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세기 한반도는 격동의 시기.. 그 중심에 서 있는 백제 무왕
번영을 꿈꿨던 백제와 무왕의 흔적.. 왕궁리유적부터 제석사지

◇ 백제 무왕에게 걸어가는 길

지난달 26일, 미륵사지 복원 착수라는 역사적 순간에 발맞춰 수 천 년의 세월을 거슬러 올라가 새롭게 태어날 석탑의 모습을 머릿속에 그리며, 벅찬 가슴을 그대로 가지고 왕궁으로 향했다.

격동의 세월을 겪으며, 백제의 부흥과 번영을 꿈꾸며 무왕이 천도를 단행하고 경영했던 왕궁, 임금으로서 백제 무왕이 부활의 발판으로 삼으려 했던 곳, 그 역사의 길을 다시 한 번 가보기 위해서다.

왕궁리유적은 용화산에서 뻗어 내린 능선의 남측 끝부분 해발 40m 내외의 구릉에 위치하고 있다.
무더웠던 여름과는 달리 낙엽이 떨어져 앙상한 나뭇가지 사이로 우뚝 서 있는 석탑과 그간 정비공사로 확연하게 모습을 드러낸 왕궁터가 눈에 들어온다. 변함없이 든든하게 왕궁을 지키고 있는 왕궁리5층석탑과 깔끔하게 정리돼 안내판까지 설치된 대형 건물지와 사찰 구역, 석탑 뒤로 금당지와 강당지, 넓은 후원 구역과 대형화장실 구역, 공방 구역까지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미륵사지 석탑도, 왕궁리유적도 한 시대를 풍미했을 중심지로서의 영광을 다시 찾게 된다면 백제 무왕에게로 가는 길이 보다 가까워질 수 있을까.

벅찬 가슴에 기대까지 한껏 안고 무왕에게로 한 발 다가가 본다.

◇ 눈앞에 보이는 백제의 생활 모습

왕궁리유적 옆에는 왕궁리유적전시관이 자리하고 있다. 전시관은 백제의 왕궁 왕궁리유적, 왕궁리유적의 백제건물, 왕궁의 생활, 왕궁에서 사찰로의 변화, 백제왕궁 등 5개 분야로 구성돼 왕궁리유적 발굴조사에서 확인된 내용을 소개하고 출토유물을 전시하고 있다.

자칫 황량한 벌판 위에 머리 떨어져 그 숨결을 느끼지 못했을 수도 있는 백제와 무왕의 흔적들이, 전시관에서는 생생하게 다가온다.

백제 왕궁터는 우리나라 고대 왕궁으로는 처음으로 왕궁의 외곽 담장과 함께 왕이 정사를 돌보거나 의식을 행하던 정전 건물지를 비롯한 14개의 건물지와 백제 최고의 정원 유적, 금·유리·동 등을 생산하던 공방지, 우리나라 최고의 위생시설인 대형화장실 유적 등이 발견·조사됐다. 전시관은 이를 모형과 영상으로 안내하고 출토 유물들을 전시·설명해 왕궁의 축조 과정과 왕궁에서의 생활 내용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해 준다.

발견된 왕궁터 중 공방지와 대형 화장실이 눈길을 끈다.

이들은 왕궁의 부속시설로 왕궁 북서쪽 지대가 낮은 곳에 위치해 왕궁과는 별도로 운용된 것으로 보인다. 공방지에서 출토된 유물들은 금이나 유리, 동의 생산과 제작이 왕궁 내에서 이뤄진 사실을 미뤄 짐작케 한다.

당시 금은 가장 귀한 신분계층에서만 사용할 수 있는 것으로서, 서동이 금을 얻어 백제 제30대 왕위에 올랐다는 삼국유사의 기록에서와 같이 백제 무왕은 금을 중요시해 왕궁 내에 생산시설을 두고 외부로 유출되지 않도록 철저히 관리했던 것으로 보인다.

또한 대형 화장실은 토광을 파고 나무기둥을 세워 발판을 만들어 사용한 것으로 내부에서 회충, 편충 등의 기생충알과 뒤처리를 했던 막대기가 출토됐다. 백제 시대의 대형 화장실은 왕궁리유적에서 처음 확인된 것으로 왕궁의 중심시설과는 별도로 공방지 주변에서 확인됨에 따라 공방과 관련된 사람들을 대상으로 위생적인 뒤처리를 위해 설치한 것으로 생각할 수도 있다.

전시관은 발굴조사 과정에서 출토된 유물 약 1,400여점 중 300여점을 선정해 전시하고 있다. 왕궁을 상징적으로 나타낼 수 있는 금제품, 유리제품, 수부명 인장와, 전달린 토기 등과 함께 연화문 수막새, 각종 인장와와 토기류, 금과 유리제품을 생산하던 도가니 등이 전시돼 있다.

또한 체험학습 프로그램으로 발굴조사 과정에서 출토된 백제 기와를 관람객이 직접 만져보면서 기와 제작과정을 관찰하거나, 백제 무왕의 익산 천도와 관련된 기록인 관세음응험기를 목판으로 제작해 목판 찍기 체험과 함께 관세음응험기의 내용도 볼 수 있다.

태극문 수막새, 수부명 기와, 관궁사명 기와, 금제사리함 이미지 등을 도장으로 만들어 놓은 도장 찍기 체험은 전시유물을 오래 기억될 수 있도록 구성돼 있다.

◇ 왕궁리유적의 조사와 정비

1976년 원광대학교 마한·백제문화연구소에서 백제 왕궁터에 대한 부분적인 발굴조사를 실시해 왕궁 담장의 외곽경계와 석탑의 북측에서 금당건물터 조사가 이뤄졌다. 발굴조사 후 이 유적은 백제 무왕이 천도한 왕궁으로 주목받게 됐고, 일부에서는 별궁이나 미완의 왕궁설 등을 제기됐다. 석탑과 관련된 사찰은 왕궁 내 내불당적인 성격의 사찰로 추정됐다.

왕궁리유적에 대한 본격적인 조사는 미륵사지의 조사가 마무리돼가던 1989년부터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에서 시작해 현재까지 20년 동안 진행되고 있다. 백제문화권 유적정비사업의 일환으로 연차발굴조사가 진행 중이며, 2004년부터는 정비예정지역에 대해 익산시 대행 사업으로 정밀발굴조사를 실시하고 있다.

그동안 왕궁의 정확한 규모와 형태, 궁 내부의 건물지, 백제 최고의 정원 유적, 석축, 금을 가공하던 공방지, 대형 화장실, 탑과 관련된 사찰에 대한 조사가 이뤄져 백제 왕궁의 모습이 하나 둘씩 점점 더 구체화 돼가고 있다.

아울러 익산시는 올해 8월부터 내년 1월까지 왕궁리유적 정비공사를 실시해 유적지 내 궁장과 탐방로를 정비 및 보수하고 있다.

◇ 고도 익산의 부활, 기다림

왕궁의 북쪽 넓은 후원을 지나 무왕이 이따금씩 들렀을 제석사, 고도 익산의 위엄을 지키고 있는 왕궁리5층석탑과 정비로 그 모습을 드러낸 왕궁터와 함께 무왕의 안식처가 됐을 왕실사찰이다.
제석사지 역시 새로운 탄생을 기다리고 있다.

종합정비사업 실시로 거적때기를 벗고 모습을 드러낸 목탑지와 깔끔하게 정돈된 금당지, 다음 차례를 기다리고 있는 강당지와 승방지, 회랑지 등의 모습이 이전과 다르게 벌써 절터의 윤곽을 드러낸 것처럼 보인다.

천도를 단행했던 무왕의 거처 왕궁도 정비를 실시하며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고 있고, 오늘 부활의 신호탄을 쏘아 올린 미륵사지 석탑의 기운까지 더해져서일까.

기다리는 마음이 그리 멀게만 느껴지지는 않는 하루다.    

송승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