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일무이한 좌도와 우도의 만남.. 최고의 가락으로 창조
익산만이 가지고 있는 자랑거리.. 세계적·문화적 자산

문화라는 용어를 한 마디로 정의하기란 불가능하다. 자연 그대로의 상태에서 벗어나 일정한 목적 또는 생활 이상을 실현하고자 사회 구성원에 의해 습득, 공유, 전달되는 행동양식이나 생활양식의 과정 및 그 과정에서 이룩해 낸 물질적·정신적 소득을 통틀어 이르는 말이 문화의 사전적인 의미이다.

이와 같이 문화는 예로부터 전해 내려오기도 하지만, 어느 순간 새로 생성되기도 하고 소멸되기도 한다. 이런 과정 속에서 일정 지역의 특색이 반영된, 독특하고 획기적인 문화가 만들어지기도 한다.

이에 본지에서는 익산만이 가지고 있는 문화적 자산을 찾아 조명하고 알림으로써, 지역의 공동체 의식 내지는 향토 의식을 함양하고 자긍심을 고취시키며 시민 삶의 질 향상에 기여하고자 지면을 마련했다. <편집자 주>

◇ 태몽부터 장구재비였던 월고 이인수 옹

“내 어머니께서 꿈에 백발노인이 나타나서 장구를 주고 가더라는 거여. 그게 내 태몽이라는디, 영락없이 장구 칠 팔자인 게지.”
성포마을에 대대로 전승돼 내려온 금강성포농악 가락의 보유자인 월고 이인수 옹(88)은 음력 1926년 6월 12일 성당면에서 3남 1녀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그는 성포마을 수장구였던 큰아버지 故 이덕근 선생으로부터 7세 때부터 장구 가락을 배워 15세 무렵에는 끝장구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그야말로 장구를 치기 위해 태어난 그다.

“전쟁 당시에 다들 학도병으로 끌려가 다 죽었어. 나도 처음에는 끌려갔는데, 학교졸업장이 없다고 그냥 집에 가라고 하더라고. 농악에 온 정신이 팔려 학교에 안간 것인데 말이여.”
6·25 전쟁을 겪으며 그는 운명처럼 전쟁을 피했지만, 다른 이들은 모두 전쟁으로 목숨을 잃었다. 성포농악은 침체기를 맞고 마을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아 농악단을 꾸리기가 힘들게 된 그는 전국을 돌아다니며 활동을 시작했다. 그 당시 함께 활동했던 이리우도 농악단의 김형순 씨와 1985년 전국민속경영대회에서 대통령상 수상을 비롯해 각종 대회에서 탁월한 실력을 뽐내며 화려한 젊은 시절을 보냈다.

하지만 ‘넘의 굿’을 친다는 것에 대한 회의와 고향 굿에 대한 그리움으로 1992년 익산 성포마을로 돌아왔다. 침체된 성포농악을 다시 살리고 그의 기량을 전수하기 위해 띠집을 짓고 사람들을 모아 농악을 가르치며 제자를 찾았다. 이후 아들이 지어 준 자그마한 전수관을 찾는 이들을 제자로 삼아 가락을 가르쳤다. 현대 학원식의 전승이 아니라 옛 꾼들의 전승 방법 그대로 스승과 함께 먹고 자고 생활하며 농사를 짓고, 가락과 삶을 함께 가르쳤다.

이처럼 고향에서 제자 양성에 온 힘을 기울인 그는 전수관에서  뿐만 아니라 전국 어디든지 찾아가 자신의 가락을 무료로 가르쳤다. 그렇게 길러낸 제자가 전국에 수천 명에 이르고, 그 중 (사)금강성포좌도농악 보존회 이사장인 임승용 씨는 현재 함열 지역에서 성포농악의 맥을 이어나가고 있다.

20년이 넘은 지금 그의 고향 굿 전승에 대한 간절함은, 88세의 나이를 잊은 듯한 그의 열정과 압도적인 경지와 완성도의 성포가락, 이를 전수받은 제자들의 수상 경력으로 나타난다.

◇ 독특하고 획기적인 농악의 탄생

“옛날부터 성포마을은 시도 때도 없이 농악을 쳐댔어. 기맥히게 재미있으니까. 밤이나 낮이나 농악이 그치지 않았지.”
고려 때부터 조선 후기까지 세곡을 관장하던 성당창이 있던 곳이어서 성당포 또는 성포라 불렸던 성포마을은 서쪽으로 금강이 흐르며 동쪽으로는 논과 밭이 있다. 이인수 옹이 장구를 배우던 시절에는 평상시 뿐만 아니라 특히 장이 열리는 날에는 온 동네에 농악소리가 울려 퍼지고 전라도 각지는 물론 충청도 사람들까지 몰려 사람 꽃밭을 이뤘다고 한다.

성포마을은 자연적으로 전라도와 충청도의 맛과 멋이 만나 톡특한 문화가 생성될 수 있는 여건을 갖추고 있던 셈이다.

또한 절기마다 풍물굿이 성행했는데, 정월 보름날에는 걸궁굿과 별신제(현재는 당산제), 논농사 일할 때는 두레굿, 칠월칠석이나 백중날은 한바탕 잔치를 벌이고 이웃하는 동네와 기 싸움을 펼쳤던 술메기굿, 섣달 그믐날에는 횃불을 만들어 가는 해를 밝히며 쳤던 매굿 등이 있다.
“요즘 더운 것은 더위도 아니여. 옛날 모 심을 때는 논에 있는 물이 뜨거워 발을 담갔다가 빼곤 했어. 붕어도 죽어 둥둥 뜨곤 했다고. 그렇게 뜨거운데 일 할려면 농악 없이는 안 돼지 암만. 흥을 돋우는 거여.”

두레굿은 벼 심을 때와 김매기 때 농민들의 힘을 돋우기 위해 연주했던 농악이다. 좌도는 원래 상모를 쓰지만, 두레굿은 뜨거운 햇볕을 가리기 위해 고깔을 썼다고 한다. 두레굿은 질굿, 더드래기, 자즌된마치로 이뤄져 장구와 북의 엇박, 쇠와 북의 엇박이 특징이다. 장구와 쇠가 어우러지면서 가락을 만들어내는데, 그 장단에 맞춰 농부들은 벼를 심고 김을 맨다. 흥이 난 농부들이 “더 긁어라!”라고 외치면 가락이 점점 빨라지고 상쇠가 농부가로 소리를 메기고 농부들이 후렴을 치는 소리를 하며 쉼을 갖는다. 자즌된마치로 고조를 이루며 질굿을 내어 이 밭에서 저 밭으로 두레패를 옮겨 다시 일을 시작한다.

“여 뒷산에서는 아직도 삼신에게 제를 지내며 농악을 쳐.”
200여년 전 조선시대에는 한양으로 공납되는 전라북도의 세곡을 성당포구의 조창에 저장했다가 운반했다. 그 때 세곡을 운반하는 조운선의 안전과 전라북도 도민의 건강, 그리고 농사가 잘 되게 해달라고 삼신에게 제를 지내던 것이 별신제이고, 여기에 연주하던 가락이 성포 사물놀이 가락이다. 또한 가뭄 때 비를 내려달라고 용왕제를 드릴 때도 사물놀이 가락을 쳤다고 한다.

성포 사물놀이는 가락의 엮음새가 물 흐르듯 막힘이 없고, 네 가지 악기들의 엇박자가 잘 어우러지는 것이 특징이며 현재 마을 당산제나 행사 등에서 명맥을 잇고 있다.
“원래 우도는 불교에서 나온 것이고, 좌도는 군사들 사기를 높이기 위해 만들어진 거여. 전쟁이 나면 군사들 뒤에서 들썩들썩 하며 흥을 돋우고 힘이 나게 하는 것이지.”
판굿(걸궁굿) 가락은 조선 시대부터 전해져 내려오는 것으로 군사의 사기를 높이기 위해 만들어졌다고 한다. 이후 마을의 행사나 명절, 대회 때 즐겨 치며 지금까지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걸궁굿에는 반채부터 홑오채, 접(겹)오채, 접칠채 등 열 개의 마치(가락)가 있는데, 이 마치들을 상쇠의 재량으로 엮어 그대마다 만들어 친다. 이 모든 마치가 모두 구성된 것이 바로 걸궁굿이다.

“우리나라 문화재 받은 사람들이 전부 다시 배워야 혀. 농악은 반채에서 시작해 일채, 이채, 삼채, 사채, 오채, 접오채, 육채, 칠채, 접칠채를 전부 칠 줄 알아야 해. 근데 다들 한두 개만 가지고 문화재 받고 상을 받어. 나는 접가락 말고도 접접가락도 치는디 말이여. 그래서 성포가락이 최고라는 거여. 온전히 다 갖추고 있응게. 허허.”

80세를 훌쩍 넘어 어느새 90세를 바라보고 있는 그의 목소리에는 아직도 자신감이 묻어난다. 어린 나이 때부터 줄곧 농악 가락에만 빠져 평생을 바친 실력이 어느 누구도 넘보지 못할 경지에 이르렀으리라.

◇ 그의 가락은 유일무이하다

이인수 옹의 설장구는 故 이덕근 선생, 故 신기남 선생, 故 김남복 선생으로부터 전수받은 가락과 자신이 보유하고 있는 성포농악가락을 두루 엮어서 만든 것이다. 세상 어디에도 없는 유일무이한 그만의 가락을 만들어 낸 것.
그의 설장구는 크게 반 구정놀이와 진 구정놀이로 나뉘는데, 반 구정놀이는 대회 판 가락으로 짧고 강하게 치는 것이고 진 구정놀이는 축제 때 치는 설장구 가락의 완판이다. 특히 접 가락으로 넣는 양념 가락과 궁채의 굴림은 매우 인상적이다.

듣는 이가 감상하며 박수를 그치지 못하게 한다.
보여주고 들려주고 박수를 받는 공연이 아닌, 어느 틈엔가 같이 눈을 마주치며 호흡하고 어깨를 튕기며 ‘다 같이 놀아보세’의 판을 만든다. 마치 2002년의 월드컵 4강 때나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야구 우승 때처럼 너나 할 것 없이 서로 부둥켜안고 취해 어우러지는 모습이, 바로 우리나라 농악이 가지고 있는 진짜 맛이다.

이인수 옹은 그것을 하고 있다.

◇ 독보적이고 독창적인 가락, 하루 빨리 문화재로 지정해야

“나 죽기 전에 얼른 문화재 받아야 하는디, 걱정이여. 나 좋자고 그런 것이 아니라, 우리나라 최고 가락인디 끊어질까봐 그려.”
가끔씩 전수관을 찾아 배움을 청하는 이들을 함열에 있는 수제자 임승용 씨를 소개해 돌려보낸다는 그는 속으로 걱정이 많다. 아직까지도 식지 않은 열정과 접접가락까지 자유자재로 구사할 만큼 압도적인 실력을 가진 그이지만, 그의 독보적인 가락을 전수해 이어나갈 방법을 찾지 못한 것.

그는 자신의 적지 않은 나이를 우려, 죽기 전에 성포농악이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되길 간절히 바라고 있다. 이미 호남우도 이리농악과 호남좌도 임실필봉농악은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돼 있다.
화려함 속에 완전함을 갖춘 성포농악, 익산만의 자랑거리, 그리고 우리나라 더 나아가 세계적으로 독보적이고 독창적인 그의 가락이 하루 빨리 문화재로 인정받아 지정되길 고대해 본다.

송승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