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의 숨결 무왕길 한 가운데.. 서동생가와 마룡지 숨은그림찾기
마 캐던 용의 아들 서동이 훗날 무왕으로.. 그 자취 관심으로 이어져야

◇ 익산의 어제를 걷다, 무왕길

백제 무왕의 흔적을 따라가 보는 길, 익산 쌍릉에서 미륵사지를 거쳐 서동공원까지 이어지는 익산의 둘레길 제3코스인 무왕길은 마한에서부터 백제까지를 한 눈에 관통하는 길이자 고도 익산의 어제와 오늘을 동시에 바라볼 수 있는 역사의 길이다.
무왕길 한 가운데 위치한 서동생가터에서 왕궁리유적까지는 직선거리로 1.5km, 익산토성까지 1km, 익산쌍릉까지는 1.4km 정도다.

진정 백제 무왕 서동이 태어나 자랐다면, 40여년 동안의 재위기간 동안 30년 이상을 부여에서 보낸 무왕이 그 마지막을 보내려, 아니면 다시 한 번 부흥을 꿈꾸며 내려 왔던 것일 터. 그 이유야 어찌 됐든 무왕의 익산에 대한 강한 애착을 문화유적 곳곳에서 엿볼 수 있다.
익산 시내에서 익산 IC 방향으로 가다 보면, 금마 사거리까지 가기 전 왼쪽 서동생가터를 나타내는 큰 이정표가 눈에 들어온다.

◇ 마룡지의 전설

이정표를 따라 서동생가터에 도착, 그러나 백제 무왕이 나고 자란 흔적은 쉽게 찾아볼 수 없다.
대신 ‘연방죽’이라는 넓은 못이 방문객을 맞는다. 말 그대로 ‘연꽃이 자라는 못’.
그 한쪽은 ‘마룡지’라 불리며 바로 서동의 어머니가 검은 용과 통정해 서동을 잉태했다는 설화가 전해지는 곳이다. 마룡지의 동쪽 편에서는 초석과 백제 시대의 기와가 다량으로 발견돼 이곳이 서동생가가 있던 곳이라고 알려져 있다.

삼국유사 무왕조에서는 무왕의 출생에 대해 ‘제30대 무왕의 이름은 장(璋)이고 그의 어머니는 과부로 서울 남쪽 연못가에 집을 짓고 살았는데, 연못 속의 용과 관계하여 장을 낳았다’고 전한다.

7~8월 한여름에 연꽃이 만발하는 연방죽의 한쪽에 위치한 마룡지는 일제강점기 때 농업용수로 쓰기 위해 연방죽을 확장하면서 연방죽과 하나가 됐다고 한다. 그래서 지금은 하나의 못이나 다름없게 됐지만, 그 안쪽에 마룡지의 흔적이 남아 있고 그곳에 서동생가터가 있다. 이정표를 따라 들어서서 둑을 따라 이어진 길 안쪽에 참나무와 대나무가 우거진 곳이다.

조선시대의 지리서 신증동국여지승람에도 ‘오금산 남쪽 백여 보 되는 자리에 연못지가 있다. 세상에 전하기를 서동대왕의 어머니가 축실했던 곳이라 한다’는 기록이 있어 그 신빙성을 더해준다.

이날 현지에서 그 모습을 찾지는 못했지만, 1,400년된 우물인 용샘이 집터 주변에 남아 있는데 무왕이 어릴 적 식수로 사용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주변 마을의 이름이 용정마을인 이유를 여기에서 찾을 수 있다.

◇ 오금산에서 마를 캐던 서동

우리에게 ‘서동요’로 더 익숙한 백제 무왕 서동.

‘서동요’는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4구체 향가로, 백제의 왕자 서동과 신라의 공주 선화가 사랑을 이루게 됐다는 상징적 노래이기도 하다. 오금산에서 마를 캐서 팔아 생업을 이어가던 서동이 신라 진평왕의 셋째 딸인 선화공주와 사랑을 이루기 위해 퍼뜨린 서동요는 선화공주가 몰래 서동을 만나 밤마다 정분을 통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선화공주님은
선화공주님은
남 몰래 정을 통해 놓고
밤마다 임의 품에 안겨 간대요

도무지 흔적을 찾아볼 수 없는 생가터 속, 당시 모습이 아렴풋하다.

서동은 어렵게 생계를 꾸려가면서도 한 여인의 마음을 얻기 위해 정성껏 마를 캐며 노래를 불렀으리라. 오랜 뒤 신라 진평왕의 귀까지 흘러 들어간 노랫말은, 결국 그의 목적을 달성하게 하고.

전해지는 설화 그대로라면, 당시 적으로 맞서 치열하게 다퉈왔던 집안끼리의 이뤄질 수 없는 백제판 ‘로미오와 줄리엣’이었을 터. 애틋한 사랑, 그들만의 로맨스.
비록 미륵사지 석탑과정에서 발견된 창건 내력이 적힌 금판의 발굴로 백제 무왕의 아내는 좌평 사택적덕의 딸이라는 사실이 밝혀지기는 했지만, 삼국유사를 바탕으로 전해 오는 이 낭만적인 이야기는 앞으로도 오래도록 남아 있을 듯하다.

서동의 생가터 또한 지금은 대나무 숲 사이 제대로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흐트러져 있지만, 무왕의 발자취가 곳곳에서 그 가치를 발하듯 오래도록 그 모습을 이어가길 바란다.

◇ 용의 아들, 왕으로 태어나

삼국유사에서 전하는 무왕은 재주와 도량이 헤아리기 어려울 만큼 큰 사람이었다. 그렇기에 설화 속에서도 당대 최대의 스캔들을 일으키며 적국 신라의 공주를 아내로 맞이했으리라. 훗날 백제의 왕이 되어서도 고도 익산의 번영을 꿈꾸며 자취를 남겼다.

왕궁의 유적지를 비롯해 미륵사와 제석사, 쌍릉, 토성 등에는 지금까지도 그의 숨결이 흐르고 있다.

마지막 백제를 일으킬 야망을 품었던 무왕, 용의 아들이 태어나 왕이 됐다는 전설이 마음속에 자리 잡는 이유다.

◇ 무왕의 꿈, 관심과 노력으로 이어져야

무왕의 꿈이자 백제의 희망이었다고 회자되는 익산. 그곳에 서동 무왕이 태어나고 잠든 흔적이 남아, 여전히 고도 익산을 꿈꾸고 있을지도 모른다. 서동생가터에서부터 익산 쌍릉을 지나 미륵사지로 향하는 둘레길을 걸으며, 같은 꿈을 그려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한편으로는, 이곳에서 태어나 다시 돌아왔던 서동 무왕, 그 자취의 처음인 생가터에 대한 관심의 부족이 아쉽다.

이정표 하나와 안내 표지판 하나로는 고도 익산을 꿈꾸던 무왕의 숨결을 그대로 느낄 수 없을 것 같다.
가을 추수가 끝나 비어버린 들판처럼, 여름 내 청초한 모습으로 피었던 연꽃이 진 자리에 남아 드리워진 연 줄기들이 연못 한가득 인데도, 쓸쓸한 기운이 감돈다.
물가에 가지를 늘어뜨린 나무와 대나무 숲만이 덩그러니 방문객을 맞이하는 모습이 외롭게 느껴진다.                                     

송승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