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릉의 숲길을 거닐며 무왕과 선화공주의 사랑 느낄 수 있어
백제의 문화유산임과 더불어 도심 인근 힐링의 공간으로 적격

▣ 단순하지만 소박한 맛, 대왕릉

익산 시내에서 무왕로를 따라 익산 IC 방면으로 15분 정도를 달리다 보면 좌측에 익산쌍릉을 가리키는 이정표가 보인다.
이정표를 따라 이른바, 백제의 숨결 익산 둘레길 중 무왕길 코스를 지나가다 보면 도로에서도 금방 커다란 능의 모습을 알아챌 수 있다.

이곳 쌍릉 앞 익산 둘레길은 KBS가 선정한 아름다운 길 100선에 선정되기도 했다. 가을 코스모스 꽃길 만큼의 향기로움은 아니지만, 무더위가 한풀 꺾인 탓인지 햇살 속 여름의 싱그러운 기운이 기분 좋게 느껴진다.

쌍릉을 처음 마주하는 경우, 초등학교 소풍 때나 가 봤던 공주 무령왕릉처럼 거창한 왕릉의 문화유적지 같은 느낌은 없어 허탈할 수 있겠다. 그렇다고 명절 때 벌초하러 가는 할아버지 산소의 느낌은 더더욱 아니다.

관리사무소 앞 주차장에서 안내표지판을 따라 대왕릉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봉분도 그리 높지 않고, 오히려 별다른 치장 없이 단순한 맛이 소박하게 다가온다.

신라 시대의 왕릉과 비교하자면, 그 규모가 빈약하게 느껴질 법하지만 백제 시대의 왕릉 중에서는 큰 편에 속한다. 높지 않은 봉분에 비해 옆으로 넓게 만들어진 것이 특징이다.
어쩌면 당시 백제의 문화, 특히 무왕의 성품을 반영한 것은 아니었을까도 싶다.

왕릉임에도 현재 내부는 현재 들어가 볼 수가 없다. 발굴 당시, 이미 도굴돼 부장품은 거의 남아 있지 않았으나 당시의 돌방 안에서 비교적 완전한 모습의 나무 널이 출토돼 국립박물관에 보존돼 있었는데, 6·25전쟁 중 파손됐다가 지금은 복원돼 국립중앙박물관에 보관돼 있다.

▣ 멀리 떨어져.. 애틋함이 있는 소왕릉

떨어져 있는 만큼 만나고자 하는 마음도 애틋했으리라.
만나지 못하고 바라만 보다, 결국 참지 못해 발길을 재촉하듯 소왕릉으로 향한다. 그 길목은 아름드리 소나무 길이 조성돼 솔향이 은은하다.

대왕릉과 약 200미터 가량 떨어져 소나무 길을 통해 남쪽에 소왕릉으로 불리는 무덤이 위치해 있다. 대왕릉에 비해 아담한 크기의 소왕릉은, 그 위치와 소나무가 주위를 감싸 포근한 느낌이 드는 것이 확실히 다소곳하고 여성스러운 맛이 난다.

백제 무왕의 묘로 추정되는 대왕릉의 모습

합장을 하지 않고 멀찌감치 떨어져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전해지는 이야기와는 달리 무왕과 선화공주의 사이가 좋지 않았던 것일까. 아닐 것이다.

무왕의 무덤이라 추정되는 대왕릉의 입장에서 보면, 안쪽 아늑한 공간을 부인에게 내어준 것이 은근 사내다운 멋이 있어 보인다. 설화 속 이야기지만, 당시 무왕은 그의 연인을 위해 자신을 희생할 줄 아는 멋진 사내였으리라.

설화 속 백제무왕과 선화공주의 사랑은 그 과정도 드라마틱했지만, 죽어서도 사랑의 믿음을 보여주는 듯하다. 그것이 비록 진실이 아닐지라도, 서로 바라보고만 있는 무덤의 형태처럼 단순하지만 영원한 사랑.

선화공주의 묘로 추정되는 소왕릉의 모습

흡사 고도리 석불입상처럼 떨어져 있는 모습이 자아내는 애틋함.
사람들은 그들의 영원한 사랑을 믿고 싶은지도 모른다. 급속도로 변해가는 유행가 가사 같은 사랑보다는 이곳 쌍릉에서 무왕과 선화공주의 그윽한 사랑을 떠올리며 미소를 지어보는 것도 좋은 경험이 될 듯하다.

▣ 백제왕도 유산의 하나, 사적 제87호

익산 쌍릉은 모두 부여 능산리 고분 돌방과 같은 형식으로 만들어져 백제 말기인 7세기 전반의 형식이며 부근의 미륵사지가 백제 무왕 때 창건되었음을 감안하면 무왕과 왕비의 능묘일 가능성이 높다고 전해진다.

1916년 발굴한 결과 쌍릉의 구조는 부여 능산리에 있는 백제 왕릉과 동일한 형식에 속하는 판석제 굴식 돌방으로 밝혀졌다. 조사의 유일한 결과는 대왕묘 안에서 목관의 일부가 발견됐다는 것이다. 목관을 복원 한 결과 나무관은 바닥 면보다 위쪽 면이 약간 넓고 뚜껑의 윗면은 둥근 모양을 하고 있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또한 관 고리에는 8쪽의 꽃잎을 가진 연꽃무늬가 있었던 것도 확인됐다.

유물과 현실의 구조 및 형식이 부여 능산리 고분과 비슷해 백제 후기의 것으로 추정되며, 현재 사적 제87호로 지정돼 있다.

백제의 다른 왕들이 부여 능산리 고분군 일대에 모셔져 있는 것에 비해, 무왕의 능은 그가 새로운 도읍으로 경영하고자 했던 왕궁리 지역과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자리하고 있다.
죽어서도 지키고 싶을 만큼, 무왕의 익산에 대한 애착이 느껴지는 부분이다.

▣ 여유 만끽, 힐링의 공간

대왕릉과 소왕릉을 뒤로 하고, 숲길을 걸어 나가면 선화 광장부터 오감생태공원, 수변정원 등이 펼쳐진다.
무왕과 선화공주가 감격의 재회를 했다고 생각하니, 산책로를 혼자 걷는 기분이 왠지 외롭게 느껴지기도 한다. 연인과 함께, 가족과 함께라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듯하다.

문화유적지로서 백제의 역사와 더불어, 무왕과 선화공주의 로맨스도 다시 한 번 되새김 해볼 수 있었던 곳, 익산 쌍릉.
뜨거운 햇살 속에서도 높게 솟아 있는 소나무 사이로 호젓한 가운데, 한껏 여유로운 순간을 즐길 수 있었던 것 같다.

두 개의 왕릉과 함께 무왕과 선화공주의 설화를 모티브로 만들어 놓은 주변 공원이, 도심에서 금방 벗어나 여유를 즐길 수 있는 힐링의 공간이랄까. 

송승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