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롱고지’였던 화농마을은 곡식 이는 ‘조리’모양 마을.. ‘유방수뜰’에서 부자가 망한 이야기 전해져
대장군좌, 야막제, 군물산 등 군사적 지명 남은 신성 마을.. 신선이 춤추는‘선인무수혈’무동마을

무동마을 전경

황등면 소재지에서 북쪽 23번 국도를 만나기 전에 좌측으로 철도를 건너 함라면 방면으로 난 ‘시와로’를 따라 들어선 마을들이 죽촌리, 신성리, 구자리이다.

죽촌리(竹村里)는 대나무에 둘러싸일 정도였다는 죽촌마을과 화농, 부마마을 등이 있고, 신화, 대성, 신성 세 마을이 들어선 신성리(新城里), 무동, 구자, 봉곡 마을이 있는 구자리(九子里)까지 황등면의 북서쪽 지역에 들어서 있다.

이 지역은 물길이 지나지 않는 곳이기 때문에 경지정리가 되기 전에는 물이 부족했고 그래서 대부분 천수답이나 수렁논으로 경작되는 곳이었으며 농사를 위한 작은 방죽이 곳곳에 들어서 있었다. 식수는 대부분 샘물을 이용했다고 한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는 지대가 낮은 곳은 비만 오면 물이 차올라 농사를 지을 수 없을 정도였기에 ‘물고드래’라고 부르는 풀만 무성한 곳이었고, 비교적 지대가 높았던 곳도 수렁이 많아서 농사짓기 어려운 여건이었다.

그랬던 곳이 일제시대에 이르러 경지정리가 되면서 마을들이 번성하게 됐으며 들판 가운데 듬성듬성 들어선 한적한 시골마을의 모습이 되었다.

구술사프로젝트팀은 이 지역 마을 곳곳을 돌며 마을에 전해져 내려오는 이야기를 들어보았는데, 줄지어 늘어선 마을이었기 때문인지 여러 마을 사람들이 한 마을처럼 공유하고 있는 이야기가 많아 지역 왕래와 교류가 많았던 곳이라는 점이 눈에 띄었다.

◇ ‘수롱고지’ 화농마을의 이야기

화농마을 전경.

죽촌리의 화농(禾農)마을은 도로를 경계삼아 부마(富麻)마을과 맞닿아 있는 마을로, 마을회관도 공동으로 사용하고 있는 만큼 한 마을과 다름없이 생활해온 것으로 보였다.

화농은 본디 ‘수롱고지’, ‘수롱골’이라고 불렀는데 물이 잘 빠지지 않는 질퍽한 농토가 많았기 때문에 수렁골이라고 불렀고 그 지명이 ‘수농’에서 ‘화농’으로 변했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도 수렁고지라고 알고 찾아오는 사람들이 있기에 마을 표지석에 화농마을과 함께 수롱고지라고 새겨 넣었다고 한다.

화농마을 정점용(81) 씨는 “왜 수롱고지냐면  저 쇠골에서 여기 들어오려면 길이 막 수렁 같았데. 그래서 마을 사람들이 마누라 없이는 살아도 장화 없이는 못 산다고 그랬다고 하드라고”라고 말했다.

배수가 안됐기 때문에 경작이 어려워 ‘녹두밭 윗머리’라고도 불렸으며 마을 사람들은 물을 가둬놓는 논에 따라 중반, 하반이라고 구분했다고 한다. 중반에 물을 가둬놓고 내려 보내지 않으면 하반에는 물이 없기 때문에 농사가 잘 안됐다고 한다.

수렁고지 마을은 도로에서 바라봐도 움푹 들어간 지형인데 마을사람들은 이를 일컬어 ‘조리’ 형국이라고 기억하고 있었다. 곡식을 이는 데 쓰이는 조리처럼 움푹 들어간 지형이라는 뜻이다.

심금예(82) 씨는 “마을에 서뜸이라는 데가 조리로 쌀을 일어서 뜨는 데라고 해서 잘산다고 그러드라고. 쌀을 씻어서 조리로 일면 쌀이 하나 되니까 사람이 모여서 이사를 오고, 조리로 하나 되어서 쏟으면 동네 사람들이 하나하나 나가고 몇 사람만 산다고 그랬어”라고 말했다.

또 마을에는 부자였던 집이 망한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었다. 심금예씨와 신성마을의 최준용(81) 씨로부터 ‘유방수뜰’에 얽힌 이야기를 들었다.

화농마을 표지석. 수롱고지라고 써있다.

‘물고드래’라고 불렸던 들판을 ‘유방수뜰’이라고 불렀는데 옛날에 ‘유방’이라는 사람이 높은 지대에 자리 잡고 살았다. 물이 안지는 논이 많아서 부자로 잘 살았는데 날마다 동냥아치 같은 손님이 와서 밥을 달라고 성가시게 하자, 어느 날 안주인이 쌀을 많이 퍼다 주고 스님을 불러다 방도를 물었다.

그러자 스님이 집 옆의 산줄기를 삽으로 파서 끊으면 된다고 일러줬고 그렇게 하자 산줄기에서 피가 나오는 조화를 일으키더니 집안이 패망해 더 이상 손님이 오지 않게 되었다는 이야기다.

◇ 신성마을의 이야기

죽촌리에서 길을 따라 좀 더 들어가면 신성리가 나온다. 신성리의 신화마을, 대성마을, 신성마을은 모두 1400년경부터 1500년경까지 경주최씨가 들어와 살았다고 전해지는 집성촌으로, 이 중 대성마을이 가장 먼저 생겼고 이후 새롭게 마을을 형성했다는 의미로 ‘새곶’이 신화로, 신대성이 신성으로 바뀌었다.

대성마을에는 큰 성이 있었다고 전해지는데 뒷동산에 ‘대장군성’ 터가 있고 그 주변에 야막재(夜幕山), 군물산(軍物山), 말무덤 등의 지명이 남아 있어 군사기지가 있었던 곳이라는 짐작을 해볼 수 있다.

신성마을 주민 최준용(81) 씨는 “대성에는 풍수지리적으로 대장군좌라는 게 있다고 해. 그리고 야막재라고 부르는 산은 밤에 군사들이 지키는 곳이고 군물산은 군사 물자를 가져다 쌓아놨던 창고가 있는 자리라는 거여”라고 말했다.

깃대배기라는 곳은 신성마을과 대성마을이 두레를 할 때 지신 메고 풍장치고 공동으로 작업을 할 당시 모여서 놀았던 공터를 말한다. 두 마을이 한 마을처럼 공동으로 살았던 옛 풍습의 흔적이라고 하겠다.

신성리는 풍수지리학적으로 비혈(飛穴)이라고 해서 비석이나 상석을 놓으면 안되는 혈 자리가 있는데 마을 사람들의 기억에는 해주최씨가 장군석을 놓아 망해서 나갔다고 전해지고 있었다.

최준용 씨는 “군물산에도 묘가 수십 기가 있는데 묘만 있지 비석은 안 세워. 그런데 해주최씨가 시제 지내는 묘가 있는데 거기다가 장군석 2개를 세워 놓았거든. 그러니까 기가 눌려서 망해버려서 다른 마을로 다 떠나버리고 그 다음에 ‘신성최씨(경주최씨)’들이 와서 동네를 차지하게 됐다는 거야”라고 말했다.

이후 전주이씨, 흥성장씨가 들어와 살았고 이어 다른 성씨들이 들어와 동네가 형성됐다고 한다.

◇ 무동(舞洞)마을의 이야기

구자(九子)리는 본디 지형이 거북이와 같다 해서 ‘구(龜)’자를 썼던 마을이지만 글씨가 어려워 ‘구(九)’ 자로 대신했으며 무동, 구자, 봉곡 마을로 이뤄져 있다.

이 중 무동마을은 풍수설에 의하면 ‘선인무수형(仙人舞袖形)’, 즉 신선이 소매 춤을 추는 형국이라 해서 무동(舞洞)이라는 이름이 됐다고 한다.

신선의 오른손 손바닥 자리라는 마을회관에서 만난 채수생(61), 장세창(78), 허덕강(85) 씨는 무동마을 주변에 신선의 머리와 양쪽 손 등의 형상이 그대로 남아 있다며 그림을 그려가며 설명했다.

또한 마을 위의 방죽은 가랑축이라고도 부르는데 목마른 말이 물을 마신다는 명당인 ‘갈마음수’의 형국으로 알려져 있어 오래 전부터 마을이 형성되기 좋은 조건이었다고 한다.

오래된 마을답게 거리제나 지신밟기 등의 무속 신앙이 전해져 내려오다 현대에 이르러 그런 풍습이 끊겼지만 그와 관련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동네 끄트머리에 있는 논 가운데 괴상하게 생긴 소나무가 있는데 마을 사람들은 그 나무를 ‘방풍맥이’라고 하며 안 좋은 것들을 막아준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소나무가 있는 논을 ‘솔배기논’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삼바래기라는 지명에 대해서 장세창 씨는 “철도 옆에 비석에 ‘삼바래기’라고 써있는데 삼이 아니고 ‘산’바래기라고. 뭔 산이냐면 황등산을 바라보는 데라고 해서 전에는 거기 소나무가 꽉 차서 고개를 넘어가야 황등산이 보였어. 예전에 가마니 짜가지고 아버지랑 같이 황등으로 팔러 갈 때 거기를 지나가면 멀리 황등산이 보여. 그래서 산바래기여”라고 말했다.     

정완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