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광대 대안문화연구소, 2년 간 익산 전역을 누비며 구술사(口述史) 채록 및 영상 작업에 막바지 구슬땀
구술사를 기반한 영화·소설·드라마 등 2차 컨텐츠 제작 계획.. 익산 역사문화 관광에 실질적 도움 될 것

구술사는 지역에서 살아온 주민들의 기억을 통해 아래로부터 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복원하는 작업이다. 공식 정사(正史)에는 배제돼 나오지 않는 생활, 풍속, 문화 등 소중한 삶이 녹아 있는 이야기를 기록으로 남기고 이를 통해 지역의 역사와 문화의 풍부한 컨텐츠를 재생산 할 수 있는 계기로 만드는 것이다.

본지는 지난해부터 원광대학교 대안문화연구소(소장 하정일 교수)와 함께 익산의 오랜 전통과 생활문화를 기록하고 남기기 위한 구술사프로젝트를 시행해왔다. 이미 많은 기억들이 소멸되다시피 한 상황이라 늦은 감도 있었기에 시급을 다퉈 한 마을이라도 더 찾아가기 위해 노력했다.

구술사프로젝트팀은 작년 8월부터 현재까지 익산의 15개 읍·면 지역 197 곳의 마을을 찾아다니며 천명이 넘는 마을 주민들을 만나 직접 이야기를 듣고 녹취, 영상 촬영 등을 통해 기록으로 남기는 작업을 해왔다. 지난해에는 금마, 여산, 왕궁, 춘포, 함열까지 다섯 읍·면 지역을 찾은 구술사 작업의 결과물로 ‘익산 구술사-첫번째 이야기’를 펴냈으며, 이어진 작업으로 올해에는 10개 면지역을 두루 찾아다니며 이야기를 건져 올려내고 있다.

본지는 구술사 작업 과정에서 그동안 총 43회에 걸쳐 구술된 이야기를 지면을 통해 소개하며 함께 호흡을 맞춰왔으며, 구술사프로젝트에 대한 홍보와 시민들의 공감대를 불러일으키는 역할을 해왔다.

이에 구술사프로젝트가 마무리를 향해가고 있는 시점에서 그동안 온갖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마을을 찾아다니며 소중한 이야기들을 발굴하고 세상에 내놓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한 주인공들의 이야기를 소개하며 지면으로의 소개를 마무리하고자 한다.

◇ 하정일 교수

“구술사는 문화도시 익산의 첫걸음이다”

원광대학교 대안문화연구소장 하정일 교수는 구술사프로젝트의 구상부터 실행까지 총 지휘를 맡아온 인물이다. 폭넓은 인문학적 지식과 전통문화에 대한 감수성이 익산이라는 지역에 품고 있던 애정으로 발현해 구술사프로젝트로 이어졌다.

하 교수는 “익산은 전근대부터 전해 내려온 전통문화와 현대문화가 복합적으로 혼존하는 지역이다. 이것이 바로 익산의 문화적 잠재력이다. 구술사 작업은 익산의 잠재력인 문화원형을 보존하기 위해 구상하고 실행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익산시를 경주시와 같다고 비유한다. 구술사 작업을 통해 고조선에서 마한, 백제로 이어지는 이야기를 수 없이 채록할 수 있었고 이러한 이야기들이 훼손되지 않고 주민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졌다는 데 감탄을 금치 못했다. 이러한 문화자원을 하루 빨리 발굴해 현재적 가치와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 구술사 작업이 지닌 목적이라고 밝히고 있다.

하 교수는 “어느 한 이야기를 꼽을 수 없을 만큼 소중한 이야기들을 수집했다. 옛 익산의 중심인 금마, 여산, 왕궁을 비롯해 일제수탈의 현장인 춘포와 오산, 함라와 함열에서는 한 때 익산의 발전을 주도했고, 웅포와 성당은 금강 생활권으로 독특한 생활문화를 형성했던 지역이다. 익산 안에서도 여러 문화가 각기 다른 삶의 방식이 뒤섞여 있었다”고 말했다.

◇ 박태건 교수

“익산의 가능성 느꼈다”

원광대학교 박태건 교수는 구술사 작업의 준비 과정에서부터 익산의 가능성과 구술사 조사의 필요성을 발견했다. 구술사 조사가 본격적으로 시행되기 전인 2011년부터 조사팀을 꾸려 금마·여산·왕궁의 35개 거점마을을 조사하며 경험을 쌓았다.

박태건 교수는 “전주의 한옥마을, 전라감영 복원, 완주의 음식, 김제의 일제수탈 등 저마다 지역성을 찾으려 앞 다투고 있는 상황에서, 이러한 지역성을 상품화시키는 것보다 구술사를 통한 문화원형 복원이 진정한 문화도시로 발전시킬 수 있는 방법이라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그는 구술사 조사를 진행하면서 내륙지방으로 여겨졌던 익산이 금강을 비롯해 바다, 만경강 등에서 내륙과 강변문화가 공존하는 지형적·문화적 독창성을 가지고 있음을 발견했다. 백제 고도에서는 익산의 흥망성쇠와 관련한 이야기들을 주워 담으며 이러한 독특한 익산의 문화를 발굴·복원하는 것이 위대한 문화도시로 발전할 수 있는 계기라는 것을 체감했다.

그는 “금마면 지역에서 발굴한 이야기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큰 배가 왕래하고 미륵사지와 관련한 이야기들에서 당시 지형이 현재와 달랐다는 것을 유추할 수 있었다. 이러한 구술사 채록을 통해 금마면에서 ‘지속가능한 개발’의 가능성을 발견했다”고 밝혔다.

좌로부터 장윤준 연구원, 이호형, 이순영, 이동혁 조사원.

◇ 장윤준 연구원

“사기꾼이라고 의심받을 정도였다”

장윤준 연구원은 원광대 대학원생이며 대안문화연구소 연구원으로서 구술사 조사의 일선에서 활약했다. 한 곳의 마을이라도 더 찾아가기 위해 노력하고 조사마을 사전조사 및 질문지 작성 등 가장 많은 업무를 해낸 구술사프로젝트의 일꾼이다.

장 연구원은 “솔직히 누구도 알아주지 않고 마을 주민들의 협조를 구하기도 어려워 정말 힘들고 괴로웠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어떤 마을에서는 사기꾼이 아니냐는 의심도 받을 정도였다. 그래도 조사를 통해 익산에 대한 애정도 생기고 정말 보람 있는 작업이었음을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고향이 서울인 그는 2백개 마을에서 천명이 넘는 주민들을 만나며 익산이라는 지역에 대해 폭넓은 이해와 애정을 갖게 됐다. 여산면에서 찾아간 한 마을에서는 10가구가 채 남지 않아 몇 년 후 역사와 전통이 있던 마을이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안타까움을 가지기도 했다.

장 연구원은 “가끔 타 지역 손님을 모시고 구술사 조사를 통해 익혔던 익산의 명소들을 소개하면 익산의 문화에 감탄해 마지않는다. 밥집과 상점이 즐비한 전주 한옥마을보다 문화적 잠재력을 크게 느낀다는 얘기다. 그런데 익산 시민들이 오히려 과소평가하고 있는 것 같아 아쉽기도 하다”고 말했다.

◇ 구술사 조사원들의 이야기

“인생의 터닝포인트가 됐다”

구술사 조사에는 학부생을 비롯한 조사원들의 땀이 뒷받침 했다. 전혀 모르는 마을을 찾아 처음 만나는 주민들에게 여러 이야기를 듣는 것은 매력적이면서도 어려운 일이었다. 충분한 사전 조사와 구전에 대한 이해, 생활풍속, 지명과 지형, 풍수지리, 옛 어휘 등 단순히 듣고 기록하는 작업이 아닌 조사원의 소양에 따라 구술의 내용의 질이 달라질 수 있는 문제였기 때문에 많은 공부가 필요했다.

원광대 국어국문학과에 재학중인 이동혁 조사원은 “어르신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 자체가 좋은 공부가 되는 매력적인 프로젝트라고 생각한다”며 “구술조사를 마칠 때 대부분 ‘더 많이 알려주지 못해서 미안하네’라는 어르신들의 말씀을 들으며 정성과 성의를 느낄 수 있었고 그런 밑바탕에 깔린 것이 구술이 아닌가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순영 조사원은 “삼기면 채산마을에서 만난 할아버지께서 일본에 탄광을 다녀오셨다는 이야기가 제일 기억에 남는다”며 “익산의 많은 마을을 찾아다니며 익산을 사랑하는 시민으로서 익산을 알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된 것 같다”고 말했다.

원광대 국어국문학과 학생인 이호형 조사원은 “문전박대를 당하기도 하고 환영받기도 하면서 여러 사건이 많은 작업이었다”며 “그동안 조사를 해오며 듣고 기록한 많은 이야기를 활용해 지역사회의 발전에 도움이 되는 기업을 만들고 싶다는 인생의 목표가 생겼다. 언젠가는 익산이야기, 전북의 이야기가 큰 자산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정완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