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1년 창립된 ‘이리시 남녀 중고교 학생미술연구회’ 동문들이 모여 익산 미술의 부흥을 일구다
익산시 미술계를 이끄는 100여명의 회원들.. 후학 양성 위해 지도 및 아트전, 청소년 미전 개최 

한국전쟁이 끝나고 얼마 후의 익산은 전국 어느 곳보다 배움의 열기가 가득한 곳이었다. 학교들이 곳곳에 생겨나자 전북 각 지역에서 학생들이 통학열차를 타고 이리역(익산역)으로 모여들었던 것. 익산시의 인구가 ‘낮에는 10만 밤에는 5만’이라는 말이 생겨날 정도였다 하니 교육의 도시라는 익산시의 전통은 그때부터 시작한 셈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어디나 마찬가지였던 넉넉하지 못한 형편에 삭막한 환경, 불안한 사회 속에서도 익산이라는 도시는 학생들의 꿈과 열정이 넘치는 공간으로 발전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런 젊은 에너지는 예술의 바람을 몰고 왔다. 문학, 합창, 그림 등 각종 학생모임이 결성돼 활동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 중 ‘이리시 남녀 중고교 미술연구회’는 현재 익산 미술의 밑거름 역할을 톡톡히 해낸 단체로 꼽힌다. 순수 학생 예술 단체로 1961년에 창립된 후 매년 미술전시회를 열어 각박한 사회 속에서 시민들에게 문화적인 혜택을 제공했다. 이 단체를 거쳐 숱한 미술인들이 탄생했으며 이들은 이후 익산지역 문화 발전과 후학 양성도 도맡다시피 하고 있다.

익산 문화의 버팀목으로써 현재도 매년 동문회원 전시회와 학생전시회를 개최하며 익산 미술의 미래를 밝게 비추고 있는 아트회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 스케치북과 물감에 빠진 청춘

아트회는 지금으로부터 48년 전인 1961년 ‘이리시 남녀 중고등학생 미술 연구회’로 첫 발을 내딛었다.

동중, 이리고, 이리여중·고, 남성여중·고, 남성중·고, 원광여중·고, 원광중·고, 이리중, 이리상업고교까지 당시 미술반이 없었던 이리공고와 이리농고를 제외하고 전 학교의 학생들이 참여했으며 미술에 대한 뜨거운 열정을 나눴다.

회원들은 정기적으로 모여 미술대회 연습도 하고 그림에 대해 교류하는 시간을 가졌다. 당시 익산에서는 학생들이 체육활동이나 문학, 합창부 등 활발하게 활동이 이뤄지고 있었으나 전체 학교를 아우르고 열성적인 참여로 활발한 활동을 펼치는 동아리는 미술연구회가 유일했다.

또한 창립한 해 9월 3일부터 11일까지 익산시내에 있는 공보관에서 ‘제1회 학생미전’을 열고 시민들에게 작품들을 선보이는 활동도 시작했다. 익산 최초라고 할 수 있는 미술전시회가 미술연구회 학생들의 손에서 탄생해 매년 익산시민들에게 가뭄에 단비 같은 문화적 혜택을 안겨주기 시작한 것이다. 

현재 익산예총 회장이며 아트회 회장을 맡고 있는 김영규 화백은 “오직 그림을 좋아하는 학생들이 활동했던 바람직한 모임이었으며 대한민국 최초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라며 “스케치북과 물감을 들고 농고 방죽에서 모여 그림을 그렸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고 말했다.

◇ 방죽미술학교의 추억

현 익산대학교 자리에는 과거 이리농업고등학교가 있었고 학교 안에는 최근까지도 ‘농고방죽’이라고 불렸던 저수지가 있었다. 아름다운 풍경을 자랑하던 농고방죽은 ‘미술연구회’의 모임 장소이자 미술실습장으로 적격이었으며, 학생들은 수업이 끝나기 바쁘게 자신의 화구를 챙겨 찾아와 그림을 그리곤 했다. ‘방죽미술학교’라는 이름이 자연스럽게 붙었다.

남녀 학생들이 모여 서로의 그림에 대해 의견을 나누고 도움을 주기도 했던 그곳은 또한 청춘과 낭만의 공간이기도 했다. 미술대회를 준비할 때는 서로가 경쟁 상대이자 스승이나 마찬가지였고 어깨동무를 하고 미술이라는 길을 함께 걷는 친구이기도 했다.

그렇게 ‘방죽미술학교’에 모인 예비 화가들은 자신들의 꿈을 키워나갔고 또한 각종 전국미술대회에 다수가 입상하는 성과를 거두며 익산 미술의 도약을 알리는 신호탄이 됐다. 초창기만 해도 주변 지역에는 미술대학조차 없을 정도로 열악한 환경이었지만 이들이 보여줬던 그림에 대한 열정은 ‘방죽미술학교’에 추억처럼 남아 있다.

김영규 화백은 “다 같이 어려운 시절이었지만 낭만과 젊음이 충만한 시기였다”며 “그때 함께 방죽에서 그림을 그렸던 동무들이 미술인으로 성장해 익산을 비롯해 우리나라 미술을 이끌게 됐다”고 말했다.

◇ 아트회로 귀환한 화가들

‘이리시 남녀 중고교 학생미술연구회’는 창립 후 22년간의 활동을 끝으로 맥이 끊기고 만다. 당시 사회가 미술부 활동을 지원하지 못하는 분위기였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중단된 것. 하지만 방죽미술학교가 배출한 많은 미술인들은 그 열정을 잊지 앉고 어엿한 화가가 되어 돌아왔다. 그리고 ‘미술연구회’ 동문들의 모임인 ‘아트회’를 중심으로 현재까지 익산의 미술과 청소년 미술활동의 뒷받침을 위해 활동하고 있다.

초창기 회원들은 서울을 비롯해 전국 미술대학에 들어가거나 대학에 갈 형편이 못되면 독학으로 그림을 그렸다. 이 후 원광대학교에 미술대학이 들어선 후에는 더 많은 학생들이 배움의 길을 걸을 수 있었다.

대학 공부를 마치고 화가가 되어 고향으로 돌아와 개인적으로 작품 활동을 하거나 교수, 교사로 미술활동을 이어나가고 있던 회원들이 ‘방죽미술학교’의 추억으로 다시 뭉치게 된 것은 1976년, ‘아트동문전’에서부터다. 현재까지 예술계의 핵심으로 활동하고 있는 면면인 20명의 회원들이 출품한 전시회가 기업은행 2층에서 열렸다. 익산예총회장 김영규 교수를 비롯해 원광대 미대 학장인 김수자, 섬진강화가 송만규, 김동수, 이형구, 양병호, 이동근, 박종만 등등 쟁쟁한 미술계 인사들의 모임이었다.

이후 첫 전시회를 끝으로 활동을 이어오지 못하다가 1995년 다시 아트회가 재창립되며 본격적인 활동을 이어간다. 솜리문화예술회관 개관기념 초대전을 시작으로 매년 ‘아트전’을 열고 있으며 또한 2003년 부터는 청소년 미술동아리 육성을 위해 학생미술전시회와 함께하는 전시회를 열며 익산 미술의 미래를 위한 후학 양성에도 힘쓰고 있다.

정완창 기자

▣ 아트회 김영규 회장

“ 익산 미술의 탄탄한 토대 만들겠다 ”

중학교 1학년에 미술반에 들어가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지 50여 년이 지났다. 그동안 단 하루도 붓을 놓은 적이 없을 정도로 달려온 것은 그 시절 ‘방죽미술학교’로부터 비롯된 열정이 식지 않았기 때문. 익산예총의 회장으로 미술뿐만 아니라 예술계를 아울러 이끌고 있는 김영규 화백의 가슴 속에는 처음 붓을 들었을 때부터 변함없이 이어진 설렘이 가득하다.

 “중학교 1학년 때 모임이 탄생했으니 창립 멤버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농고방죽의 추억이나 동문들과 있었던 일들이 모두 생생하다. 지금도 그때와 같은 마음으로 그들과 함께 할 수 있어서 행복하다.”

수업이 끝나면 바로 미술실로 가서 붓을 잡았고 수도 없이 농고방죽에 나가 그림을 그렸던 그는 홍익대학교 미술대학에 들어가 서양화를 전공했다. 졸업 후에는 서울 신일고에서 미술교사로 지내다 고향을 찾아 내려왔다. 그리고 이후에는 작품활동을 하면서 이일여고 미술교사로 재직하다 원광대, 호원대, 전북대, 우석대 등 대학 강단에 서서 후배 미술인들을 지도했고, 현재도 전주대학교에서 왕성한 지도활동을 하고 있다.

그는 “이일여고에 있을 때 조그만 개인 작업실을 만들었었는데, 학생들이 엄청 많이 찾아와 작업을 할 수 없을 정도였다. 배우고자 하는 그런 열정이 예뻐서 제자들을 가르치는데 심혈을 기울였고 그 제자들이 성장해 작가로 활동하는 것을 보면 보람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개인전 4회, 단체전 451회, 국제전 22회를 출품했으며 국전과 미술대전 등에서 18회 이상 입선 및 특선, 예술문화대상 공로상, 익산예술문화대상과 창작상 2회 등의 수상경력이 있다. 현재는 익산예총의 회장으로서 익산 예술을 선두에서 이끌고 있으며 아트회 회장으로서 시민들을 위한 전시회를 준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