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량한 벌판 위 가람배치와 격자형 기초 장초석 모습 드러내
종합정비계획 수립돼.. 천도 확인할 수 있는 문화유적지 기대

◇ 조금씩 나타나는 절터의 모습

지난 여름 몇 그루의 소나무와 외로이 솟아 있는 초석, 논밭으로 경작돼 흔적을 찾아볼 수 없던 절터였던 황량한 벌판이, 천년 세월의 바람을 헤치고 그날의 영광을 재현할 수 있을까.
왕실사찰로서, 천도와 함께 창건했을 만큼 중요한 의미를 부여했고 간직했을 절터.

절을 짓고 수없이 거닐었을 백제 무왕, 제석사는 그의 안식과 힐링을 위한 공간이었을까.
제석사지 종합정비계획이 순차적으로 진행되며, 차츰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제석사지를 지난 4일 오후 다시 찾았다.

왕궁면 궁평마을에서 제석사지를 향하는 길 입구는 여전히 그대로였다.
그러나 이정표를 따라 들어간 자리에는 종합정비사업 안내판과 함께 누구나 쉽게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모습을 드러낸 목탑지와 반듯하게 정비가 완료된 금당지가 눈에 들어왔다.

안내표지판 없이는 그 흔적을 제대로 알아볼 수 없었던 여름에 비해서는 정비사업이 시작돼 제법 절터로서의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모습이 반갑게 방문을 맞이했다.

◇ 모습을 드러낸 가람배치와 초석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목탑지의 심초석은 오랜 세월을 견디며 여전히 주위 소나무를 호위로 해 우뚝 서 있다. 특이한 점은 거적에 뒤덮여 잘 보이지 않았던 목탑지 모서리의 장초석이 눈에 띈다는 점이다.

초석은 기중으로 전달된 상부 구조의 하중을 기단부에 전달하는 장치다. 땅을 단단히 다져 기단부를 만들었어도 초석을 사용한 독립기초 방식에서는 초석이 침하되거나 이동하게 되면 상부 구조의 변형으로 이어지고 이러한 현상이 장시간 지속되면 건물의 붕괴를 초래하게 돼, 장초석과 석재를 사용한 격자형 기초를 사용한다.

목탑지에서 모습을 드러낸 장초석은 모두 5기가 남아 있다. 유심히 살펴봐도 왕궁리유적이나 미륵사지에서 발견된 장초석처럼 선명한 ㄱ자형 홈이 세월의 흐름 탓인지 명확하게 드러나지는 않는다.

그렇지만 전에 보지 못했던 장초석이 목탑지 군데군데 자리하고 있는 모습에, 머리 속으로 그 위에 목탑이 세워지고 있다.
뿐만 아니라, 가운데 금당과 강당을 둘러보며 동서로 길게 뻗어 있는 회랑을 거니는 무왕의 모습이 아련하다. 분명 홀로 사색에 잠길 수 있는 공간이었을 터.

제석사지는 백제의 전형적인 1탑 1금당식 가람배치로 이뤄져 있다. 남쪽 중문지를 들어서면 북쪽으로 목탑이 먼저 서 있고 그 뒤로 금당지가, 그 뒤로는 강당지, 승방지가 일렬로 서 있으며 남쪽과 동서쪽으로 회랑을 두고 있는 형태다.

미륵사가 동양 최대의 규모로 3탑 3금당의 형식이었다면 제석사는 단독 사찰로 그 규모가 만만치 않다. 1탑 1금당의 형식임을 감안할 때 동서회랑간의 중심거리가 95.8m이고 중문의 중심부터 목탑지 중심까지는 36.4m, 목탑지 중심에서 금당지 중심까지는 41.7m로 대규모의 사찰이었으며, 왕실사찰로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음을 짐작케 한다.

현재 금당지는 정비가 완료돼 깔끔하게 정돈돼 자리하고 있다. 그 너머로 강당지와 승방지 터에는 아직 농가와 밭이 그대로 들어서 있다. 좌우 역시 논길과 농가, 비닐하우스 등이 그대로 있어 제석사지의 전체적인 구조를 한 눈에 파악하기는 무리다.

앞으로 종합정비사업이 차질 없이 진행되면 2022년에는 주변 농가와 토지 등을 포함해, 입구 중문지부터 일렬로 목탑지, 금당지, 강당지, 승방지가 모습을 드러내며, 좌우로 긴 회랑지와 동서건물지 자리를 확인할 수 있다.

짧지 않은 시간이다.

허나 1,400여년을 지나 지금까지 이어져 온 절터와 유물들을 두고 볼 때, 천도를 결심해 결국 익산에 다다른 무왕이 국가의 부흥과 백성의 안녕을 기원하며 백제의 부활을 꿈꾸고 기다렸던 것처럼, 고도 익산을 지키기 위해 창건했던 왕실사찰의 부활을 기다려 보는 것도 당시 백제와 무왕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하나의 방법이 될 듯하다.

◇ 종합정비계획

1998년 5월 11일 사적 제405호로 지정된 제석사지는 1993년 시굴조사에서 1탑1금당의 전형적인 백제 사찰임에 확인됐다. 이후 2007년부터 2012년에 걸친 발국조사를 통해 목탑지, 금당지, 강당지, 회랑지 등 사역의 정확한 규모를 확인했다.

그간 발굴조사와 종합정비계획에 따른 토지매입이 이뤄지며, 본격적인 정비를 위한 발판이 마련됐다.

정비가 완료된 금당지를 비롯, 목탑지와 강당지, 승방지, 좌우의 회랑지 등도 서서히 그 면면을 드러내려 준비 중이다.

아직은 논밭과 비닐하우스, 몇 채의 가옥들이 자리하고 있지만, 사업계획에 따라 건물지 정비와 함께 주차장, 전망대, 탐방로, 배수로, 안내판 등이 설치되고 수목과 잔디를 식재하고 편의시설까지 갖춰지면, 여느 문화유적지 못지않은 명소가 되리라 기대한다. 

송승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