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3대 제언에 속한 황등호를 기준으로 호남(전라도), 호서(충청도) 구분.. 수변지역으로 교통과 농업이 발달
미륵산을 중심으로 여러 성곽들이 들어선 천혜의 요새.. 백제시기에 이르러 위상 높아져 왕궁 천도지로 낙점

익산역사유적지구라고 한다면 왕궁면에서 금마면을 통해 삼기와 웅포에 이르는 문화재 분포 지역을 말할 것이다.

왕궁리유적에서 시작해 미륵사지와 삼기면 석불사와 태봉사를 지나 금강변 웅포면의 고분군 까지. 시대를 고스란히 담고 있는 흔적이 백제 무왕의 천도(遷都) 길을 따라 흩어져 있는 듯하다.

또한 익산은 전국 어느 곳보다 백제의 유산이 밀집해 남아 있는 곳이며 현재도 발굴이 진행되고 있는 백제 유산의 보고로 주목받고 있다.

이에 따라 출토된 유물 및 백제사에 대한 연구도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으며 익산역사유적지구의 세계유산 등재 또한 탄력을 받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익산을 중심으로 남아있는 백제의 유산은 그 배경으로 마한이라는 청동기 문화의 중심지를 떠올리게 한다. 익산이라는 지역에서 청동기 문화를 꽃피웠던 마한이라는 문화적 역량이 모아져 찬란한 백제 문화의 밑거름이 되었던 것이다.

오늘날의 익산이 천사백년의 세월을 건너 뛰어 빛을 발하는 백제의 유산으로 새롭게 조명 받고 있는 것은 2천 년 전부터 익산 땅에서 숨 쉬며 살아온 사람들의 역사가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에 마한에서 백제에 이르며 역사와 문화의 중심으로 발전할 수 있었던 익산의 지리적 여건과 배경을 돌아보며 이를 통해 고도 르네상스 시대를 추구하고 있는 익산의 미래를 들여다보았다.

 ◇ 호남의 관문 익산

최근 황등호 복원에 대한 익산시의 움직임과 시민사회의 관심이 커지며 황등호를 호남의 기준이었다는 설이 제기되고 있다.

전라도를 호남(湖南) 지방이라고 부르는 것은 말 그대로 호수의 남쪽을 지칭하는 것이다. 그러나 호남선, 호남고속도로 등 막연하게 사용되고 있을 뿐 그 정확한 내력에 대해서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중국의 경우 동정호(洞庭湖)를 기준으로 호북과 호남 지방을 구분하는데, 그렇다면 우리나라의 호남지방의 경계는 어디를 말하고 있을까라는 의문이 남게 된다.

여기에는 몇 가지 설이 전해지고 있는데 그 중 금강(錦江)이라는 설과 황등호라는 설이 유력하게 전해진다.

금강의 경우 그 옛 이름이 호강(湖江)이었고 대청댐 부근을 초강(楚江)이라고 불렀으며 그 물줄기를 기준 삼아 충청도를 호서(湖西), 전라도를 호남(湖南)이라고 부르게 됐다는 얘기다.

현재 가장 유력하게 받아들여지는 설로서 고려 성종 이후 전라북도를 ‘강남도(江南道)’라고 불렀던 것도 금강의 호남기준설의 근거가 되고 있다.

그렇다면 황등호라는 설의 근거는 어떨까. 현재 황등호에 대한 기록 중 가장 오래된 것은 1670년 경에 찬술된 유형원의 반계수록(磻溪隧錄)이다.

반계수록에 따르면 김제의 벽골제, 고부의 눌제, 익산의 황등제를 나라 안의 큰 제언으로 꼽으며 대제(大堤)라는 말을 듣는다 했다.

또 3제를 잘 수축해 놓으면 노령 이북의 땅이 영원히 흉년이 없게 되고 나라 만세(萬世)에 이로움이 있으니 조세의 태반이 호남에서 나오기 때문이라고 했다는 것이다.

이후 18세기 후반에 나온 ‘증보문헌비고’에서도 “황등제는 길이가 9백보요, 호의 둘레가 25리로서 벽골제, 눌제와 함께 3대 호 중의 하나로 일컬어졌을 뿐만 아니라 호수의 남쪽, 호수의 서쪽을 구분하는 유래가 이 요교호(황등제)로 말미암아 생기게 되었다”는 기록이 나온다.

이 밖에도 세종실록지리지에서 기록하고 있는 상시제(上屎堤)는 그 연관성으로 보아 황등제를 칭하는 다른 이름으로 보이며, 이를 대제(大堤)로 기록하고 있기에 호남 기준의 근거로 생각해 볼 수 있다.

◇ 황등호를 중심으로 문화권 형성

황등호는 익산 시내에서 원광대학교와 원불교 총부를 지나 함열 방면으로 통하는 23번 국도를 따라 우측으로 펼쳐진 지대가 낮은 농경지에 위치해 있었다.

현재의 국도는 일제시대에 쌓은 둑길이며 황등 석산과 원불교 총부의 도치산을 잇기 위해 황등호를 가로질러 축조됐다.

이 후 완주군에 경천저수지가 축조되면서 농경지로 개간돼 현재에 이르렀으나 황등호는 임피 서수에 이르는 비옥한 농경지의 수원으로 역할을 책임지고 있었다.

이렇듯 예로부터 익산지역이 고대문화의 중심지로 발달할 수 있었던 것은 풍부한 농경지와 그 기반이 된 물을 저장할 수 있는 제언(堤堰)이 발달했기 때문이다.

황등호는 그 유래를 백제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고 있는데 그 근거로 황등면의 마을 지명을 들 수 있다. ‘배나들이’, ‘뱃길’, ‘섬말’이라는 마을은 예전부터 수로 교통이 발달했음을 보여주고 있으며 백제 시대에 왕이 황등호를 통해 미륵사로 배를 타고 갔다는 얘기도 전해지고 있다.

현재의 지형으로 보면 황등면 부근까지 배가 드나들었다는 얘기는 전혀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이지만 여러 연구결과에서 익산 도심 대부분은 수변지역이었고 수로가 발달해 왕궁면과 금마 부근까지 배를 타고 다닐 수 있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일제에 의해 황등제 둑길이 축조되는 1923년 전만해도 황등에서 임상동과 팔봉으로 건너려면 나룻배를 타고 건너다녔다고 한다.

그렇기에 금강과 만경강 사이에 너를 평야지대를 보유하고 있는 익산은 교통이 편리하고 또한 수로가 발달해 방어적으로도 유리한 이점이 있었던 곳으로 볼 수 있다.

또한 교통이 편리한 지역적 이점은 선진문물을 받아들일 수 있는 창구로서의 역할도 기대할 수 있는 것으로, 백제의 수준 높은 문화는 중국 남조와의 교류가 있었기 때문에 발달할 수 있었던 것이다.

해상왕국 백제의 중심지로서 금강과 만경강을 끼고 있는 익산이 주목받을 수밖에 없는 이유다.

◇ 군사적으로 유리한 입지조건

익산은 군사적 요충지의 여건을 충분히 갖추고 있는 지역이라는 점이 마한시대부터 백제에 이르기까지 중심지로 발달한 이유라고 볼 수 있다.

미륵산을 중심으로 동북쪽에 집중 분포돼 있는 용산성, 낭산산성 등의 성곽유적들은 단순한 성곽이 아닌 군사적 방어시설로서의 기능을 지니고 있는 성이었다.

또한 미륵산은 남으로는 만경강 넘어 전주까지, 서쪽으로는 함라산 등 서해 연안까지, 북으로는 부여, 논산 일대까지, 동으로는 노령산맥의 봉우리들을 한 눈에 바라볼 수 있는 조망권을 가지고 있다.

특히 수로가 발달한 관계로 북쪽의 금강과 남쪽의 만경강이 천연 방어선이 되고 있어 동북방 지역만 방어한다면 천혜의 요새로 손색이 없는 지역이다.

이렇기에 미륵산을 중심으로 마한성이라고 불려지는 낭산산성, 미륵산성, 천호산성, 용화산성, 학현산성 등 마한부터 기준왕과 백제에 이르는 시기에 대다수의 성곽들이 축조되며 방어적 기능을 맡게 된 것이다. 

풍부한 평야를 보유하고 있고, 교통이 편리하며 천혜의 요새의 지역으로 일찍이 수준 높은 청동기 문화를 형성할 수 있는 기반을 갖춘 익산은 마한시대의 중심조로 문화를 꽃피웠고 또 이러한 역량이 백제시대에 이르러 성장 발전할 수 있는 기반이 되었다.
다송리, 평장리, 신동리, 부송동 등지에서 다량 출토된 청동기 유물과 영등동의 마한 유적에서

그와 같은 문화의 흐름을 읽을 수 있으며 이것이 왕궁리유적과 미륵사지의 찬란한 백제문화의 기반이 되었던 것을 알 수 있다.

정완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