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내·제남 마을은 어량제(漁梁堤) 방죽 주변에 들어선 마을.. 어량천(川)에 고기가 많아 ‘고기똘’이라 불려
‘깊으네’는 지대가 낮아 물이 찼던 마을.. 강경천에 다리가 놓여있어 ‘다리목’마을이 ‘교항(橋項)’이라 변해

망성면(望城面)은 익산의 도심에서는 가장 멀리 떨어진 전라도의 최북단에 위치하며 금강과 접해있고 강경읍을 지척에 둔 고장이다.

망성면 남쪽은 여산면과 접해있는데 옛날에는 여산의 옛 이름인 여량(礪良)에 속해 있었으며 백제 때에는 지랑초현(只良肖縣)이라고 불렸던 곳이다.

망성이라는 지명은 일제시대에 붙여진 이름으로 전해지는데, 1905년 을사조약 때부터 1910년 한일합방을 전후할 때까지 일본 헌병대가 이곳에 주둔하며 의병을 경계하고자 망루(望樓)를 쌓고 경비했기 때문에 ‘망을 보던 성이 있던 곳’이라는 뜻으로 붙여진 이름이다.

잘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망성면의 주요 마을 곳곳에는 무문토기를 비롯해 옹관묘 등 여러 선사유적이 산포돼 있는 곳으로, 선사시대부터 사람들이 모여 살았던 역사 깊은 고장이다.

어량리와 화산리, 무형리에 이러한 선사유적들이 분포돼 있으며 또한 한국인 최초의 신부였던 김대건 신부의 나바우 성당이 화산리에 있어 천주교 성지(聖地)로 여겨지고 있다. 또한 국창(國唱) 정정렬(丁貞烈)이 바로 망성면 내촌리 출신이다.

구술사프로젝트 팀은 망성면 주요 마을 곳곳을 돌며 구술 채록을 실시했으며, 이 중 어량리의 제남마을과 내촌리의 교항마을에서 만난 주민들의 이야기를 소개한다.

◇ 어량제 남쪽 마을, 제남

제남(堤南)마을은 낭산사거리에서 북쪽 강경방면으로 약 3km 올라가다 용동삼거리 직전 우측에 마을 입구가 있다. 밭 가운데로 난 소로를 따라 야트막한 언덕을 넘어 5백 미터 가량 동쪽으로 들어가면 10여 호가 드문드문 들어선 조그만 마을이 나온다.

제남마을은 본디 외얏말, 오얏말이라고 불렸는데 외따로 떨어져 있는 마을이란 뜻이며 방죽의 남쪽에 위치한 마을이라는 뜻에서 제남마을로 이름이 변했다.

제남마을 바로 위쪽에 위치한 제내(堤內)마을은 방죽의 안에 위치했던 마을이라는 뜻에서 ‘방죽안’이 ‘제내’로 한자표기되었던 것으로, 두 마을 모두 방죽과 관련한 지명임을 알 수 있다.

현재는 방죽의 흔적이 없지만 여산구지(礪山舊誌)에는 어량제(魚梁堤)라는 방죽이 있었다는 기록이 나와 오래된 방죽이 있었던 것으로 여겨지지만 개간된 후 논과 밭으로 쓰이고 있다.

제남마을 주민 김상옥(65) 씨는 “원래 제내마을과 한 마을로 50호 정도 되었는데 약 34년 전에 분리 됐다.

제내마을에서 볼 적에 남쪽에 있으니까 제남이 된 것일테고”라고 말했다.

일제시대에는 일본인들이 이 마을에서 농장을 경영하기도 했는데 주변 6만여 평의 농지에 고구마와 호밀 등을 심어 경작했고, 해방 이후에는 국가에 몰수된 탓에 국가에 귀속된 땅이 많다고 한다.

김종인(75) 씨는 “원래 이름은 일본 사람들이 많이 살았을 적에는 ‘오얏말’이었어. 제내는 ‘방죽안’이라고 했고. 그 앞에 방죽이 있어서 그 물로 농사를 지었는데 메워서 논을 만드니까 제내, 제남, 어남, 어동 마을 네 개 부락이 나눠서 지금처럼 됐지”라고 말했다.

제남마을 앞으로 낮은 지대에 어량천이 남에서 북으로 흐르고 있는데 그 하천이 지금처럼 정비되기 이전에는 어량제의 물을 농업용수로 사용했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그리고 마을 북쪽의 제내마을과의 사이에 비교적 낮은 곳이 어량제라는 방죽이 있던 곳이었음을 알 수 있었다.

◇ 호랑이 나올 만큼 깊은 숲

현재 제남마을 주변은 이렇다 할 숲이 형성돼 있지 않지만 예전에는 소나무 숲이 빽빽이 들어선 숲이 많았다고 마을 주민들은 기억하고 있었다.

호랑이가 나올 정도로 깊었다는 숲은 야산개발과 함께 밭으로 개간되면서 사라지고 옛 방죽도 개간되어 논으로 변했다.

미륵산 북쪽자락이 맞닿아 있는 평야지대라 높지 않은 언덕이 많았고 미륵산에서 내려오는 물줄기가 풍부해 농사를 짓기에 충분한 여건을 갖춘 곳이다. 마을 앞으로 어량천이 흐르고 있는데, 어량천은 물고기가 많아 ‘고기똘’이라고 불렀던 것에서 이름이 붙여진 내력이 전해진다.

김상옥 씨는 “여기 마을 입구를 손바레기라고 하는데 야구(왜구)들이 정착해 그 길을 따라 고구마를 키웠다고. 거기가 좀 험했는데 사고가 많이 나서 무당 불러다 굿도 하고 그랬다고”라고 말했다.

마을에서는 평안을 위해 거리제를 지내기도 했으며 무당이나 점집이 마을에 있지는 않았지만 다른 곳에서 불러온 기억들이 남아 있었다.

거리제를 지내기 위해서는 나물 세 가지와 밥 세 사발, 시루팥떡을 해다가 나무 밑에서 제를 지냈으며, 배가 아프거나 타 지역에 나갔다 돌아와 아프면 귀신이 들렸다고 해서 무당의 도움을 받았다.

김종인 씨는 “어디 나갔다 와서 아프면 귀신이 붙어 왔다고 거기다 된장을 뿌리고 무당이 막 아픈 사람 머리를 집어 뜯고 썩 물러가라고, 안 물러가면 칼로 찌른다고 호통 치다가 짚에다가 칼을 꽂아 놓으면 또 아픈 사람이 낫는다고”라고 마을에서 무당이 귀신 쫓아냈던 얘기를 해줬다.

◇ ‘깊으네’였던 다리목 마을

교항마을은 여산에서 망성에 이르는 799번 지방국도를 따라 망성면 접경 첫 마을이다. 교항이라는 말은 ‘다리목’의 한자 표기인데 마을 앞을 흐르는 강경천에 다리가 놓여 있던 마을이라고 해서 다리목 마을이라고 불렸다.

사근다리라고 부르는 마을 뒤 들판에 강경천이 흐르고 있었고 그 물길을 건너기 위해 나무로 만든 다리가 있었다고 마을 주민들은 기억하고 있었다.
마을회관에서 만난 이동준(72), 차동집(75) 씨가 마을의 유래와 풍속에 대해 이야기를 들려줬다.

이동준 씨는 “마을 앞에 ‘구하천’이라고 하천이 있었는데 저 여산 배다리에서 내려오는 하천이었어. 그래서 이 들로 건너가려면 나무다리가 있어가지고 안창뜰로 건너가고 그랬지”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다리를 건너 들판을 갔는데 이 근방이 지형이 낮아. 그래서 장마가 지면 물이 올라오고 그랬어. 그래서 옛날에는 ‘깊으네’라고 불리기도 했는데 장마가 지면 둑이 터져서 바다 같았어.

호박 같은 거 수박 같은 거 떠내려가고 그랬었지”라고 덧붙였다.

현재는 강경천이 정비되면서 마을 앞 들판에 떨어져 하천이 흐르고 있는데 예전에는 마을회관 앞까지 하천이 흘렀다고 한다. 그래서 큰 버드나무에 그네를 달아 놀았는데 그네를 타다 물속으로 뛰어들기도 했다고 주민들은 말한다.

◇ 천석꾼이 살았던 모스크바

내촌리에서도 내촌마을과 함께 교항마을이 비교적 큰 마을에 속했는데 교항마을 주민들의 기억에 의하면 마을에 천석꾼이 살았을 정도로 큰 마을이었다.

여산과 강경을 잇는 길이 있던 곳이어서 마을에 구루마를 몰던 소몰이꾼들이 쉬어가는 주막이 여럿 들어설 정도였으며 매일 돼지를 잡았다고 할 정도로 흥성대던 곳이었다.

또 도박장이 들어서고 도박이 성행했다고 해서 모스크바라는 별칭이 생겼더라는 기억도 나왔다.

차동집 씨는 “옛날에는 ‘다리목 사거리’라고 도박으로 유명하고 술꾼도 많았던 동네여. 낭산사거리보다 컸는데 막대기 요만한 것을 놓고 그놈이 쌀 한가마, 논 한마지기 라고, 한번 도박하면 논 몇 마지기씩 나가고 살림 파탄나고 그랬어”라고 말했다.

모스크바라고 불렸던 이유는 도박이나 술 때문에 몹쓸 일이 많이 일어나자 흉악한 곳이라는 뜻으로 모스크바라는 별명이 붙었다고 한다.

정완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