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 지난 간이역.. 우리나라 현존 간이역 중 가장 역사 깊어
마음속에 자리 잡은 추억과 낭만.. 역사·문화적 가치 되새김해야

◇ ‘대장역’부터 ‘박물관 춘포’까지

기차가 서지 않는 간이역.

느릿느릿, 구불구불한 철길을 달리던 대장역(현 춘포역)의 완행열차는 이미 기억 속 저편 추억으로 사라져버린 지 오래다. 이제는 찾아오는 이들보다 더나가는 이들이 더 많아 그 자취를 잃어가고 있는 많은 간이역들 중 우리나라에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간이역, 춘포역을 찾았다.
역사 앞 커다란 나무를 중심으로 만들어진 조그마한 로터리, 아담한 크기의 역사와 기차역임을 알리는 팻말, 시민들을 위한 조형물과 포토존이 현재 춘포역의 모습이다.

역사 안으로 미닫이문을 열고 들어서면 역장 의복과 대장역 당시의 검정 교복, 초등생을 대상으로 해 진행한 현장체험학습의 전시물들이 아기자기하게 전시돼 있다.

안타깝게도 기찻길은 춘포역 위 고가로 나 있어, 호젓한 기찻길 옆 줄 지어 서 있는 나무와 누군가 반갑게 뛰어나올 것만 같은 영화 속 풍경은 머릿속 뿐.

역장과 승무원의 사무실로 쓰였을 법한 왼쪽 공간에는 춘포역을 대상으로 하는 익산문화재단의 전시물들과 선로 조작을 위한 장비처럼 보이는 기계가 하나 덩그러니 놓여 있다.

조용하고 정겨운 시골의 모습
허름한 외관 그대로 지닌 공간
추억을 가지고 있는 그리움의 공간
느림의 미학이 있는 마음의 안식처
근대 역사를 간직한 문화유산

당시 대장역은 여행이 떠오르는 추억과 낭만의 공간이기도 하고, 유일한 교통수단이었기에 매일 마주하는 삶의 일부이기도 했다. 역사적으로는 일본에 의한 식민지 근대화의 상징이자 수탈의 공간이었고, 근현대 산업화와 흥망성쇠를 함께한 생활의 현장이기도 하다.

춘포역은 1914년 11월 17일 일제강점기에 대장역이라는 이름으로 영업을 개시했고, 이후 1996년 6월 1일 춘포역으로 이름이 변경됐다. 이후 이용객이 줄어들면서 1997년 6월 1일에는 배치간이역으로 격하되고 2004년 12월 10일에는 무배치간이역으로 격하되는 아픔을 겪었다.

올해로 문을 연지 100년을 맞이하는 춘포역은 우리나라 현존 간이역 중 가장 오래됐을 뿐만 아니라 역사적, 건축적, 철도사적 가치를 인정받아 2005년 11월 21일 근대문화유산 등록문화재 제210호 지정됐고, 2011년 6월 1일 폐역 이후 지난해부터 춘포역을 역사의 명소로 복원하고 지역 주민의 참여를 촉진해 역사문화가치 창조형 공간을 조성하기 위한 ‘근대문화유산 박물관 춘포’ 사업이 (재)익산문화재단 주관으로 추진되고 있다.

◇ 또 다른 이름.. ‘딸촌’, ‘대장촌’, ‘쌀촌’

교통수단이 단지 기차뿐이었던 시절, 버스나 택시는 물론이고 자전거조차 보기 힘들었던 그때에는 도보와 대장역을 지나는 기차가 전부였다. 이후 버스가 생기고 차가 늘어나 승객이 점차 줄어들어 무인 승차역이 돼 버렸지만, 당시에는 사람들이 한 번 모이면 수백 명, 겨울철 검정 학생복을 입은 학생들이 까마귀 떼처럼 몰려들기도 했다.

당시 대장역은 전주, 군산, 익산으로 통학하는 학생들뿐만 아니라, 초·중학교를 졸업하고 산업전선에 일찌감치 뛰어든 여성들의 출근길이기도 했다. 그래서 붙여진 이름이 바로 ‘딸촌’. 대장역을 드나드는 여학생들을 두고 이른 말이다.

통학열차는 매일 같은 시간에 기차를 이용해 등·하교를 하는 통학생들의 로맨스 장소이기도 했다. 매일 같은 공간에서 오고가며 북적이는 가운데, 수줍게 마주치는 눈빛으로 남몰래 막연하고 애틋한 감정을 키우기도 했다.

또 다른 이름은 ‘대장촌’, ‘쌀촌’이다. 예부터 춘포면은 북부지방 일부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만경강 지류들이 흐르며, 그 물줄기를 따라 넓은 평야를 이루는 곳이다. 만경강은 농사에 필요한 농수를 풍부하게 제공했으며, 그 농수를 머금고 곡식은 흉년을 모르고 익어갔다. 일제 춘포면에서 수탈한 쌀을 대장역을 통해 군산항으로 옮겼고, 비옥한 곡창지대인 춘포 일대를 일본인들이 ‘넓은 들’이라는 뜻으로 대장촌이라고 부른 까닭에 춘포역의 이름은 당시 대장역이었다. 또한 넓고 비옥한 토지로 곡창지대였기 때문에 ‘쌀촌’이라고 불렸다고도 전해진다.

◇ 이제는.. 문화공간 춘포

100년의 긴 세월 동안 수많은 수탈의 아픔과 시련을 겪어내고, 지역 주민들의 생활 터전이었던 춘포역이 이제는 역사문화공간으로 거듭나기 위한 발걸음을 내딛고 있다.
(재)익산문화재단에서는 지난해 간이역 춘포를 건축역사·추억·한국의 간이역 박물관으로 구성해 체험을 통한 현장교육장으로 활용하기 위한 ‘근대문화유산 박물관 춘포’ 사업을 추진했다.

춘포역을 역사의 명소로 복원하고, 지역 공동체 활성화 및 문화 네트워크 조성을 통해 지역 활성화를 도모한다는 취지다. 이로써 일제강점기 역사·문화적 자산을 체험하고 춘포면 고유의 역사적 특성을 반영해 지역 주민들이 자긍심을 가지고 삶에 활력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아울러 자칫 사라질 수 있는 근대의 역사문화공간을 복원함으로써 계승·발전시키는데 기여한다는 계획이다.

이를 위해 사진작가 김재관 씨와 곽풍영 씨, 주민 이기현 씨 등을 통해 옛 사진자료를 기증받고, 춘포역과 마을에 관한 이야기 구술 채집을 실시했다. 또한 춘포역 및 진입로 환경 및 식재 조성과 조형물 제작·설치, 근대문화유산 춘포역 활성화를 위한 사례발표 등을 진행해 왔다.

지난해 12월에는 명예역장으로 최중호 씨를 위촉했고, 현장에는 역무원이 사용했던 역장의 유니폼과 모자, 교복 등을 볼 수 있게 전시했다. 이후 지역 주민에게 직접 듣는 춘포 마을이야기 구술록 핸드북과 춘포역 일러스트 엽서와 스탬프를 제작해 배치할 예정이다.

1958년 대장역 모습, 사진제공 익산문화재단

춘포역은 일제강점기 수탈의 역사를 대표하는 아픈 간이역이지만, 이제는 역사문화공간으로서 새롭게 태어날 준비를 하고 있다. 아프고 가슴 시린 이야기, 북적이며 살아왔던 사람 사는 이야기, 애틋한 사랑 이야기 등 춘포역이 간직하고 있는 모습 그대로 전시공간과 체험공간에 녹여내 가치 있는 문화공간으로 거듭나길 바라본다.

송승욱 기자