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룡천을 사이에 둔 천년의 아름다운 사랑
섣달 그믐날 밤 한 번 만나 애틋한 사랑 나눠

▣ 250여 발걸음 떨어진 애틋한 사랑

23일 오후 5시, 주중 계속 비가 온다는 소식에 서둘러 길을 나섰다.

‘고려시대 만들어진 불상이기 때문인가’ 백제의 왕도로서 익산을 조명하는 취지와는 다소 거리가 있지만, 보물 제46호로 지정된 익산의 문화유산이기에, 더불어 풋풋하고 살랑거리는 사랑이야기를 떠올리며 저절로 흐뭇한 미소를 짓게 하기에, 마음 한 켠에 설렘을 품었다.

금마면 소재지에서 왕궁리 유적전시관 쪽으로 가다보면 오른편으로 들판에 금마를 남류하는 옥룡천이 있다. 이를 사이에 두고 동서로 약 200미터 떨어져 마주 보고 있는 두 구의 석불입상이 있는데 이것이 바로 오늘의 주인공이다.
싱그러운 사랑이야기를 들어볼 요량에 나직한 발걸음으로 조심히 다가갔다. 하지만 석불은 등을 돌린 채 불청객을 쳐다볼 생각도 없어 보인다. 순간, 지척에 연인을 두고 다가가지 못한 애통함에 서늘하게 휩싸인다. 순간 초대받지 못한 손님이 돼버렸다.

한 바퀴 돌아 얼굴을 맞대고 서, 못다한 애틋한 사랑을 이어주려 왔다고 눈으로 이야기해 본다.

떨어진 거리 약 200미터. 짧은 발걸음으로 256걸음의 두 석불 사이를 사랑의 전도사라도 된 양, 예닐곱 번 왔다갔다 하며 나름의 방법으로 달래 보니 그제서야 믿어주는 눈치다.

견우(좌)와 직녀(우)의 모습

▣ 익산의 ‘견우와 직녀’

남녀 간의 사랑에 예라고 지금과 다름이 있으랴.

옥룡천을 사이에 두고서 있는 두 석상은 얼굴 표정이 꼭 부부의 모습이다. 한 쪽은 입이 반쯤 벌어져 곱게 웃고 있는 여인네의 얼굴이고, 맞은 편 쪽은 수염까지 새겨 놓은 남자의 얼굴이다. 그래서인지 두 석상을 두고 옥룡천과 관련 지어 마을 사람들 사이에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강물이 꽁꽁 얼어붙는 추운 겨울 섣달 그믐날 밤이 되면, 두 석상이 얼어붙은 옥룡천을 건너 서로 만난단다. 만나서 일 년 동안 마주 보고 있으면서 말 한 마디 못 건넨 회포를 푼다. 새벽닭이 우는 횃소리를 듣고 둘은 다시 제자리로 돌아간다. 그리고는 일 년 내내 마주보면서 서로 다시 만날 날을 손꼽아 기다린다는 이야기이다.

바로 익산의 ‘견우와 직녀’다.

당시에는 다리가 없었기에 바라만 보고 있었음을 생각하면 안타깝기 그지없다.

얼마나 애틋한지 모른다. 지금은 보기도 힘들어진 연애 편지 한 장을 부모님 몰래 주고 받으며 눈 한 번 제대로 마주치지 못하던 설레임이랄까.

떨어져 있어도 목소리를 들을 수 있고 보이지 않아도 언제든지 금새 확인할 수 있는 지금에 비하면, 손수 꽁꽁 얼어붙은 강물을 지나고 나서야 두 손 꼭 잡고 서로를 확인할 수 있었던 그 때는 얼마나 애틋했을까.

한 숨 여유가 있기에 잠시 예전 연애시절 회상도 한 번 해 본다.

지금은 다리가 있어 매일 만날 수 있는 것일까. 몰래 밤마다 만나고 있는 것일까.

수염이 나 있는 남자 석불이 입꼬리를 살짝 올려 웃고 있다. 한참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보는 이도 몰래 같이 웃고 있다.

▣ 마을을 지키는 수호신

4미터가 넘는 큰 키. 조선시대 쓰러져 방치된 것을 조선 말 익산 군수로 부임해 온 최종석이 현재의 위치에 세웠다 한다.

당시 쓰인 ‘석불중건기’ 비석에 따르면 금마는 익산의 구 읍자리로 동·서·북의 삼면이 다 산으로 가로막혀 있는데, 유독 남쪽만은 터져 있어 물이 다 흘러나가 허허하게 생겼기에 읍 수문의 허를 막기 위해 세워진 것이라 한다.

또 일설에는 금마의 주산인 금마산의 형상이 마치 말의 모양과 같다고 하여 말에는 마부가 있어야 하므로 마부로서 인석을 세우고 말이 물을 마시도록 음수전을 놓았다고 한다. 옛날 삼례에서 익산으로 이르는 도로는 현재의 도로가 아니라, 이 옥룡천의 제방 길을 타고 가는 길이었다고 한다. 고도리 석불이 서 있는 이곳은 금마의 입구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는 셈이다. 이곳에 말이 물을 마실 수 있는 음수대를 설치해 놓고서, 지나가는 사람들이 쉬어갈 수 있도록 한 것으로 보인다.

어느 설이든 고도리 석불입상은 자연과 교감하면서 이루어진 마을지기이며 수호신임에 틀림없는 것 같다. 자연에 순응하면서 살아가려했던 옛 사람들의 소박함과 그들의 안녕과 평화를 지켜 주는 있음을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 친근함 속 믿음직함을 가진 든든한 버팀목

둘 다 단정하게 앞으로 모아 가볍게 맞잡고 있는 두 손은 진지한 설법이나 무얼 암시하는 자세는 아니다. 이제 보니 오히려 허리쯤에서 마주잡은 손은 정중하게 예를 갖추어 귀한 손님이라도 맞이하려는 자세다. 입고 있는 옷 또한 고행으로 허름해진 마의가 아니라, 소맷부리에서부터 발등에 닿는 도포자락이다. 우리 고유의 예복이라고 보아도 무리가 없다.

눈부신 화려함과 멋은 없지만, 고개 한 번 돌리지 않고 서로를 바라보는 우직함과 순정이, 다른 한편으로는 왠지 모를 친근함이 느껴지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

유난히 짧은 목 때문에 얼굴과 어깨가 거의 닿아 있는 모습 때문인가.

사계절 변해 가는 주변 들판과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삶 속에 함께하는 지킴이처럼 서 있는 고도리 석불입상.

아직까지도 고스란히 남아 마을 사람들을 지켜주는 고도리 석불입상이 듬직하다.

앞으로도 계속 고도리 석불입상이 영원토록 그 마을에 남아 서로에 대한 사랑도 지키고, 사람들에게 하나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기를 바라본다.    

송승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