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조선 준왕이 세 명의 아들 얻고.. 태(胎)를 묻어 태봉(胎峯)
자식을 사랑하는 어머니의 마음으로 창건.. 전북의 불교예술 전수

▣ 흐트러지지 않고 가지런한 느낌

삼기면 연동리의 나지막한 태봉산 북쪽 기슭 아래에 자리 잡은 단정한 느낌의 사찰.

연동리 석불사 앞 사거리에서 망성면 방향으로 718번 지방도로를 따라 약 700미터 정도 가다 보면 이정표와 표지석을 확인할 수 있다. 표지석을 따라 도로에서 좌측으로 난 좁은 포장도로로 접어들면 금세 나무가 우거진 오솔길 사이로 태봉사가 모습을 드러낸다.

사찰 안에 모셔져 있는 삼존석불은 아들을 점지하는 신통한 기운이 있다고 전해져 오늘날까지도 많은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이날 태봉사를 방문한 기자는 아들을 둘이나 두고 있어 내심 딸을 기대하고 있는 터라 조금은 내키지 않는 발걸음이었지만, 영험한 기운에 간절한 마음을 더하면 뜻대로 이뤄지지 않을까 하는 바람으로 마음을 다잡고 들어섰다.

아무도 없는 듯 고요한 가운데, 일주문도 없이 탁 트인 경내 왼쪽 입구에 방문객을 기다리는 듯한 개 두 마리가 낯선 이를 보고 짖지도 않고 빤히 쳐다본다.

초입에 부도와 삼존석불을 발견해 모셨다는 묘련화 보살 공덕비가 세워져 있고, 가운데 대웅전을 중심으로 마당에 석탑과 방문객을 위한 쉼터, 좌측으로 범종각과 종무소가, 대웅전 뒤쪽으로 삼성각이, 우측으로는 요사채가 위치해 있어 균형이 잡힌 모습이 찾는 이의 마음을 한결 안정되게 한다.

더불어 경내 바닥을 빗자루로 쓸었던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는 자그마한 자갈돌과 모래의 가지런한 모습이 경건하게 느껴지기까지 한다.

영험한 기운의 탓인가.

태봉사는 언제 창건됐는지는 정확히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백제시대 양식의 삼존석불과 백제 와당편이 발견된 점으로 미루어 백제 무왕이 익산에 왕궁을 짓고 미륵사를 창건하는 등 무왕의 익산경영시기인 7세기 전반 경에 창건된 사찰로 추정하고 있으며, 현재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12호로 지정돼 있다.

▣ ‘태봉(胎峯)’의 비밀

이름만으로는 정말 큰 산일 것만 같은 태봉산은 실제 나지막한 야산이다. 클 태(太) 자가 아닌 아이 밸 태(胎) 자를 쓰는 ‘태봉’이라는 이름에는 숨어 있는 이야기가 있다.

‘준왕은 천하의 모든 것을 가졌으나 슬하에 아들이 없었다’

고조선의 준왕은 위만에게 쫓겨 지금의 익산 지역에 찾아 들었다. 이곳에 터전을 잡은 준왕은 영험한 곳을 찾아다니며 득남을 위한 기도를 했다. 그래도 아들 소식이 없자 고민에 빠진 왕은 어느 날 깊은 밤 꿈속에서 봉황 한 마리가 갑자기 솟아올랐는데, 왕은 눈이 부셔서 봉황의 모습을 제대로 볼 수가 없었다. 그렇게 솟아오른 봉황이 자신에게 다가왔다가 다시 훨훨 날아 미륵산 넘어 어느 작은 산에 사뿐히 내려앉으며 잠이 깼다. 보통 꿈이 아님을 알아챈 왕은 봉황이 앉은 곳을 찾아 그곳에 석불을 정성껏 모시고 기도에 정진했다. 기도를 시작한지 백일이 지나자 왕비가 임신을 했고, 그 후 왕은 세 아들을 얻었고, 아들들의 태(胎)를 묻은 후 산의 이름을 ‘태봉(胎峯)’이라고 불렀다.

▣ 창건이 전하는 이야기

아들을 위하는 어머니의 마음이 예나 지금이나 다름이 있으랴.

1931년 지금 태봉사의 창건주이며 당시 주지 스님의 어머니인 청송 심씨 묘연화 여인이 삼기면 연동의 본가에서 삼대 독자인 아들의 수명장수를 위해 산신기도를 드렸다고 한다. 이때 산신의 현몽으로 안내를 받아 이곳에 오니 뜻밖에 삼존석불을 발견하게 됐다는 것이다. 이를 계기로 삼존석불이 있는 지점에 작은 규모의 불당을 짓고 절을 세운 것이다.

아들을 위한 어머니의 지극한 정성으로 영험한 기운을 가진 석불이 발견되고 사찰이 창건된 셈이다. 경내 마당에 있는 소원 성취를 위한 촛불 앞에 서 있자니 새삼 숙연해진다.

그 후 1947년에 요사 4칸을 지었고, 1955년에 묘연화 보살의 아들인 박제공 스님이 주지로 부임하면서 절 이름을 지금의 태봉사라 부르게 되었다. 1957년에는 지금의 대웅전을 다시 짓고 이곳에 삼존석불을 옮겨 봉안했으며, 1962년에 칠성각을 지었다. 이 칠성각은 1982년에는 대웅전을 지금처럼 5칸으로 늘려 지었으며, 현재는 삼성각이라 부르고 있다.
최근에는 1996년에 선방과 요사를 새로 지었으며, 현재는 박제공 노스님에 이어 1990년부터 혜안 스님이 주지 소임을 맡고 있다.

▣ 석불의 영험한 기운

대웅전에 들어서면 정면에 세 부처를 새긴 삼존불상이 자리 잡고 있다. 가운데 대좌 위에 결과부좌를 한 석가여래좌상이 방문객의 모습을 내려다보고 있다. 흡사 그 눈빛이 자비로운 석불이 아니라, 아들을 점지해 줄 만한 기운이 있는지를 확인하는 듯하다.
득남을 간절히 바라고 있지 않기 때문인가, 쉬이 자비로운 미소를 보이지 않는다.
오른쪽에는 연꽃가지를 쥐고 있는 대세지보살입상이 위치해 있고, 왼쪽에는 감로수 병을 들고 있는 관음보살입상이 서 있는데 키가 작은 것으로 봐서는 동자승일지도 모르나, 눈매가 예사롭지 않다.

삼존석불의 좌우로는 각각 이름을 적어 소원을 비는 촛불과 연꽃 모형이 빼곡하게 들어 차 있다. 지금까지도 석불의 영험함이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는 것을 실감하게 하는 광경이다.

옛날 백제 시대 때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제각각 무엇인가를 바라고 원하는 마음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태봉사 삼존석불 앞에서, 나름의 바람을 합장해 전하고 대웅전을 나왔다.

▣ 불교예술의 성전

오른쪽 요사채에는 ‘영산작법연구보존회’와 ‘한국불교전통예술원’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마침 주지 스님이 절 내부를 이리저리 분주히 다니시는 것을 보고, 조심스레 말을 붙였다. 영산작법이 무엇인지에 대한 물음에 바쁘신지 죽은 이의 명복을 빌기 위해 드리는 불공에서만 볼 수 있는 독특한 불교무용이라 하시며 사람 좋은 웃음만 짓곤 서둘러 자리를 떠나버리신다.

죽은 사람을 극락으로 보내는 천도의식에서 부르는 불교음악인 범패에는 소리 이외에 춤이 포함되는데, 이때의 춤을 가리켜 작법이라 한다. 영산작법은 전북지역의 문화예술적인 특성을 지니고 있는데, 춤을 출 때 쓰는 고깔의 낙관에 잉어가 그려져 있어 무속적인 요소가 가미된 것으로 보인다. 불교에서 잉어는 밤에도 눈을 뜨고 있으므로 수행자로 하여금 잠을 자지 않는 물고기처럼 항상 부지런히 정진하라는 뜻을 나타낸다고 하는데, 실제 태봉사 범종각에는 큼지막한 북과 짝을 지어 매달려 있는 잉어가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송승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