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불(佛) 2기가 자리한 삼기면은 지게목발노래의 고향..물고기 비 내리고 하룻밤 새 하천이 바뀌던 낭산면
최북단 망성면에는 ‘고기똘’이라 불렸던 어량천이 흘러..용동면은 ‘매화낙지형’, ‘대붕포란형’ 명당자리 많아

구술사프로젝트팀은 작년에 이어 올해에도 익산의 각 마을들을 찾아다니며 숨겨진 이야기와 전설, 역사적인 사실 기록을 채록하고 영상으로 남기는 작업을 하고 있다.

오랫동안 마을에서 생활해온 주민들의 기억과 마을에 남아있는 옛 흔적들에 기댄 작업이었기 때문에 무엇보다 구술(口述)에 적극적으로 참여해 준 주민들의 도움이 컸다고 하겠다.

입에서 입으로 구전되던 마을의 전설을 비롯해 지역의 특색을 나타내는 이야기들을 명맥이 끊기기 전 늦게나마 구술사프로젝트를 통해 두루 살필 수 있었던 것은 다행이었다.

익산이 품고 있는 곳곳의 자연환경과 그 역사적 흐름에서 주민들의 생활 속에 자연스럽게 형성된 문화와 풍속 등을 조사해 기록으로 남기는 것은 익산이라는 지역에 대한 이해와 더불어 진한 삶의 향기를 느낄 수 있는 계기가 됐다.

지난 호에서는 익산 서북부 지역 마을들에 대한 기록을 뒤돌아보았고 이번 호에서는 익산 북부 지역의 마을들을 되짚어 보았다.

대조마을 은행나무

▣ 익산 북부권의 자연환경

삼기면, 성당면, 용동면, 망성면은 미륵산을 기준으로 익산의 북쪽 권역에 위치해 있으며 미륵산에서 뻗어 나온 낮은 구릉과 하천, 개간된 평야들이 주를 이루고 있다.

미륵산의 산줄기가 평야지역에 내려온 높고 낮은 구릉들에서는 낭산산성과 같이 백제시대 부터 방어의 목적으로 사용되던 산성(山城)의 흔적이 지금도 남아 있으며 죽청천과 어량천 등 미륵산을 발원으로 한 하천이 평야지대를 적시며 북으로 흘러 금강에 닿는다.

야트막한 구릉과 숲으로 이뤄진 사이사이에는 농사를 짓기 위한 작은 방죽이 들어서 있었으나 현재는 경지정리와 수로정비를 통해 농사목적의 방죽은 거의 자취를 감춘 상태다. 주민들은 하천이 정비되기 전에는 자주 범람하고 물길이 수시로 바뀌기를 거듭했다고 기억하고 있었다.

예전에는 호랑이, 여우 등 산짐승들이 자주 나타날 정도로 숲이 우거진 곳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에 땔감을 팔아 생계를 이어가거나 대나무 공예품 등을 만들어 생활하기도 했다. 주로 강경장에 내다 팔았으며 함열장이 가까운 마을은 함열로도 다녔다.

농지의 경우 비교적 부족한 편이었으나 방죽의 개간, 얕은 언덕의 개간을 통해 현재는 밭농사와 논농사 경지면적이 크게 확대됐으며 양질의 황토가 분포한 곳으로 유명하다. 현재는 농공단지를 비롯해 삼기산단이 들어서면서 새로운 변화를 겪고 있다.

▣ 백제의 자취가 깃든 삼기면

삼기면에서는 미륵산 서쪽에 위치한 연동리의 연동마을과 석불마을, 오룡리의 검지마을 이야기를 소개했다.

먼저 연동마을에는 ‘태봉사’에 얽힌 전설이 주민들의 기억 깊숙이 자리하고 있었다. 태봉사는 마을이 위치한 ‘태봉산’의 반대편 기슭에 자리하고 있는데 백제시대의 불상인 ‘태봉사삼존석불’이 있는 곳이다. 우리나라 최초의 ‘태실(胎室)’이라고 일컬어지는 태봉산은 고조선 기준왕이 금마에 새 나라를 열고 아들을 얻어 태를 묻은 곳이라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었다.

연동마을이라는 지명은 ‘연(蓮)이 많은 저수지가 있던 곳’이라는 뜻의 ‘연들골’에서 나왔으며, 현재도 연동마을 앞에는 ‘연동제’가 있어 연꽃이 피면 그윽한 향기가 마을을 수놓고 있다.

석불마을 주민들은 보물 제45호 ‘연동리석불좌상’과 밀접한 관련을 갖고 생활해오고 있었다. 연동리석불좌상은 약 천오백년 전부터 현재까지 석불마을에 위치해 있다고 전해지는데, 그 크기와 원각양식으로서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불상이다.

또한 이 석불은 임진왜란 당시 일본군의 진격을 막아낸 호국석불의 전설이 깃들어 있으며 최근까지도 나라에 궂은일이 생길 때마다 땀을 흘려 예고하는 신비한 석불로 유명하다.

오룡리 검지마을은 용이 여의주를 얻기 위해 다투는 ‘오룡쟁주형’의 형국이며 지게목발노래의 고장이다. 검지마을은 마을 앞의 저수지의 이름인 ‘묵지’가 변한 지명이며 방죽 주변으로 마을이 형성돼 있다.

황등 고구마의 원산지로서 질 좋은 토양에 고구마 농사를 많이 지었으며 전북 무형문화재 1호인 ‘지게목발노래’와 함께 농경사회를 이루던 곳이다. 

▣ 황토의 고장 낭산면

낭산면에서는 삼담리와 석천리의 마을에서 만난 주민들의 이야기를 소개했다.

삼담리라는 지명은 세 개의 연못이 있었던 삼지 마을에서 따온 것으로, ‘대메’, ‘삼못’, ‘뒷갓’이라는 방죽이 있었으나 1979년 개간되며 논으로 경작되고 있었다. 그 이유는 1949년 축조된 낭산저수지에서 풍부한 수량을 확보할 수 있었고 수로 개설 등으로 연못의 필요성이 없어졌기 때문이다.

연못을 생활터전으로 살아온 삼지마을 주민들은 ‘물고기 비’가 내렸다고 기억하고 있었는데, 비가 오면 마당에 물고기가 떨어졌다고 했다. 그 현상의 정확한 원인은 알 수 없으나 낭산저수지에서의 용오름 현상 때문이거나 소나기를 타고 헤엄쳐 올라가다 떨어진 것이라고들 나름대로 생각하고 있었다.

석천리에서는 호천마을과 마산마을을 다녀왔다. 호천(狐川)마을은 큰물이 나면 여우처럼 둔갑하듯이 물길이 변하곤 했던 ‘여우내’라는 하천 이름에서 따온 지명이라고 마을 주민들이 말했다. 마산마을은 조선 성종 때 함안군이 정착해 말을 방목해 기르던 곳이라는 데서 따온 이름이었고 백제 때부터 군사들이 머물던 곳이라 창뜰, 진터 등의 지명이 전해지고 있었다.

용동면 화실마을 전경

▣ 광두원과 용동면

용동면에서는 대조리와 화실리, 화배리 등지의 마을 주민들의 구술 기록을 소개했다.

대조리 대조마을은 봉황이 알을 품고 있는 ‘대붕포란형’ 명당이라는 얘기가 전해지고 있었으며 대조마을의 위치가 새의 목 부분이라고 했다. 큰 새 모양이라는 뜻의 대조(大鳥)마을은 원래 ‘행정’이라고 불렀는데 마을 중앙에 큰 은행나무와 정자가 있었다고 한다. 현재 정자는 흔적이 없고 은행나무는 남아 있었다.

화실리의 화실마을과 화배리의 창신마을은 모두 꽃과 관련한 지명으로서 이 근방이 풍수지리학적으로 ‘매화낙지형’ 형국이라는 설이 유력하게 전해지고 있었으며 봄철에 꽃이 많이 피기로 유명한 마을이었다.

화실마을은 ‘광돈’이라는 이름으로 불렸었는데 그 이유는 예전에 벼슬아치들이 쉬어가던 ‘광두원’이라는 원집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현재 마을회관 자리가 광두원이 있었던 곳이라고 전해지고 있었다.

마을 뒷산은 광두원산이라고 불렀는데 이 산 봉우리에는 봉수대가 있어서 함열현과 은진현(강경)의 봉수대를 잇는 곳이었다.

화배리 창신마을의 옛 이름은 온수동이었다. 그 이유는 겨울에도 따뜻한 물이 나오는 샘이 있었기 때문이었는데, 온천이 나올 가능성이 있었기에 원광대학교에서 조사를 나왔으나 온천으로 개발되지는 않았다고 했다.

망성면 교항마을 전경

▣ 어량제와 다리목 마을의 망성면

망성면은 어량리와 내촌리를 다녀왔다. 어량리는 ‘고기똘’이라고 부를만큼 물고기가 많았던 어량천에서 따온 이름이며 주민들은 고기를 잡으러 다녔다고 했다. 선사시대 유물이 산포된 지역으로 하천을 따라 선사시대의 사람들이 모여 살았던 곳이었다.

어량리에는 ‘어량제’라는 방죽이 있었는데 그 방죽을 중심으로 제남, 제내 등의 마을이 생겼고 이후에 어량제는 개간돼 논이나 밭으로 경작되고 있다. 특히 일제시대에는 일본인들이 정착해 고구마농사를 많이 지었다고 한다.

교항마을은 본디 ‘다리목’이라고 불렀던 이름의 한자표기로서 마을 앞 강경천에 다리가 놓여 들로 건너다녔던 마을이었다.

지형이 낮은 곳이어서 장마가 지면 물이 차오르곤 했다고 해서 ‘깊으네’라고도 불렸으며 비교적 평야가 많아 천석꾼이 여럿 될 정도로 풍족한 마을이었다. 여산과 강경을 잇는 길목이어서 매일 돼지를 잡을 정도로 흥성대던 마을이었으며 이에 따라 도박이 성행해 ‘모스크바’라는 별칭을 얻기도 했다고 전해지고 있었다.

정완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