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년 외길 탱화를 그리며 살아온 삶.. 살아있는 문화재
1년에 9개월은 사찰에서 지내.. 마지막 꿈은 전수관 마련

“탱화를 그린다는 것은 수행과도 같다. 그렇기에 예전엔 스님들이 수행의 방편으로 탱화를 그려 남겼다. 탱화를 그릴 때는 경건한 마음으로 임해야 하며 어느 하나 의미가 없는 것이 없기 때문에 불교 경전에서부터 범어까지 통달해야만 한다.”

문화의거리 전시공간 ‘뭉클’에서 만난 탱화장 이삼열(68) 선생은 담담히 탱화와 자신의 삶에 대해 이야기를 시작했다. 이 선생은 2011년부터 매년 겨울 초입에 시연회를 통해 익산시민들이 쉽게 접할 수 없는 탱화 작업의 진면목을 보여주고 있는데 올해는 지난달 26일 문화재단에서 운영하는 ‘뭉클’에서 시연회가 열렸다.

이 선생은 1년에 9개월여 동안 전국 사찰을 돌아다니며 작업을 하는 터라 평상시에는 거의 만나기 어렵다. 상대적으로 탱화작업이 어려운 겨울철에야 자신의 자택이 있는 익산에 돌아오게 되며 그 기회에 시민들에게 탱화를 그리는 작업을 감상할 수 있도록 보여주는 자리를 마련하는 것이다. 사찰이나 박물관에서 만날 수 있는 탱화가 탄생하는 과정을 가까이에서 지켜볼 수 있는 아주 특별한 기회다.

이삼열 선생은 “탱화를 그리다 보면 자연적으로 불교에 빠져들 수밖에 없다. 한 작품을 그리는데 짧게는 15일에서 길게는 3개월이 넘기도 한다. 그러니까 수행하는 마음이 아니면 그리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 선생은 김제 태생으로 19세 때부터 형을 따라 탱화의 길에 들어서게 됐다. 1년 먼저 탱화를 시작한 형을 보고 그림 그리는 것을 워낙 좋아했던 그는 고민도 하지 않고 탱화를 선택했다. 김제 백구면에 있는 부용사에서 탱화의 대가였던 금용 김일섭 스님을 스승으로 모시고 탱화를 비롯해 단청과 개금(불상에 금색을 칠하는 것), 조각 등을 배웠다. 그렇게 약 50년 동안 다른 곳에 시선을 돌리지 않고 오직 탱화에만 몰두한 인생을 살았다.

이 선생은 “당시 어렵게 살던 때라 다른 꿈을 가질 여력도 없었던 것 같다”며 “그림을 좋아해서 그런지 빠져들게 됐고 그렇게 살다보니 시간이 어느새 흘러 50년째가 됐다”고 말했다.

익산으로 집을 옮긴 것은 35년 전. 이후부터 익산시민으로 살아오며 전국 사찰에서부터 찾을 정도로 이름을 알리는 탱화장이의 길을 걸었다.

이 선생에 따르면 탱화를 그리는 일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기본적으로 탱화를 그릴 정도가 되려면 부처님상, 사천왕상, 보살, 시왕초(十王草) 등을 1천장씩 그려야 한다. 탱화장이로서 바로 서기 위해서만 10년이라는 시간이 걸린다. 탱화장이가 된 후에도 오랫동안 갈고 닦아 숙련기로 들어설수록 그림의 완성도가 달라진다. 그런 인고의 세월이 있은 후에야 비로소 ‘탱화장’으로서 인정받을 수 있다는 얘기다.

이 선생은 “탱화를 그린다는 게 그만큼 어렵기 때문에 요새는 배우려 들지 않는다. 현재 6명의 제자를 두고 있지만 모두 40대 이상이다. 나처럼 젊은 나이에 시작하는 제자는 얼마 못 버티고 도망가 버린다”고 말했다. 

덧붙여 이 선생은 “그도 그럴 것이 힘든 일인데도 제대로 돈벌이가 되지도 못하기 때문이다. 명인으로 인정받아도 자신의 예술작품으로 대우받지 못하고 주문제작하기 때문에 크게 차이가 나지 않아 경제적으로 어려운 일로 생각된다”고 말했다.

이삼열 선생은 지난 2010년 전북무형문화재 제27호가 되며 한국의 탱화를 대표하는 화공으로서 인정받았다. 그 동안 판문각에서 제주도까지 전국 방방곡곡을 누비지 않는 곳이 없을 만큼 한결같은 삶이었다. 한 번 그려놓으면 수백 년에서 수천 년 변함이 없는 탱화를 닮은 인생이라고 하겠다. 하지만 경제적으로는 현재도 어려움을 겪을 정도로 힘든 일이라고 전한다.

이 선생이 그동안 그린 대표 작품으로는 탱화에 입문해 11년 만에 그린 부산 동래포교당의 후불탱화를 비롯해 수덕사 대웅전의 신중탱화와 칠성탱화, 불국사 극락전과 비로전의 후불탱화가 있다. 또 가까이에는 김제 금산사에도 그의 탱화가 있었지만 불에 타 소실됐으며 마동 연국사에는 그가 40여년 전 그린 탱화가 걸려 있다. 봉동면의 대각사, 용진면의 봉서사 등에도 이 선생의 탱화가 있어 언제 어느 사찰에서 이 선생의 탱화를 만날 수 있을지 모를 만큼 많은 작업을 해왔다.

이 선생은 “사심 없이 마음을 차분히 하고 종일 작업에 몰두하면 시간 가는지를 모르고 빠져들게 된다”며 “그 세월이 찰나의 순간처럼 50년이 됐는데 이제는 전수관을 지어 후학들을 가르치고 싶은 마음이 있다. 종교가 다르다고 해서 등한시 말고 관심 있게 바라봐 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정완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