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중심지 왕궁터, 당시 생활 내용 증언..
홀로 우뚝 서 있는 왕궁리오층석탑.. 중심 잃지않은 ‘무왕’ 흡사  

익산시는 옛 백제의 왕도로서의 생활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고대 역사문화 도시로 손색이 없다. 그러나 오랜 무관심으로 시민들조차 역사의 흐름과 문화유산의 가치에 대해 관심이 부족해 아쉽다. 그래서 바쁘고 지친 이들도 쉽게 다가갈 수 있는 방법을 모색했다. 이에 본지는 빠르지 않은 걸음으로 쉽게 한 걸음 씩 내딛는 여행담을 들려주고자 여행을 떠났다.

익산이 가지고 있는 소중한 유산과 익산시민으로서 자긍심을 키워줄 수 있는 이야기들, 문화유산의 면면이 품고 있는 아름다운 세월의 흔적들을 독자들과 함께 나누는 시간으로 마련했다.

고도에 이어 세계문화유산으로의 첫 발을 내딛고 있는 지금, 다른 어디에 빗대도 부족하지 않을 ‘역사문화도시 익산’이라는 미래의 부푼 꿈과 설렘으로 담아가겠다.

-편집자 주-

▣ 백제 무왕의 길을 따라

역사적 사료 속에 보이는 7세기의 한반도는 격동의 시기였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백제 무왕이 있다. 무왕이 그 옛날 힘을 쏟았던 왕궁을 돌아보며, 꿈꾸는 백제를 느껴보는 것이란 시공간을 초월하는 경험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미륵사지에서 금마 방향으로 가다보면 금마 터미널을 지나 왕궁리 유적을 볼 수 있다. 다만 차량이 없으면 접근하기가 쉽지 않다는 단점이 있긴 하다. 전국적인 둘레길 열풍에 힘입어 조금은 여유로움을 가지고 이름 그대로 백제의 숨결을 느끼며 따라 걸을 수 있다면, 천년 백제를 거슬러 올라가는 지름길을 발견 할 수 있을 것이다. 차창 밖으로 지나쳤던 풍광들이 고스란히 품고 있었던 수많은 백제의 모습들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금마터미널에서 걸어가다 보면 낯설지만 앙증맞은 이정표 하나가 눈에 띈다.

‘고도리 석불입상’

조만간 복원사업이 진행되는 옥룡천을 사이에 두고 동서로 마주보고 있는 이 불상은 금마일원의 수호신적 성격으로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며, 보물 제46호로 지정돼있다.

국도를 따라 나 있는 샛길을 따라 가보고는 싶지만, 바로 앞 왕궁에 있는 무왕의 숨결이 닿는 듯해, 아쉬움을 뒤로 하고 다음을 기약하며 앞으로 걸어나가 보기로 했다.

‘왕궁리’

그 지명은 옛날에 왕궁이 있었으리라는 짐작을 자아낸다. 하지만,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에서 본격적인 발굴을 시작하면서 백제 무왕시대의 궁성이자 후대에 사찰이었던 곳으로 밝혀졌고, 현재 사적 제408호로 지정돼있다.

▣ 고도를 향하고 있는 유적, 왕궁리

2013년 7월 10일 오후 5시 30분 아직 땡 볕이 쨍쨍한 여름, 바람은 막 장마를 벗어난 습기를 몰고다니며 온갖 시간들의 냄새를 풍겼다. 한 시대를 풍미했을 중심지로서의 영광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조명된 적이 없는 역사의 한 귀퉁이, 거기에 수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을 유물들을 기대하며 한 발 들어섰다.

큰 표지석과 함께 둥근 모양의 유적전시관이 정면에 눈에 들어온다.

무더운 날씨와 함께 뭔가 말하고 싶은 기분 한 뭉텅이와 이를 설명할 수 있는 적절한 단어가 쉽사리 골라지지 않는 산란한 심경 한 뭉텅이, 그리고 당장 이런 내 마음을 들어줄 사람이 없는 아쉬움 한 뭉텅이가 뒤죽박죽 섞였다.

그런 나를 무심히 받히고 있는 너른 평야에는 원활한 수로교통의 여건을 바탕으로 사람들을 불러 모았을 고도가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다. 확 트인 왕궁 앞에 그렇게 덩그마니 한참을 혼자 서 있었다.

비록 아직은 볼품 없는 옥룡천을 뒤로 두고, 너른 평야를 바라보자니 처음 눈에 잘 들어오지도 않았던 우두커니 서 있는 석탑이 크게 들어왔다. 석탑은 사찰문화유산으로 국보 제289호로 지정돼 있지만, 내 눈은 자꾸만 사찰이 아닌 '왕도'의 지킴이로 포착하고 있었다. 격동의 그 시기에 스스로의 중심을 잃지 않고 행복을 누리고 싶어 천도를 단행했던 당시 무왕처럼.

왕궁터는 우리나라 고대 왕궁으로는 처음으로 왕궁의 외곽 담장과 함께 왕이 정사를 돌보거나 의식을 행하던 정전건물지를 비롯한 14개의 건물지와 백제 최고의 정원유적, 금, 유리, 동 등을 생산하던 공방지, 역시 우리나라 최고의 위생시설인 대형화장실 유적 등이 발굴돼 왕궁의 축조 과정과 왕궁에서의 생활 내용을 생생하게 증언해 주고 있었다.

전시관 앞의 왕궁리 유적의 출토 기와를 손으로 만져 봤다. 1989년부터 왕궁리 유적 발굴 조사과정에서 출토된 기와로 건물이나 담장 지붕에 사용된 것이다. 기와는 다른 유물에 비해 출토되는 양이 많고 시대별로 만드는 방법이나 방법을 쉽게 구분할 수 있어서 유적의 연대를 결정하는데 중요하다. 한낱 기와 한 장에 불과했던 것이 시대를 왕래하는 출구가 된다는 사실이 놀랍지 않은가.

전시관에는 왕궁리 유적의 발굴조사 내용을 영상으로 제작하고 중요 출토유물을 전시해 왕궁리 유적의 내용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구성돼 있었다. 유물은 발굴조사 과정에서 출토된 유물중 300여점을 선정해 전시했는데, 왕궁을 상징적으로 나타낼 수 있는 금제품, 유리제품, 수부명 인장와, 전달린토기 등과 함께 연화문 수막새, 각종 인장와와 토기류, 금과 유리제품을 생산하던 도가니 등이 전시돼 있었다. 특히 백제의 기와를 관람객이 직접 만져보면서 기와 제작과정을 살펴볼 수 있으며, 목판찍기 체험도 한쪽에 자리잡고 있었다.

이 날은 어린이날 문화재 그리기 대회 입상작들이 특별전시돼 있었다. 역사의 가운데 아이들이 함께 있어 흐뭇한 입가 미소를 짓게 했다. 물론 저녁 노을을 염두에 두고 늦은 시각에 출발한 탓에 전시관 관람도 빠듯하게 시간에 쫓기며 한 혼자만의 생각이다.

석탑을 그리며, 국사책에서만 보고 들어왔던 수막새 그림을 보며, 흐뭇하면서 한편으로 아이들에게 역사문화의 씨앗을 정성껏 뿌려주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면 너무 거창한가.

▣ 해질녘 노을을 기다리지 못하고 돌아오며..

아는 만큼 보인다.

명지대 유홍준 교수의 말이다. 왕궁리유적을 돌아보며 새삼 곱씹어 보게 됐으나, 돌아오는 길에 멀찌감치 한발짝 뒤로 물러나 생각해 보니 딱히 그에 국한될 필요는 없는 것 같다. 아는 만큼 보이고 보이는 만큼 느끼며 느끼는 만큼 생각하게 되는 것이라면, 그럴수록 차분히, 부족하다고 느낄수록 더욱 꾸준히 알아가면 될 것 같다는 생각이다.

역사를 알아간다는 것.

그것은 당연한 일이면서 재미 또한 있는 일이지만, 머리가 무거워지는 일이기도 하다. 머리가, 그리고 가슴이 무거워질수록 책임 있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

더구나 익산 시민으로서, 고도의 보존·육성과 더불어 세계문화유산으로써 발걸음을 내딛고 있는 지금, 우리 땅에 백제의 역사가 그대로 살아 숨쉬고 있는데, 국외자가 돼야 되겠는가.

많은 시민들이 모두 그 숨결을 느껴봤으면 하는 바람이다.

참고로 왕궁리 유적은 익산역에서 금마, 삼례행 버스(65번, 65-1번)를 이용해 탑리마을에서 하차하거나 41, 60, 61, 62, 63, 64번 버스를 타고 금마터미널에서 하차해 20분 정도의 여유를 가지고 걸어서 도착할 수 있다.

전시관은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개관하고, 1월 1일과 매주 월요일 휴관한다. 무료이며 단체관람은 사전 예약을 받고 있다고 한다. 문의는 859-4632로 하면 된다. 

송승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