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명(知命)의 신통한 능력.. 하룻밤 새 못 메워 창건
그 당시부터 있었던 버드나무.. 전해지는 천년의 역사

◇ 천년 사찰의 모습이 드리워진 연못

“선화 공주가 남긴 적삼바람 어느 나뭇가지엔가 걸려 있을지도 몰라”

신동엽 시인의 시 ‘금강’ 제19장의 한 구절.
미륵사 터 남쪽 정면, 좌우로 연못가 왕버들 가지에 걸린 바람이 카메라에 들어온다. 연못을 메워 너른 터에 당당히 자리 했던 세기의 사찰이 바람을 타고 눈앞에 와 있다.

삼국유사 무왕조, 백제 무왕이 선화공주의 청을 받아 지명법사의 신통력으로 연못을 메우고 지었다고 전해지는 미륵사다.

이 사찰은 우리나라에서 유일한 3탑 3금당 형식으로 세워졌다. 전각과 탑, 회랑을 각각 3개씩 세우고 그 이름을 미륵사라 했다. 이렇게 창건된 미륵사는 앞으로 다가올 미래불로서의 미륵이 상주하는 공간이었고, 기울어져 가던 백제 말기 미륵신앙으로 민중에게 희망을 주고 왕권을 강화하려는 상징적인 사찰이었다.

미륵사의 연못지는 회랑지의 남쪽에 자리 잡고 있다. 회랑지 정면 앞쪽은 동서 연못지 중앙에 해당한다. 이 사이에는 너비 50ｍ의 사찰 진입로가 마련됐는데, 남북향의 이 직선 도로는 1ｍ 정도 확인된 바 있다.

이처럼 연못지는 중앙에 진입로를 사이에 두고 동서 양편에 축조됐다. 동 연못지는 정방형에 가까우며 너비는 50ｍ 내외, 서 연못지는 동서 60ｍ, 남북 40ｍ 내외의 직사각형이다. 그 크기만으로도 최대의 사찰이었던 미륵사의 규모를 짐작케 한다.

이들 연못지에는 가장자리에 지름 0.3m가 넘는 왕버들 그루터기가 남아 있어, 연못의 가장자리를 따라 왕버들을 심었던 사실을 알 수 있다. 이 사실은 미륵사지 발굴 당시에도 확인됐다.
왕궁리유적전시관의 이신효 학예사는 “미륵사지의 연못 발굴 당시 나막신이나 칠기 공예품 등이 나오기도 했는데, 그것보다 연못 바닥의 단면을 떠보니 점토와 낙엽이 층층이 쌓여 있었다. 잎을 보니 버드나무 잎이었고 그래서 천사백년 전에도 연못가에 버드나무가 있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고 전한다.

그 옛날 연못가에도 지금처럼 버드나무가 있었다는 사실이 천사백년의 세월을 거슬러 올라가게 한다.

특히 지금 있는 왕버들은 다른 나무들과 경쟁하지 않고 개울가나 물가에 자리 잡아 어린 시절부터 빨리 자라는 생존 전략으로 다른 나무를 압도한다고 한다. 어렸을 때부터 재기와 도량이 컸던 인물로 묘사되고 있는 백제 무왕이 창건한 미륵사에 안성맞춤인 나무이다.

지금 미륵사지에서 방문객을 맞이하는 두 연못이, 그리고 연못에 그 가지를 드리우고 있는  버드나무가 바람을 타고 오는 백제의 향기와 함께 그 당시의 모습을 상상하게 한다.

◇ 연못을 메운 지명법사의 신통력

삼국유사 무왕조에는 지명법사라는 백제의 고승이 등장한다.

그는 서동의 부탁을 받고 신통력을 써서 오금산의 금을 신라로 보내고, 이를 계기로 신라 진평왕이 서동과 선화공주와의 결혼을 승낙한 것으로 전해진다.

또한 그는 신통력을 써서 하룻밤 사이에 주변의 산을 깎아서 못을 메워, 미륵사가 세워질 평지를 만들었다고도 전한다.

진평왕이 이러한 지명법사의 신통력을 기이하게 여겨 그를 더욱 존경하고 늘 안부편지를 보냈다고 하는 것은 진평왕이 지명법사를 매우 신뢰하였음을 보여주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또한 오랫동안 미륵산 문화권을 연구해 온 역사민속학자 송화섭 박사의 주장에 따르면, 지명법사는 서동이 무왕이 돼 왕권을 장악하는 데 지대한 영향을 미친 정신적 지주이다.

무왕의 생가터는 사자사에서 보면 훤히 내려다보이는 지점이어서 아마도 어렸을 때부터 항상 지명이 거처했던 미륵산의 사자사를 쳐다보면서 성장했을 것이고, 왕이 되기 이전부터 지명법사를 자주 찾아갔을 공산이 크다는 것.

미륵사 창건의 계기도 무왕과 선화공주가 사자사의 지명법사를 찾아가던 중에 있었던 일들이 전해지는 것이기 때문에 이와 같은 주장을 뒷받침한다.

어찌 됐던 백제의 지명법사는 비범한 인물이었음에는 틀림이 없는 것 같다. 명(命)을 안다는 뜻의 지명(知命)이라는 법호를 봐도, 그는 전생·현생·내생의 삼생 정도는 볼 수 있었던 도력의 소유자였던 것 같다.

창건된 사찰이 대를 이어 명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명당 터와 더불어 주지 스님의 도력이 필요하다. 터 자체가 영험을 발휘하는 경우도 있지만, 그 사찰에 고승이 주석하고 있으면 신도들이 몰리게 마련인 것이다.

백제시대의 지명법사가 거처했다는 사자사가 지금까지 전해져 사람들의 발길을 끌고 있는 것은 미륵산의 영험과 동시에 지명법사의 신통력이 아닌가 싶다.

한편 백제 승려였던 지명(知命) 법사를 진평왕 대의 신라 승려인 지명(智明)과 동일인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동국대학교 김복순 교수는 그가 백제에 들어가 간첩활동을 했다는 의견을 제시한 바 있다.

김 교수는 두 승려의 이름이 같다는 것과 활동시기가 모두 진평왕 대라고 하는 사실, 그리고 해동고승전(海東高僧傳)을 근거로 지명이 진(陳)나라에 들어가 10년 만에 귀국한 후 7년 동안 백제에 머물렀다고 보고 있다.

그러나 지명(智明)이 진평왕 7년(585)에 진나라에 들어갔다가 24년(602)에 귀국했다는 사실은 삼국사기와 해동고승전의 기록이 일치하므로, 그는 17년간 진나라에 머물러 있다가 귀국한 것이라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송승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