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금산 속 고즈넉한 품.. 백제의 모습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관망지

동남측 전경

▣ 서동 무왕의 발자취 따라 걷는 길

쌍릉에서 북쪽, 무왕의 어린 시절을 떠올리며 쌍릉길을 따라 걷는다.
삼정원을 지나 아스팔트 길이 끝나고, 구불구불 오솔길에 들어서면 서동이 뛰어놀던 오금산 자락이 어느새 얼굴을 내밀어 반긴다.

익산 토성이 자리 잡고 있는 오금산은 백제 무왕의 어린 시절이었던 서동이 마를 캐며 뛰어놀던 곳이라고 전해진다. 서동이 어머니를 지극한 효심으로 섬기면서 마를 캐다가 다섯 개의 금덩이를 얻어 오금산이라 불려졌다는 것.
마를 캐고 놀던 서동은 없지만, 제법 시원한 솔 숲 바람이 마치 서동이 함께 숨바꼭질 하듯 살랑거리며 귀를 간지럽힌다.

차가 겨우 한 대 지나갈 정도의 오솔길을 15분 정도 걸어가다 보면 쌍릉을 가리키는 표지판을 만난다.
표지판을 뒤로하고 안쪽으로 산길을 걸어 들어가면, 그 옛날 야생 마가 가득 있었을 법한 산자락에는 천수답에 고개 숙인 벼들이 익어가고 있어 느낌이 색다르다. 여문 나락들은 살랑살랑 몸을 흔들며 어느새 깊어가는 가을을 노래하고 있다.

언뜻 보면 여느 산자락과 별반 차이가 없어 보이는데, 어머니 품처럼 아늑한 기운이 느껴진다. 마를 캐서 홀어머니를 모시며 자란 곳이어서 일까. 어린 서동의 지극한 효심을 담고 있는 오금산을 오르며 코 끝이 찡해 오는 감상에 젖어든다.
어린 서동이 뛰어놀며 자라났던 공간, 후일 백제 중심지로서 익산을 지켜 내기 위해 축조한 토성에 당도했다. 1,400여년전의 백제의 숨결을 느껴보기로 한다.

▣ 지형적으로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던 토성

익산 토성은 오금산 정상에서 남쪽으로 작은 계곡을 둘러싸고 있는 산성으로, 얼마전에 남문이 있던 자리와 성문 밑으로 개울물이 흐르도록 했던 수구자리, 그리고 건물이 있었던 자리가 발굴조사에서 확인됐다.

다만 지금은 성벽의 형태가 거의 남아 있지 않거나 수풀과 대나무가 무성하게 우거져 안내판의 설명 없이는 그 형태를 온전히 알아볼 수 없다. 남쪽 입구에는 돌로 쌓여 있는 성벽의 윤곽을 조금이나마 알아볼 수 있고, 이외에는 성벽이라고 느껴지지 않는 자연 그대로의 산등성이와 언덕, 우거진 수풀과 나무 뿐이다.

북쪽의 미륵산과 남쪽의 왕궁터를 두고 중요한 자리에 위치해 있는 성곽 치고는 그 규모가 왜소해 보인다.
그러나 석축 성벽을 따라 산등성이에 오르면, 시원한 바람결에 단번에 움츠러든 생각을 씻어낼 수 있다.

북쪽 미륵사지는 울창한 나무 사이로, 금마면을 비롯해 멀리 왕궁리유적까지는 탁 트인 경관으로 한 눈에 들어온다. 당시 전략적으로 요충지였음을 짐작케 하는 지형이다.
마를 캐며 뛰어놀기만 한 것이 아니라, 성벽에 올라 백제의 위용을 한 눈에 바라보며 서동은 대왕의 꿈을 꿈꾸었나 보다.

지금은 대나무 숲이 무성해 알 수 없지만, 성 내에서는 발굴조사 당시 토기와 와편 등의 유물이 출토돼 이를 토대로 축성시기를 백제시대 6세기 말 또는 7세기 초로 추정하고 있다. 당시 익산지역이 백제의 중심에 있었다면 크고 작은 전투를 치러 냈던 천연의 요새였을 것이다.
산등성이를 타고 오르는 적군들, 이를 막아내기 위해 분주했을 성곽의 병사들, 서로 치열하게 맞서 왔던 그들이 아직도 보이지 않게 지켜주고 있는 듯, 성루에 올라 금마를 바라보고 있는 마음이 평화롭기만 하다.

격세지감이다.

산등성이를 따라 성벽을 한 바퀴 돌다 보면 울창한 수풀 사이로 한 발자국씩 옮길 때마다 메뚜기가 따닥따닥 소리 내며 무수히 뛰어오른다.

마를 캐러 온 서동을 저렇게 반겼을까? 성곽을 둘러보며 나라와 백성의 안위를 걱정하는 무왕을 저리 호위했던 걸까? 쉬지도 않고 뒤따른다.

둘레 690미터의 아담한 토성은 이름 그대로 대부분 흙으로 만들어졌고, 남문지에만 석축을 해 힘들이지 않고 자연 그대로를 이용하며 자연과 조화롭게 살았던 당시 백제인들의 지혜를 엿볼 수 있다. 이렇게 만들어진 후 오랫동안 관방시설로서 사용됐을 것이다.

남쪽의 왕궁터를 수호하기 위한 천연의 요새로서 토성은 훌륭하게 임무를 수행했으리라.
백제시대의 성곽 유적으로서의 위용이 새로이 느껴진다.
익산토성의 또 다른 이름 하나는 ‘보덕산성’이다. 이 이름은 고구려 마지막 왕인 보장왕의 서자 안승이 유민들을 모아 멸망한 고구려의 부활을 꿈꾸며 금마저에 세운 ‘보덕성’에서 유래했다.
당시 고구려의 역사가 새로이 시작될 수도 있었을 만큼, 익산 지역의 입지 조건과 위상이 한 시대의 중심지로서 손색이 없음을 보여주는 것이 아닌가.

▣ 사적 제92호로 지정된 익산 토성

익산 토성은 1963년 1월 21일 202,215㎡의 면적에 690m의 둘레가 사적 제92호로 지정됐다.
그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아 사적으로 지정됐으나, 현재 정문인 남문지만 석축을 한 흔적이 남아 있을 뿐, 우거진 수풀에 성 내부를 엿볼 수 없어 아쉬움이 남는다.

당시 지리적 요충지로서, 오늘날 백제 무왕길의 한 가운데에 있는 역사 유적지로서 그 위용을 찾아야 한다는 바람이다.

추석 명절에 맞춰 조상들의 묘와 선산을 찾아와 벌초를 하고 둘러보는 것처럼 주기적인 관리와 관심이 더해진다면, 그 가치가 더욱 빛을 발하지 않을까.
성벽을 따라 산등성이에 오르기 전까지 안내 없이는 흔적을 제대로 알아볼 수 없는 입구의 모습 보다는, 서동의 발자취와 치열했던 전투의 흔적, 백제의 생활 모습이 남아 있는 토성의 모습이 찾아오는 이들에게 그 숨결을 더욱 진하게 느낄 수 있게 해주지 않을까.      

송승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