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살아온 익산의 옛 기억들.. 인심 좋고 살기 좋은 고장의 면모 갖춰
마을 곳곳에 숨은 옛 역사 유적들 다양.. 지역적 특색 맞춘 역사문화도시 발전방향 모색 필요

본지는 지난 2012년부터 원광대학 대안문화연구소(소장 하정일 교수)와 함께 익산지역 각 읍면 지역의 숨겨진 이야기와 역사, 사라져가는 전설에 대한 기억을 기록하고 보존하기 위한 구술사프로젝트를 펼쳐왔다.

이를 위해 지난해 금마, 왕궁, 여산 등 5개 읍면지역 여러 마을에서 소중한 구술기록을 담아 기록했고 이어 올해에는 황등면과 함라면을 비롯해 웅포, 성당, 용안, 삼기, 낭산, 용동, 망성면까지 익산시 서북부와 북부지역에 위치한 9개 면지역의 마을들을 누볐다.

본지는 익산 곳곳의 마을에서 주민들의 생활 풍속이나 구전으로 전해지고 있는 숨은 이야기를 찾아내 지면을 통해 총 18회에 걸쳐 시민들에게 알리고 공유 해왔다.

오랫동안 마을에서 살아온 주민들은 구술에 적극 참여해 주었으며 마을마다 간직해온 수많은 이야기들이 구술사 기록 작업을 통해 빛을 보게 되었다.

오로지 구전과 기억으로 구술된 이야기 속에서 역사적 사실 뿐만 아니라 지역적 향취가 듬뿍 묻어나는 전설과 풍속 등이 발굴됐으며 이를 통해 익산이라는 곳의 문화와 풍토를 다시금 새길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익산 서북부 지역인 황등, 함라, 웅포, 성당, 용안면과 북부지역인 삼기, 낭산, 용동, 망성면으로 나눠 각 지역의 구술사 프로젝트의 여정을 되돌아보았다.

◇ 살기 좋은 자연의 익산

익산 서북부의 여러 마을들을 돌아보면서 느꼈던 것 가운데 하나가 익산이라는 곳이 역사적으로 사람들이 모여살기에 좋은 여건이었다는 점이다.

길게는 청동기 시대로까지 거슬러 올라가거니와 마한시대에는 함해국(咸奚國)의 중심지로 발달했고, 함라면을 비롯한 여러 고을이 인심 좋은 곳으로 널리 알려진 것도 자연적인 여건이 좋았기 때문이었다.

전체적인 지형을 보면 함라산을 중심으로 서쪽으로는 금강이 흐르고 동으로는 멀리 미륵산이 바라다 보일만큼 너른 평야가 발달해 있어 농경 및 군사적으로 안정된 자연환경을 갖춘 곳이다.

웅포면과 성당면은 금강을 통한 수로 교통이 가능했기 때문에 포구를 중심으로 마을이 발달했고, 일찍이 나라의 세곡을 걷어 모아두던 창고가 자리했던 곳으로 알려져 지금까지 고창(古倉)마을, 성당창 등 지명으로나마 유래를 가늠할 수 있었다.

황등면에서는 용산마을의 용산성을 비롯한 성(城)의 흔적과 함께 황등호(요교호)의 유래에서 농경사회가 발달할 수 있었던 환경을 읽어낼 수 있었다.

용안면은 현청이 자리하던 곳으로 읍성이 자리했던 흔적을 마을 주변과 지명 등을 통해 알아볼 수 있었으며, 함라산의 품에 기대인 함라면은 함해국의 중심지로 너른 평야와 산세가 어울린 풍족한 고장으로 예로부터 인심 좋은 고을로 알려져 왔다.

◇ 인심 좋은 익산

함라면은 지금까지도 인심 좋기로 소문이 자자한 고을로서 그 중심에는 함열리에 위치한 삼부자집이 자리하고 있었다.

마을 사람들은 삼부자집에 대한 기억을 비교적 소상히 기억하고 있었는데, 김안균, 이배옥, 조해영 가옥은 스님이 장삼을 펼친 형국인 함라산의 품 속 마을에 스님의 시주 그릇에 해당하는 곳에 옹기종기 처마를 맞대고 들어서 있었다.

1920년대 조사에 따르면 전국에 90호의 만석꾼이 있었는데 그 중 3호가 함라면의 한 마을에 위치해 있었다는 것은 지역적으로 풍족한 마을이었음을 나타내고 있으며, 이들 삼부자집은 으리으리한 가옥을 짓는 것뿐만 아니라 곳간을 풀어 인심을 베푸는데도 경쟁적으로 나선 것으로 유명해 ‘인심은 함라’라는 말을 만들어냈다고 한다.

용안면도 함라면 못지 않게 인심 좋은 고장으로 유명하다. 지금도 백로가 찾아와 노니는 절경을 이루고 있는 마을의 주산(主山)인 무학산에 옛 용안현의 치소가 있었으며 그 주변으로 읍성이 있었던 흔적이 남아 있다.

예전에는 매우 작은 현이었기 때문에 원님이 내려올 때 좌천됐다고 울면서 내려왔으나 워낙 인심 좋고 살기 좋은 고장이어서 떠나갈 때는 서운해서 울고 갈 정도였다는 얘기를 주민들에게서 들을 수 있었다. 

◇ 풍속이 살아 있는 익산

익산의 여러 마을을 돌며 구술사 기록을 하면서 각 지역마다의 특색을 지닌 여러 풍속 및 풍습들을 만날 수 있었다. 환경에 따라 자연스럽게 형성된 주민들의 생활상이 드러나는 이야기들로 보존 가치가 높은 이야기들이었다.

먼저 성당면의 성당마을에서는 포구로 번창하던 마을답게 성당창과 조운선단에 관련한 ‘순풍별신제’에 관련한 이야기가 나왔다.

금강을 내려다보는 마을 뒷산인 황룡산(대명산)에 ‘순풍당’이라는 당집이 있었고 거기에서 정월보름날에 ‘당산별신제’를 모셨다고 했다. 이름 그대로 순풍이 불길 기원해 조운선단이 한양까지 무사히 도착할 수 있기를 비는 제사였다. 순풍당은 현재 터만 남아 전해지고 있으며 명맥이 끊겼던 당산별신제는 몇 해 전부터 마을 주민들의 뜻을 모아 재연하고 있다.

웅포면에서도 역시 ‘곰개나루’라는 포구마을의 독특한 풍습을 들을 수 있었다. 불과 30여 년 전까지도 곰개포구는 전라, 충청, 제주를 비롯해 함경도 원산에서부터 동해와 남해를 거쳐 오는 배들이 드나들던 집산 항으로 연중 성시를 이뤘으며, 금강 변을 배들이 수놓아 장관을 이루던 곳이다. 

주민들은 특히 웅포 굴비가 최고였다고 기억하고 있었는데 직접 만드는 방법까지 소상하게 들을 수 있었으며 풍어와 안녕을 비는 용왕제가 해마다 정월 보름날 크게 열려 주변 무속인들이 “웅포로 돈 벌러 간다”고 했다는 말이 전해지고 있었다.

함라면 수동마을에서는 ‘노소’라는 독특한 마을 질서체제가 현재까지 남아 활동하고 있었는데 326년의 역사를 지닌 자치기구로서 지역사회를 통솔하고 이끌어가는 역할을 했다. ‘상하 분별 못하는 놈’, ‘불효하는 놈’, ‘게으른 놈’을 잡아다 벌을 주는 ‘읍강법’이라는 규율을 시행했는데, 현감이 노소의 승인을 받아 불량배들을 잡아다 벌을 주는 제도였다.

지금도 노소에는 1453년부터 현재까지 모두 발령받은 관리들이 찾아와 인사하고 간 기록이 남아 있으며, 관아와는 별도로 사회질서를 책임지고 있는 초법적인 권위를 가지고 마을의 질서를 유지했다고 한다.

◇ 마을 화합의 익산

익산 서북부 지역의 마을 곳곳의 이야기들 중에서 또 하나의 큰 흐름은 마을 화합을 위한 풍습이었다. 전통적인 농경사회 속에서 협동과 화합은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었기 때문에 여러 마을에서 그러한 풍습에 대한 기억을 만날 수 있었다.

함라면에서는 ‘기세배’라는 민속놀이가 금마면이 아니라 함라면이 원조라는 이야기가 나왔다. 현재 금마면 지역에서 보존되고 있는 전북무형문화재인 ‘기세배 놀이’를 함라면에서는 50년대까지도 활발하게 유지되었으며, 멀리 김제시를 비롯한 이웃 고을에서 구경 오는 사람이 많아 장이 설 정도로 크게 치르는 행사였다.

특히 기세배 과정에서 벌어지는 기싸움은 그 광경이 장관이었다고 한다.

각 마을의 기를 앞세우고 만나 상하관계에 따라 ‘기세배’를 올려야 하지만 서로 자존심으로 오기를 부리며 싸움이 벌어지고 어느 한쪽의 깃발이 꺾여야 끝나지만, 그렇게 한바탕 놀고 나면 마을 간 잔치를 통해 화합을 다지는 농경문화 속의 풍습이다.

함라면 외에도 웅포면에서도 이러한 ‘기세배’와 ‘기싸움’ 전통에 대한 기억을 만날 수 있었는데 이러한 내용을 바탕으로 익산 전 지역 곳곳에 기세배 전통이 널리 자리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었다.

정완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