나르기 편하게 강을 깊이 준설하고 다니기 편하게 만들어 놓은 뒤부터 서로 왕래하는 중요한 통로였다고 한다. 그러나 큰물로 다리가 무너져 별좌 김석빈 등이 애를 써서 영조 34년(1758)에 다리를 다시 세웠다고 한다.

◇ 매화에 벌이 모여드는 형국

매화낙지형이라는 명당자리에서 화실마을은 그 열매가 맺는 곳이며 마을 아래 ‘밀머리’는 벌의 모습이라고 전해진다.

밀머리는 원래 ‘밀벌머리’ 또는 ‘벌머리’라고 불렀는데 산이 마을 우측으로 길게 뻗어 나온 모양이 벌과 흡사하다고 해서 이름이 붙여졌다. 그러고 보면 매화에 벌이 달려드는 모습을 갖춘 것으로 매화낙지형이라는 명당의 구색을 다 갖춘 듯이 보인다.

김복수 씨는 “밀머리 있는 데가 밀봉산인데 그 전에 수로공사한다고 거기서 돌을 채취하다가 너무 강해서 포기했다고. 그 때 대학생 둘이 죽어나간 일이 있기도 했는데 동네에서 동의를 안해서 앞으로 일절 허가가 안날거야”라고 말했다.

‘공판재’는 마을 회관 밑에 있는 곳인데, ‘공판’은 나무로 깎아 만든 공을 나무로 만든 채로  치고 놀던 옛 놀이로서 지금으로 말하자면 운동장 역할을 하던 공터가 있던 곳이다.

또 마을에 ‘질마재’라는 곳이 있는데 흔히 질마재는 소나 말의 등에 안장처럼 얹은 도구인 ‘길마’와 흡사한 지형을 일컫는 말로 쓰이나 여기서는 길이 갑자기 굽어져서 막힌 듯이 보인다는이유로 길이 막혀있는 곳, 즉 ‘길막음재’가 ‘질마금재’로 변해 질마재로 변했다고 한다.

이 밖에도 마을에는 구석뜸, 밭가운데, 매래 등 옛 지명들이 남아 약간이나마 생활상을 엿볼 수 있다.

◇ 공좌상과 좌상 이야기

화실마을에는 샘이 다섯 개 있었지만 농사를 짓기에 물이 부족해 하늘만 바라보는 천수답이 대부분이었다고 한다.

다른 마을들과 마찬가지로 이 샘들은 칠월 칠석 날 청소하는 ‘술맥이’를 했는데 그 날은 마을 잔치가 벌어져 돼지고기를 호박잎에 싸서 나눠주고 술이 떨어질 때까지 어울렸다고 한다.

이 날 마을에서는 잘못한 일이 있는 젊은 청년들을 꾸짖는 일도 있었는데 마을 사람들 중 공좌상과 좌상을 맡은 어른이 젊은이를 불러다놓고 혼쭐을 내줬다고 한다.

이종문 씨는 “불량한 짓을 했다고 하면 최고 높은 공좌상과 그 다음 좌상 어르신이 불러다 놓고 막 혼내는 거야. 매까지 치는 건 못봤고 말로 꾸짖고 그러더라고. 지금 그렇게 했다가는 큰일나지”라고 말했다.

◇ 꽃피는 온수동 창신마을

화배리의 창신마을은 본디 창목마을과 신화마을을 합해 이뤄졌는데 화배리 주민들은 지금도 화배, 신화, 창목, 세 마을로 구분해 살아가고 있다.

꽃술잔이라는 지명은 주변의 지형이 움푹 들어간 술잔 모양에다가 꽃이 많이 피어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라는 설과 ‘고잔’이 ‘꽃잔’으로 변해 화배로 표기됐다는 얘기도 전해진다.

산의 구릉이 평야로 길게 뻗어 나와서 마치 꼬지와 같다는 의미로 ‘곶(串) 안’으로 불리다가 ‘고잔’이 ‘꽃잔’이 됐다는 얘기다.

창목은 국가의 창고가 있는 곳에 들어가는 길목이라는 의미이며 신화(新花)는 화배마을 뒤에 새로 생긴 마을을 ‘새화배’라고 부르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주민들은 마을의 옛 이름을 ‘온수동(溫水洞)’이라고 기억하고 있었는데 겨울에도 따뜻했던 우물이 있어서 그렇게 불렀다고 한다.

조대연 씨는 “샘을 파서 먹는데 따뜻한 물이 나오니까는 온수동이라고 했는데 한번은 여기서 온천이 나올 가능성이 있다고 해서 원대에서 조사 나온 적이 있다고 그러더라고. 근데 양이 별로라서 그냥 말았다고 하데”라고 말했다.

마을 뒷산은 객망산이라고 불렀는데 손님 객(客), 바라볼 망(望) 자를 써서 손님을 바라본다는 얘기가 전해지며 비가 안 오면 그 산에서 기우제를 지냈다고 한다.

객망산 뒤에는 함박산이라고 불리는 산이 있는데 함지박처럼 움푹 들어간 곳이어서 붙여진 이름으로, 일제시대에 큰 길이 나면서 혈이 끊어졌다는 이야기도 전해지고 있었다.  

정완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