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베개 베고 가마니 덮고 그렇게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시작해 고생을 했기 때문에 주위에 베풀고 돕는 것이 쉬웠다. 본디 없었으니까 다 줘도 다시 벌 수 있다고 생각했고 나처럼 힘들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도와 함께 살아가는 것을 바란 것뿐이다.”

금마면 출신으로 평생 금마를 지키고 살아오며 주민들의 생활과 번영을 위해 애를 쓰고, 또한 익산의 문화 지킴이 역할을 톡톡히 해온 대한보강원 채남석(65) 원장.

호탕한 웃음이 일품인 그의 족적을 돌이켜 보면 항상 약자에게 베풀고 주민들의 편에 서 있었던 발자취를 느낄 수 있다.

지독한 고생 속에서도 ‘무에서 유를 창조한다’는 신념으로 살아온 일생은 맨몸으로 일어서 베푸는 삶을 살았던 그의 자서전 첫 페이지에 해당할 것이다.

그가 태어난 기양리 노상마을은 미륵사지의 경내에 위치해 있었다. 미륵사지석탑이 그의 놀이터나 다름없었고 한국 미술사학계의 거목인 고 황수영 박사가 그의 집에서 기거하며 미륵사지를 연구할 땐 글씨가 쓰인 기왓장을 주워다 주곤 했던 어린 시절의 향수가 있다.

그렇게 마음속에 미륵사지에 대한 향수와 자긍심을 품고 자란 탓일까. 그는 장성해서도 고향을 떠나지 않고 금마지역과 주민들을 위해 각종 현안에 손발을 걷고 앞장서 일해 왔다.

군에서 제대 후 8대째를 잇는 한의원을 개업했을 때의 일이다. 무일푼으로 처가에서 빚을 내 한의원을 개업했는데 먹을 것도 없고 베고 잘 베개나 이불도 없는 생활이었다. 그래도 남들 앞에서는 한의원 원장으로 행세하며 베풀면서 떳떳하게 살았다. 사람들은 그런 그를 보고 ‘거지 의사’, ‘거지 의원’이라고들 불렀다고 한다.

채남석 원장은 “무에서 유를 창조한다는 말이 신조였다.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에 잃을 것도 없었고, 그런 점에서 돈을 벌면 나와 같은 처지의 사람들을 도와 일으켜 세워주는 것이 자연스러웠다”고 말했다. 

어디에라도 기대고 싶은 마음에 작은 성당에 나갔던 그는 큰 교회를 세우고자 했던 꿈을 이뤄냈고 금마에 신협을 창설한 일도 주민들에게 보탬이 되고자 했던 뜻이었다. 부이사장을 맡은 그는 신협이 안정될 때까지 3년 간 직원의 월급을 몰래 주기도 했다.

또 그는 한의원에서 돈이 없어 고교에 입학하지 못했던 학생들을 약제사로 일부러 데리고 있으면서 당시 고교 3년 강의록을 모두 공부하도록 시킨 후 학교에 입학시켜주기도 했다. 그렇게 대학에 보낸 학생만 4명이나 된다.

군대 시절의 인맥과 대대로 내려오는 비방 덕에 한의원이 성공가도를 달리던 중 그는 익산의 문화에 관심을 갖게 됐다. 당시 익산의 문화재는 거의 방치되다시피 한 수준이어서 보존과 연구가 시급한 수준이었기에 중학교 은사인 송상규 선생과 뜻을 모아 ‘익산 고적선양회’를 창립하기에 이른 것이다.

채남석 원장은 “익산에 고적과 문화재가 많은데 귀중한 것을 묵혀 놓으면 안된다는 뜻으로 지킴이를 자처했던 게 고적선양회다. 역사와 문화에는 문외한이나 다름없었지만 여러 교수들을 비롯해 기업가와 자문위원들을 모아 고적선양회가 제대로 설 수 있도록 노력했다”고 말했다.

고적선양회의 학술 논문집 ‘익산문화’는 채 원장의 사재와 발품을 팔아 모은 돈으로 발간됐으며 선풍적인 인기를 끌어 전국적인 역사교류를 할 수 있는 기틀 마련과 함께 익산 문화를 널리 선양하는 기회가 됐다.

이와 함께 그는 ‘익산군문화원’의 창립멤버로 공로가 알려져 ‘익산 군민의장 문화장’과 ‘대한민국 향토문화대상’을 받게 된다. 당시 그는 자신의 공로가 아니라며 심사위원이었던 시인 고은에게 향토문화대상을 ‘고적선양회’의 이름으로 달라고 요청했던 일화도 있다.

이후에도 그는 쉼 없이 달렸다. 미륵사지 복원 100만인 서명 운동은 그가 일궈낸 큰 성과이자 아쉬움이 남는 사건으로, 사재를 털어 티셔츠를 제작해 나눠주며 서명운동을 전파해 전국 뉴스로 연일 다뤄지기도 했다. 그는 36명의 국회의원을 직접 설득했으며 염원이었던 미륵사지의 복원이 거의 성사 단계에까지 이르게 됐었지만 아쉽게도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채남석 원장은 “그 때 사기를 당하지 않았더라면 아마 복원이 됐을 거다. 평생 아쉬운 일로 남았지만 후회하지는 않는다. 전문 역사문화인은 아니었지만 그런 활동을 통해 내 고향의 소중한 문화유산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됐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금도 마찬가지로 어떤 일이든 이웃과 주민들을 위한 일인지 생각하고 움직인다”고 말했다.

그는 현재 익산유적지구 세계유산등재 추진위원으로 활동하며 각종 공청회와 토론회에서 주민들의 권리를 대변하고 있으며, 지역 교육에도 뜻을 두고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