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적의 조건 부흥의 터전.. 마한과 백제의 유물들이 전해
고조선 준왕부터 백제 무왕까지.. 재도약의 발판으로 삼아

◇ 마한부터 전해지는 중심지로서의 면모

지난 18일, 주중 계속 흐릿한 날씨에 모처럼 떠올라 빛을 발하는 해를 바라보며 마한·백제로 향했다.

익산지역에서 청동기 문화를 꽃피웠던 마한이 찬란한 백제에 이르기까지의 밑거름이 됐던 모습을 확인하기 위해서다.

천사백년의 세월을 뛰어 넘어 지금까지 빛을 발하는 마한과 백제의 유산들이 어려움과 고난의 흐린 날씨를 이겨내고 내리쬐는 햇살처럼 눈앞에 다가온다.

영등동 시민공원 안에 있는 커다란 형태의 구릉, 바로 마한시대의 집터들이다. 언덕 한 가운데 우뚝 서 있는 익산탑과 함께, 장방형과 원형으로 된 옛 집터들이 복원돼 있는 영등동 유적은 지난 2002년 5월 30일 익산시향토유적 제1호로 지정됐다.

1995년 영등동 택지개발과정에서 처음 발견된 영등동 유적은 청동기시대 장방형 집터 3기와 원형 집터 2기 등 총 5기의 집터가 남아 있던 곳이다. 이후 원광대학교 마한·백제문화연구소의 조사로 장방형 집터 7기, 방형 집터 4기, 원형 집터 12기와 마한시대의 주구묘 5기가 발굴됐다.

마한시대의 수장급 묘로 보이는 주구묘는 마한시대의 특징적인 장방형 무덤형태로, 그 규모와 출토된 대형 옹관으로 미뤄 3세기경 익산 지역의 유력한 세력 집단의 무덤일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마한시대의 익산의 문화를 확인할 수 있는 유적이 됐다.

문헌도 마한시대의 익산을 전하고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익산은 본래 마한국’이고 ‘후에 조선 왕 기준이 위만의 난을 피해 바다를 건너 남쪽 한의 땅에 다다라 개국해 거듭 마한이라 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는 익산은 고조선 왕이 남천한 곳이자, 마한의 중심이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아울러 ‘후한서’ 한전에 따르면 ‘준왕 후손이 절멸하자, 마한인이 다시 자립했다’고 전한다. 이는 곧 외래 세력이라고 할 수 있는 고조선 준왕의 후손을 대신해 토착 세력이었던 마한인들이 득세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익산지역에서 고조선 세력을 대체한 마한인이 세운 국가로 추정되는 건마국은 처음에는 고조선 준왕의 세력을 대신해 마한연맹의 맹주를 자처했으나, 점차 그 지위를 목지국에 내줘야만 했다. 또한 백제가 성장함에 따라, 영산강 유역의 마한연맹체처럼 독자적인 세력을 유지하고 못하고 점차 백제의 영향 아래 놓이게 된다.

지형적으로 익산지역은 북쪽에는 금강이, 그 남쪽에는 만경강이 흐르고 있다. 강에서 뻗어 나와 금마와 왕궁 일대까지 들어간 이 물줄기는, 새로운 문화를 받아들이거나 다른 곳으로 진출하기 위한 통로가 됐다. 이러한 점들이 옥야로 불릴 만큼 비옥하고 너른 들이 펼쳐져 한 국가를 세우고 남을 만큼 풍요로웠던 익산이 마한과 백제의 중심지로서 면모를 갖추고 있다는 사실을 뒷받침해준다.

◇ 마한과 백제시대의 익산의 모습, 생생하게 전해

영등동 유적의 마한시대 집터를 뒤로 하고 금마의 마한관으로 향했다. 금마면 고도9길에 위치한 마한관은 익산 시내에서 무왕로를 따라 익산 IC 방면으로 10km정도, 금마교차로에서 논산 방향으로 우측방향, 호남로를 따라 가다가 동고도리교차로에서 좌회전해 고도길을 따라 200m 정도 들어가면 도착할 수 있다.

삼한시대 마한 54개 소국의 중심 국가였던 목지국이 자리 잡고 있던 금마면에 위치한 마한관에서는 청동기 마한시대의 흔적부터 백제까지의 흔적을 한 눈에 자세하게 살펴볼 수 있다.

특히 영등동 유적에서 출토된 청동기 토기, 동검 등의 유물들과 움집, 독무덤 등의 유물들을 전시하고 있어, 마한시대의 익산을 생생하게 전해 준다.

마한시대의 움집, 먹을거리, 부뚜막, 농경생활과 농기구, 장신구, 토기, 무덤 등 마한의 다양한 유적과 유물, 그리고 청동기시대의 유물인 민무늬토기와 독널 등이 실물 그대로 복원돼 있고, 특히 당시 주거 형태와 움집 모형이 관람객의 시선을 끈다.

3개 주제별로 구분된 마한관은 마한이 성립되기 이전 익산의 선사문화부터, 익산 지역이 청동기시대 이래 역사문화의 중심이 될 수 있었던 배경과 마한의 성립·발전에 이어 마한에서 백제까지의 변화 과정을 각 시기의 집 구조와 내부시설의 변화, 토기의 변화, 무덤 구조의 변화 등으로 설명하고 있다.

◇ 백제시대 중심세력의 무덤, 중심지 면모 드러내

마한관에 이어 백제시대의 무덤을 살펴볼 수 있는 입점리 고분군까지는 꽤 먼 여정이다.
마한관에서 고도길과 황금로를 따라 황등·삼기 방면으로 15km 남짓 달려, 황등면에 들어서면 대야 방면으로 우회전해 황등육교 진입 후 황등서로를 따라 7km정도, 이후 벌매삼거리에서 웅포 방면으로 좌회전해 칠목재로를 따라 3km 정도 들어가면 입점리의 이정표가 나온다. 이정표를 따라 입점고분길을 1km 정도 더 들어가면 비로소 야트막한 언덕 위에 자리 잡은 전시관이 보이기 시작한다.

입점리 고분전시관에는 입점리 고분에서 출토된 금동관모, 금동신발 등이 전시돼 있다. 정교하면서 부드러운 이음새와 금동 위에 새겨 넣은 무늬들이 백제의 수준 높은 장인 정신을 보여준다. 금동관모는 반원형 금동판을 좌우에서 붙이고 맞붙인 부분에는 복륜을 돌려 머리에 쓴 고깔모양인데, 측판의 일부는 부식되거나 파손돼 있다. 금동신발은 두 장의 금동측판을 잔못으로 앞과 뒷부분을 고정시키고 밑판을 대서 만들었다.

전시된 금동관모는 왕족이나 귀족들이 썼던 관 위의 장식품이라고 한다. 금동관대나 금동신발 모두 당시 일반 평민들은 할 수 없었던 것들이어서 이것들이 발견된 무덤이 일대 지방을 지배했던 귀족 세력이었음을 짐작케 한다.

실제 익산지역에 대한 백제의 직접 통치가 이뤄진 4세기 이후 이 지역에는 마한 전통을 유지하려는 집단이 있었는가 하면, 백제의 귀족으로 편입된 집단도 있었다. 웅포리 고분과 입점리 고분의 굴식돌방무덤에 묻힌 주인공들은 후자에 속한 집단으로 추정되고 있다. 특히 금동관모, 금동신발, 귀걸이, 중국제 청자 등이 출토된 입점리 고분 1호분의 주인공은 껴묻거리의 위용으로 보아 백제의 22담로 가운데 한 명이었을 것으로 여겨진다.

전시관을 뒤편에는 발견된 고분군이 있는 그대로 펼쳐져 있다. 먼저 발굴당시의 모습을 복원해 놓은 웅포리 백제 무덤 떼가 눈에 들어온다. 이 고분들은 발굴 당시의 고분에서 자연석마다 번호를 매겨 고스란히 그대로 가져와 복원했다.

뒤쪽의 산 능선에서 줄지어 발견된 고분군은 가파른 지형에 위치해 있다. 대부분 토사가 아니라 돌로 돼있는 지형인데다 경사면인데도 불구하고 고분군이 형성된 점은 지금도 의아하게 느껴진다.

영등동부터 금마의 마한관, 웅포의 입점리까지 멀지 않은 곳에서 마한과 백제의 향기가 전해지는 느낌이다. 익산지역 곳곳에 남아 있는 유산들이 청동기 문화의 중심지로서의 익산과 백제 부흥의 터전으로 무왕이 선택했던 익산이 새삼 대단하게 느겨지게 한다.

큰 강과 너른 평야라는 최적의 조건을 가지고 고도로서 위용을 과시했던 모습을 떠올리며, 고도 르네상스 시대를 바라보고 있는 지금과 앞으로의 익산을 생각해 볼 수 있는 여정이다.

송승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