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산지역의 세력을 기반으로 한 서동의 백제왕 즉위.. 왕권 강화 위한 신라와의 전쟁 및 익산 천도 추진 노력
모후(母后) 세력과 지명법사의 무대 익산.. 금광과 풍부한 농토, 천혜의 요새였던 익산에 왕궁 및 사찰 조영

서동 생가터가 있는 금마면 서고도리의 연동제.

◇ 서동이 왕이 되기 전 백제사

백제는 457년 고구려 장수왕의 공격을 받아 개로왕이 전사하고 왕도였던 한성(서울)이 함락됐다. 이후 뒤를 이은 문주왕이 황급히 웅진(공주)으로 천도를 단행했으며 그 후 동성왕과 무령왕 대를 거치면서 중흥의 기틀을 다지게 된다.

그리고 백제는 성왕 16년(538)에 다시 사비(부여)로 천도를 단행하면서 16관등제와 22부제(部制)로 대표되는 지방통치 체제를 정비하고 불교를 통해 사상을 통일하는 등 중흥을 이루게 된다.

국력을 다진 성왕은 고구려에게 뺏긴 한강 유역을 회복하기 위해 551년 신라, 가야군과 연합군을 꾸려 고구려를 공격한다. 이 전투에서 백제는 한강 하류 6개 고을을 회복했으나 신라의 배반으로 인해 이마저도 빼앗기고 만다.

이에 분노한 성왕은 가야군과 함께 신라를 공격했으나 크게 패하고 성왕도 전사하게 된다. 그 결과 뒤를 이은 위덕왕 대에는 신라 공격을 반대했던 귀족들이 정치적 실권을 장악하게 됐으며 귀족중심의 정치 운영이 이뤄지게 된다.

이 같은 왕권의 약화를 타파하고자 했던 왕이 29대 법왕(599-600)이었는데 그는 왕흥사를 창건하는 등 왕권강화를 추진하다가 당시 실권 귀족의 충돌로 인해 재위 2년 만에 죽게 된다.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귀족에 의해 제거된 것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28대 혜왕과 29대 법왕이 모두 즉위한지 2년 만에 죽는 정치적 혼란기 속에서 그 다음 왕위에 오르게 된 사람이 바로 서동 무왕이다.

◇ 왕권강화를 위한 선택

사비성 천도 재현 모습. 부여 백제역사 박물관 소장.

무왕은 왕위에 오르기 전 익산에 유배된 채 마를 캐며 생활했다고 알고 있는 서동이다.

태어난 곳은 서울이지만 익산에서 생활했던 것은 가문이 몰락해 유배된 것으로 볼 수 있다. 다만 아버지가 지룡(池龍)이라고 표현된 것으로 보아 왕족이었음을 짐작할 뿐이다.

사실이야 어떻든 법왕이 죽자 실권 귀족들은 자신들이 조종하기 쉬운 왕족을 세우려 했고 그 과정에서 몰락한 왕족인 서동을 주목하게 된다. 기존 세력 기반이 없는 서동을 왕위에 옹립해 허수아비 왕을 만들겠다는 심산이었다.

그러나 귀족들의 속셈은 빗나갔다. 무왕은 즉위 후 3년(602)에 신라의 모산성(母山城, 남원)을 대대적으로 공격을 감행해 군사권을 장악했고 나아가 왕권 강화를 위한 정책들을 적극 추진한 것이다.

그 과정에서 나온 것이 익산경영이었다. 귀족의 세력을 벗어나 익산 지역을 자신의 세력 기반으로 삼고자 했던 것으로 풀이된다.

익산은 그러한 여건을 만족하기 충분한 지역이었으며 또한 자신의 인연이 닿아 있는 곳이어서 무왕으로서는 익산 천도를 꿈꾸기 충분했다. 그렇기에 무왕은 익산에 왕궁과 사찰을 조영하는 한편 직접 익산 행차를 하며 지역 세력을 관리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 익산이 유리한 이유

드라마 세트장으로 사용됐던 서동생가 재현 모습.

익산은 서동이 어머니를 모시고 마를 캐서 살았다고 전해지는 곳이지만 그런 인연 보다는 익산 지역이 갖는 왕도로서의 유리한 이점이 천도를 결심하게 된 큰 이유였다.

그러한 이점 중 하나는 바로 익산이 서동의 모후 가문의 세력기반이 있었던 곳이었을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서동의 아버지가 왕족이었다면 서동의 어머니도 귀족 가문의 출신이었을 것이고 그러한 점이 익산이라는 곳에 서동 모후 가문의 세력이 있었다는 추론을 가능케 한다.

‘신동국여지승람’에 ‘마룡지(오금산 남쪽 백여 보에 있으며 서동대왕 어머니의 측실지가 있다고 세간에 전해진다)’고 나와 있는데 이곳이 바로 금마면 서고도리의 서동생가터가 있던 곳이다. 여기서 마룡지라는 연못에 대해 주목할 필요가 있는데, 당시 못의 축조는 농업과 밀접한 관련이 있으므로 경제기반이 있던 세력이 있었다는 추측을 할 수 있게 한다.

이 밖에도 당시 제방으로서 황등호(요교호)가 있었다는 점은 익산 지방이 농업생산력이 컸음을 말하고 익산의 지역세력이 두각을 나타낼 수 있는 토대로 볼 수 있다.

또 하나의 이점은 금광의 개발이다. ‘삼국유사’ 무왕조에 따르면 무왕은 서동 시절에 황금을 흙더미처럼 쌓아 놓았다고 하며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의하면 ‘오금사(五金寺)’라는 절은 서동이 마를 캐던 시절 다섯 덩이의 금을 얻었던 것에서 비롯했다고 한다.

금과 관련한 내용은 미륵불교와 연관 지어 보는 견해도 있지만 익산 지역에 다량의 금광이 개발됐다는 견해도 나온다.

일제시대에 조사된 광구(鑛區)에 의하면 익산시의 금마면, 왕궁면, 웅포면, 성당면, 함열면 등에 금광이 있었던 것으로 나오고 이웃 김제시에도 금구면, 금산면을 비롯 여러 곳에 금은을 비롯해 사금광이 있었던 것으로 조사됐다. 이러한 사실은 익산지역이 천사백년 전만해도 풍부한 금의 생산지였고 그러한 이유로 경제적 기반이 확실한 지역이 될 수밖에 없었다.

이 밖에도 익산지역은 지리적으로 교통의 요지이면서 군사적 거점으로서의 천혜의 요새라는 점이 익산 천도의 조건을 충족시켰다고 볼 수 있다.

익산지역은 금강과 만경강 사이에 위치해 있으며 북으로는 논산과 경계를 이루고 동으로는 미륵산과 천호산 등의 험준한 산지로 둘러싸여 있으며 내부로는 미륵산을 발원지로 하는 옥룡천과 부상천이 흘러 평야와 산세가 잘 어울려 있는 교통과 방어에 유리한 요새와 같은 지형인 것이다.

이러한 이유들로 익산 지역에 일찍이 강대한 세력이 발달할 수 있는 여건이 되었고 원수리 고분, 성남리 고분 등이 그러한 세력들이 존재했음을 보여주고 있다.

◇ 지명법사의 신통력과 익산천도

무왕은 익산으로의 천도를 통해 왕권 강화를 확립하는 한편 미륵신앙을 통해 전륜성왕(轉輪聖王)의 확고한 길을 닦고자 한다.

이 때 무왕의 곁에서 활동했던 이가 바로 지명법사(智明法師)다. 지명법사는 삼국유사에서 서동이 오금산에서 얻은 황금을 신통력으로 신라 진평왕에게 보냈다고 전해지며, 또한 하룻밤 새 못을 메워 미륵사를 창건하게 한 장본인으로 알려져 있다.

미륵사 창건 설화 속에서도 무왕과 선화가 지명법사를 만나러 갔다는 내용으로 볼 때 지명법사는 무왕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는 정치적 실세로 보인다.
신라와의 외교를 담당했으며 무왕의 고문 역할을 했다고 보이는 지명법사에 의해 미륵사상의 뜻이 담긴 미륵사가 창건되기에 이르고 익산으로의 천도 역시 지명법사의 적극적인 지지 하에 이뤄진 것으로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익산으로의 천도 계획이 성공했는가에 대해서는 의문점이 남는다. ‘관세음응험기’에서는 백제 무강왕(무왕으로 해석됨)이 지모밀지(금마)로 천도를 했다고 전하고 있으나 ‘삼국사기’ 무왕 31년(630)에는 ‘봄 2월 사비궁을 중수하면서 웅진성으로 옮겼다가 공사가 중지되자 사비로 환궁했다’고 나와 있어 이 시기까지도 사비가 백제의 왕도였음을 말하고 있다. 또한 나당연합군에 의해 백제가 망할 당시에도 수도가 부여였음은 무왕의 익산천도가 이뤄지지 않았음을 나타내는 사실들이다.

그렇게 볼 때 익산경영을 위해 모든 준비를 마치고 익산으로 천도했다고 치더라도 무왕 후기에 이르렀을 때였고 얼마 있지 않아 무왕이 죽자 뒤를 이은 의자왕이 다시 사비로 수도를 옮긴 것으로 밖에 볼 수 없다.

그런 점에서 익산은 왕궁과 왕실사찰, 왕릉과 성곽 등 수도로서 갖추어야 할 여건을 충분히 갖추고 있고 또 천도 사실을 증명할만한 수부명기와 등의 증거가 있지만, 오로지 무왕만이 익산을 수도로 삼았다는 점이 특색이라고 할 수 있겠다. 앞으로 그러한 부분에 대해 지속적인 연구와 관심이 지속 되어야 할 것이며 이를 통해 세계유산 등재 및 고도 르네상스를 위해 나아가는 익산의 모습을 그려보아야 할 때다.

정완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