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 이용업계 입문 후 평생 이발사로 살아온 삶
30여년 간 복지시설 이발봉사 꾸준히 실천.. ‘보람’

부송동 동신아파트의 상가. 파랑·빨강·하얀 줄이 휘감고 돌아가고 뒷문에 수건 건조대를 내놓은 한솔이용원에는 사랑의 ‘가위손’이 있다. 평생 이발사로 살면서 자신이 가지고 있는 기술로 어려운 이웃에게 사랑을 베풀고 있는 한상기(62) 씨가 바로 주인공이다.

알루미늄 섀시로 된 미닫이문을 열고 들어서니 옛 모습 그대로를 간직하고 있는 이발소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거울 앞에 놓인 육중한 이발의자와 머리를 숙여서 머리를 감을 수 있도록 돼있는 구조의 타일 세면대. 차례를 기다리는 손님을 위해 놓여 있는 소파와 여러 신문들. 미용가위가 부딪히며 내는 청아한 소리가 타임머신을 타고 시대를 거슬러 오른 듯한 느낌을 갖게 만든다.

“이발소만큼 옛날 그대로인 가게가 없지요. 시대가 변해서 손님이 줄다 보니 새로운 제품이 개발되지 않는 것도 있지만, 도구나 환경에 크게 구애받지 않고 영업이 가능한 분야이기 때문이기도 할겁니다.”

훈훈한 미소로 맞아주는 한솔이용원 한상기 대표는 경력 43년의 베테랑 이발사다. 동산동에서 태어나 가난한 가정에서 자라다 19세 때부터 동네 이발소에서 기술을 배웠다. 공부보다 빨리 기술을 배워 돈을 벌어야 한다는 마음이었다.

처음엔 손님들의 머리를 감기는 일을 맡았다. 당시만 해도 이발소 영업이 호황을 누렸기 때문에 종일 백 명에 가까운 손님들의 머리를 감겨야 했다. 처음 3개월 동안은 돈도 받지 않고 일했으며 가위는 잡아보지도 못하고 손이 물에 불어 지내야 했다.

그는 “이용원에서 제일 힘든 일이 머리 감기는 일이다. 그렇게 3년을 고생했고 어깨너머로나마 기술을 터득할 수 있었다”며 “적성에 맞았던지 포기하지 않고 지금까지 계속하고 있게 됐다”고 말했다.

1978년 드디어 동산동에 첫 가게를 열고 사장이 된 그는 기분이 좋은 것도 잠깐, 갑자기 장발이 유행했고 손님이 줄어들기 시작했다. 기껏해야 학생들의 짧은 머리를 깎아주는 것이 더 많았다. 그때부터 이용업이 쇠퇴하기 시작했고 설상가상으로 미용실이 유행하면서 더욱 힘들어 졌다.

그는 “그래도 자리를 지키고 이발소를 운영하는 것이 내 업이라 생각하고 열심히 했다. 내게 머리를 깎은 손님이 만족할 때마다 보람을 느꼈고 고맙기도 했다”고 말했다.

그렇게 살던 그가 봉사활동에 눈을 뜬 계기는 어느 날 같은 이용업에 종사하는 선배가 봉사활동에 갖다 오는 것을 보고 나서다. 선뜻 다음엔 같이 가자고 제안했던 그는 그때부터 30년 동안 꾸준히 봉사의 손길을 놓지 않고 있다. 창혜원과 자선원, 삼정원, 상록원 등의 생활인들이 그의 단골 손님이 돼 갔다.

그는 가게 영업을 쉬는 날마다 시설을 찾았고 방문 시설이 늘어날수록 쉬는 날은 없어졌다. 월 1회씩 방문해도 여러 곳을 찾다 보니 정작 자신이 쉬는 날이 없어진 것이다. 그래도 머리카락이 자라듯 한번 찾아간 곳은 끝까지 찾아갔다. 피곤하기도 했지만 마치고 돌아올 땐 흐뭇한 미소가 절로 났다.

그는 “자랑할 만한 일도 아니고, 내가 가진 기술로 할 수 있는 일이니까 할 뿐이다. 나보다 어렵고 정이 고픈 사람들이라 꾸준히 찾아가서 만나고 머리도 깎아주고 하는 일이 보람이 됐다”고 말했다.

그가 오래도록 발길을 끊지 않고 찾아간 덕분에 시설에서는 그를 기다리는 사람이 많다. 친지처럼 가까이에서 얘기도 나누고 머리도 잘라주는 그였기에 기술자가 아닌 이웃으로 받아들인 것이다. 시설에서도 그런 한상기 씨를 고맙게 여겨 감사패와 공로패를 여러차례 수여하기도 했다.

그는 “처음에 찾아가면 너무 반갑게 맞아주고 머리를 깎은 다음엔 너무나 좋아들 하시고 고맙다고 즐거워 하신다”며 “오래 다니다 보니 돌아가신 분들이 가끔 있는데 그럴 때마다 마음이 아프다. 계속 머리를 잘라주고 싶은 생각이 크다”고 말했다.

정완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