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석탑의 시원 미륵사지 석탑, 백제 금속공예의 진수 사리장엄
백제 불상의 원형 석조여래좌상, 득남의 신비를 안고 있는 삼존석불

◇ 역사의 순간에 서 있는 미륵사지 석탑

지난 10일, 복원에 착수한 미륵사지 석탑을 다시 찾았다.
한국 석탑의 출발점인 미륵사지 석탑을 시작으로, 백제 불교의 탁월한 예술성과 창조성을 맛보기 위한 여정이다.

지난달 26일 복원 착수식에서, 일제강점기인 1915년 콘크리트 보수 이후 약 100여 년 만에 다시 제 모습을 찾기 위한 감동적인 첫 발을 내딛은 미륵사지 석탑은 지금 역사의 한 순간에 서 있다.
비가 온 뒤, 석탑과 목탑 자리 뒤쪽 금당지와 강당지, 승방지를 넘어 미륵산 자락까지 선명하게 눈에 들어오는 화창한 날씨에 오른쪽 동탑의 풍탁 소리가 기분 좋게 느껴진다.

복원 착수 이후, 석재 다듬는 석공들의 움직임이 분주하다. 한 쪽으로는 반듯하게 조각된 큼직한 석재들이 차례를 기다리며 줄을 서 있다.
복원되는 미륵사지 석탑은 우리나라 최대·최고의 석탑으로 백제시대를 대표하는 유물이다.

특히 이전에 성행했던 목탑의 형태를 일일이 석재로 본떠서 석탑으로 재현하고 있어, 우리나라 석탑의 시원으로 여겨지고 있다. 당시의 기술력으로 목탑의 유려한 곡선의 미를 살리고 석재가 가지는 장점을 살린 대규모의 석탑을 만들어낸 백제인의 뛰어난 조탑 기술에 다시 한 번 감탄을 금할 수 없다.

복원되는 석탑과 함께, 살아있는 역사의 현장에 지금 서 있다는 것.
자부심과 기대, 그리고 행복으로 다가오는 듯하다.

◇ 또 다른 백제 역사를 규명하는 열쇠, 사리장엄

미륵사지 유물전시관에서는 미륵사지 출토 사리장엄 특별전이 열려, 내년 3월 30일까지 미륵사지 석탑 사리공에서 발견된 금동제사리내·외호, 유리제사리병, 명문이 쓰인 금제사리봉영기 등을 직접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

고향으로 돌아온 사리장엄은 미륵사지 석탑 1층 심주석 위에 만들어진 방형의 사리공에서 출토돼, 백제 역사와 불교를 새롭게 이해하는 데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보주형 꼭지가 달린 뚜껑과 목이 긴 형태로 만들어진 금동제사리외호는 몸체가 상하 두 부분으로 돼 있는데, 상하가 맞닿는 부분에는 돌려 끼울 수 있도록 이음새가 설치돼 있다. 겉면에는 백제시대의 전형적인 문양인 연화문과 인동당초문, 어자문이 정교하게 새겨져 있어 화려함의 극치를 보여준다.

금동제사리외호 안에 들어 있었던 금제사리내호는 금판을 두드려 만든 것으로 겉면에는 외호와 비슷한 문양이 새겨져 있다. 이는 7세기 전반의 백제 금속공예 및 미술 양식이 매우 뛰어난 수준으로 발전해 있었음을 잘 보여준다.

유리제사리병은 구연부와 병 뚜껑, 그리고 수십 개의 유리 파편으로 수습된 극히 작고 얇은 유리병이다. 발견 당시 금제사리내호에서 유리 파편과 사리가 섞여 있는 상태로 수습됐다.

가로 15.3cm, 세로 10.3cm의 금제사리봉영기는 193자의 글씨가 쓰여 있는 금판이다. ‘백제왕후좌평사택적덕녀’라는 문구와 ‘기해년 정월 25일’이라는 기록이 있어, 사리봉안시기와 더불어 미륵사 창건주와 시기에 대한 실마리를 찾는 계기가 됐다.

◇ 현존하는 희대의 걸작, 석조여래좌상

미륵사지에서 나와 미륵사지로를 따라 삼기·낭산 방면으로 3km 정도 가면 삼기농공단지를 지나 석불사거리가 나온다. 사거리에서 좌회전하면 바로 석조여래좌상이 모셔져 있는 석불사가 있다.
나라가 위기에 처할 때마다 땀을 흘린다는 석조여래좌상은, 머리만 없어졌을 뿐 불신과 불상을 올려놓는 대좌, 석불 뒤의 빛을 둥글게 표현한 광배까지 고스란히 남아 있다. 물론 지금의 머리 부분은 새로 만든 것.

지금은 돌을 원각으로 깎아 만든 불상이 대다수를 이루지만, 현재 남아있는 백제의 불상은 대부분 부조된 형태이거나 크기가 작아, 백제 불상의 웅장한 모습과 완전한 형태를 지니고 있다고 평가받는 것은 연동리 석조여래좌상 뿐이다.

넓은 어깨와 반듯한 모습의 강건한 풍모를 지닌 석불은, 답답하리만치 굳게 다문 입술과 무표정한 인상으로 방문객을 단번에 압도한다.

가까이 갈수록 겨울 찬바람 탓인지, 차가운 기운도 광배에서 뿜어져 나오는 것 같다.
하지만 당당하게 허리를 곧게 펴고 반듯하게 다리를 엇갈려 가부좌한 자세에서 나오는 안정감과 얇은 옷 주름까지 세심하게 신경 쓴 모습, 광배 앞면에 새겨진 16엽의 연화문과 7구의 작은 부처, 음각한 화염문 등은 백제시대 불상의 특징을 잘 나타낸 것으로 우리나라 석상 조각의 기원이라고까지 일컬어지고 있다.

특히 광배의 경우에는 백제 이후 우리나라 석불과 광배의 조성 양식에 많은 영향을 미쳤으며, 바다 건너 일본 고대 조각에까지 영향을 줬다고 한다.

◇ 분을 바른 삼존석불, 지금까지 영험함 이어져

석불사에서 낭산 방면으로 진북로를 따라 700m 정도 달리면 태봉사를 알리는 이정표가 나온다. 도로에서 이정표를 따라 오솔길을 200m 정도 들어가면 안쪽에 아담하게 자리 잡고 있는 태봉사에 도착한다.

대웅전에 들어서면 정면 부채꼴의 큰 판석에 세 부처를 부조한 삼존불상이 자리 잡고 있다. 가운데 대좌 위에 아들을 점지하는 영험이 있다고 전해지는 석가여래좌상이 결과부좌를 하고 내려다본다.

왼손은 내려 배에 대고 오른손은 들어 가슴에 댄 특이한 손 모양을 하고 있다. 소라모양으로 된 머리카락은 촘촘한 편이고 둥근 얼굴에 날카로운 눈초리가 매섭지만, 이목구비가 작고 규격화돼 단정한 인상을 준다.

오른쪽에는 연꽃가지를 쥐고 있는 대세지보살입상이 위치해 있고, 왼쪽에는 감로수 병을 들고 있는 관음보살입상이 서 있는데 키가 작은 것으로 봐서는 동자승일지도 모르나, 역시 예사롭지 않는 눈매를 가지고 있고 머리 위 동그란 광배가 있다.

삼존석불은 발견 당시 본래의 모습이 많이 훼손된 상태였다. 그래서 호분을 발라 보수했는데, 패인 부분만 석고로 채운 상태여서 희미한 외형만 남아 있을 뿐이었고 이목구비 등 세세한 모습은 거의 알아볼 수 없었다. 이후 당시 주지스님과 친분이 있던 봉래스님이 개작했다고 전해진다. 현재의 모습 대부분이 하얗게 보이는 이유가 바로 개작 때문이다.

삼존석불의 좌우로는 각각 이름을 적어 소원을 비는 촛불과 연꽃 모형이 빼곡하게 들어 차 있어, 아들을 점지해 주는 삼존석불의 영험함이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는 것을 실감하게 한다.

송승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