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 불교의 짝을 이루는 사찰, 사자사와 미륵사
미륵세상을 꿈꾸던 백제 무왕의 희망 느낄 수 있어

◇ 고도 익산을 내려다보던 미륵산의 백제 사찰

지난 25일 성탄절을 맞아 미륵산 등반에 나섰다. 오전에 성당에서 미사를 드리고, 오후에는 미륵산 사자암을 찾아 나서는 길이 색다르다.

미사 중 사회적으로 논란이 되고 있는 문제들로 인해 고통 받고 있는 이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줘 행복한 삶을 영위해 나갈 수 있도록 기운을 전해야 한다는 신부의 강론이, 사자암과 미륵사를 비롯해 미륵산을 감돌고 있는 미륵신앙의 바람과 절묘하게 맞아 떨어진다.

해발 430m의 미륵산은 그다지 높지 않고 여러 갈래의 등산로가 마련돼 있어 많은 등산객들의 발걸음을 이끈다. 휴일이라서인지,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가족 단위의 등산객이 많다.

백제시대 미륵사의 창건을 도왔다고 전해지는 지명법사가 거처했던 사찰, 해발 320m 미륵산의 8부 능선에 위치한 사자암은 천오백년 전부터 지금까지 변함없이 자리하고 있다. 백제 무왕이 미륵사를 창건하기 이전부터 그 자리를 지켜오며 고도 익산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사자암은 해 뜨는 동쪽을 향해 바라보고 있어 금마 일대와 한반도를 쏙 빼닮은 금마저수지가 한 눈에 들어온다. 현재는 대웅전과 3층 석탑, 향봉 스님이 거처하는 요사채, 등산객들을 위한 선방이 마련돼 있어 방문객을 맞이하고 있다.

사자암이라는 명칭은 삼국유사 무왕조에 보이는 사자사와 유사하기 때문에 이전부터 이곳이 바로 사자사 터일 것이라고 추정돼 왔다. 삼국유사에는 “무왕이 부인과 함께 사자사를 가던 중 용화산(현재의 미륵산) 아래의 큰 연못에서 미륵삼존이 출현하자 미륵사를 지었다”는 내용의 기록이 보인다.

현재의 사자암 자리가 백제시대의 사자사 터인지에 대한 의견이 분분했던 가운데, 1993년 발굴조사 당시 ‘지치2년사자사조와’라고 적힌 암막새가 출토됨으로써 사자사 터임이 확인됐다. 이로써 삼국유사 기록의 신빙성을 높여주었을 뿐만 아니라 사자사부터 미륵사로 연결되는 백제 미륵신앙의 발자취를 엿볼 수 있는 중요한 자료가 됐다.

◇ 백제 무왕의 바람, 굳건히 지켜냈을 성곽

사자암을 지나 미륵산 정상인 장군봉까지는 15분여를 더 올라가야 한다. 사자암에서 물건을 실어 나르기 위한 모노레일을 지나 5분여, 금방 미륵사지 유물전시관이나 전북과학고 쪽의 등산로를 따라 올라오는 길과 만나는 저점에 다다르면, 쉼 없이 오르내리는 많은 등산객들을 만날 수 있다. 정상 쪽으로 만들어진 나무 계단 등산로 또는 그 옆의 흙 등산로를 따라 올라가면 금방 장군봉에 도착한다.

사자암과는 또 다른 장관이 펼쳐진다. 다 녹지 않은 눈 사이로 멀리 중계탑과 산세에 가려 어렴풋이 보이는 미륵산성, 금마 일대가 눈에 들어온다.

올라온 반대쪽으로 조심스레 발걸음을 옮겨 미륵산성으로 향하는 내리막길에 접어들면, 구룡마을 입구를 지나 방문했던 미륵산성이 자연 그대로의 위쪽 성벽부터 그 모습을 드러낸다.

처음과 다르게 내려다보이는 북쪽 성벽이 폭설을 이겨내고 견고히 서 있는 모습이 듬직하다. 미륵신앙에 바탕을 둔 백제 무왕의 보국안민과 백제영광의 부활, 그리고 삼국일통의 정신을 지켜내는 중요한 성곽이었으리라.

한 계단씩 내려와 눈에 보이는, 남쪽으로 길게 쌓인 성벽 또한 굳건한 무왕의 기개를 전해주는 듯하다.

미륵산성은 기자조선의 마지막 왕이라고 전해지는 준왕이 쌓은 성이라 해서 ‘기준성’이라는 이름도 있고 당시 용화산의 이름을 붙여 ‘용화산성’이라고 불리기도 하는데, 1990년 원광대학교 마한·백제연구소의 동문지 발굴조사결과 백제 시대에 축조돼 조선 초기까지 4차례 걸쳐 개축된 사실이 확인됐다. 이러한 점으로 미뤄 백제시대는 물론이고 조선 시대에 이르기까지 익산 지역을 지키는 주요 방어선으로 활용된 것을 짐작할 수 있다.

◇ 창건부터 전해지는 미륵신앙, 무왕의 통치기반으로

미륵산 자락, 너른 터를 배경으로 자리한 미륵사지는 현재 터의 자리만으로도 우리나라 최대 규모 사찰의 위용을 짐작할 수 있다. 미륵사지 석탑의 복원 착수와 사리장엄 등으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고 있는 미륵사지는 백제 무왕의 기운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최대의 사찰이다.

7세기 백제 무왕 때 만들어진 미륵사는 서동요로 알려진 선화공주와 무왕의 깊은 불심이 깃든 곳으로, 당시 귀족불교에 머물고 있던 백제불교를 국민들에게 알려 대중화했다고 알려진다. 백제야말로 미륵이 출현할 만한 나라이고, 백제의 국민들은 미륵이 보호할 만한 가치가 있다는 선민의식을 일깨웠을 것이다.

백제 무왕은 이를 통해 백제의 부활을 꿈꾸고, 백성에 대한 길이 무엇인지 고민하며 답을 찾았을 터.

백제 사찰로는 이례적으로 삼국유사에 미륵사 창건 설화가 전한다.

삼국유사에 따르면 미륵사는 백제 무왕 대에 세워진 사찰로, “왕이 부인과 함께 사자사에 행차하고자 해 용화산 아래 큰 못가에 이르니, 미륵삼존이 못 속에서 나와 수레를 멈추고 경의를 표했다. 부인이 왕에게 말하기를 ‘모름지기 큰 절을 이곳에 세우고 싶습니다’고 하니 왕이 허락했다. 그래서 지명법사에게 가서 못 메우는 일을 물으니, 신통력으로 하룻밤 사이에 산을 허물어 못을 메워 평지를 만들었으므로 미륵법상 3개와 회전, 탑, 낭무 각각 3개소씩을 창건하고 액을 미륵사라고 하였다. 진평왕이 백공을 보내 도왔는데, 지금까지도 그 절이 남아 있다”라는 미륵사 창건설화가 전해진다.

미륵사 창건에 관한 이 설화를 통해, 미륵사가 신라와의 대치 관계 속에서 백제의 국력을 모은 국가적 사찰이었고 연못을 매립해 평지를 조성했으며 3탑 3금당의 삼원병립식 가람배치를 해 미륵신앙에 기반을 두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백제 무왕의 정신적 통치기반이자 백제의 영적 중심이었던 미륵은 불교의 3불(과거, 현재, 미래)중에서 미래불이다. 아직 출현하지 않은 유일한 미래의 부처로서 현실의 변혁과 변화를 갈구하는 이들에게 미륵불은 미래신앙으로 선망의 대상이었다. 불교의 미륵불에 대한 신앙은 통속적인 예언의 성격을 띠고 있으며, 구원론적인 구세주가 나타남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미륵사는 미륵불이 삼회 설법을 통해 중생을 구제한다는 미륵신앙을 현실세계에서 구현한 것으로, 당시 무왕의 생각을 잘 나타낸 사찰이다.

송승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