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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도익산 기행 아홉번째. 입점리고분군

▲ 백제시대 지역 중심세력 귀족의 무덤, 한 시대의 중심지 증명

토끼 잡다 우연히 발견돼.. 백제문화 고스란히 안고 있어
지리적 요충지 입점리.. 익산지역이 당시 중심지였음을 확인

▣ 발굴 당시 그대로, 입점리고분 전시관

익산 시내에서 군산 서수 방면으로 군익로를 따라 10㎞ 정도 달리다 서수에서 함라 방면으로, 함라에서 웅포 방면으로 이정표를 따라 10㎞ 정도를 더 가면 입점리고분군의 표지판을 확인할 수 있다. 표지판 안내에 따라 입점고분길에 들어서면 야트막한 언덕 위에 자리잡은 전시관이 보이기 시작한다.

도착하면 먼저 전시관을 둘러보며 고분의 형태와 제작 방법, 출토된 유물 등을 살펴보고 나서 고분군을 찾길 권한다. 눈으로 확인하기에 앞서 배경 지식을 쌓아 놓으면 보다 풍부한 시각을 가지고 고분을 들여다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더불어 때에 맞추면 전시관 관리담당자의 자세한 설명도 보너스로 들어볼 수 있다.

전시관 안에 들어서면 마치 무덤 안에 촛불 하나 켜있는 듯 고즈넉한 분위기다. 가운데 전시된 금동관모, 금동관대, 금동신발, 금귀걸이, 목걸이 아래 바닥은 발굴 당시 무덤 바닥을 재현해 유리로 돼 있어 그 느낌이 더하다.

금동관모는 완전치 않은 형태로 전시돼 있는데, 왕족이나 귀족들이 썼던 관 위의 장식품이라 한다. 금동관대나 금동신발 모두 당시 일반 평민들은 할 수 없었던 것들이어서 이것들이 발견된 무덤이 일대 지방을 지배했던 귀족 세력이었음을 나타내 준다. 이는 일본의 후나야마 고분 금관과 매우 비슷해 당시 일본과의 교류를 짐작케도 한다.

틀을 먼저 만들어 주조하는 형태로 만든 귀걸이나 장신구는 ‘당시 기술로 가능했던 일이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정교하고 화려했다. 더구나 귀한 금만으로는 만들기 어려워 동을 섞었다는 점은 더욱 놀라웠다. 고분에서 발견 당시의 금동관모나 금동신발을 보면 약간 푸른 빛을 띠고 있는 것이, 순수 금이 아니라 다른 물질을 섞어 만들었다는 사실을 반증한다.

특히 노리개는 다른 고분군에서는 볼 수 없는 특이한 유물이다. 현재까지도 이어지는 귀금속 가공의 뛰어난 기술을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보석의 도시 익산답다.

당시 신라나 가야의 고분에서도 입점리 1호분의 유물과 비슷한 예가 많아 5세기경 백제의 활발한 대외교류와 함께 금강유역에 위치한 익산지역이 백제의 대외적인 창구 역할을 담당하며 왕도의 중심지였다는 사실을 추정하는데 뒷받침이 된다.

금강 일대의 고분군들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전시물 앞에서 금강이라는 큰 강을 끼고 그 일대가 주요 지역으로 번성했었음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었다. 분명 익산도 왕도로서 내지는 백제 중심지로서 빛나는 영광을 누렸으리라.

전시관 내에 고분을 현장 그대로 조형해 놓은 모습에 관은 찾아볼 수 없다. 발굴 당시에도 관은 없었지만 부식된 못이 남아 있어,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관과 함께 시신이 있었음을 짐작케 한다. 특히 못 끝에도 은장식을 한 것을 보면 세심한 정성이 돋보인다. 한편으로는 분명 일반 백성의 무덤은 아님을 재차 확인할 수 있다.

참고로 입점리고분 전시관은 대중교통으로도 방문이 가능하다. 다만 익산역에서 35번, 35-1번 버스를 이용해 입점리고분 전시관 입구(서면 삼거리)에서 내려서 1㎞ 정도를 이정표 따라 걸어서 들어와야 한다. 42번 버스를 타면 웅포면 소재지에서 내려 20~30분 정도를 걸어야 도착할 수 있다.

▣ 우연한 기회에 세상 빛을 보게 된 고분

“이곳에 오시는 함라나 황등 사시는 어르신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때 당시에는 놀 것이 아무 것도 없어 산과 들을 뛰어다니며 노는 게 다였지요. 그러다 어느 날 토끼가 굴 속으로 들어가는 걸 보고 그걸 잡으려고 불을 피우고 돌을 치워내며 발견된 것이 고분이래요”

이 또한 전시관 관리담당의 설명이다. 입점리고분군은 1986년 이 마을의 한 고등학생이 산에서 칡을 캐다 발견됐다고 알려져 있다. 칡을 캐러 나선 고등학생이 토끼굴을 발견하고 호기심에 파다가 우연히 발견된 것이다. 이에 당시 익산군청 공보실에 신고하고 문화재청의 발굴 조사가 시작돼 총 21개의 고분과 유물들이 세상에 드러나게 됐고, 현재 사적 제247호로 지정돼 있다.

전시관을 나오면 뒤편에 고분군이 있는 그대로 펼쳐진다.
제일 먼저 바로 앞에 발굴당시의 모습을 복원해 놓은 고분이 눈에 띈다. 웅포리 백제 무덤떼 중 하나이다. 자연석을 그대로 사용해 만든 고분을 복원하기 위해 발굴 당시의 고분에서 자연석마다 번호를 매겨 고스란히 그대로 가져와 복원했다고 한다.

먼저 벽을 쌓고 지붕을 덮고 통로를 만들어 내통이 가능한 굴식돌방무덤으로 보존상태가 가장 양호하며 크기는 지름 약 16미터에 높이가 2미터 가량 된다. 내부는 한 사람이 아니라 세 사람의 시신이 안치됐던 것처럼 세 개의 널이 있다.

이 외에도 역시 웅포리에서 발굴 조사된 돌널무덤 4기와 좌측 건너편에 북방식과 남방식으로 구분돼 복원된 고인돌도 확인할 수 있다.
입점리고분군은 공주의 무령왕릉보다 한 발 먼저 만들어졌다. 특히 죽어서 안치되기 전에 미리 무덤을 만들고 입구를 따로 내어 외부와 소통이 가능하게 만든 굴식돌방무덤에서는 당시 백제인의 지혜를 엿볼 수 있다. 다른 의도가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미리 들어가 볼 수 있었다는 것은 죽음에 대해 겸허히 받아들일 줄 아는 지혜로움이 아니었을까.

▣ 웅포 곰개 나루와 함라산을 끼고 있는 요충지

금강변을 따라 자리 잡은 입점리.

현재는 금강 하구둑이 있지만, 옛날에는 바닷물이 마을 어귀까지 들어오는 때도 있었다고 전해지는 마을이다.

백제시대 당시 웅포의 곰개 나루는 3대 포구 중 하나로 꽤나 번성했던 백제의 관문으로 중요 거점지였다. 지게를 지고 사람들이 수없이 오가며 물물교환 등이 이뤄졌는데, 그 사람들이 고분군이 발견된 입점리의 함라산 자락을 넘어 지나다녔다는 게 입점리고분 전시관 관리담당의 설명이다.

당시 지리적 요충지였기에 백제 왕도의 주요 세력과 밀접한 관계 속에서 그 일대를 장악하고 성장한 지방 귀족의 무덤이 입점리고분군이라는 것이다.

함라산에서 금강변을 따라 뻗은 산 능선의 꼭대기에서 줄지어 발견된 고분군은 가파른 지형에 위치해 있다. 대부분 토사가 아니라 돌로 돼있는 지형인데다 경사면인데도 불구하고 고분군이 형성된 점은 조금 의아스럽다. 한 번 더 생각해보면 ‘당시의 기술로 비탈진 경사면에 어떻게 무덤을 만들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든다. 더구나 자연석을 차곡차곡 쌓아서 만들기에는 많은 노력이 필요했음을 알 수 있다.

가운데 배수로를 두고 양쪽에 산 능선의 중심부까지 길이 조성돼 있어 발걸음을 옮겨 본다. 생각보다 꽤나 가파른 지형에 숨이 턱턱 차오르지만, 초등 1·2학년 아이들도 척척 오른다는 관리담당자의 말에 다시 힘을 내 올라가 본다.

능선 중심부에 올라 한 눈에 내려다보이는 경관이 절로 감탄을 자아낸다. 중심부에는 98-1호 고분부터 능선을 따라 자그마한 고분들이 줄지어 있으며, 가운데 제일 큰 86-1호 고분 아래로 전시관까지의 전경이 장관이다.

산자락 오른쪽으로 멀찌감치 철탑이 세워진 자리 아래 부분이 여래산성이다. 여래산성은 군산 나포면과 익산 웅포면의 경계선상에 위치해 금강 유역에 한 눈에 들어와 군사적으로 요충지였다고 한다. 백제시대 당나라 소정방이 백제를 공격할 때 쌓은 토성이라는 설명이 덧붙여졌다.
산자락에는 스산하게 물안개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비가 오려는지 쉼 없는 날파리 떼가 땀이 송글송글 맺힌 이마와 얼굴이며 목덜미에 달라붙는 통에 그만 내려와야 했지만, 고분이 밀집해 있고 지역적 특성을 고려해 볼 때 백제시대의 강력한 세력이 자리 잡아 융성했던 요충지였음을 확인하기에는 부족함이 없었다.

송승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