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성, 사찰, 왕릉, 성곽 등 백제의 숨결을 땅속에 묻어둔 채 그 실체를 서서히 드러내

◇ 고도로서 익산의 역사·문화적 가치

사람들은 대부분, 백제의 역사와 문화를 얘기할 때면 거의 공주나 부여를 관련지어 언급하곤 한다. 특히 삼국사기에 기록된 백제의 마지막 수도는 부여다.

이에 반해 익산이 한 때 백제의 수도였던 사실을 명증하는 현상들은 땅 속에 묻혀있거나 산과 들에 나뒹굴고 있었다.

문화재연구소는 반세기에 거쳐 흩어진 유적들을 추적한 끝에 천년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 그 베일에 가려져 있던 신비들을 벗겨냈다.

한 쪽이 붕괴된 채 방치되어있던 미륵산 남쪽의 석탑이 동시대에 축조된 탑들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크고, 무왕대에 지어진 호국사찰 미륵사지의 탑이라는 사실과 나무를 깍듯이 돌을 깍아 세운 독보적 가치가 세상에 알려지기까지, 누구든지 익산이 백제의 옛 수도였다는 사실을 까맣게 몰랐다.

천년 여행을 떠나려는 우리는 고도 익산의 초입에서, 매우 경이로우며 매혹적인 또는 혼란스러운 사실을 대면하게 된다. 백제의 옛 수도로 알려져있는 공주나 부여에는 정사에 기록되어 있는 유물들이 대부분 실존하지 않는데, 정사에서 누락되어 있으나 익산에 실존하는 유물들이 백제의 옛 수도 익산을 가리키고 있다는 사실 말이다.  

고대 사회에서 왕도는 너른 평야와 원활한 수로교통의 여건을 바탕으로 궁성과 사찰, 왕릉, 성곽 등의 기반 시설을 갖췄다.

익산역사유적지구는 익산시 금마면과 왕궁면 일원에 분포한 백제왕도문화유적지를 이르며, 청동기시대 이래 정치문화의 중심지 기능을 수행했다.

미륵산과 용화산을 중심으로 분포하고 있는 미륵사지·왕궁리유적 등 백제문화유산은 7세기 전반, 이 지역이 금강과 만경강, 금만평야를 자산으로 하는 지리적 환경을 바탕으로 고대 정치문화의 중심지로 성장했다는 것과 고대사회 속에서 익산이 차지하는 정치적 역동성, 문화적 정체성 등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문화유산에 깃든 무왕과 선화공주의 설화는 익산역사유적지구가 유형유산 뿐만 아니라 무형유산으로도 세계유산적 가치가 있는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궁장시설·정무시설·정원시설·공방시설 등 다양한 유구가 조사된 왕궁리유적, 목탑 양식을 띤 미륵사지 석탑, 인동당초문 암막새가 처음 사용된 제석사지 등은 7세기 전반 한·중·일 삼국의 문화교류 현황과 백제문화의 국제성을 드러낸다.

백제왕도 유적이 분포해 있는 금마·왕궁면 일원은 익산시 외곽에 위치하기 때문에 고대사회의 문화경관이 온전히 살아 있어 당시의 왕도 모습을 이해하는 데에 절대적인 가치를 지닌다.

또한 미륵신앙을 바탕으로 창건된 세계유일의 삼원병립식 가람 미륵사지, 1400년의 잠에서 깨어나 우리 곁으로 다가온 미륵사지석탑과 사리장엄 등은 백제인들의 독창성과 백제문화의 우수성을 보여준다.

◇ 고도의 역사문화유산 보존·관리 현황

1980년대에 들어와 문화재연구소에 의해 본격적인 조사가 이루어지기 전, 미륵사지에는 6층까지 남은 서탑과 당간지주, 그리고 일부 노출된 서탑 북쪽의 금당지, 동탑지 북편 금당지 초석, 동탑지 북편의 석등 하대석 상면, 서탑과 그 북편 금당지 주변 일대에 식재된 잔디, 그리고 1974년 마한백제연구소에서 발굴조사한 동탑지 주변의 보호철책만이 눈에 띌 뿐 주변지역 대부분은 논과 밭으로 경작되거나 잡초가 우거진 상태로 방치되다시피 했다.

뿐만 아니라 절터 뒤편 미륵산 자락 밑으로는 약 10여 호의 민가가 들어서 있었는데 이 민가의 담장이나 댓돌 중에는 미륵사지의 석재로 추정되는 것들이 많았으며, 심지어는 이곳으로부터 꽤 먼 곳에서도 미륵사지의 석재가 도랑을 건너는 징검다리로 쓰이거나 담장의 석재로 쓰이는 경우도 종종 눈에 띄었다고 한다.

1980년대 이후 본격적으로 실시된 미륵사지·왕궁리유적·제석사지 등의 발굴조사와 삼국유사, 관세음응험기, 대동지지, 미륵사지석탑 출토 사리봉영기 등의 사료연구를 바탕으로 백제왕도로서의 진정성이 확보된다.

이를 바탕으로 지난 2004년 ‘고도보존에관한특별법’이 국회에서 통과됨으로써 이제는 우리 익산지역을 신라의 수도인 경주, 그리고 백제의 수도인 공주· 부여와 함께 옛 수도로서 특별히 보존되고 관리되어야 하는 ‘고도’로 인식하게 됐다.

더불어 익산역사유적지구는 이러한 가치를 인정받아 2010년 1월 유네스코 세계유산 잠정목록 등재, 2011년 2월 공주부여와 통합한 백제역사유적지구 우선추진대상에 선정되었다. 백제의 문화유적이 인류 보편적인 탁월한 문화적 가치를 지닌 세계의 유산으로서 새롭게 조명 받을 수 있는 기회에 한 걸음 다가선 것이다.

현재도 민·관·학계의 다각적인 등재 추진 노력이 계속되고 있어 올해 말까지 등재신청서 작성을 완료하고 2014년에 유네스코에 신청서를 제출하게 되면 이코모스(ICOMOS,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 자문단 등의 현장실사를 거쳐 2015년에는 최종 등재여부가 결정된다.

◇ 지속가능한 보존을 위한 방향

세계유산으로 등재되기 위해서는 해당 유산이 ‘탁월한 보편적 가치’가 있어야 함은 물론이다. 못지않게 중요시되어야 할 점은 등재 당시의 ‘완전성’과 ‘진정성’이 등재 후에도 유지될 뿐 아니라, 더 향상되는 것을 보장받을 수 있도록 유산의 보호와 관리 장치가 반드시 마련돼야 한다는 여망이다.

이런 바람에는 유산 주변부 환경도 함께 보호할 수 있다는 기대가 깃들어 있다.

고도의 보존은 그 자체의 관리만으로는 이뤄지기 어렵다. 경제사회발전과 궤도를 같이해야 하기때문에 도시계획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 또한 물질자료와 도시의 특성이 균형있게 다뤄져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어떠한 경우에도 도시 주민에 대한 고려가 최우선되어야 한다는 점일 것이다.

보존계획은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고고학, 역사학, 건축학, 사회학 경제학, 기술)들이 작성하고, 지역주민들의 지지를 받아야 한다. 그래서 주민들의 참여를 높이기 위한 정보 제공도 중요하다.

그것이 가지고 있는 객관적인 가치에 대한 구성원들의 인식, 이를 위한 설명회·공청회·토론회 등의 홍보활동을 통한 노력, 보존을 위한 종합적인 기준과 정책을 계획하고 실행하며 책임질 수 있는 정책적인 기구 등이 필요하다.

또한 이를 지속적으로 유지하기 위해 지방정부에서는 구체적으로 실현가능한 제도, 투자, 실행정책 등을 만들어야 한다. 이를 바탕으로 주민들이 고도보존의 과정에 중심이 되어야 하며 도시에 영향을 미치는 결정과정에 실질적으로 참여해야 한다.

구체적으로 주민(민)과 행정(관), 관계전문가(학)의 연계체계를 구축하되, 고도의 발전단계에 따라 주체별 역할의 중심역량을 강화하는 것이 급선무다. 고도 육성의 토대가 마련되는 생성기에는 기본방향과 과제, 계획 수립을 비롯한 제반사항을 구축해야 하는 행정 및 전문가 중심의 역할이 가장 필요하다.

고도 보존과 정비사업이 활성화되는 성장기에는 사업시행과 추진상의 현실적인 문제들이 발생하고, 중앙 및 지방행정과 주민간의 마찰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이를 해결할 수 있는 지역내의 중립성과 전문성을 가진 집단이 필요하다.

비로소 고도 환경이 일정궤도에 도달하고 나면 지역 주민들이 중심이 되어 이를 가꾸고 유지하는 역할이 요구되며, 이러한 역할은 궁극적으로 지역주민들이 중심이 되어야 한다. 물론 행정 및 외부전문가, 지역전문가 등의 지속적이고 체계적인 지원과 민-관-학의 안정된 관계를 유지해야 하는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이는 우리 문화유산을 찾아내고 보존하는 것이 풍요로운 삶을 영위해 나가는 데 있어 중요한 의미를 가진 것으로 인식시키는 일이며, 한편으로 색다르고 생소한 지식세계로 우리를 여행하게 하는 편안한 학습의 공간으로, 정신적인 휴식공간으로, 선조들의 숨결을 느끼고 싶을 때마다 찾아가고 싶은 곳으로 만들어 나가는 것이다.

송승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